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mr***** 님의 서재입니다.

전음으로죽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mrkwang
작품등록일 :
2005.05.20 19:27
최근연재일 :
2005.05.20 19:27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94,373
추천수 :
2,715
글자수 :
158,711

작성
05.05.07 03:12
조회
2,188
추천
76
글자
11쪽

[전음으로 죽다] 5.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은가? (1)

DUMMY

제갈훈은 책을 읽고 있었다.

"오, 자네들 왔는가. 어제는 정말 즐거웠네. 그렇게 신나고 재밌던 건 너무 오랜만이었지 뭐야. 아, 이거? 평소의 나는 독서를 즐겨하지. 더 많은 것을 말하며 전파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을 해야 하는 법이거든. 그래서 나는 여러 종류의 서책을 구입해 정독한다네. 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알려주거든."

누가 수다마제 아니랄까봐, 혼자서 열심히 떠들고 계신다.

참고로 지금 사마철은, '안녕하십니까'의 첫 두 글자조차 꺼내지 못한 상황이다. 미처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선제공격을 당한 것이다.

제갈훈은 읽던 책의 표지를 보여주며 말을 잇는다.

"이거 읽어봤나? [초인탄생]이라는 소설인데 말일세. 먼 미래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골동품상 직원의 눈물겨운 사투를 그린 내용이라네. 작가 둔계는 '과거와 현재를 탐구해 미래를 예측하는 글'이라 자찬했다는데... 글쎄. 옷에 넣고 다니는 작은 기계로 멀리 떨어진 사람과 대화한다?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통틀어도, 그런 물건이 발명될 것 같지는 않네 그려."

"저기..."

기왕 이렇게 된 거 인사는 생략하고, 슬쩍 끼어 들어 말을 꺼내보려고 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 무너질 사람이라면, 성 앞과 별호 끝에 '제'가 들어가지 않았을 거다.

"그래 맞아. 이 책은 너무 붕 떠있지. 좀 더 현실적인 책이 어디 있었는데..."

제갈훈은 읽던 책을 탁자에 놓고, 뒤로 돌아 책장을 뒤지기 시작한다. 뭔가 말을 하고는 있지만, 혼자만 중얼거릴 뿐 상대에게 전달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기회다!

"그게 아니고 저희는 전음..."

"아! 전음을 다룬 소설을 원하나 보군."

끼어들기 실패.

"무림인들은 전음을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만 생각하지만, 소설가들은 좀 다르게 여기더군. 그래서인지 전음을 다룬 소설도 꽤 많아.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건 [전음무사]하고 [불량전음],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런 거 말고 이번의 살인..."

지지 마라 사마철!

"살인! 그것이야말로 모든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주요한 장치지. 하지만 그 전체의 대표작을 꼽기에는 너무 많고... 대략 [대도살]과 [살투]를 권하고 싶군. 특히 [살투]는 청삼이라는 분이 쓴 책인데 말이지. 본래 도둑질만 일삼던 신투의 가문에서, 마침내 살인강도가 나온다는 줄거리의..."

또 졌다.

"그러니까 그게 아니고요!"

이제는 언성까지 높이는 사마철! 과연 증폭된 목소리로는 당해낼 수 있을 것인가?

"아. 전음과 살인이 한번에 나오는 소설? 그런 건 좀 귀한데..."

한 번 더 지고 말았다.

"이게 꽤 괜찮지. [음공의 대성]이라고 하는데 말야. 오래되어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열성적인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드높은 명성을 갖고 있지 . 총 일곱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여섯 권을 어렵게 구해놨다네. 짝을 다 맞춰줄 마지막 권도 배달되어 오고 있는 중인데..."

"그만 해요오!"

빽 소리를 질러버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출행동은 제대로 먹혔다.

제갈훈은 순간적으로 말을 멈추게 되었고, 사마철은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저는 요새 발생하는 전음 살인을 수사하러 온 것입니다. 그런 소설들을 소개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전문 지식을 여쭙기 위해 찾아뵌 것이라고요!"

