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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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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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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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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용봉지회(5)

DUMMY

“백연.”


당소하였다. 삽시간에 가라앉은 시선이 무거웠다.


“설명을 부탁하고 싶은데.”

“저번에 이야기 했던 소가주 남궁혁이 손잡은 세력. 만금장이야.”

“만금장?”


당소하의 시선이 기울었다. 그의 미간이 패여들었다. 사파 강호에 자리잡은 거대한 상회의 이름. 모르기 어려운 것이다.


“만금장이 왜 남궁세가와......아니. 이런 질문은 의미가 없군.”


손목을 끌어올려 매만지는 모습이 습관적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할때 나오는 동작인 듯 했다. 그의 시선이 잠깐 허공을 스치더니 이윽고 백연에게 돌아왔다.


“확실한가?”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지 못하겠다면 남궁유진에게 물어도 돼. 저 녀석도 같이 목격했으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믿도록 하지.”


다른 말 없이 수긍하는 모습이다. 사천당가의 소가주는 이상하리만치 그에게 쉬이 믿음을 건넸다. 천성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신만의 무슨 기준이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윽고 당소하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럼 네가 잡으려는 자가 만금장의 사람인가?”

“그래.”

“확실히 도움이 되겠군. 남궁혁이 만일 검왕을 해치려 들고 있다면 분명 연관이 있을테니. 다만 문제는.”


당소하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가 성큼 한걸음을 내딛어 앞으로 걸음했다. 남궁유진의 앞에 선 그가 어린 남궁의 삼남을 내려다보며 턱을 매만졌다. 등 뒤로 흘러내리는 녹빛 장포가 진했다.


“너. 검왕의 삼남. 나를 알고 있겠지. 저번에도 봤으니.”

“소가주 독룡 당소하님. 다시 뵙습니다.”


그의 눈이 알기 어려운 감정으로 살풋 흔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냉막한 시선으로 돌아온 당소하가 남궁유진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도움을 청해왔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고 있는건가?”

“......네.”

“이 상황, 우리가 등에 지게 되는 무게가 작지 않다. 만일 우리가 잘못 알았던 것이라면 정파 내분의 씨앗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인지하고 있나?”

“그건 내가......”

“백연.”


그의 말을 잘라내는 당소하의 목소리가 딱딱했다. 목소리에 담긴 것이 하릴없이 술을 마시던 청년이 아니었다. 지금 남궁유진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당가 소가주의 모습을 입은 당소하였다.


“검왕이 죽었을때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네가 아니다. 나도 아니고. 남궁혁이 실각해도, 만금장이 남궁세가를 집어삼켜도, 또는 안휘가 초토화 되어도 그렇지. 그 모든 일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녀석이다.”


백연은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수가 틀리면 그는 단휘만 챙겨서 이곳에서 바로 발을 뺄 수도 있었다. 검왕의 일을 해결하는 것이 반드시 자신일 필요는 없는 바다. 손익을 따지자면 발을 빼는 쪽이 오히려 맞을지도 모르겠지.


“정파 무림에 재앙이 떨어질지언정, 정파의 절대 고수들은 검왕 하나가 아니니 충분히 무마할 수 있다. 그런데도 네가 자청해 움직인다. 적어도 내 눈에 지금 너는 협(俠)을 행하고 있는거다. 그것을 이 아이도 알아야 하지 않겠나?”

“전체적인 시점에서 실익을 따진 것 뿐인데.”

“이럴땐 입 좀 다물고 있어라, 눈치없는 놈아.”


쯧, 하고 혀를 찬 당소하가 남궁유진을 응시했다.


“알아들었나? 나는 지금 너한테 묻고 있는 거다.”

“......저는.”

“너는 네 형들을 몰아내고 소가주의 위에 오를 각오가 되었나?”


남궁세가 소가주의 자리. 남궁혁이 만금장과 내통하고 검왕을 해치려 했다면 실각은 당연하다. 그에 동조한 남궁준도 남아있지는 못하겠지. 자연스레 소가주의 계승은 남궁유진으로 돌아가게 된다. 제왕검형을 익힌 사람이니 명분도 충분하다.


하지만 소가주의 자리를 남궁유진이 원하는가는 다른 문제이다. 당소하는 그것을 묻고 있었다.


“......가주께서는 제가 형님들을 보필하길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남궁유진. 기억해라. 네 목에 달린 것은 너 하나만의 목숨이 아니다. 그런 것이 싫었다면.”


당소하의 기세가 날카롭게 일었다. 몸에서 일어난 기파가 차갑게 사방을 내리눌렀다.


