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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한스그레텔 님의 서재입니다.

검마전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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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그레텔
작품등록일 :
2024.01.23 19:39
최근연재일 :
2024.07.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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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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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가문이라는 이름의 족쇄(3)

DUMMY

과거 마교에 있었을 때 살마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살면서 나 역시 많은 무인을 죽였고, 그중엔 오대세가와 구파일방도 있었다.”

“그래서요?”


따악-!


“악!”

“내겐 하나뿐인 남동생이 있었다. 어느 날 점소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동생이 죽어있었다. 수소문 끝에 원인은 점창파의 이대 제자 녀석들이었고, 놈들은 술에 취한 채 내 동생과 실랑이를 벌이다 죽었다고 하더구나. 이에 나는 놈들에게 복수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당시 살마는 자신의 동생을 죽인 녀석들에게 복수하고자, 점창파로 찾아갔으나, 돌아온 답변은 냉대와 조롱, 그리고 멸시였다.


“그래서 족히 20년이 넘은 세월 동안 나는 마교에서 일하면서, 점창파의 치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뛰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놈들의 치부를 찾았고, 복수를 위해 다시 점창파로 찾아갔지.”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 당시 무현은 살마의 표정을 똑똑히 기억했다.


후련함도, 시원함도 아닌, 그 사이의 어딘지 모를 미묘함.


그것은 허탈함이었다.


“복수는 성공했다. 날 모욕했던 녀석들을 죽이고 장문 제자도 죽였지만,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왜 복수를 했습니까?”

“원래 무인이라는 족속은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고 늘어질 정도로 이상한 놈들이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지. 근데 처음에 복수에 성공했을 때···허탈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살마는 그 뒤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네가 정말로 복수를 원하는 이가 있다면, 나처럼 놈들 뒤통수나 후려까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찾아가라.”

“하지만 힘이 있어야 들어주든 말든 할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 같은 소시민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같은 놈들에게 말합니까?”

“그러니 내가 그 방법을 설명하려고 한다.”


살마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림엔 명예 결투라는 게 있다. 서로가 쌓아 온 모든 명예와 업적을 걸고, 싸우는 결투지.”

“일반적인 비무하고 차이가 없는데요?”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무인은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고 늘어지는 족속이라고 했지? 그 명예 결투라는 건 서로의 사회적인 지위와 명예를 전부 거는 거라서, 세간에서는 생사결과 비슷하다고 하지.”

“그게 생사결과 같은 거라고요?”

“패자는 자신의 모든 명예와 업적을 내려놓고, 쥐 죽은 듯이 살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

“그게 가능합니까? 아니, 애초에 그게 있기는 한 겁니까?”

“있다. 나도 간신히 정보를 뒤지다가 보니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다.”


명예 결투.


과거 500여 년 전의 천하제일인 염제신황(炎帝神皇)이 무림맹과 사도천과의 전투에서 잃은 딸아이의 복수를 위해, 무림맹과 사도천을 상대로 벌인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염제신황은 천하오대고수로 불리던 시기였지만, 홀로 두 거대 세력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중원의 호사가들을 생각했다.


하지만, 염제신황은 끝끝내 무림맹과 사도천에 죄를 묻는 데 성공하고, 이날을 계기로, 염제신황이 천하제일인이 되는 초석이 되었다.


이 사건은 죄 없는 소시민들에게 한 줄기의 희망이 되어주었고, 염제신황은 백성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칭송받게 되었다.


혹자는 결국 힘의 논리를 따르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하지만 염제신황의 행보는, 두 거대 세력에 의해 몸을 웅크려야만 했던 무인들에게 한 줄기의 희망이 되어주었다.


“만약 내가 일찍이 명예 결투를 알게 되었으면, 확실히 이 엿 같은 곳에 있지도 않았겠지.”

“어째서 그렇습니까?”

“내가 복수를 위해 마교를 선택한 건 어디까지나 반강제적인 일이었다.”


