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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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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7.0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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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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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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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글자
19쪽

용의 머리(15)

DUMMY

시작부터 암천화광창이었다.


연환창식을 전부 건너뛰고 곧장 벼락불을 쥔 채로 휘두르는데, 그 궤적은 일전에 본 적 있는 것이었다.


동혈 앞에서 선보였던 일곱 갈래의 창격 투로.


백연이 괜찮다는 말을 하자마자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창을 내지르는 것이 호쾌했다.


‘걱정했던 것 맞나.’


조심스레 물어오던 언행은 어디가고 곧장 그의 모든것을 확인하겠다는 듯이 질러온다. 지금 이 순간 창끝에 모든것을 담으려는 듯이.


그런 까닭에 쉬운 마음으로 가벼이 상대할 수 없었다.


쩌저저정!


찰나지간 검이 바람처럼 치솟으며 창격 투로에 얽혀들었다. 밤하늘 칠성(七星)마냥 신묘한 궤적을 그리는 일곱개의 기파중 넷을 일격에 파훼. 이어서 전진 보법이었다. 소년의 신형이 창격 권역으로 파고드는 순간 세차례의 창질이 귓가와 어깻죽지를 종이 한장 차이로 스쳤고.


‘온다.’


그때 악예린은 모든 궤적을 한순간에 회수하며 꿈결처럼 회전. 칠절 일격에 이어지는 찌르기를 엮어내는 중이었다. 그 파괴력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정면으로 받아치다간 배에 구멍이 크게 뚫릴법 했다.


백연은 받아칠 생각이 없었다.


사박.


어느 순간 그의 몸에 직전 내뻗었던 검격 경파가 장포처럼 드리웠고, 소년의 옷자락 끝은 희게 물든 기파가 휘감겨 있었다.


직후 악예린의 창격이 인지를 벗어난 속도로 쏘아졌고.


파아아아앙!


“실례.”


바람을 타고 노니는 꽃잎마냥 머리칼을 흩날리며 창격을 타고 회피한 백연. 어느 순간 악예린의 코앞에 다다라 그녀의 팔목을 지그시 내리눌렀다. 한순간 찔러오는 창격에 올라탄 양 신묘한 움직임이었는데, 그 악예린조차 찰나지간 놀라 눈을 크게 뜬다.


“무슨 신법이......!”


언행과 움직임은 별개의 것이었다. 삽시간에 악예린의 손이 회전하며 백연의 좌수를 역으로 쥐려 했다. 유려한 금나수법이었는데, 찰나지간 소년과 소녀의 손이 맞닿으며 치열하게 서로의 손목을 잡았다가 흩어내고 공세를 취하길 반복했다.


그와 동시에 백연은 오른손에 쥔 검을 휘둘렀다. 벼락을 휘감은채 떨어지는 검격. 그러나 악예린 또한 곧바로 반응했다. 손목을 까딱여 장창을 위로 던져올리는 것과 동시에 허리춤에서 짧은 단창을 뽑아들어 검격 사이에 우겨넣기까지가 한순간.


쩌엉!


검격 여파에 악예린의 머리칼이 거칠게 흩날렸는데, 그때쯤 이미 그녀는 백연의 손목을 잡아채는 것을 포기하고 뒤로 훌쩍 몸을 날리고 있었다.


곧바로 보법을 밟으려는 백연을 향해 단창을 쏘아보내는 것과 동시였다.


쐐액-!


흐린 빛살이 코앞까지 짓쳐왔다. 용형보를 딛으려던 백연도 급하게 검을 사이에 밀어넣야 할 정도였다.


그 사이 악예린은 던져올렸던 창을 잡아채고는 다시 전진 보법을 전개.


백연이 단창을 쳐내자마자 사선에서 짓쳐오는 흐린 창격 궤적이 눈에 들어온다. 이어지는 연격이 물흐르듯 재빨랐다.


쩌엉! 쩌저저정!


검과 창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서로 희끗한 빛을 두른채로 상대를 격하는데, 그 형태가 각기 벼락불을 쥐고 싸우는 듯 보였다.


검격과 창격 무공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악예린이 창격을 내치는 순간 백연의 신형이 파고들며 굽이치는 검로가 펼쳐진다. 그와 동시에 무릎을 쳐올린 악예린이 단창을 좌수에 쥐고 검로를 파훼. 곧바로 보신경을 펼쳐 거리를 확보하고 암천화광창의 일격을 날린다.


