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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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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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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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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용의 머리(16)

DUMMY

※※※



사락.


소년의 눈꺼풀이 부드럽게 내리깔렸다. 길게 떨어지는 눈썹 위로 부서진 빛살이 내려앉아 반짝였다.


밤하늘 같은 머리칼이 뒤편으로 길게 흩어지는데, 악예린의 시야를 다 가리고도 남았다.


“어떻게......?”


그녀가 뇌까렸다. 보기 드물게 황망한 음성이었다.


직전까지 사방의 빛을 침잠하게 만들며 휘몰아치던 화광충천의 초식. 지금의 악예린이 자아낼 수 있는 가장 강대한 일격이 단 일합에 소멸했다.


충돌하거나 힘을 겨룬것도 아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다는 듯이 힘이 흩어졌다. 수백에 달하는 복잡한 진기 흐름이 종잇장마냥 찢겨나간 것이다.


단 일검(一劍)에.


검로가 지나친 궤적에 있는 모든것이 쪼개진 듯 했다. 암천화광창의 초식 뿐만 아니라 그녀가 부친으로부터 건네받은 창날부터 창대는 물론이요 옷소매와 그녀의 머리칼 끝단까지도.


그것만이 아니었다.


‘빛살이......’


흩어졌다. 검의 궤적에 있던 빛살이 분분히 쪼개져 일렁이고 있었는데, 그녀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검로의 위에 분절된 상태 그대로 허공을 유영하는 햇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강제로 공간을 잡아뜯어 베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섭리를 벗어난 검격이었다. 그리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허나 동시에 지극히 시선을 잡아끈다. 지금 이 순간도 악예린은 검이 남긴 궤적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 까닭이었다. 그녀가 뒤늦게 아무런 반동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어? 어째서 반동이......”

“힘을 겨뤄 부서진게 아니라, 베인 것이라 그렇습니다.”


그녀의 중얼거림에 답하는 소년의 목소리. 맑은 구슬처럼 구르는 음성이 귓가에 내리꽂혔다.


“내상은 없을 겁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검격에 홀린 정신을 되찾고 악예린이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아무런 반동도 없다는 것이었다.


암천화광창의 절초. 지금 그녀의 내공을 전부 쏟아부어 엮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격이 부서졌다. 본래라면 막대한 반동으로 피를 토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악예린은 아무런 반동을 느끼지 못했다.


내상은 물론이요 가벼운 탈력감조차 찾아오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녀가 창격을 엮어낸 적이 없었다는 듯이.


“베였다......”

“그것 밖에 못하는 검인지라.”


말하며 생긋 웃는 모습이 싱그러웠다. 그에 악예린이 옅은 헛웃음을 뱉었다.


“그것 밖에요? 저는 방금 천하일절의 신공을 목도한 것 같은데.”

“과찬입니다.”

“검의 이름이 궁금해요.”

“분광뇌풍검법(分光雷風劍法)입니다. 이름 짓는 재주는 없어 의념을 그대로 썼기에.”


그 말에 악예린이 미소를 지었다. 이름 그대로의 검이었다. 곧바로 뇌리에 때려박히는 심상이 날카로웠다.


“그것으로 무영의 태극도 박살낸 것이었군요.”

“그런 셈이죠.”

“정말 백연은 매번 저를 놀라게 하네요. 처음 봤을때부터 지금까지.”


웃음을 흘리며 그녀가 덧붙였다.


“너무해요. 한발을 따라갔다 생각하면 두발도 아니고 열발을 앞서가면 어쩌라는 건지-”

“열발까진......”

“져버렸네요. 깔끔하게.”


악예린이 반으로 갈라져 부서진 창을 바닥에 툭 떨구며 두손을 들어올렸다. 목덜미에 닿은 검면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며 그녀가 미소 지었다.


“잘 봤어요. 백연의 검.”


뇌룡의 패배.


비무제전의 결승 대진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설마 더 놀랄 것은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천견이 뇌까렸다.


상석에 감도는 기묘한 침묵. 암화 백연의 승리가 선언된 뒤에도 그러했다. 여느때와 달랐다. 직전의 기묘한 검격을 모두가 두 눈으로 목도한 까닭이었다.


“......곤륜에 저런 검법이 존재했소?”

“모르지요. 과거의 곤륜파가 성세를 이루던 시절에 살아본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그리 말하는 금정신니의 시선이 선극에게 떨어졌다. 허나 선극 또한 고개를 느릿하게 저을 따름이었다.


