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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사는 광명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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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상어
작품등록일 :
2023.09.1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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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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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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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2. 겔리온의 기분 좋은 날

DUMMY

겔리온과 함께 안티푸스를 찾아가던 도중,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크기를 가진 8개의 별들이 찬란하게 태양빛을 반사하며 눈에 들어왔다.


물론 8개의 별중 하나는 달이고, 나머지는 행성이다.

우리가 아는 수금(지)화목토천해.


그걸 보자 문득 의문이 들었다.


‘행성들이 이렇게 가깝게 있는걸 지구의 과학자가 본다면 과연 뭐라고 할까? 불가능하다? 말도 안되는 공상(空想)이다?’


나는 그중 가장 크고 가까운 달을 보았다.

지구와는 비교도 안될 거대한 크기의 달이 새하얗게 빛나며 대지를 비추고 있었다. 거대한 밤의 어둠 속에서 달이 가장 빛나고 있었다.


한참 달을 보다 시선을 내리니 폐허가 보였다.


사람의 온기가 식어버린 차가운 폐허.

만약 지금 빛을 내리는 것이 달이 아니라 태양이었다면 이 폐허는 그나마 따뜻했을까?


모르는 일이다.


“끄아아악! 내 팔! 내 팔!”


콰득!


나는 안티푸스 졸개의 어깨를 짓밟으며 탄식했다.

먼 곳에서 뜨겁게 불타는 빛나는 태양과 가까운 곳에서 대지를 차갑게 비추는 달. 따스한 빛을 쫓아 불타버리는 것과, 차가운 빛을 쫓아 얼어붙는 것중 무엇이 더 나을까.


그것또한 모르는 일이다.


콰직!


지팡이에 묻은 피를 보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거대한 벽이 외부와의 단절을 외치듯 굳건하게 서있었다. 누구의 출입도 허하지 않는 듯 차갑게 서있는 거대한 벽.


겔리온이 물었다.


“여자. 저 너머는 무엇이지? 사람이 사는 곳인가?”

“그래. 카이사르 백작령의 몇 없는 생존구역.”

“왜 저곳에 모여서 벽을 세우고 사는 거지?”


벽을 세우고 사는게 아니다.

세워진 벽에 갇혀 사는거지.


“영주의 소심함 때문이지. 백작이 영지를 저버리고 치안이 바닥을 치자, 자신의 목숨까지 위험해질거라 생각한거야. 정말 병신같은 생각이지만 영주의 평판을 생각하면 이상할것도 없지.”

“언제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나 보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카이사르 백작령을 뒤지다 보면 저런 영지를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벽을 친것은 이 영주가 처음이었지만, 그 이후엔 너나없이 벽을 세웠으니까.


“벽 밖의 장소와 벽 안의 장소라. 안티푸스는 벽 밖에 있을 것 같군. 저 안에서는 부하들을 제어하기 힘들어 보인다.”

“맞아. 안티푸스는 저 안에 없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벽의 입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안에서 나오는 검은 마차를 보며 말을 이었다.


“허나, 돈은 저 안에 있으니까.”

“근데 돈은 어디다 쓰려는 거지? 여자가 가진 돈도 꽤 많았는데. 쓸데없는 욕심은 화를 부른다. ······예전에 누구에게 들은 말이다.”


나는 겔리온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잘 들어 덩치야. 너희의 위대한 황야에선 돈이 쓸모없을지는 몰라도, 휴먼족 세계에서 돈은 힘이야. 권력이고, 모든 행동의 원천이지.”

“알고 있다. 끝의 마을에서도 그랬다.”

“그러니까.”

“음. ······?”


내가 말을 더 하지 않자, 겔리온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꿈틀거리는 안티푸스 졸개를 짓밟으며 겔리온의 시선을 마주했다.

겔리온이 뭐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뭐? 왜?”

“······그래서, 그 돈을 어디에 쓰려는 거지?”

“나중에 사람들 움직이는데 쓰려고.”

“용병을 고용할 생각인가? 안티푸스라는 놈이 가진 돈이 여자가 말한대로 있다면······ 여자는 전쟁이라도 일으키려는 셈인가? 그렇다면 반대다. 전쟁에 참여하는건 전사의 명예지만 전쟁을 일으키는건 명예롭지 않은 일이다.”