“검왕의 검을 전수받지 말았어야 했다. 출가해 문파에 입문하거나, 야인의 삶을 살았어야지. 그러니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답해라.”


뻗어나간 기세가 차갑고 묵직하게 쏟아졌다. 백연은 그 광경을 응시하며 기파를 눈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잘 짜여진 기파의 흐름. 발산과 흡착을 반복하는 강렬한 기파 속에서 언뜻 독룡의 복잡하게 섞인 의념이 느껴지는 듯도 했다.


“네가, 남궁의 소가주인가?”


그 기파의 아래에서 남궁유진이 천천히 시선을 들어올렸다. 흔들리던 눈빛이 어느새 정갈해져 있었다. 가다듬은 자세 아래로 미미하게 흘러나오는 신공의 기파가 당소하의 기세를 느릿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예.”


소년의 입에서, 짧은 대답이 울렸다.



※※※



안휘 회녕부터 천주산까지. 드넓은 거리였다. 아직 비도의 움직임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만금장의 본거지를 치는 것은 처음부터 선택지에 들어있지 않았다.


“놈이 올거야.”


약재 뿐만 아니라 용봉지회에 납품할 물품을 주기적으로 공급하러 오니 반드시라 해도 좋았다. 회색 죽립의 사내. 당시의 언행과 어투로 보아 이곳에 자주 오는 것으로 보였다. 백연은 기다릴 심산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뛰쳐나가 찾고 싶었지만, 그래서 찾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곳에 오가는 사람만 하루에 수천이다. 흔적을 쫓는것은 불가능했다. 특정될 기파도 남기지 않고 다니는 사내였기에.


“추적은 너 혼자 할테냐?”

“응. 네 경공이 뛰어난 것은 아는데. 이번에는......”


사내를 잡고 나서가 문제였다. 이번 일에서 손속을 둘 생각이 없었다.


더해 추적과 잠행은 혼자 하는 것이 나은 일이었다. 당가의 소가주가 너무 자리를 비우는 것도 좋지 않고.


그에 당소하가 한숨을 쉬더니 품에서 작은 호리병을 꺼내들었다.


“술?”

“아니다. 나를 대체 뭘로 보는거냐.”

“주당?”


눈썹을 치켜올린 당소하가 기파를 끌어올렸다. 한순간 짙어진 호흡이 대기의 기운을 빨아들이듯 집어삼켰다. 그 모습을 본 백연이 기운을 끌어올려 눈에 집중했다. 날카로워진 감각 사이로 당소하의 기운이 흐르는 방향이 언뜻 느껴졌다.


혈맥 사이로 흐르는 기운. 체내에서 엮이고 회전하며 무언가를 뭉쳐내고 있었다. 이윽고 호리병의 뚜껑을 열고 그 위로 손을 펼친 당소하가 미간을 모았다.


‘내공이 피의 성질을 변화시키고 있어.’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당소하의 손을 따라 투명한 빛의 물방울이 또르르 맺혀들었다. 무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이 방울지더니 이윽고 호리병 속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한순간 풍겨오는 짙은 달콤한 향.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순식간에 호리병의 마개를 다시 닫아낸 독룡이 그것을 백연에게 던졌다.


“가져가라.”

“......이게 뭔데?”

“독이다.”


당소하가 소매를 끌어내리며 기파를 가라앉혔다. 적잖게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힘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당가의 무공. 암기술과 더불어서 몸에서 독을 만들어 내는 무공이라 했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많은 독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그것이 당가의 자질을 판별하는 중요한 요소중 하나라고.


“가주님이신 천독께선 한번의 손짓에 수백 수천 종류의 독이 비처럼 전장을 뒤덮지. 걸음으로 죽음을 몰고 다니는 분이다.”

“네가 준것도 죽이는 독? 하지만 그럼 필요가 없는데.”

“그럴리가 있겠나.”


그가 만들어낸 것은 살독. 즉 죽이는 독이 아니라 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은 훨씬 빨리, 훨씬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망혼초와 비슷한 효능이라 해야 하나. 거짓을 생각할 수 없게 하는 독이다.”

“그럼 진실만을 토해내나?”

“아니. 조금 다르다. 이 독은 살문의 살수들을 잡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생각과 의념까지 거짓으로 속이고, 필요하다면 죽은 척도 할 수 있는 살수들. 그런 이들에게 먹이면 거짓을 생각할 수 없게 되고, 몸의 반응을 통제할 수 없어 모든 행동과 반응이 진실되게 드러난다고 했다. 이성을 흐트러뜨려 판단을 저하시킨다고.


백연은 호리병을 받아 챙겼다. 유용하게 쓸 수 있을 듯 했다.