쪼개지는 경파 조각들이 사방에서 꽃잎마냥 흩날렸다.


경기장 전체를 자유로이 누비고 있는 까닭이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하나가 달라붙으면 하나가 거리를 벌리고, 이어 반격을 펼치면 또 하나가 회피하며 새로이 자리를 잡는다.


다채로운 투로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흡!”


그때 악예린이 기합성을 뱉으며 창을 당겨내었다. 마치 곧 쏘아보내기라도 할 듯이.


그와 함께 창끝에 기파가 휘감긴다. 어느 순간 진기로 뒤덮힌 창날이 시퍼렇게 번뜩였다. 그 끝에 매달린 진기 구조가 한없이 복잡했는데, 자령안으로도 전부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관통, 반발, 일점에 힘을 집중해 뚫어내는 건가.’


연환창식은 란나찰에 기반을 둔 정석적인 창법. 그러나 암천화광창은 무언가 조금 달랐다. 전에도 느꼈지만, 차라리 하나의 거대한 의념 덩어리라고 해야할까.


전장을 누비던 무신(武神)의 기세가 느껴지는 듯 했다. 창이 본래 군문의 무기이기도 한 까닭이다. 악비 본인이 엮어낸 무공일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한순간 허공에 물결처럼 퍼지는 기파. 창끝을 따라 어느 순간 수십갈래의 투로가 엮어지고 있었는데, 전부 합쳐져 하나의 커다란 창격을 형성한다.


“뭐 숨겨놓은게 이리 많은......”


투덜거리듯 뱉은 백연.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미 눈에는 자령안 구결이 파도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찰나지간 눈앞에 회전하는 창격 구결의 구조를 파악하는 속도가 한없이 재빨랐다.


의식이 쪼개지듯 늘어났다. 그와 함께 소년의 눈이 창격 투로를 낱낱히 읽어내 예측해낸다.


그 순간 악예린의 신형이 퉁기듯 전진. 해일처럼 커진 창격 경파가 그대로 백연을 향해 내리꽂혔고.


쩌어어어엉!


꽃잎처럼 분열하며 창격을 파고든 여휘가, 기파를 역으로 가르며 그 파괴력을 반감. 동시에 하단세에서 올려친 검격이 정확히 창끝과 맞닿으며 굉음이 터져나왔다.


일전 당가의 비선유성표를 파훼할때도 썼던 방법이었다. 기파의 회전을 역으로 훑어내 해체시켜버리는 묘기.


“백연은 놀라운 재주가 많네요.”


툭 내뱉는 악예린의 음성에는 감탄이 서려 있었다. 백연은 맑은 웃음소리로 화답했다.


“그건 피차 마찬가지 아닙니까.”


지금 이 순간도 악예린은 아직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많다. 암천화광창의 초식들을 엮어 쏘아내곤 있지만, 한참 남았다는 것이 느껴진다.


“변한게 없으면서도 많이 변했네요. 당신은.”


내뱉는 음성이 가벼웠다. 악예린의 눈이 곱게 휘어지며 소년을 담았다.


“그 종잡을 수 없는 검격. 예측 불가한 투로와 자유분방한 초식.”


천변만화(千變萬化).


곤륜파의 무공 요체를 인지하고 있다. 백연 자신의 몸짓에서 읽어낸 모양이었다. 과연 뇌룡의 눈이라고 해야할까.


“처음 마주했을때부터 뇌리에 새겨졌어요. 어느 순간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인상적이었는데.”

“무겁다......?”

“가벼운 심마를 불러 일으킬 정도였으니까요. 금방 사라졌지만.”


태연히 이야기했다. 백연은 모르는 일이었다. 그와 처음 겨루고 난 뒤의 악예린은 저런 고민을 하고 있었나.


“언제입니까?”

“그날 백연이 크게 다쳐서 왔을때요.”


기억이 있다. 그때 악예린이 자신을 치료해줬던가. 항시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뒷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지금은 괜찮은겁니까?”

“네. 외려 덕분에 암천화광창을 익힐 수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검룡 또한 백연과 만나고 무언가를 달라진 것 같은데,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심중의 변화를 입에 담았다. 쉬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어찌 자신에게 고맙다고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악예린 스스로 쟁취해서 얻어낸 것을.


“백연은 그렇게 생각지 않나보군요.”


생각에 따른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을 흘깃한 악예린이 후후 웃음을 흘리는 것이 그랬다.


“해서, 오늘을 기다렸어요.”

