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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사는 광명을 꿈꾼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공해상어
작품등록일 :
2023.09.17 11:17
최근연재일 :
2023.10.23 11:2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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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수 :
135,909

작성
23.10.0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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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Page 15. 모든 별은 빛을 품는다

DUMMY

세번째 별은 성군이다.


능력도 있고, 그를 받쳐줄 유능한 가신도 있다.

무엇보다 최강자 중 한명인 필 블라코스도 있지.


게다가 광기로 보일 정도로 나라를 옳게 이끄려고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파란 안광의 기사와도 닮아 보일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내가 세번째 별에게 묘하게 기분나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별은 그 기사와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 끝은 다를지라도, 그 과정은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히 나와 부딪힐 것이다.


그의 이상과 나의 이상.

그의 유토피아와 나의 유토피아.


같은 목적을 가지더라도, 그 형태는 다르다.

그리고 그 형태에서 우리는 갈라지게 될 것이다.


허나 그의 이상과 유토피아가 틀리지는 않았다.

옳다. 그것도 옳기에.


내가 회귀했을 때, 이 세계가 여전히 남아있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나는 별과같은 이들을 남겨두어야 한다. 내 광명을 위해 한 세계에 암흑을 드리울수는 없으니까.


나는 천천히 눈을 뜨며 말했다.


“나는 태양에 다가갈 순 있지만, 별을 태양으로 만들 순 없습니다. 저 또한, 별이기 때문입니다.”


별의 푸른 안광에 내 붉은 안광이 비쳤다.

그가 푸른 별이기에, 나는 붉은 별이다.


검은 우주는 별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별은 다른 별을 태양으로 만들 수 없다. 나의 환유법을 이해했는지, 별이 천천히 다시 앉았다.


“이해했네. 이해하고 있었지.”


어쩐지 허탈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어딘가 안쓰러워, 나는 말을 이었다.


“허나, 모든 별은 빛날 수 있지요. 별께서 모든걸 녹여버릴 정도의 뜨거운 별이라면, 저는 모든걸 얼어붙일 차가운 별. 별을 품는 태양이 될 수 없다면 그저 태양보다 밝게 빛나면 될 뿐입니다.”

“모든 별을 품지 말고, 눈앞의 별을 품으라?”

“빛나지 않아도, 별이기 때문이죠.”


세번째 별은 마치 내가 테슬로에게 악마와 회귀에 대해 이야기했을때와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신이라도 만난 표정.

난 저 표정이 부담스럽다.


나는 이 세계의 신이 아니니까.


“······그대는, 마치 내 어머니같은 말을 하는군.”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니, 그걸 이해해야 어둠을 품을 빛이 되는 것이겠지.”


나는 고요히 별을 바라보았다.

별은 아쉬운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천천히 미소지었다.


“어제의 죄를 사하고 그대에게 추천증과 마차를 주겠네. 몇 시간 걸릴 테니 다른 이들과 이야기하는건 어떤가? 가령 어제 데려온 그 여자라던가.”


카나리아 마르테즈?

······구미가 안 당기는데.


아.

아니지, 만나야지.

일부러 추천증까지 받아냈는데.


“그럼 연무장에서 기다릴테니 그곳으로 오라고 해주십시오. 그리고 필 경을 빌려도 괜찮겠습니까?”

“필 경은 왜?”

“그냥, 한번 붙어보고 싶어서요.”


그릇의 크기를 늘리려면 먼저 자신의 크기를 알아야 하는 법.

나는 턱을 매만지며 필을 향해 씨익 웃었다.



*



“여자. 못 이긴다. 까불지 마라.”

“덩치야. 화좀 풀라니까?”

“말 걸지 마라.”


나는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겔리온을 쿡쿡 건드렸다. 마치 5살 어린아이가 화내듯 토라져 있는게 덩치에 안어울려 귀엽기도 했고, 그때 내가 확실히 잘못하기도 했으니까.


“여자는 역시 더러운 여자다.”

“창녀같다는 거야?”

“겔리온 그렇게 말한적 없다!”


나는 쿡쿡 웃으며 가면을 썼다.

어제 필에게 맞아 날라가는 바람에 입부분이 조금 박살났지만, 어찌저찌 쓸수는 있었다. 어차피 눈만 가리면 그만이었으니.


나는 슬쩍 내 눈치를 보는 겔리온을 일별하며, 고요히 서있는 필의 앞에 섰다.


“할 말이 많아 보이시는데.”

“······.”

“진실의 언약 때문에 말을 안하시나?”

“여자 저 기사에게 저주 걸었나?”


나는 겔리온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내 저주의 효과를 모르는 겔리온은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지만, 필은 그저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고고한 모습을 보니 또 그 사람이 떠올랐다.