“노부의 기억에도 곤륜은 이미 쇠락한 문파였소. 노부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노도사들 몇이 남아 문파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었소만. 그 뒤로는 지금과 마찬가지였지.”

“저 검은.”


그때였다. 검신의 목소리가 투명한 울림과 함께 끼어들었다.


“아이의 의념이 진하게 깃들어 있습니다. 과거의 검이 아닌 듯 싶은데요.”

“그대의 말도 맞소, 검신.”


선극이 허허로이 턱을 매만졌다. 외팔의 검객의 입가에는 어느새 주름진 미소가 걸려 있었다.


“미완이었던 것이 이리 빠르게......”

“하나 확실한 것은, 저것은 천하에 이름을 떨칠 검법이라는 것이외다.”


천견이 덧붙였다. 늙은 제갈가주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깃들어 있었다.


“검(劍)에 대한 노부의 생각을 재고하게 만들 정도이니.”

“그러고보니 천견께서는 술법을 더 높게 치시는......?”

“무공의 고하를 따지지는 않겠으나 다재다능한 것은 술법이 맞지 않겠소.”


나직하게 울리는 음성들이 많았다. 제각기의 의견을 개진하는데, 초현진인을 비롯한 몇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기도 했다. 불편한 심기를 얼굴에서 숨기지 않으면서.


남궁유진은 그런 이들의 면면을 천천히 살폈다.


비무제전의 기간 내내 이 자리에 머물다 보니 천천히 보이는 것도 생겼다. 가령 구파와 세가의 절대자들은 결코 서로에게 호의적이기만 한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처럼.


‘서로를 경계하고 견제해.’


정파라는 이름 아래에 묶여 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힘을 합치지는 않는다.


선극과 신승이라는 거대한 두 이름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기에 겉으로는 쉬이 드러내지 않을 뿐. 그것을 감안해도 문파의 이익이나 세력의 크기에 따라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달라진다.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이다. 하지만 남궁유진은 왠지 조금쯤은 실망스러운 기분이었다. 그가 부친께 들었던 정파 무림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대가 없이 검을 들어 내치고, 스스로의 무(武)로 협을 행하는 것.


지금 경기장 위에서 검을 거두는 소년은 그리했더랬다.


남궁유진 자신의 부친께선 어찌 생각하셨을까.


그렇게 소년이 고민에 빠져있던 그때였다.


콰직.


‘응?’


묵직한 소음이 들렸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자리에 앉은 신창(神槍)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없이 날카로운 예기를 두른 중년 남성. 본래 항시 무표정에 가까운 사람인데, 지금 얼굴에 드러나 있는 것은 짜증과 분노의 감정이었다.


팔걸이를 쥐고 있는 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핏줄이 툭툭 불거질만큼 강하게 힘을 주고 있었는데, 그 덕택에 팔걸이가 조금씩 가루로 변해 부서지고 있었다. 내공 한자락 쓰지 않고 순수한 육체의 용력만으로 쥐고 있음에도.


‘무슨 힘이......’


아니, 그 전에 왜 저러고 있는지부터가 궁금했다. 악예린의 패배 때문인가. 단순히 자신의 딸이 졌다는 이유로 저리 감정적이게 될 사람은 아닌 듯 싶었는데.


그때 신창이 입을 열어 나직히 중얼거렸다.


“......저 창을.”


아, 남궁유진이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그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섬뢰신창은 악예린을 지극히 아끼는데, 그 증거중 하나가 직접 공수한 만년한철로 만든 창이라고. 어릴적부터 악예린의 상징과도 같은 무기는 악가주 본인이 선물한 것이었다.


헌데 그것이 지금.


‘잘렸네.’


창대만 잘린 것이면 몰라도 창날이 깔끔하게 세로로 쪼개졌다. 복구가 불가능하겠지.


슬쩍 신창에게서 시선을 돌린 남궁유진은 속으로 기도했다. 백연이 악가주의 분노를 피할 수 있기를.



※※※



“세상에, 공녀님.”


시비 연이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막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악예린의 머리칼을 매만지는 그녀의 손이 재빨랐다.


“이렇게 머리를 잘라먹고 오시면 어떡해요.”

“내가 자른건 아닌데......”

“조심하셨어야죠! 여기까지 기르는게 얼마나 어려운데. 너무너무 아까워서 눈물이 날 지경인걸요.”


악예린이 미소를 지었다.


막 백연과의 경기가 끝나고 돌아왔다. 헌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잔소리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백연의 검이 너무 예리한 탓이었다. 목덜미에 닿은 검신이 스치는 것 만으로 왼편 머리칼을 싹둑 잘라내었을 정도로.


