퀵바

Myom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트 포밍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연재수 :
182 회
조회수 :
12,048
추천수 :
301
글자수 :
955,407

작성
23.11.14 19:54
조회
24
추천
1
글자
11쪽

레퀴엠(123)

DUMMY

Episode 122 - Despair



늑대전대.

폐허처럼 난장판이 되어버린 길가에 널브러진 대원들이 보인다.

윤 설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전대장인 지태의 앞에 섰다.

그녀의 사이보그 프로그램에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 목표물, 생존 확률 10퍼센트.


지태는 무릎을 꿇은 채로 그녀의 말을 들었다.

치가 떨리는 기계음이 귀에 들어오자 지태가 이를 갈았다.

"목표물이라니, 도대체 너의 목적이 뭐냐?"

힘겹게 내뱉는 한 마디에 윤 설이 반응했다.

- 그의 기대에 부응하는 거다.


알 수 없는 말이 오가고 지태가 일어섰다.

그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일으키며 윤 설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웃기고 있네."

지태의 거센 저항이 시작되었다.

그는 쓰러진 대원들을 훑어보며 체내의 계수를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이왕 죽더라도 너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 정도는 새겨주겠다."

지태는 이미 동귀어진의 각오로 전투에 임할 준비를 마친 듯 보였다.

바닥으로 흘러 들어가는 수많은 양의 계수들.

그러나 윤 설은 그 광경을 아무런 행동 없이 지켜보았다.


서지태.

학사관 출신의 과정을 모두 높은 성적으로 마무리한 엘리트 장교.

신체 능력과 계수를 활용하는 전투에서 다방면으로 강력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벽을 느꼈다.

눈앞에 서있는 윤 설이라는 여성에게서.


지태의 계수가 점점 뭉쳐지기 시작했다.

- 그럴 순 없지.

윤 설이 광분 상태로 그에게 돌진했다.

지태는 등 뒤에 수십 개의 작은 마법진들을 생성시킨 후, 무차별 폭격을 시전했다.

노란색과 붉은색, 그리고 푸른색의 계수 덩어리가 발사되어 윤 설을 노렸다.


폭음과 폭렬, 충격음이 들리기 시작하며, 곧 윤 설의 움직임이 단조로워졌다.

콰과과과광-!

빠르면서도 강력한 파괴력.

지태의 폭격이 이어지며 윤 설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하는데 성공했다.


'됐다, 이러면 나도 다가갈 수 있지.'

지태는 마법진을 놔둔 채 손으로 어마무시한 크기의 계수 장검을 생성시켰다.

언뜻 보기에는 휘두르기 힘들어 보이지만 그에게 있어서 이보다 안성맞춤인 무기는 없었다.

윤 설의 붉은 기류가 잔상처럼 흩어진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해놓고 정작 내 앞으로는 기어오지도 못하는 거냐? 그렇다면 이 싸움은 내 승리다!"

지태가 보기 좋게 떠들었다.

분명 눈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지태의 공격에 윤 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터.


그러나 윤 설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다.

기회.

그녀는 어설픈 공격을 수십 번 시도하는 것이 아닌 정확한 한 방을 노리고 있었다.

이미 조커가 발현된 상태에서 그녀는 마법진의 계수포를 피하는 척, 점점 원형으로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물론 지태가 그것을 눈치챌 리 없었다.

쏟아지는 폭격 세례에 그저 상대방의 움직임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시키게 만들었다 생각할 뿐.

"하아압!!!"

지태가 두 다리에 계수를 심어 윤 설에게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렇게 일자로 달리고 있는 그녀의 앞에서 지태가 장검을 위로 처들었다.

"이제 끝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 찍어지는 마지막 일격.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윤 설은 입꼬리를 올리며 광분의 기류를 폭발시켰다.


"으윽, 무슨!!!"

붉은 계수의 오라가 연신 흩어지며 지태의 시야를 가렸다.

위로 뻗은 손 때문에 눈을 가리지도 못하는 상황.

- 빙고.

윤 설의 기계음 섞인 목소리가 왠지 소름돋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녀는 오른손에 든 조커를 휘둘렀다.


촤악-!

깔끔하게 살이 베어지고 그 사이에서 기다렸다는 듯 혈흔이 쏟아졌다.

지태는 갑작스레 찾아온 고통에 장검을 떨어트리고 온몸을 비틀었다.

"끄, 끄아아아아아아악!!!"


그 순간에도 마법진에서 폭격 세례가 이어졌지만 윤 설의 방어벽은 그 공격을 막아내기에 충분했다.

지태는 무릎을 굽혀 몸을 웅크렸다.