나는 즉답했다.


“덩치야. 방금 내가 뭐라고 했지?”

“돈을 사람들 움직이는데 쓸 거랬다.”

“그 전에.”

“돈은 힘이다?”

“그 다음.”

“돈은 권력이다?”

“그 다음.”

“모든 행동의 원천이다?”


“바로 그거지.”


나는 안티푸스가 있는 폐허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돈이 없으면? 힘이 안나. 돈이 없으면? 권력이 없으니 무언가를 행하기가 힘들어지지. 돈이 없으면? 밥도 못먹고, 잠도 길바닥에서 자고, 질 좋은 무구도 구하지 못하지!”


질 좋은 무구라는 말에 겔리온이 움찔했다.

나는 그걸 보며 씨익 웃었다.


돈은? 좋은 것이다.


돈이 없었을 적을 생각하면 항상 눈물이 앞을 가렸다.

게다가 나는 매 회차 노예로 시작했으니까.

무법지대인 베들레헴으로 갔을때면 매일 굶고, 감옥에서 잠을 자고, 거기서 만난 이들과 음식을 훔치며 연명하기도 했으니.


“근데 여자의 목적은 숲 아니었나? 왜 돈을 벌려고 하는거지?”

“엘프와 마주치기 싫으니까. 그 에반이란 꼬맹이랑 계약을 했다고 했잖아? 그게 이거야. 편법을 이용해 엘프와 마주치지 않고 숲으로 들어가는 거. 안티푸스를 조지는건 그 조건이지.”


게다가 지금 아니면 이런 공돈을 얻을수가 없다고.

두달 뒤 카이사르 백작령을 지배하고 있던 ‘뒷세계’의 8지부 놈들은 전부 한 집단에 의해 박살이 나니까.


어차피 언젠가 구린 쪽으로 이용될 돈, 내가 쓰는게 낫다 이거지. 내 말을 이해했는지 겔리온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 뒤를 따랐다.


“흠. 이해했다. 겸사겸사 돈도 얻겠다는 거군. 도적도 죽이면서.”

“도적?”

“아닌가?”

“흠. 뭐, 비슷하지.”


목적이 있는 도적이 뒷세계니, 틀린말은 아닌가?




겔리온과 함께 이야기하며 한참을 걸어가니, 유난히 더 심하게 박살난 폐허들이 줄지어 늘어져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그러나 건물의 모양새라도 멀쩡했던 이전 마을과는 달리, 이 마을은 본격적으로 박살이 나 있었다.


마치 누군가 고의적으로 부숴놓은  것처럼.


여태까지 모든 마을들이 폐허로 변해있었기에 이상할건 없었지만, 이곳은 유독 그 정도가 심했다. 허나 지금 중요한건 아니었으니.


나는 매캐한 잔해먼지에 눈앞을 휘휘 저었다.


“어디보자. 무너진 교회에서 세건물 앞······ 그 옆으로 두 블럭······ 이후 왼쪽으로 두번 돌면? 아, 여기있군.”


나는 그 폐건물 중 2층으로 가는 계단이 멀쩡한 건물로 다가갔다. 계단 아래쪽을 살펴보니, 예상대로 먼지쌓인 지하실문이 존재했다.


“진짜였군. 정말로 여자가 말한대로 있어.”

“내가 뭐랬니.”

“역시, 여자는 음흉한 여자다.”

“묘하다는 거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겔리온을 째려보았다.

이놈 사실 말 잘하는 것 같단 말이지.


먼지를 털고 지팡이를 옆구리에 끼며 한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그대로 확 힘을 주려다, 겔리온과 눈이 마주쳤다.


“······.”

“······음?”


내가 문고리를 놓고 뒤로 물러나자, 겔리온이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다가 '아‘하며 대신 문고리를 잡았다. 낡은 나무 문이 삐걱거리며 불안한 소리를 내었다.


덜컹!


“엇? 흐읍!”


빠지직!


부숴진 문고리를 든채 멍청하게 서있는 겔리온을 일별하며 나는 가볍게 지하실 문을 열었다. 막혔던 혈류가 뚫리듯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잊고있던 설정이 떠올랐다.


나는 조용히 옆으로 비키며 말했다.


“젠틀맨 퍼스트.”