잠시 사마철을 쳐다본 제갈훈이 픽 웃는다.

"자네는 내가, 말만 많은 사람으로 보이는가?"

간단한 문장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지 않는다.

그럼에도 굉장한 무게가 실려버린다.

사람들은 제갈훈을 수다마제로 기억한다. 말이 죽도록 많은 괴인이라 여길 뿐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을 하나 잊고 있다. 그는 머리 좋기로 유명한 제갈가의 인물이고, 이유야 어찌되었건 가문을 대표해 나와있는 사람이다.

쏟아내는 것만 많은 바보일 리가 없다는 거다.

"악마대가 궁금한 거지?"

사마철은 답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제갈훈의 분위기에 눌려버렸기 때문이다.

말을 약간 줄였을 뿐인데 사람이 달라진다. 몇 배는 듬직해 보이고, 심지어 믿음직스럽기까지 하다.

제갈훈도 한 수를 숨기고 있었던 거다.

"그러고 보면 자네들도 대단해. 그 많던 말 중에 슬쩍 끼워 넣었을 뿐인데, 용케도 잘 찾아냈군."

"별 과찬의 말씀을..."

의외로 대답한 것은 독고광이다. 사마철은 여전히 굳어있기 때문이다.

제갈훈은 조금 놀라는 눈치다. 독고광이 입을 연 것은 처음 보기 때문이다.

그도 잠깐일 뿐. 다시 본래대로 돌아와 말을 잇는다.

"악마대에 대해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걸 반드시 봐야 하네."

- 턱.

책을 탁자에 올려놓아 둘에게 보여준다. [음공의 대성] 일 권이다.

"그냥 읽으라고 하면 납득하기 힘들테니, 간략하게나마 이유를 설명 해주겠네. 아, 걱정하지 말라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할 테니까. 그런데 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내야 하나..."

제갈훈은 잠시 허공을 쳐다본다. 조금 떨어진 곳에 시선을 두며, 머릿속의 지식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좋아. 여기서부터 하면 되겠군. 자네, 악마대에 대해 아는 거 있나?"

"어제 여기에서 들은 게 전부입니다. 오십 년 전 모 단체에서 양성한 음공 전문의 살상단체로써, 몇몇 문파와 싸워 크게 이긴 후 종적을 감췄다는 것 정도입니다."

사마철은 고분고분히 대답한다.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지. 너무 좁은 지방에서만 활동해서, 그 외의 곳에서는 소문만 무성하게 퍼졌을 뿐이라네. 게다가 이유를 알 수 없이 갑자기 사라져버려서, 정말로 존재했는지 여부조차 불투명해졌지. 시간도 많이 흘러버린 지금은, 그저 강호무림에 떠도는 전설 중 하나가 되어버렸고. 그런데..."

제갈훈은 사마철에게 책을 건네주며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킨다. 저자의 이름이 써있는 곳이다.

"일금?"

"그래. 저자의 필명이 일금이야. 앞에 써있는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자면, 서양에서 건너온 커다란 금을 잘 타기에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하더군. 알지 모르겠는데, 서양의 현악기는 우리의 것과 매우 다르지. 손가락과 자그마한 보조재를 갖고 튕기는 것이 아니라, 기다란 작대기로 마치 톱으로 써는 것처럼 연주한다고 하네."

말이 조금 길지만 사마철은 열심히 듣는다. 아까의 무차별적인 폭격과는 차원이 다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많다네. 하지만 그 대부분은, 글을 쓰거나 하지 않지. 단지 음악의 길에서 열심히 매진할 뿐이네. 그리고 익히고 연주하는 악기는, 멀리 떨어진 서양의 것이 아닌 우리에게 친숙한 것을 택한다네. 먼 곳의 문물은 배울 곳도 마땅치 않을뿐더러, 설령 익힐 수 있더라도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게 되니까 말야. 희소성이 높으니 수업료도 비쌀 터이고, 악기를 구하는 것도 먼 길을 거쳐와야 하니까. 게다가 일금이 연주했다는 그 악기는, 웬만한 어른의 키만큼이나 크다네. 보통 각오로는 구입조차 하기 힘든 것이지."