닮은 사람이 꽤 많구나. 그 기사는.

그렇기에 그렇게 빛날 수 있던 것일까.


다른 사람과 같아야만, 혹은 선례와 비슷해야만 그렇게 밝게 빛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가면 속 붉은 눈을 부릅떴다.


빛냐야만 한다.


모든 별은 빛을 품고있고, 빛은 빛을 집어삼키는 법.

가장 찬란하게 빛나야 광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왼손에 지팡이를 들고, 오른손에 겔리온의 검을 들었다. 양손의 묵직함을 느끼며 천천히 오러를 흘려보냈다. 마찬가지로 필 또한 오러를 끌어올렸다.


푸른 오러를 가진 푸른 스카프의 기사.

내가 설정한 그의 먼 조상을 떠올리며, 나는 말했다.


“전 진심으로 할건데, 그쪽은 살살 하세요.”

“······.”

“그쪽은 안 죽는데 전 죽으니까.”


필은 대답없이 천천히 검을 뽑았다.

문답무용인가.

나는 그의 동태를을 살피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흐릿하게 돌아가는 머릿속의 필름. 그 필름이 너무나도 흐릿한 탓에 명쾌한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무영창으로 시작할까?’


몇번이나 할수있지?

두번? 세번?


이번에도 뇌운을 가르는 방식으로 파훼하려나?

아니면 미친 속도로 피하려나?


필이 검을 들자, 나는 곧 생각을 멈췄다.

생각을 멈추고 감각을 곤두세운다. 머릿속으로 필의 움직임을 상정하고 그 근방에 수십의 벼락을 떨어트린다. 하늘의 뇌운에 점이 생성되고 그것이 대지에 섬광의 비처럼 꽂히리.


“라이데인!”


콰과과과광!


예상대로 필은 검기를 방출해 뇌운을 갈랐다.

어젯밤에도 어럼풋이 봤지만, 정말 경이로울 수준의 검격이다. 놀라운 속도는 물론이요, 그에 상응하는 파괴력까지.

나는 주변에 떨어진 벼락이 만들어낸 연기를 뚫어 필이 있던 자리에 죽일 기세로 검로를 그었다.


점에서 점을, 하나의 직선으로 잇는다.


검이 허공을 그으며 검로의 끝에 도달함과 동시에, 나는 앞을 박차고 뒤로 물러났다. 눈앞에서 내 검을 피한 필의 검이 엄청난 기세로 날아오는걸 가까스로 허리를 숙여 피하며, 동시에 라이트닝 마법을 무영창으로 발동했다.


갈라진 뇌운에서 각각 거대한 번개가 일렁이자 금세 그걸 눈치챈 필이 눈을 부릅뜨며 내 멱살을 잡으러 손을 뻗었다.

날아드는 손을 보며 생각했다.


‘동귀어진(同歸於盡)인가. 뒤로 피하려고 했으면 가두려고 했는데. 내 마법을 본적도 없으면서 본것처럼 움직이는군.’


허나 난 여기서 준비해둔 마법을 시전했다.

여기까진 예상했으니까.


“메모라이즈 : 스톤 월!”


내 발앞에서 거대한 석벽이 튀어나와 그와 내 가운데를 가르자, 필의 살기어린 손이 허무하게 막혔다.


콰과과광!


번개가 필에게 적중했을 터지만 숨 돌릴 시간은 없었다. 이런걸로 당할 존재는 아니니까.


연무장의 끝이 내 바로 뒤에 있었고, 석벽으로 앞이 막혔으니 더 이상 도망칠곳도 없다. 나는 스톤 월을 두 번 시전해 밀려나지 않게끔 발을 받치며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제 필은 이 석벽을 부숨과 동시에 나를 베려고 하겠지.

그 일도(一刀)를 받아내야 한다.


아니면.


쿵!


석벽의 강도를 확인하는 듯한 주먹질이 울렸다.


지금.

나는 석벽을 해제하며 남은 힘을 모아 검을 내리찍었다. 우르르 쏟아지는 돌 사이, 기습적으로 내려친 내 검이 검격을 준비하는 필에게 향했다.


이겼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필의 검이 움직였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푸른 오러를 두르며 바람을 가르는 그의 검을.

명령 하나로 끝내 한 나라의 절반을 궤멸시키는 ‘죽은 별의 검귀(劍鬼)’. 그 죽음의 검격을 받아내기 위해, 나는 몸안에 있는 모든 마나를 끌어 받아쳤다.


콰아아아아!


사람이 검으로 바람을 가를 수 있는가?

혹은 검격으로 거대한 풍압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검을 다루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했을 것이다. 나의 검이 바람을 가르고, 산을 가르고, 곧이어 바다를 가를 수 있는가. 그것을 넘어, 하늘을 가를 수 있는가.