“······뭐지?”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그럴때 쓰는 말이 아니라고 배웠다.”

“아무렴.”


나는 겔리온을 선두로 내려보내며 팔꿈치까지 자라난 팔을 내려다보았다. 양팔만 멀쩡했어도 직접 움직이는건데. 툴툴거리며 내려가니 장정 다섯이 어깨를 붙이고 갈만한 통로가 있었다.


먼저 내려가서 상황을 보던 겔리온이 말했다.


“여자가 먼저 보낸 이유를 알겠다.”

“······뭔데?”

“마법을 쓰기에 적당하지 않다. 불 마법을 썼다간 작살이 날 것 같고, 전격 마법은 비슷한 이유로 안될 거다. 대지 마법은······ 잘못하면 기반이 무너질 것 같군.”


강한 일침과 함께 나를 보는 겔리온에게 나는 대답대신 어깨를 으쓱해 주었다. 겔리온은 씨익 웃더니 양손에 도끼를 하나씩 쥐었다.


그의 도끼에 새겨진 룬 문자에서 파란 빛이 일렁이더니, 이내 그의 주변에 돌풍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일별하며 호쾌하게 소리쳤다.


“하하! 그렇다면 드디어 이 겔리온이 나설 차례로구나!”

“야, 야! 쉿!”


내 다급한 만류가 어색하게, 누군가 나타났다.


“거기 누구냐!”

“아.”


내가 이마를 짚는 사이, 겔리온이 우렁차게 외쳤다.

벽에 걸린 횃불의 불이 흔들릴 정도의 외침이었다.


“나는 위대한 세번째 전사의 두번째 아들 겔리온이다─!! 전사의 길을 걷는 나를 막는 네놈은 누구인가!!”

“뭐? 위대한 두번째 뭐? ······뭔 개소린진 모르겠지만 이곳은 출입 금지다! 셋을 셀 동안 나가지 않으면 경비대를 부르겠다! 셋!”


겔리온이 슬쩍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에 그의 생각이 드러나 있었다.


- 다 죽여도 되겠지?


나는 엄지를 들어 화답해 주었다.

그는 진심으로 씨익 웃으며 앞으로 돌진했다.


“둘!”


“위대한 전사는─!!”


그의 도끼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그를 감쌌고, 곧이어 그를 질풍으로 만들어줄 돌풍이 그의 몸을 재차 감쌌다. 주변을 긁은 돌풍이 작은 모래바람을 일으켜 시야를 차단시켰다.


물론 모래바람은 겔리온도 차별없이 차단시켰다.


그러나 그가 누군가.


북쪽 황야의 위대한 전사의 길을 걷는 자.

위대한 세번째 전사의 두번째 아들.


겔리온이었다.


그렇게 하나의 질풍(疾風)이된 그가, 거구에 걸맞지 않는 움직임으로 앞에 나타난 남자에게 쾌속으로 다가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팔꿈치를 이용해 박수를 쳐줄 정도로.


“하─”


퍼거걱!


남자가 하나를 외치기도 전에, 겔리온의 그의 머리를 박살냈다.

겔리온이 남자의 피를 뒤집어쓴채 포효했다.


“적에게 등을 보이지 않는다아아─!!”

“좋아!! 가라 겔리온!”



*



쾅! 쾅! 콰앙!


겔리온의 도끼가 굉음을 낼 때마다, 큰소리에 뛰쳐나온 안티푸스 패거리들의 몸이 박 터지듯 터져나갔다. 겔리온은 마치 광전사처럼 그 조각들을 뚫으며 나아갔다.


“하하하하! 이 겔리온을 막을 전사는 없는가!”


나는 그걸 보며 시체 조각을 옆으로 치웠다.


걷기만 해도 되는건 좋은데.

너무 길이 더러운 거 아닌가.


나는 틈틈히 로브의 끝을 들었다. 그럼에도 피는 묻었지만, 너무 더러워 보이는것보다는 나았기에.


한참을 그렇게 나아갔을까.

누군가 통쾌한 목소리와 함께 겔리온의 앞을 막아섰다. 겔리온과 비슷한 덩치의 키와 거구, 웃통을 까고 다니는 흉학한 근육의 소유자.


“그만! 위대한 황야의 전사는 학살을 멈추고 전사의 도전을 받으라─!!”