이후부터는 기다림이었다. 그 사이 용봉지회의 본 대회가 시작했다. 네개의 조에서 각각 열 여섯의 사람을 뽑는 대회전. 하루에 한개의 조가 겨루는데, 백연의 조는 공교롭게도 네번째.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 날에 놈이 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대회를 포기하더라도 쫓아야지.”


대회의 우승. 남궁산의 이목을 끄는 것이 목적인데 그것도 남궁산이 살아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도 아니면 녀석이 오자마자 열 여섯명만 남겨놓고 다 탈락시키고 쫓던가.”


나쁘지 않은 생각이기도 했다. 그에 당소하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당소하와 그가 밤낮없이 돌아가며 남궁세가의 장원을 감시하는 채였다. 그동안 대회는 빠르게 흘러갔다.


첫날은 이변없이 뇌룡 악예린의 진출 소식이 들려왔다. 놀랄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녀를 노리고 여럿이 달려 들었는데 전부 가볍게 제압했다고 했다.


둘쨋날은 단휘가 속해있는 조였는데, 그의 사형은 상당히 뛰어난 성적으로 열 여섯 안에 들었다. 직접 여럿을 탈락시켰다고.


충분히 예상된 바였다. 화신풍 보법 성취만 따지면 이미 뛰어난 실력자였으니까. 특히 이런 방식의 진출전은 불리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번째 날.


‘저기, 저 인영은.’


천주산 끝자락 나무의 위에 걸터앉아 남궁세가 장원의 입구를 감시하고 있던 백연이 눈을 날카롭게 떴다. 그의 시야에 납품 물건을 가득 싣고 들어오는 수레 여러대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이 끝에, 조용히 마차와 함께 거니는 존재감 없는 사내가 있었다. 여전히 커다란 죽립을 푹 눌러쓴 회색 도포의 사내. 그가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곤 세가 안으로 걸음했다.


분명했다. 저번 집무실에 남궁혁과 같이 들어왔던 사람.


백연의 눈이 번뜩였다. 여휘검을 쥔 소년의 기파가 일렁거렸다. 사냥감을 찾은 것이었다.



※※※



그대로 오후까지 기다렸다. 당소하에게는 혹여나 적이 도망칠 수 있는 장원 뒤편을 감시해달라고 부탁한 상태였다.


죽립의 사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늦은 오후였다. 막 해가 서산을 타고 넘어갈 시점. 짙게 물든 하늘 아래 회색의 인영은 다른 일행 없이 혼자 거리를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수레를 비롯한 물품은 이미 전부 납품을 끝마치고 온 모양이었다.


‘이 자리에서 붙잡는 건 안될 일이고.’


우선은 천주산에서 멀어져야 했다. 남궁혁을 포함한 그의 편이 이곳 남궁세가에 몇이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회녕 내로 들어가면 곤란해진다. 만금장의 본거지가 근처에 있을테니.


그런고로 적당한 시점에 검을 겨눠야 했다.


이윽고 죽립의 사내가 시야에서 벗어나기 직전, 백연은 가볍게 몸에 바람을 둘렀다. 높은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린 그가 천천히 사내를 따라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몸에 두른 장포는 짙은 암녹색의 피풍의였다. 당소하에게 받은 물건이었다. 잠행에 백색 무복은 너무 눈에 띈다면서.


걸음이 가벼웠다. 죽립의 사내는 뒤편을 돌아보지 않았다. 설령 돌아봐도 그를 발견하기는 어려웠을 일이다. 거의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의 거리를 두고 따라가고 있었기에.


‘만금장을 직접 상대하는 건 처음인가.’


혈령쌍귀 이후 만금장과 처음 맞붙는 일이다. 애초에 혈령쌍귀는 만금장의 일원이라기 보단, 고용된 입장이었으니 만금장 내의 사람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라 봐도 좋았다.


‘이상한 집단이다.’


사파 무림은 많이 바뀌었다. 검귀의 시절에는 없었던 사도 육진을 포함한 사파 문파들. 허나 그들은 뿌리가 있었다. 이런 이런 곳에서 왔을 것 같다는 추정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특히 녹림과 수로채, 그리고 하오문은 그의 시절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던 문파들이다.


하지만 만금장만큼은 달랐다.


‘사도 육진에 포함되지 않는, 사파 최대의 상회.’


정파 내에도 뻗친 손길이 작지 않다. 그 규모와 크기. 어디까지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것이다. 청해부터 이곳 안휘까지. 드넓게 손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하오문을 뛰어넘는다 볼 수도 있었다.


그런 이들의 손에서, 비록 추정이긴 하지만 마기와 관련된 물품도 나왔다. 신교와도 연을 맺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인 것인지 모르나 위험한 일이었다.