“그랬습니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당신에게.”


제가 얻어낸 모든걸-라고 말하며 창을 비틀어 쥔다.


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 기분은 알법 했으니까.


뒤이어 악예린이 나직하게 한마디를 덧붙였고.


“그럼, 이번엔 끝까지 갈게요.”


쩌억.


옅은 소리와 함께 그녀의 신형이 사라졌다. 한순간 공간을 격하듯 사라진 그녀가 백연의 곁에서 나타나기까지가 눈 깜짝할 사이.


“......!”


지금까지 거리를 유지하던 악예린이 갑자기 간합을 좁혔다. 장창을 짧게 비틀어 쥔채로 창날로 여상히 사선 참격을 내친다. 마치 검을 쥐고 있기라도 한 듯이.


그러나 백연 또한 그 속도와 같은 지경에 있었다. 이미 한발을 뒤로 뺀 상태. 창날이 짓쳐오는 순간 소년의 신형이 시간을 되감은 것 마냥 후퇴했다.


그와 함께 휘어지는 벼락같은 검격이 창날과 충돌.


쩌엉!


짧게 굉음이 울린 순간 그 여파를 그대로 추진 경파로 휘감아 회전하며 전진한다. 일순간 길쭉하게 늘어난 여휘가 악예린의 시야 사선으로 낙하했다. 시린 백광을 떨어지는 별의 꼬리마냥 끌어내면서였다.


그때까지도 악예린은 여상한 시선으로 백연의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떨어지는 검격을 분명 인지했을 것임에도.


‘놓친건가? 아니, 달라. 이건......’


그 순간이었다.


그극.


귀에 거슬리는 듯한 소음이 스쳤다. 동시에 사고가 한없이 쪼개지며 시야 가장자리가 길쭉하게 늘어났고.


‘어떻게.’


어느 순간 악예린의 앞에는 뻗어냈던 창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검로의 틈새에 창이 얽혀든 것도 찰나. 바깥으로 뻗어내는 창격 궤적에 여휘가 자연스레 휘감긴다.


철컥.


한순간이었다. 처음 악예린과 만났을 적 그녀가 선보였던 창법 묘리. 공격초 자체가 방어를 이루는데, 어느새 물 흐르듯 검신을 타고 올라온 창이 검을 내리눌러 바깥쪽으로 쳐낸다. 동시에 창은 홀로 다시 돌아오며 소년의 몸을 겨누었고.


‘위험......!’


활짝 열린 백연의 몸을 향해 악예린이 창격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소년의 신형이 날듯이 뒤로 밀려나 굴렀다. 창격 여파가 대기중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나갔다. 완벽한 일격이었다. 관객들이 한순간 백연의 몸이 꿰뚫렸다 생각했을 정도로.


아니었다.


“쿨럭......!”


핏물을 한움큼 뱉어내는 백연의 몸 위로 끊임없이 일렁이는 진기 파동이 있었다. 물결치듯 흐르는 성라기단의 조각이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유달리 손아귀와 가슴께에 빛 조각이 몰려 있다.


손에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


“......위험했는데.”


백연이 중얼거렸다.


아주 찰나였다. 소년은 창격에 적중당하려는 순간, 검을 놔버리고 양손으로 창격을 잡아챈 것이었다.


공수입백인(空手入白刃).


호신기를 겹겹이 두르고 그대로 창날을 쥐었는데, 남아있는 암천화광창의 경력 여파만으로도 뒤로 밀려날법 했다. 악가 특유의 내가중수법 묘리가 짙게 남아 내상을 입힌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일격을 먹었다.


그럼에도 백연은 미소를 지었다.


‘즐겁네.’


생각없이 마음껏 힘을 펼치며 싸울 수 있는 상황. 자주 오지 않는다. 그가 어떻게 검을 내질러도 악예린은 쉬이 죽지 않는다.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무인이었다면 이미 중상을 입고도 남았을 일격이나 백연은 받아냈다. 악예린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그런 일격을 내쳤겠지.


그것을 방증하듯 지금 이 순간 짓쳐오는 악예린 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줄기줄기 흩날리는 흑단같은 머리칼이 장포와 함께 늘어지는데, 사이로 드러난 눈에는 한없이 깊은 희열이 깃들어 있었다. 평시 침착하기 그지 없는 그녀에게서 보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피이잇-


적수공권의 백연을 향해 봐주는 것 없이 내리찍히는 창격. 이 순간 끝자락에 세갈래의 기파를 매달고 있었다. 흡사 악가의 응조권을 연상케 하는 기파 형태였는데, 그 위세가 터무니없이 거대했다.


