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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트 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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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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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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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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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113)

DUMMY

Episode 112 - Reset



보라가 은깃털장식을 만지며 말했다.

"내가 사준 거, 계속 차고 있어줘서 고마웠어!"

하나는 벙찐 표정으로 보라를 쳐다보았다.

아니, 눈은 보라를 향했지만 실상은 허공이었다.


이미 큰 혼란을 겪은 머리는 제 기능을 잃어버린 듯 백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지나가는 기억의 편린.

토끼 장식을 떼어내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흑백 라디오관을 통해 보는 것 같은 흐릿함이었지만.

그 내용 만큼은 선명했다.


"이, 이게 무슨......?"

그리고는 다시 은깃털장식을 가슴팍에 메고 있다.

비장한 표정과 함께.

그렇게 기억의 조각이 다시 사라졌다.

'아, 아까 그건.....'

"나 있잖아."


보라가 하나의 두 손을 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청 무서웠거든, 사람들이 다 험악해보여서. 그런데 아니었어! 다 좋은 사람들이었어, 말도 먼저 걸어주시고, 힘든 게 있으면 도와주고."

그녀의 내려간 시선이 다시 올라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네가 먼저 다가가라고 했을 때 그럴 걸 그랬다!"


웃음과 울음의 교차되는 표정이 하나의 마음을 울렸다.

그렇게 두 번째 기억이 떠올랐다.


------


"조하나."

"응, 왜?"

"나,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간대."

"뭐? 그거 누구한테 들은 말이야?"

보라가 웃으며 말했다.


"지휘대장님한테 들었어, 새로 개설되는 전대가 여럿 생겨날 것 같아서 인원을 착출해 보내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명단에 내가 뽑힌 것 같아."

하나가 좌절하며 고개를 떨군다.

"야, 그런 게 어딨어, 네가 가버리면 나는 누구랑 어울리라고. 그리고 넌 아직 발현자가 된지 2년 밖에 안됐잖아, 그런데 왜 다른 베테랑들이 아닌 너를 뽑으신 거야?"


"나도 모르겠어, 듣기로는 랜덤이라고 하던데."

"허, 말이 되냐? 새로 개설되는 전대에 인원을 보충시키는 건데 랜덤 착출이라고? 대체 위에서는 무슨 생각인 거야?"

하나의 서운한 표정을 보더니 보라는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는걸? 그리고, 혹시 알아? 전대가 건설되고 나면 인원이 바뀌게 될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는 보라의 말에 하나가 한숨을 쉬었다.


"후, 너는 너무 긍정적인 게 문제야."

"그래야 세상 살기 편하다고 들었는데."

하나가 폭소했다.

"푸하하, 뭐래? 그렇게 살다가는 사기 당한다 너?"


"나는 똑 부러져서 사기같은 거 안 당하는 사람이야."

보라의 뾰로통한 얼굴이 보이자 하나는 그녀의 이마를 콕 집었다.

"네, 네! 어련하시겠어요."


편린 하나가 다시 스쳐 지나가고 또 다른 기억이 스며 들어왔다.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는 공원의 벤치였다.

"야, 연보라! 너, 무슨 일 있지?"

보라는 손에 쥔 아이스크림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실은 말이야......, 발령났어."


조심스러운 보라의 말투에 하나가 불안감에 휩싸인다.

"뭐, 뭐가 발령났다는 거야?"

"나, 다른 전대로 전출갈 거 같아."

보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나의 손에 들려 있던 아이스크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와그작- 소리를 내며 손잡이과자 부분이 깨져버렸다.


하나가 두 눈을 크게 뜬 채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라고?"

그녀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 하나야?"

하나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언제 가는데......? 확정난 거야? 그래서, 가는 부대는 어디인지 정해진 게 있어?"

질문공세가 시작되자 보라는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저었다.

"저, 저기 잠깐만! 너무 한꺼번에 많이 물어보는 거 아니야?"

"그럼 이제 못보는 거야?"

누가 본다면 하늘이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한 표정이라 말할 것이다.


"아니야! 평생은 아니지! 그래봤자 대한민국에 있는 전대로 가는 걸? 일단 확정은 났는데 어느 곳으로 발령을 받을지는 미지수이고 날짜는......"

보라가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주 목요일이야."


하나의 감정이 뒤섞였다.

분노일까, 슬픔일까, 아련함일까.

정적이 약간 흐른 뒤 그녀가 말했다.

"안가면 안 돼?"

"......, 미안해. 하나야."

조하나도 알고 있었다.

이런 말 한 마디로 보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전화 자주 할게, 밤에도 전화해서 그 날에는 뭘했는지 다 말해줄게.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랑 새로 사귄 친구들도......"

"너."

심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 엄청 심하게 가려서 누가 말 안 걸어주면 친해지지도 못하잖아."


보라가 뜨끔했는지 몸이 움찔거린다.

"가기 싫지?"

하나가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던지자 보라는 말없이 고개만을 끄덕거렸다.

"나......, 가기 싫어, 하나야!"


그렇게 두 번째 편린이 사라졌다.

그러나 곧바로 그녀를 덮치는 세 번째 기억.


"이것도 있고, 저것도 챙겼고......."

하나가 보라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정신머리는 잘 챙겼고?!"

"너, 가는 날까지 이러기야?"

"그러니까 더더욱 장난을 칠 수밖에 없지."


보라는 한 쪽 입꼬리를 올린 채 짐을 옮겼다.

"그래, 그게 제일 너답긴 해."