놀란 겔리온이 도끼질을 멈추며 외쳤다.


“너는! 위대한 여덟번째 전사의 네번째 아들 발리안이 아닌가! 그대는 도적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인가!”

“그렇다! 오랜만이다 위대한 세번째 전사의 두번째 아들 겔리온이여! 전사의 길이란 마땅히 여러 갈래가 존재하는 법! 그대의 길또한 비슷한 길인 것 같군! 잡담은 그만하지!”

“하하! 좋다! 그대, 전사의 결투를!”


발리안이 껄껄 웃으며 도끼의 룬 문자를 빛내기 시작했다. 겔리온과 마찬가지로 마나가 몸을 감싸고, 곧이어 돌풍이 그의 몸을 감쌌다.


이윽고 그들의 도끼가 충돌했다.

돌풍과 돌풍이 만나자,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돌풍이 아니었다.


그것은 열풍(烈風).


그것도 시체와 피, 잔해와 모래를 내포한 열풍이었다.


나는 전사들이 만들어낸 가슴 뜨거운 열풍을 피해 구석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지팡이를 안은 채 쭈그려 앉아있으니 어디선가 죽은 잔당의 머리가 굴러왔다.

나는 그것을 옆에 세우며 말했다.


“콜록. 흠, 이제부터 너는 윌슨이란다. 친구.”


쾅! 콰앙!

콰아아아!!


계속해서 따갑게 피부를 찌르는 모래먼지를 맞으며, 나는 그들의 싸움이 끝나길 얌전히 기다렸다. 무려 40분이 넘는 혈투 끝에, 드디어 한 거구가 무릎을 꿇었다.

그에 맞춰 드디어 열풍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한 야만전사의 고행길이 끝나고, 한 야만전사의 고행길에 업적이 추가되었다. 그들에겐 동포의 죽음일지라도 하나의 업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죽은 이를 무시하는게 아니었다. 오히려 애도였다.

그 또한 전사의 길이었기에.


죽은 동포의 시체 앞에서 겔리온이 포효했다.


“우어어어어!!”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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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Page 24. 안티푸스의 탈탈 털린 날 23.10.23 3 0 13쪽
23 Page 23. 안티푸스의 재수 없는 날 23.10.22 3 0 13쪽
» Page 22. 겔리온의 기분 좋은 날 23.10.15 5 0 12쪽
21 Page 21. 돈 벌러 가자! 23.10.13 6 0 14쪽
20 Page 20. 안티푸스 패거리 23.10.12 6 0 13쪽
19 Page 19. 점조직의 세 머저리들 23.10.11 8 0 12쪽
18 Page 18. 카이사르 백작령 23.10.09 6 0 14쪽
17 Page 17. 슬픈 비극엔 전조가 없다 23.10.08 11 1 11쪽
16 Page 16. 이단심문관 대 악마 부대, 루크 프레드릭 23.10.06 8 0 13쪽
15 Page 15. 모든 별은 빛을 품는다 23.10.05 9 0 11쪽
14 Page 14. 빛나는 끝의 유토피아 23.10.04 10 0 14쪽
13 Page 13. 검은 마녀의 수난 23.10.03 12 0 12쪽
12 Page 12. 여왕과 별의 수난 23.10.03 15 0 13쪽
11 Page 11. 카나리아 마르테즈의 수난 23.10.02 12 0 12쪽
10 Page 10. 숨은 마조히스트의 하렘 23.10.02 17 1 12쪽
9 Page 9. 숨은 세번째 별 23.09.24 17 1 13쪽
8 Page 8. 작은 남작 에피소드 23.09.22 20 1 11쪽
7 Page 7. 야만전사와 검은 마녀 23.09.21 18 1 13쪽
6 Page 6. 끝의 마을에서 찾은 것 23.09.20 22 1 13쪽
5 Page 5. 끝의 마을의 야만전사 23.09.18 20 1 12쪽
4 Page 4. 테슬로가 남긴 것 23.09.17 19 1 13쪽
3 Page 3. 회귀자의 27번째 시발점 23.09.17 22 1 10쪽
2 Page 2. 분적 없는 눈보라 23.09.17 27 1 14쪽
1 Page 1. 그 여자는 광명을 꿈꾼다 23.09.17 55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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