“오히려 가볍고 좋은 것 같기도......”

“공녀님.”


눈을 가늘게 뜬 연이의 모습에 악예린이 두 손을 들어올렸다.


“미안. 그래도 상대가 너무 강해서 어쩔수가 없었어.”

“어땠어요? 매번 이야기 하시더니.”


악예린을 앉혀놓은 채로 연이가 그녀의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기장이 잘려나간 것은 안타까웠지만, 남은 것이라도 살려야 했으니깐. 어깨보다 조금 길게 남겨 예쁘게 다듬으면 또 괜찮을 일이었다.


“항상 그러셨잖아요. 자주 붙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만큼 좋았어요?”

“응.”


악예린이 망설임없이 답했다.


“더 좋았어.”

“대단하네요. 그 사람은.”

“대단하지.”


악예린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이 허공을 스쳤다. 이미 머릿속에는 경기의 모습이 가득 들어찬 상태였다.


그녀의 암천화광창 초식을 받아치며 보신경을 펼치는 몸놀림. 공수입백인의 묘리로 위기를 벗어나는 임기응변. 그 대담함. 투로의 자유분방함과 예측 불가능한 싸움 방식.


소년은 검(劍)이었지만, 동시에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백연의 손에 들린게 창이었다고 해도, 아니면 적수공권이라도 소년은 언제나 최고의 기량에 도달할 것이라는 것을.


“가급적이면 시간 날때마다 자주 겨뤄보고 싶은데.”

“으음, 하지만 그분은 청해에 있다고 하셨으니까......거리가 조금?”

“그래서 말인데 연이야. 청해는 안궁금해?”

“공녀님. 가주님한테 진짜 혼나요.”

“아버지가? 화내시는걸 본적이 별로 없는걸.”


그에 연이가 손을 탁 멈췄다. 눈앞의 공녀님은 정말이지 가주님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아마 지금도 당신의 여식이 패배한 일에 대해 속앓이만 하고 계시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또 공녀님 본인한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말인즉슨.


“제가 혼나요. 제가.”

“너도 같이 가면 괜찮잖아.”

“공녀님......”

“지금은 가문에 있는게 나을겁니다. 패흑련이 움직이고 있다 하던데.”


그때였다.


사박.


조용한 발소리와 함께 투명한 음성이 울렸다. 화들짝 놀란 연이가 시선을 들어올리자 백청색 무복을 걸친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방문했는지.


“아, 백연.”

“괜찮으십니까?”

“내상도 없는걸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살풋 웃은 악예린. 이어서 그녀가 연이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는 예전부터 저를 보살펴준......”

“알고 있습니다. 연이라고 했던가요. 저번에 뵙고 두번째군요. 반갑습니다.”

“어, 어. 제 이름을......?”

“용봉지회때 두분께 치료 받았는데 기억을 못할리가요.”


백연이 생긋 웃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정말 크게 다쳤었다. 운연동공의 회복력을 감안해도 악예린과 연이라는 시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꽤나 고생했겠지. 덕분에 빠르게 회복했던 기억이 있다. 잊어버릴 리가.


“......”


그새 귀를 빨갛게 물들인 연이를 보며 악예린이 눈매를 장난스레 휘었다.


연이가 원래도 반반하게 생긴 사내한테 사족을 못쓰는건 알았지만 이 정도였던가.


“아무래도 검룡한테 말해줘야......”

“공녀님!”


주먹을 쥔 연이가 백연을 슬쩍 쳐다보고 다시 악예린을 보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일이 있어서.”

“응? 연이 네가 무슨 일이......”

“그리고 저, 암화님?”


쪼르르 암화에게 달려간 그녀가 무언가를 속삭였다. 악예린은 슬며시 눈썹을 치켜올렸다. 연이가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그때 백연의 표정이 스륵 바뀌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지어내는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예, 그정도야.”


그렇게 타닥 거리는 발소리가 빠르게 멀어져간 뒤. 악예린이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한거에요?”

“예린의 머리 정리를 해야 하는데, 자기는 바쁘니 저보고 해달라고 하던데요.”

“......안 바쁠텐데?”

“뭐,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제 탓이기도 하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다가선 백연. 악예린은 어깨를 으쓱이곤 가만히 앉았다. 어차피 크게 머리에 신경쓰지도 않는 그녀였다. 편하게 움직일 수 있으면 족하다고 생각할 뿐. 본래는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기에 길게 길렀지만 이제 잘려나간 마당에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백연이 건드렸다가 이상하게 된다 해도 싹둑 잘라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나저나 검룡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원래 연이가 검룡을 좋아했거든요. 처음 출전한 용봉지회에서 저를 꺾고 우승을 했는데, 그때 어찌나 좋아하던지. 제 시비가 아니라 검룡의 잃어버린 정인인줄 알았어요.”