기지를 발휘해 계수를 응집시킨 주먹을 윤 설에게 뻗어보았지만 그마저도 성공시킬 리 만무했다.


윤 설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의 주먹을 가볍게 피하며 혈흔이 터져나오는 상처를 발로 가격해 지태를 넘어트렸다.

퍽- 소리와 함께 바닥에 지태의 몸뚱아리가 나뒹굴었다.

- 목표물, 확보 완료.

"화, 확보라니, 무슨 헛소리를! 그냥 죽여라!"

지태가 영화속에서 나올 법한 멋진 대사를 뱉었다.


그러나 감정이 거의 사라진 윤 설의 귀에는 그저 발버둥처럼 보일 뿐.

윤 설이 조커를 소멸시켜 뾰족한 가시모양의 창을 만들어냈다.

"크윽, 젠장!!"

지태는 체념이라도 한 듯 눈을 감고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윤 설이 찌르기 자세를 취하는 순간.

파직-!

그녀의 얼굴에 스파크가 튀겼다.

파지지지직-!!

따가운 감촉과 함께 푸른빛의 정전기가 일어났다.


- 으윽!!

윤 설은 발현시킨 무기를 소멸시키고 몸을 비틀거렸다.

- 프로그램, 오류.

그녀의 기이한 움직임에 지태가 다짐한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달렸다.

체내에 뭉쳐있는 계수를 최대한으로 내려 다리 힘을 실어 뛰었다.


죽음이라는 공포 앞에서 인간의 신체적 능력이 폭발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 크, 크윽!

윤 설의 눈앞에 프로그램의 정전 현상이 일어났다.

그녀는 눈도 뜨지 못한 채 무릎을 꿇어 심호흡했다.

- 하아, 하아, 하아.

신음이 터질 정도의 고통이 느껴졌다.


이대로 가다가 정신이 붕괴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 때.

"멍청한 X끼."

허공에서 보라색의 계수가 발현되며 변질되더니 리븐이 나타났다.

허상이었다.

윤 설은 허상의 리븐을 보고는 곧장 인사를 건넸다.


고통마저 잊어버릴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리븐은 실망한 표정을 보였다.

"제대로 세뇌가 되지 않은 건가? 분명 감정을 싸그리 없앴다 생각했거늘."

- 죄, 죄송합니다.

윤 설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리븐은 엎드려 떨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뭐, 됐다. 이 정도라면 곧 모든 감정이 소멸하겠지. 지금이야 충돌 현상이 일어날 뿐이지만 그것도 조만간이다."

그의 얼굴에서 사악함이 흘러나왔다.

리븐은 허상을 조금씩 소멸시키며 마지막 말을 뱉었다.


"이제 됐다, 윤 설. 아니, 디스트로이어. 다시 범선으로 복귀해라."

그는 그렇게 마지막 말을 전하고는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윤 설은 리븐이 사라졌음에도 머리를 땅에 박으며 몸을 떨었다.

- 기, 기억이......!

조금씩 뱉어보는 말.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기억들.

하지만 리븐이 말했듯 그것은 소소한 반항에 불과했다.

곧 있으면 그녀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리라.

가슴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떠오른 하나의 기억.


"너, 가족들은 어디 있어.....?"

윤 설이 조심스레 말했다.

정혁은 눈을 가린 손을 내렸다.

"저도 몰라요, 잘 살아 있는지......, 어디 안전한 곳에 대피라도 했는지."

"나도......"


"어, 혹시....., 어떻게 불러드려야 할까요?"

머리를 긁적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냥 이름으로 불러."

'그래도 나보다 나이도 있는데, 그냥 이름으로 부르기는 그렇지 않나?'

정혁은 잠시 동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누, 누나라고 부르면 될까요....?"


윤 설의 두 번째 기억.


"정혁아, 왜 나한테는 얘기 안 해줬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윤 설의 손이 떨리고 있다.

"내가, 내가 계속 물어 봤었잖아."


정혁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다.

윤 설이 다시 한번 말했다.

"왜 대답을 안해? 어째서 나한테는 이야기 안 해줬냐고."

정혁이 작은 목소리를 냈다.

"누나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까봐....."


정혁의 말에 윤 설이 충격을 받은 듯 굳어버렸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저한테만 쌓인 거니까 제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

"아, 친구잖아!!!!"


치지지직-!!


정혁의 눈이 번쩍 뜨인다.

고개를 들어 보니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어설프게 사과의 말을 건네봤자 독이 될 게 뻔했으니까.

지금은 그저 윤 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왜 나한테 신뢰를 안 줘?! 저번에 약속했잖아, 뭐라도 쌓아두지 말고 서로 이야기하자고. 그런데 이게 뭐야?!"