전대의 인원들이 두돈반 차량에 모두 탑승을 완료했다.

마지막으로 보라가 차에 올라탄다.

"자, 이제 출발한다."


하나는 보라의 얼굴을 응시했다.

언제나 그렇듯 근심 걱정이 가득하다.

하지만 별 일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봤자 전대를 옮기는 것뿐이었으니까.

"야, 연보라! 꼭 연락해!"


보라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녀는 미소와 함께 눈웃음을 지었다.

"응!!"

배기음 소리가 들리며 차량이 멀어졌다.

하나는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


아카이브에 저장된 모든 기억의 조각들이 튀어나왔다.

너무 많은 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뒤바뀌어 버렸던 것들이 깨지고 원래의 기억으로 돌아왔다.


"이, 이게 다....."

마치 허공에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주 처음으로 돌아가 연보라를 만났을 때의 일.

그리고 같은 훈련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친구를 잃고 폭주한 자신의 죄까지.


하나의 눈에서 눈물이 튀어나왔다.

작은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가 떨어진다.

그녀는 보라를 향해 시선을 돌려 빤히 응시했다.

"보......, 라야......?"

보라 역시 쉴새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활짝 웃었다.

"응, 하나야!!"

어색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미소였다.

하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동공이 흔들렸다.


드디어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레코드 어나일레이션에 의해 삭제되어버린 기억들이.

모두.

하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보라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펑펑 울었다.


그녀는 보라의 옷덜미를 더욱 세게 잡으며 놓지 않으려 했다.

일분 가량을 울기만 반복했던 하나가 질문공세를 시작했다.

"왜, 왜 그랬어! 왜 연락 한번 없었는데?! 나랑, 나랑 약속 했었잖아!"

하나는 오른손으로 보라의 어깨를 때렸다.


보라는 아무런 대꾸 없이 그 행동을 받아주었다.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은 그녀가 할 수 있는 대로 가만 놔두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했다.

"미안해, 내가. 내가 다 미안해......!"


보라의 눈물 먹은 목소리가 들리자 하나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니야, 내가 미안해! 내가, 내가 더 신경썼어야 했는데! 어떻게든 그곳에 못가게 막았어야 했는데!!!!"

마지막은 거의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였다.

하나가 떨리는 손으로 보라의 팔을 잡으며 얼굴을 뗐다.


눈물에 젖은 뺨과 붉어진 눈가가 보였다.

"아니야, 하나야. 나는 후회하지 않아! 그곳에 가서 많이 배웠던 것도 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 그러니까, 미안해 하지마."

진심어린 보라의 말이었다.

그 때.


보라의 왼쪽 팔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하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동공을 키웠다.

"뭐, 뭐야? 왜 갑자기 팔이......!"

당황한 듯 어쩔 줄 모르는 그녀를 향해 보라가 웃으며 오른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하나야. 잘못될 건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나 없이도 잘 살아줘!"

하나가 아랫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있어줘!! 보라야! 나 아직 너한테 못해준 이야기가 많단 말이야!"

그러나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법.


보라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내가 너무 미안해!"

점점 사라지는 그녀의 형체.

그리고 눈앞에 노란색의 결정들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하나는 수없이 흩뿌려지는 결정을 손으로 휘적거리며 보라를 향해 외쳤다.


"제발!! 돌아와 줘!!! 보라야!!!"

그러나 그 이후로는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점점 눈이 감겼다.

마치 누군가가 수면 마취주사라도 놓은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눈꺼풀이 닫히고 하나가 잠에 들었다.


그렇게 그녀는 레코드 어나일레이션을 극복했다.


------


분홍빛의 연기가 걷히고 생활관의 내부가 드러났다.

그 많던 관물대와 침대는 없어지고 하나가 누워있는 침대 하나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하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연보라.

아니, 제인 파스티비아.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하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미안해, 내가."

진심어린 사죄였다.

생활관의 문이 열리고 진명과 형호, 화람이 등장했다.

제인은 세 사람을 향해 돌아보며 붉어진 눈시울을 보여주었다.


"이제, 다 됐어. 기억은 돌아왔을 거고, 자고 일어나면 원래의 조하나처럼 행동할 거야."

제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감췄다.

부끄러움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감정이었을까.

화람이 제인에게로 걸었다.


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제인을 응시하더니 이내 상체를 숙였다.

"뭐야, 또 무슨 꼬투리를 잡으려.....!"

와락-!

제인의 몸이 그대로 화람의 품에 들어갔다.

그녀는 놀란 듯 동공을 크게 떴다.


"뭐야? 왜 갑자기 안고 그러냐?"

"가만히 있어."

화람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인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힘들었대, 모든 게 다 자기 탓이라고 자책한 것 같아. 아마 깨어나도 힘들거고, 앞으로도 불안할 테지만....."

화람이 눈을 감고 눈물을 흘렸다.

- 너희들이 잘 보살펴야 돼.

제인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람의 눈에 하나의 곤히 자고 있는 얼굴이 들어왔다.

아까와는 다르게 어딘가 편안해 보였다.

그녀는 손을 풀어 제인을 놓아주었다.

"너, 울어?"

"아, 안 울어."

화람이 급하게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제인이 손을 앞으로 뻗어 화람의 두 볼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시선을 맞췄다.

"히히히!"

제인이 해맑게 웃었다.

순간 화람의 동공이 확장됨과 동시에 수백 가지의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말했다.

-나는 이제 널 믿어야 할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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