“아하하.”

“사실 비단 검룡뿐이 아니라 반반하게 생긴 사내들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백연처럼.”

“저에 대한것은 차치해두고, 그럴 나이긴 하겠지요.”


태연히 말을 흘린 백연이 악예린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왼쪽만 견갑골 언저리에 닿는 길이로 싹둑 잘려 있었는데, 그의 검이 스치고 간 그대로 단면이 베여 있다. 적당히 길이를 맞춰야 할듯 보였다.


“그때가 화산파 비무제전이었나 보군요.”

“들었나요?”

“네. 그때 우승해서 검신께 무공을 지도받게 되었다고.”

“맞아요. 그렇게 단숨에 칠룡의 머리에 올랐지요. 격을 달리하는 재능이었어요. 다시 돌이켜봐도 어찌나 경이로웠던지.”


악예린이 중얼거렸다. 그때 처음 그녀를 무릎 꿇린 매화 꽃잎의 파도는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그 뒤에 더 경이로운 사람이 나올 줄은 몰랐지만요.”

“그게 혹시 접니까?”

“알면서 물어요?”

“으음.”


백연이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혼자 반칙을 저지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검귀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가 이리 독보적으로 빠르게 성장하지는 못했을텐데.


하지만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이야기였기에 속으로 삼키며 손을 놀렸다. 옅은 기운이 휘감긴 손가락이 머리칼을 부드럽게 잘라내며 형태를 엮어내었다.


“하지만 이번의 유성도 무언가 많이 다르더군요. 연화를 그리 쉽게 제압할 줄은.”

“경기를 보셨나보군요.”

“백연은 안봤어요?”

“마지막까지 검의 심상을 정리하느라.”

“아, 그랬죠.”


악예린이 수긍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시작부터 강기공이었어요. 자하강기를 펼치며 전력으로 충돌. 당연히 연화도 복마검법을 펼치며 상대했는데.”


경기장 위를 물들이던 현천과 자하. 처음에는 동등한 기세로 보였다. 허나 아니었다. 자하신공의 기세는 점차 검은 하늘을 지워내고 압도하기 시작했고, 연화는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갔다.


“축기량 같은 문제가 아니라, 검로 자체가 달랐거든요.”


유성의 검은 더 날카롭고, 더 위험해져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자신이 검날을 타고 춤추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연화의 현천은 강력했으나 거기서 끝이었다. 정면으로 부딪힌 결과 유성의 일검이 압도했다.


“말 그대로 복마검법을 부수면서 승리했죠.”

“예상은 했는데, 생각보다도 일방적이었군요.”

“맞아요.”


악예린이 말했다.


“백연도 조심은 해야 할거에요. 물론 그 검법이라면 검룡의 검을 부술 수 있을듯도 하지만요.”

“주의하지요. 그리고......”


툭.


백연의 손가락이 악예린의 머리칼을 쓸었다. 어느새 머리가 한층 가벼워진 것을 느낀 악예린이 시선을 돌렸다.


“끝났습니다.”

“어라, 생각보다......?”


스스로의 머리를 매만진 악예린이 중얼거렸다. 꽤나 머리가 잘 정돈되어 있다 느껴졌는데, 그 형태는 몰라도 결은 괜찮았다. 깔끔하게 어깨 부근을 따라 정리된 머리칼이 길게 늘어져 견갑골 주변에서 흘러내리는 감각이 들었다.


“나중에 직접 확인해 보고 소감 한마디 해주시죠.”

“이런 소질도 있었어요?”

“경험이 있는거죠.”


검귀는 안해본게 없었으니깐.


그에 피식 웃은 악예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이걸 하려고 온건 아닐테고......?”


그제서야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정리는 그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으니. 경기가 끝나고 악예린을 찾아온 본래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창을 베어버려서 마음에 걸렸습니다.”


백연이 말했다.


그 또한 무인의 병장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알았다. 여휘를 항시 패용하고 다니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이 검이 박살나면 그 또한 심히 동요하지 않을지.


그에 더해 악예린의 무기는 악가주가 직접 만들어준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헌데 이번의 경기로 인해 완전히 못 쓰게 되어버린 것이다.


“해서 물으려고 했는데.”


이미 선아에게 허락을 구하고 왔다. 악예린에게도 손해보는 제안은 아닐 터.


“혹시 새로운 창, 관심 있으십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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