그러나 그 순간 소년의 손아귀 위로는 이미 모래알 같은 기파가 흡착과 발산을 반복하며 회전하고 있었다.


직후였다.


한순간 허공에 흐릿한 선이 새겨졌다. 여휘검이 나뒹굴던 자리부터 소년이 여상히 펼친 손아귀까지.


쐐액!


쏘아진 화살마냥 스스로 날아들어온다. 찰나지간 검을 이끈것은 만천의 구결을 응용한 기예. 어느 순간 소년은 다시 벼락이 깃든 검을 쥐고 있었고.


쩌엉! 쩌저정! 쩡!


검격과 창격 궤적이 재차 얽혀들었다. 봉황비상보의 여파가 상승 경파를 이끌며 경기장 위에 자욱한 분진을 일으키는 순간, 내리찍히는 용형보의 뇌기가 그것을 압제하며 삽시간에 맑은 허공을 자아낸다.


그 속에서 소년과 소녀의 신형이 흩어진다.


태청신공의 뇌기를 두른 검격과 묵천암뢰신공의 기파를 휘감은 창격이 허공을 별자리마냥 수놓는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눈에는 저릿한 백광의 연속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부서지는 빛살이 마치 대낮에 일어난 별무리와도 같아 보였다.


검광이 번뜩이며 떨어지고, 창격 여파가 허공을 진동시키며 한줄기 희끄무레한 전격으로 화한다.


흑과 백.


흑색 장포의 악예린과 백청색 장포의 백연.


암천화광창의 기파가 사방의 빛을 흐리게 만드는 순간 순간, 시린 뇌광이 끼어들며 밝은 빛을 비춰낸다.


창격 투로가 전투를 주도하며 이어지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검로가 앞서나가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와 함께 신묘한 보신경으로 맞서는 두 사람의 신형이 경기장 끝에서 끝까지 삽시간에 이동.


카가가가각!


검날과 창날이 교차하고, 진기 여파로 두 무인의 머리칼이 거칠게 흩날렸다. 둘 모두 흑단같은 머리칼을 나풀거리는 것이 꼭 닮은 남매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마치 두 무희가 검무를 추듯이. 한없이 유려한 몸놀림으로 검과 창이 허공을 저민다.


동시에 사방에 점차 침묵이 내리깔렸다.


각기 다른 이유였다. 두 무인이 교환하는 합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들은 그 무공의 고절함에 홀려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으며, 평범한 민초들은 춤추는 빛무리와 인영의 형태가 한없이 아름다웠기에 입을 벌리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두 무인의 합이 이어지길 한참.


문득 꽃잎처럼 회전한 백연의 신형이 급격하게 대지를 박차며 가속. 살풋 간합을 벌렸던 악예린에게 달라붙으며 지독할 정도로 빠른 횡격을 내쳤다.


콰아아앙!


한순간 악예린의 신형이 뒤로 주욱 밀려났다. 동시에 그녀가 옅은 기침을 뱉었다. 가까스로 창을 들어 검격을 막았는데, 손아귀가 저릿하게 아파왔다. 찢어져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밀린다.’


악예린이 생각했다.


암천화광창을 처음부터 전력으로 전개한 덕에 크게 우위를 빼앗기지는 않았다. 잠시나마 백연에게 유효한 공격을 먹이기도 했다. 설마 공수입백인의 움직임으로 창격 여파를 최소화 시킬 줄은 몰랐지만.


그럼에도.


‘내가 더 느려. 보신경의 문제일까.’


신법 운해비영이라고 들었다. 경기가 지속될 수록 몸놀림이 묘하게 변한다. 검격 경파를 추진력 삼아 움직인다고 했는데, 그 덕에 지치지를 않는 모양이다. 검을 펼칠때마다 움직일 방향을 예측하는게 불가능하다.


조금씩이나마 악예린의 힘이 먼저 소진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이었다. 심호흡을 한 악예린이 창을 비스듬히 들어올린 것은.


“후우.”


숨을 고르며 기를 끌어모은다. 눈앞의 소년은 어째서인지 횡격을 내치고는 그 자리에 서서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준비한 것을 전부 펼쳐보라는 듯이.


악예린이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녀 스스로도 백연의 경지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그녀가 보여준다고 선언했으니, 끝까지 펼치는 것을 기다려주겠다는 의미.