그러나 아무 말 없는 정혁.

"대답해!!!!"

여전히 묵묵부답.

윤 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알았어, 네가 정 나를 못 믿고 나에게 계속 무언가를 숨기고 싶게 된다면."

그녀는 생활관 문 앞에서 문고리를 돌렸다.

"내가 사라져줄게."


치지지지지지지직-!!!

마치 영화 스크린으로 보는 것처럼 갖가지 기억들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흐릿해졌다.

윤 설은 한쪽 눈으로 눈물을 쉴틈 없이 흘렸다.

순간 기계음이 완전히 빠진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 싫어! 싫어!! 잊고 싶지 않아, 잊고 싶지 않아!!"

그녀는 바닥에 손을 파묻으며 포효했다.

그 네 발 달린 동물들마저도 느낄 수 있는 것이 감정이라는 것인데 어떻게 잊고 싶겠는가.

두려워졌다.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이 억압되듯 몰려왔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 지워져가는 감정들을 조금이라도 부여잡는 것 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 정혁아......, 구해줘!"

그러나 거기까지.


파지지지직-!!

스파크가 발현됨과 동시에 사이보그 프로그램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크, 크아아아아아아악!!!!"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끔찍한 아픔이었다.


"제, 제발 그마아아아안!!!"

조금씩 목소리의 크기가 줄어들고 쉼없이 흘러나오던 눈물이 멈췄다.

그리고 입술의 떨림이 멎어듬과 동시에 무표정의 상태가 되었다.

윤 설은 곧장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완전히 가동되기 시작한 사이보그 프로그램이 제 할일을 하듯 레이더로 생체 신호를 확인했다.


윤 설은 고개를 돌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살아있는 자는 푸른색, 죽은 자는 붉은색으로 표시되는 레이더.

그러나 쓰러져 있는 이들은 모두 푸른색으로 발현되었다.

- 생체 신호, 확인 완료. 제거 임무에 돌입.

그녀는 곧장 계수를 발현시켜 순식간에 검을 생성해냈다.


그리고 목표물을 잡은 듯 곧장 쓰러진 대원에게로 이동했다.

검을 높게 처들어 아래로 찍으려는 순간.

퍽-!!!

어디선가 망토를 쓴 누군가가 나타나 윤 설을 막아섰다.

얼굴과 상체, 하체까지 완벽하게 가린 정체불명의 이는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으로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어이, 어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러나 윤 설은 갑작스러운 적의 등장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적의 발견에 목표물을 늘려나갈 뿐.

윤 설은 싸늘한 표정으로 정체불명의 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 타겟 조준, 사살 확인.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라이트 포밍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레퀴엠(123) 23.11.14 25 1 11쪽
122 레퀴엠(122) 23.11.13 26 1 12쪽
121 레퀴엠(121) 23.11.12 25 1 12쪽
120 레퀴엠(120) 23.11.10 26 1 12쪽
119 레퀴엠(119) 23.11.09 31 1 12쪽
118 레퀴엠(118) 23.11.08 25 1 12쪽
117 레퀴엠(117) 23.11.07 23 1 12쪽
116 레퀴엠(116) 23.11.06 27 1 12쪽
115 레퀴엠(115) 23.11.05 26 1 12쪽
114 레퀴엠(114) 23.11.04 26 1 12쪽
113 레퀴엠(113) 23.11.03 25 1 12쪽
112 레퀴엠(112) 23.11.02 25 1 12쪽
111 레퀴엠(111) 23.11.01 24 1 12쪽
110 레퀴엠(110) 23.10.31 32 1 12쪽
109 레퀴엠(109) 23.10.29 27 1 12쪽
108 레퀴엠(108) 23.10.28 26 1 12쪽
107 레퀴엠(107) 23.10.27 29 1 12쪽
106 레퀴엠(106) 23.10.26 27 1 12쪽
105 레퀴엠(105) 23.10.25 29 1 12쪽
104 레퀴엠(104) 23.10.24 24 1 12쪽
103 레퀴엠(103) 23.10.23 26 1 12쪽
102 레퀴엠(102) 23.10.22 30 1 12쪽
101 레퀴엠(101) 23.10.21 28 1 11쪽
100 레퀴엠(100) 23.10.20 33 1 12쪽
99 레퀴엠(99) 23.10.19 24 1 11쪽
98 레퀴엠(98) 23.10.17 25 1 11쪽
97 레퀴엠(97) 23.10.16 29 1 12쪽
96 레퀴엠(96) 23.10.15 28 1 11쪽
95 레퀴엠(95) 23.10.14 23 1 11쪽
94 레퀴엠(94) 23.10.13 25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