그 정답이, 눈앞에 있었다.


“크으윽······아앗!”


콰아앙!


나는 연무장 벽에 부딪혀 바닥을 굴렀다.

천천히 뜬 눈에 정오를 알리는 태양빛이 비춰지자, 나는 탄식했다.


“졌네.”

“마지막엔 좀 놀랐습니다. 석벽을 해제하며 기습하다니. 꽤나 기발한 발상이군요. 한 수 배웠습니다.”


나는 필의 손을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 하나 깜짝 안했으면서 무슨.”


내 빈정거림에도 필은 그저 싱긋 웃기만 했다.

아주 밉상이었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옷에 묻은 흙을 털었다. 풍압에 몸 곳곳이 조금씩 찢겨진걸 확인하자 약간 쓰라렸다.


‘압도적으로 졌네.’


쓸수있는건 꽤 많이 썼다.

기습적인 무영창도 썼고, 석벽으로 가로막고 번개를 쏟아붓는 방법도 썼다. 그리고 마지막엔 모든 오러를 끌어다 일격을 날리기도 했는데······


나는 숨을 내쉬며 허리를 폈다.

겨우 이걸로 허리가 뻐근한게, 이번 회차의 내 몸은 아직 너무나도 약하다는게 느껴졌다. 그걸 느끼면 느낄수록 빨리 숲으로 가고싶은 욕구가 생겼다.


‘엘프의 거목······’


숲에서 엘프들하고 마주치고 싶지는 않지만.

빠르게 강해지려면 거목의 뿌리로 빨리 가야만 한다. 눈보라부터 뒤틀린 이번 회차는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가 없으니까.


나는 겔리온의 옆에 앉으며 숨을 돌렸다.


“에휴. 관절이 다 쑤시네.”

“괜찮다. 여자 잘 싸웠다. 겔리온은 일합에 패배했다.”

“허접이네.”

“······말 걸지 마라.”

“농담이야 농담.”


킬킬거리는 나에게 필이 다가와 말했다.


“그럼 전 돌아가 보겠습니다. 레이디.”

“네네.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나만 한것같지만.”



*



필은 연무장을 나서며 남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손이 떨리지는 않았지만, 손바닥 안에는 아직도 마지막 검격의 진동이 남아있었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 피며 그 감각을 다시 되새겼다.


‘전력은 아니었지만, 분명 마녀가 받아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휘둘렀는데.’


분명 막을 수 없을 검격이었다.

그러나, 분명히 막혔다.


조금만 더 약했으면, 역으로 머리가 쪼개졌을 터.


필은 왼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세게 쥐었다.


“파란 기사님!”


상큼발랄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필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야에 갈색 머리의 여자가 들어왔다. 카나리아 마르테즈.

분명 며칠 전까진 별에게 거절당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닌 골칫덩이 영애였는데, 검은 마녀에게 교육(?)을 받고 난 이후 사람이 바뀐 느낌이다.


게다가 그 교육(?)을 직접 본 필의 입장에서는

카나리아의 눈을 마주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그 또한 기사도를 중시하는 기사이기에.


연무장에 검은 마녀가 있다는 그녀의 질문에, 필은 고개를 연무장쪽으로 돌려 시선을 피한 채 답했다.


“저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고맙습니다!”


총총 뛰며 토끼처럼 뛰어가는 카나리아의 뒷모습을 보며, 필은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여왕, 여왕이라니······”


그는 여왕이 본래 무슨 교육을 받는지는 몰랐다.

허나 그런 교육(?)이라니.


“그런 여왕과 세번째 별께서 나라를 통치하신다라······.”


필은 고개를 저어 생각을 날렸다.

뭔가 요상한(?) 미래가 그려졌기에.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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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Page 21. 돈 벌러 가자! 23.10.13 6 0 14쪽
20 Page 20. 안티푸스 패거리 23.10.12 6 0 13쪽
19 Page 19. 점조직의 세 머저리들 23.10.11 8 0 12쪽
18 Page 18. 카이사르 백작령 23.10.09 6 0 14쪽
17 Page 17. 슬픈 비극엔 전조가 없다 23.10.08 11 1 11쪽
16 Page 16. 이단심문관 대 악마 부대, 루크 프레드릭 23.10.06 8 0 13쪽
» Page 15. 모든 별은 빛을 품는다 23.10.05 10 0 11쪽
14 Page 14. 빛나는 끝의 유토피아 23.10.04 11 0 14쪽
13 Page 13. 검은 마녀의 수난 23.10.03 13 0 12쪽
12 Page 12. 여왕과 별의 수난 23.10.03 15 0 13쪽
11 Page 11. 카나리아 마르테즈의 수난 23.10.02 1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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