과거 점창파에 복수하고자, 동분서주했던 살마의 앞으로 마교가 그에게 접근을 시도했다.


처음엔 거절하려고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무공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 살마는, 결국 마교의 손길을 잡게 된 것이었다.


“결국 나는 복수에 미친 귀신이었던 거지. 그렇게 복수에 성공했어도, 내 동생 녀석은 돌아오지 않다는 걸 잊어버리고.”

“······.”

“그러니 너도 나처럼 살지 마라. 복수를 하려 절박한 심정을 겉으로 드러내지도 말고.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지나도 늦지 않으니까.”


그 말을 하던 살마의 표정은 무현의 머릿속에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그 양반도 갈 때 아주 멋있게 갔지.’


훗날 무현이 그의 소식을 들었던 건, 그가 정창파와 동귀어진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그와 원한이 있었던 살마를 죽이기 위해, 점창파는 특임대를 꾸려 살마에게 달려들었고, 살마는 스스로 내공을 폭주시켜 그들과 함께 동귀어진했다.


그의 최후는 불길에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아름답고 처절했다.


복수라는 이름에 점철되어 스스로를 더럽힌 살마의 최후는, 그렇게 무현의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되었다.


그날을 시점으로 무현은 자신들의 스승들을 모조리 잃었다.


“후우.”


무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살마의 가르침에서 얻은 깨달음이 어쩌면, 남궁무애를 구원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문제는 그녀가 받아주냐는 건데.’


스승으로서 제자에게 조언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현재 그녀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모래성.

그게 바로 그녀의 현 심리 상태였다.


하지만 언제고 미룰 수만은 없었다.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수뇌부들이 대거 물갈이되면서, 무림맹은 점점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 틈을 노리고 사도천과 마교, 그리고 동창이 언제든지 밀고 들어올 수 있는 상태였다.


“···가자.”


무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목표는 단 하나.


하나뿐인 제자의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


무현은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엔 무현의 예상대로 남궁무애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얼핏 안정적이지만, 무현쯤 되는 고수라면 그녀의 검술에 점점 힘이 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기까지.”


무현의 말했다.


남궁무애는 휘두르던 검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더 할 수 있어요.”

“고집부리지 마. 여기서 더 했다간, 오히려 불안해지는 걸 몰라?”

“그건···.”

“아예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지금 네 상태가 불안해서 그래.”


무현의 말 대로 그녀는 현재 불안정했다.


지금이야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언젠가 봇물 터질 듯 무너질 수 있었다.


“그래서 왜 오셨어요?”

“네게 좋은 제안 하나 하려고 왔지.”


무현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신 이거 하나만 약속해 줘.”

“···뭔데요?”

“네가 이 시련을 이겨내면, 내가 좋은 무공 하나 알려줄게.”

“지금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네 검법의 오의를 담을 수 있는 검술인데도?”

“······!”


남궁무애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대꾸했다.


“뭔데요?”

“그걸 미리 알려주면 재미가 없지. 어찌 되었든, 네 정신머리부터 뜯어고치고, 알려주마.”

“···가주님한테 들었습니까?”

“대충은.”


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네 아픔을 물라. 그렇다고 네 아픔을 알아주라는 동정 어린 시선과 말은 하지 않을 거야. 그게 너를 위한 일이고, 나를 위한 일이니까.”

“···하아.”


남궁무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과거가 스승에게 들켰다는 사실에 놀랄 법도 하지만, 그녀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거짓말은 아니야.’


그녀의 시선엔 무현의 심리를 나타내는 빛들이 일렁거렸다.


감정안(感情眼).


태어날 때부터 상대의 감정을 볼 수 있는 눈.


뜻하지 않게 상대의 감정을 볼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이 눈이 너무도 저주스러웠다.


자신을 향한 어두운 감정들을 무려 십수 년을 넘게 봐야 했던 눈을, 그녀는 스스로 도려내고 싶다는 충동도 종종 일곤 했다.


하지만 눈앞의 사내만큼은 그들과 전혀 달랐다.