"그렇다면 혹시..."

뭔가 눈치챈 듯 사마철이 끼어든다.

"맞아. 저런 희귀한 악기를 익혔다는 것은, 특수한 목적에 의했을 가능성이 많지. 이 책을 쓴 저자 일금은, 바로 악마대의 일원이었던 걸세. 그것도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삼은, 자전적인 소설이었던 것이야!"

두둥.

사마철과 독고광은, 어디선가 북 소리의 효과음이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무림 최고의 비사 중 하나가 밝혀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리라.

"주인공의 이름은 악마가. 어렸을 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던 그는, 악마대 창단 때 유괴되어 갔다고 하네. 다년간의 모진 훈련을 받으며 성장한 후, 결국 음공 하나만으로도 절대 고수의 위치에 오르게 되지. 여러 악기를 두루 거쳤지만, 그 중 제일 능했던 것은 목소리, 즉 노래였다고 하네. 그래서 악마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하더군."

궁금한 부분을 사마철이 되묻는다.

"그렇다면 왜... 자신의 주특기인 노래를 필명에 붙이지 않았을까요?"

"일가? 아니면 일성? 정말로 그렇게 썼다면, 대놓고 자서전이라고 선전하는 셈이 되지 않는가. 비록 스스로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것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감출 필요가 있었겠지."

"그건... 추측일 뿐이잖아요. 일금은 그냥 멋지게 보이려고 붙인 이름일 수도 있고, 소설 속의 악마대는 그가 만들어낸 창작물일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실제 소문을 몇 가지 듣고 끼워 맞추는 것 말이에요."

사마철의 반론에 제갈훈이 고심한다.

그러다 겨우 말문을 연다.

"이건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자네 내 밑천을 너무 털어먹는군.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여기서만 듣고 말도록 하게나. 절대 다른 데서 옮기지 말고. 알았지?"

"예."

사마철의 경쾌한 대답에 흡족했는지, 제갈훈은 다시 입을 연다.

"오래 전 이 책을 구한 후, 나도 궁금해서 여기저기 수소문 해봤다네. 운 좋게 살아남은 생존자들, 그러니까 악마대에게 당한 이들을 어렵사리 만나보게 되었지. 그들에게 물었더니... 책에 쓰인 것과 똑같은 수법이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출판사도 수소문 해봤다네. 출간 당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일자리를 떠났더라고.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당연하겠지.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네. 여러 갈래의 추적을 통해 따라 올라가던 중... 드디어 저자 일금을 만날 수 있었다네."

약간 뜸을 들이고.

"일금은 악마가 본인이었다네. 직접 물어 답을 얻었고, 실제 책에 나오는 기술 중 여럿을 시전 해주기도 했네."

제갈훈이 쐐기를 박는다.

그리고 장내에는 약간의 긴장이 흐른다.

사마철은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정말로 전음에 의한 것인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손노대를 통해 보라는 듯 던져놓은 상황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는데다가, 과연 전음이라는 것이 그런 위력을 가질 수 있는지조차 애매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특수한 음공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특정 대상에게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피해자의 고막만 선별해 터트릴 수도 있었을 거다.

만약 악마대가 정말로 그런 공격을 펼친 적이 있다면?

그 가능성은, 아마도 저 책에 나와있을 것이다.

생각이 정리된 사마철은, 결정을 내리고 행동에 옮긴다.

"빌려가겠습니다."

- 턱.

책으로 향한 사마철의 손을, 제갈훈이 제지하며 잡는다.