‘백여년 사이에 이만큼 세력을 불린것도 그렇고.’


긴 세월이나 동시에 길지 않았다. 그 기간동안 맨땅에서 이리 거대한 상회가 솟아나 중원 전역에 영향을 펼치는 것은 아무런 기반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위험한 이들이라고.


천주산을 벗어났다. 거리는 금새 한적해졌다.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도 하나 없는 지역. 천주산부터 회녕 사이의 거리의 길다란 길을 따라 늘어진 햇빛이 사방을 점하고 있었다.


곳곳에 언덕과 산의 끝자락을 담은 길목이었다. 백연은 천천히 기파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바닥을 툭툭 건드린 그의 걸음이 산들바람과 함께 피어났다. 가벼운 경공 질주. 바람을 타고 가벼이 이지러진 신형이 순식간에 길을 날듯이 주파했다.


기척이 극도로 옅은 상태였다.


그렇게 그와 죽립의 사내의 거리가 삼십여장 정도로 줄여진 순간. 사내의 몸이 움찔 하며 그의 걸음이 달라졌다.


쿠웅.


땅을 울리는 진각과 함께 사내가 신형을 날렸다. 그의 몸이 거칠게 흩어지며 사선으로 질주했다. 백연은 당황하지 않고 기파를 더욱 끌어올렸다. 걸음 끝자락에 매달린 바람. 다리를 타고 겹겹이 중첩되어 터져나오는 기운이 휘몰아쳤다.


‘빠르지 않아.’


사내의 경공 성취가 높지 못했다.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놈인가?


일순 머릿속에 스치는 의문을 접어두고 백연이 그대로 몸을 날렸다. 삽시간에 거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직 회녕에서 떨어진 곳이었다. 지금 잡아야 했다.


화신풍의 걸음을 길게 늘인 단거리 경공. 한순간의 속도를 내는 데에는 충분했다. 연속으로 터져나온 기파를 추진으로 삼으며 백연이 여휘검의 검파에 손을 올렸다.


이윽고 사내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흐핫!”


사내의 웃음소리가 귀를 찢었다. 사내의 손이 급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댄 사내. 무언가 새하얀 풀을 잔뜩 꺼내어 입에 쑤셔박는 움직임이 다급했다. 그러나 그것을 본 백연은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파앗!


백연의 발걸음이 비틀렸다. 사내와의 거리가 오장 정도 남은 위치에서였다. 한순간 질주하던 백연의 신형이 옆으로 움직이는 순간.


콰아앙!


그의 귓가 옆으로 강렬한 검격이 스쳤다. 대기를 짓이기는 강렬하고 끈적한 기파. 그것을 마주한 백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느새 도망가는 것을 멈추고 검을 빼든 죽립의 사내가 입가에 웃음을 건 채로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역시 네놈이었군. 그 마기, 어디서 난 거지?”

“하하, 핫. 너. 너. 얼굴을 봤는데. 용모파기. 그 검. 그래......”


죽립 아래로 희번득거리는 눈이 드러났다. 노을의 빛 너머로 비쳐오는 안광에 맺힌 기운이 형형하기 그지 없었다.


“네가 그 암화로구나? 개방의 묘사로만 들었을때는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는데.”


끈적하게 흘러나오는 마기가 숨결에 짙었다. 그것을 마주하며 백연이 기운을 끌어올렸다. 지금 사내의 무력. 본신 무력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엄청나게 상승된 상태이다. 그만큼 강하다 가정하고 싸워야 한다. 죽이지 않으면서.


“시끄럽군.”


툭. 백연의 단전에서 불꽃이 조용하게 피어올랐다. 뽑혀나온 염화의 파도가 혈맥을 채우며 온몸에 휘돌았다. 검집 속에 잠들어있는 검신을 따라 화기가 켜켜이 쌓여가며 중첩된다.


여휘검의 검파를 쥔 백연이 여상한 표정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일단은-”


쿠웅.


걸음과 함께 땅이 패여나갔다. 진각을 밟음과 동시에 허리춤에서 검이 매끄럽게 뽑혀나왔다. 허공에 풀려난 검신에서 쌓여있던 화기의 중첩이 연속해 터져나가며 가속했다. 한순간 노을의 빛이 가려질 정도로 눈부신 불꽃의 타원이 허공에 피어났다.


적화검류. 화륜.


“하......핫?”


기습적인 공격. 사내의 웃음이 끝나기도 전에 백연의 신형이 사내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불꽃의 잔상이 흩어지며 사방에 화염의 꽃을 그려냈다.


“팔 하나.”


툭. 사내의 왼팔이 땅에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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