비록 때 묻고 그 빛이 바래도, 그의 감정은 지금껏 봐 온 것들 가운데 가장 찬란하고 밝은 빛이었으니까.


그 빛은 몇 년이 지나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그렇기에 그녀는 무현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 방도라는 게 뭔데요?”

“과거 500년 전 천하제일인, 염제신황이 한 것 중에 명예 결투라는 게 있거든?”

“명예 결투요?”

“그건 말이야···.”


무현은 염제신황의 업적과 행보를 간략하게 읊어주며 말을 이었다.


“···해서 네가 명예 결투를 하면 그나마 네 마음을 좀먹는 상태가 해결되지 않을까 해서 알아본 거야.”

“···결국 생사결과 다를 바가 없네요.”

“하지만, 우리 같은 약자들이 할 방법이지.”


무현은 팔짱을 낀 채로 턱을 주억거렸다.


“어떻게 할래?”


그렇게 한참이나 지난 끝에.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래. 알았다.”


무현은 팔짱을 풀고 돌아 나섰다.


“근데 그 무공 지금 알려주시면···.”

“나중에 알려준다고, 임마.”


무현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도 희망이 조금 보인다고 해야 하나.’


무공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조금이나마 밝은 목소리를 내비친 그녀였다.


무현은 피부로 체감되는 남궁무애의 변화에 놀라며 그녀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그럼, 미리 사전 준비부터 해 볼까.’


무현은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자신이 머무는 방으로 돌아갔다.


***


무현이 돌아간 연무장엔 오직 남궁무애만이 남아 서 있었다.


‘한계라···.’


사실 무현의 말대로 그녀는 현재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피곤하다고 생각했지.’


하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상태는 점점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약화 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모습에 큰 실망을 느끼고, 이에 더해 조바심도 점점 일어나고 있었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은 그녀는 훈련을 멈출지 고민도 해봤다.


하지만 본능은 멈추라고 해도, 이성은 그녀를 계속 밀어붙였다.


‘벗어나고 싶어.’


가문으로부터,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로부터.


언젠가 자신이 오롯이 선 날이 오면, 그들에게 조소를 날리며 비웃고 싶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해···.’


그런 그녀의 조바심은 남궁혁을 만나서부터 더욱 가속이 붙었다.


‘동정 따윈 필요 없어! 당신이 그런 눈으로 날 볼 자격이라도 있어!?’


애써 떨치려 노력해도, 남궁혁의 동정 어린 눈빛은 남궁무애의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시선이 기폭제가 되어, 그녀는 스스로를 한계에 몰아붙였다.


그렇게 한계에 도달하기 직전.


그녀의 정신은 점점 모래성처럼 바스러져만 가는 줄로만 알았다.


자신의 스승이 찾아오기 전까지.


‘무현.’


그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 들었을 땐, 심장이 철렁였다.


‘당신도 내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낼 건가요?’


그렇게 조마조마하며 마음을 졸일 때.


“나는 네 아픔을 물라. 그렇다고 네 아픔을 알아주라는 동정 어린 시선과 말은 하지 않을 거야. 그게 너를 위한 일이고, 나를 위한 일이니까.”

“하아···.”


처음 그 말을 듣고 나서, 내쉰 건 안도의 한숨이었다.


‘당신은 여전하군요.’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그 모습을 보니까 안심된다.


‘명예 결투.’


그 단어를 듣자마자, 머리가 번뜩였다.


명예 결투라면, 자신을 옥죄는 불안을 떨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고민은 신중했다.


‘설령 결투에서 이긴다고 해도, 내 응어리진 감정을 풀 수 있을까?’


스스로 문답해 봐도 들리지 않은 아우성과 같은 물음.


고민은 길고, 시간은 그만큼 흘러갔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


그렇게 약속한 사흘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남궁무애로부터 답장이 왔다.


“···갈게요.”


수락의 의미였다.


무현은 그녀의 대답을 듣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짐 싸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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