짧은 말이 뒤를 잇는다.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다네."

제갈훈의 입가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혀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음으로죽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3 [전음으로 죽다] 본문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 +33 05.05.20 2,327 91 7쪽
32 [전음으로 죽다] 7. Ende gut, alles gut (3) <완결> +32 05.05.20 2,548 70 15쪽
31 [전음으로 죽다] 7. Ende gut, alles gut (2) +33 05.05.19 2,071 70 13쪽
30 [전음으로 죽다] 7. Ende gut, alles gut (1) +26 05.05.18 1,962 66 9쪽
29 [전음으로 죽다] 6. 이것이 정말로 모든 것의 끝인가? (4) +27 05.05.17 2,229 75 9쪽
28 [전음으로 죽다] 6. 이것이 정말로 모든 것의 끝인가? (3) +28 05.05.16 1,852 72 8쪽
27 [전음으로 죽다] 6. 이것이 정말로 모든 것의 끝인가? (2) +24 05.05.15 2,004 66 11쪽
26 [전음으로 죽다] 6. 이것이 정말로 모든 것의 끝인가? (1) +20 05.05.14 1,935 65 11쪽
25 [전음으로 죽다] 5.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은가? (6) +33 05.05.13 2,034 74 12쪽
24 [전음으로 죽다] 5.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은가? (5) +28 05.05.12 1,955 77 9쪽
23 [전음으로 죽다] 5.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은가? (4) +23 05.05.11 2,107 74 9쪽
22 [전음으로 죽다] 5.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은가? (3) +24 05.05.09 2,038 72 8쪽
21 [전음으로 죽다] 5.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은가? (2) +20 05.05.08 2,104 73 12쪽
» [전음으로 죽다] 5.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은가? (1) +26 05.05.07 2,189 76 11쪽
19 [전음으로 죽다] 4.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4) +27 05.05.06 2,243 84 12쪽
18 [전음으로 죽다] 4.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3) +24 05.05.05 2,235 76 10쪽
17 [전음으로 죽다] 4.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2) +28 05.05.04 2,455 86 11쪽
16 [전음으로 죽다] 4.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1) +33 05.05.03 2,334 80 13쪽
15 [전음으로 죽다] 3. 노인은 노인답고, 청년은 청년다운가? (5) +20 05.05.02 2,587 79 13쪽
14 [전음으로 죽다] 3. 노인은 노인답고, 청년은 청년다운가? (4) +22 05.05.01 2,478 74 9쪽
13 [전음으로 죽다] 3. 노인은 노인답고, 청년은 청년다운가? (3) +26 05.04.30 2,436 81 8쪽
12 [전음으로 죽다] 3. 노인은 노인답고, 청년은 청년다운가? (2) +22 05.04.29 2,599 70 9쪽
11 [전음으로 죽다] 3. 노인은 노인답고, 청년은 청년다운가? (1) +24 05.04.28 2,727 80 10쪽
10 [전음으로 죽다] 2. 세상의 이치란 어디에 있는가? (6) +23 05.04.27 2,789 79 12쪽
9 [전음으로 죽다] 2. 세상의 이치란 어디에 있는가? (5) +21 05.04.26 2,735 73 11쪽
8 [전음으로 죽다] 2. 세상의 이치란 어디에 있는가? (4) +27 05.04.25 3,054 87 10쪽
7 [전음으로 죽다] 2. 세상의 이치란 어디에 있는가? (3) +21 05.04.24 3,186 95 8쪽
6 [전음으로 죽다] 2. 세상의 이치란 어디에 있는가? (2) +30 05.04.22 3,566 90 11쪽
5 [전음으로 죽다] 2. 세상의 이치란 어디에 있는가? (1) +20 05.04.20 3,932 87 12쪽
4 [전음으로 죽다] 1. 돌고 도는 것은, 사람인가 세상인가? (3) +30 05.04.20 4,990 100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