그것이 어떤 절초라고 해도.


말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다. 소년의 침착한 표정과 시선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보여주면 될 일이다. 그녀가 손에 쥔 암천을.


“암천화광창(暗天火光槍).”


이 순간.


백연의 눈에는 보였다. 자령안 속에서 춤추며 휘몰아치는 기파. 사방으로 뻗어낸 감각이 보이지 않는 변화조차 잡아낸다.


여상히 창을 쥔 악예린. 끝을 미묘하게 기울인채로 창대를 길게 늘여잡았다. 왼손은 가벼이 받치는 듯한 형태로.


동시에 그녀의 숨결에서 흐릿한 기파가 뻗어나왔다. 숨결 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을 따라 맥동하는 듯한 진기가 줄기줄기 흐르며 창대와 창날을 휘감으며 켜켜이 쌓여간다. 회전하는 진기는 주변 허공의 자연지기마저 흐름으로 끌어들여 하나의 거대한 창격을 이루었고.


키이이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끝없이 몸을 부풀리던 진기가 점차 압축되어 간다. 창 한자루에 진기를 끝없이 욱여넣을 듯이. 그렇게 끝없이 압축된 진기는 시릴 정도로 아릿한 빛으로 물든다.


사람들의 시선에는 악예린이 빛으로 된 거대한 창을 들고 있는 듯이 보일 정도였다.


백연의 눈에는 달랐다.


자령안 속에 비친 광경.


한없이 다채로운 선율이 허공을 수놓는다. 압축된 진기가 제각기 다른 방향과 형태를 그리며 회전한다. 창 한자루 위에 수없이 다양한 구결을 엮어내고 꼬아내 파괴력을 극대화한 저것은 말 그대로 일격필살(一擊必殺)의 창격.


곤륜의 무공요체가 하나에서 수없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천변만화라고 한다면, 저것은 정반대라 봐도 좋았다. 모든 변화를 하나로 수렴시켜 필살의 일격을 이끌어내는 군문의 무학.


전장을 이끄는 선봉의 창격. 말 그대로 어두운 하늘을 밝히는 첫번째 화광이니.


“화광충천(火光衝天).”


여상히 뱉은 악예린이 손을 뻗어내는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한순간 백연의 인지에서 모든게 지워졌다. 삽시간에 시야 가장자리가 이지러지고, 시야가 한점으로 수렴한다. 동시에 사고가 극한으로 가속.


한없이 늘어진 시간 속에서 소년은 천천히 검을 쥐곤, 자세를 살풋 낮춘채로 다리를 길게 뻗었다. 소년의 길쭉한 다리가 대지를 여상하게 밟아낸다. 마치 발검술을 펼치기라도 할 듯이.


직후였다.


돌연 소년은 일어나 있었고, 그 검끝은 우상단에 가 있었다.


악예린의 코앞이었다. 화광충천의 초식을 내치던 악예린의 창격이 채 움직이기도 전.


소년의 검격이 한줄기 선을 그어내었고.


그 검로(劍路)는 지나친 모든 것을 소멸시켰다.


“......어?”


만년한철로 된 창날부터 흑단목 창대까지. 휘몰아치던 진기를 포함해 모든것이 반으로 갈렸다. 여상히 뻗어낸 소년의 검 아래로 잘려나간 악예린의 흑발이 꽃잎마냥 나풀거리며 허공을 유영했다.


그와 함께 오후의 햇살이 시야 사선으로 떨어졌다. 분분히 쪼개진 빛살의 자락이 허공을 느릿하게 유영한다.


한순간, 관객은 물론이요 상석에 앉은 이들조차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휘몰아치던 화광충천의 초식은 일거에 소멸. 악예린을 껴안을듯 가까이 붙은 백연의 검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아있다는 사실만이 눈에 들어왔을 뿐.


그 기묘한 침묵과 혼란 속에서 유왕 주재후가 나른한 미소와 함께 흑립을 내리누르며 중얼거렸다.


“분광뇌풍검(分光雷風劍)이라.”


소년이 입에 담았던 검법의 명칭.


빛을 가르는 뇌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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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본선 +5 24.02.21 2,522 74 16쪽
192 창염(蒼炎)(2) +6 24.02.20 2,530 73 16쪽
191 창염(蒼炎) +7 24.02.19 2,521 75 16쪽
190 만천(滿天)(4) +7 24.02.17 2,658 8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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