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음으로 죽다] 4.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2)
- 휙 휙.
총관에게서 바람 소리가 난다. 집무실 앞의 공터에서 연무를 하는 중이라서 그렇다.
그저 허공에 내지를 뿐인데, 공기를 가르는 음향이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권법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이 본다면, 그 안에 담긴 기세의 강렬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많이 아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결국 그 요란한 효과음은 소매가 흩날리며 퍼져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소리만 요란하다고 해서 그의 권법이 약한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 온갖 잡다한 거 신경 쓰는 중년일 뿐이지만, 총관질 시작하기 전에는 제법 날리던 권사였다.
그렇게 연무를 하는 동안, 어느덧 해는 떠올라 세상이 밝아졌다. 비 오다 갠 탓인지 상쾌한 아침이지만, 총관의 마음속까지 그렇지는 않다.
새벽에 벌어진 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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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거센 폭우라 하더라도, 평생동안 내리지는 않는다. 총관은 비가 그쳐 변해버린 날씨를 방안에서 느끼며, 사마철 일행을 부르러 간 이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녀석들 아주 날탱이는 아닌 거 같으니, 돌아오면 좋은 말도 해주며 술도 한 잔 하고 그래야겠어. 버릴 때는 버리더라도, 지금은 지금이잖아. 또 누가 알아? 의외로 수완이 좋은 놈들이라 정말로 해결해버릴지. 정말로 그래버리면 더 데리고 놀자고.
그러면서 홀짝. 왜 아직 오지 않을까 하며 홀짝. 이 녀석들 어디 가서 짱박힌 걸까 홀짝. 이렇게 술 먹고 있어도 되는 걸까 홀짝. 다행히도 오늘은 조용히 지나가나 보군 홀홀짝짝.
그러다 정신이 끊겼다. 아마 술에 취해서 깜박 잠이 들었나보다.
- 툭툭.
다시 의식을 찾은 건, 탁자에 엎드려있는 그를 누가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사냐?"
덜 깬 상태로 웅얼대며 불렀다. 잠자는데 와서 건드릴만한 인간은, 맹주 아니면 이사밖에 없다. 그리고 맹주는, 이 시간에 여기까지 올 리가 없다. 고로 이사임이 틀림없다.
"허조장입니다."
틀렸다.
이번 주의 야간 경비조 책임자이자, 첫 사건 때 당구호 집에서 만난 허조장이다.
"허조장? 술 만드는 양조장도 아닌 허조장이 왜?"
여전히 취한 탓인지 되도 않는 농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말은 심각했다.
"큰 일 났습니다."
"큰 일? 대체 뭔데. 혹시 또 죽었냐?"
계속 궁시렁 댄다. 아직 온 몸이 술기운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아 몰라 몰라. 어차피 똑같을 거 아냐. 자기 거처에서 죽었고, 귀 안에만 혈흔이 있으며, 또 뭐 있었지... 여하건 기타 등등! 어차피 내가 간다고 벌어진 사건 달라질 것도 없잖아. 나 더 잘테니 이사나 불러서 처리하라고 해!"
"오늘은 그게 아닙니다. 정말 큰 일입니다."
"아 글쎄! 나 졸리니까 이사한테 말하라니까!"
끈질기게 엉겨붙는 허조장에게, 총관은 언성을 높인다.
술도 먹었겠다 몸도 늘어지겠다, 세상 다 귀찮은데 계속 말을 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게 탁자에 다시 엎드려 뻗으려는 총관에게, 허조장이 충격적인 얘기를 건넨다.
"손노대가 시독을 익혔다고 합니다."
"시댁? 손노대가 결혼했었어? 아니지. 여자도 아닌데 뭔 시댁이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총관에게, 허조장이 자세히 덧붙인다.
"시댁말고 시독입니다. 시체를 통해 익히는 사악한 독공 말입니다."
- 벌떡.
총관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술기운이 사라져버리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그의 귓속에서만.
"뭐... 뭐라고? 시독? 지금 말하는 손노대가, 우리 무림맹의 장의를 담당했던 그 손노대 맞지? 문 밖에서 장작 주워 파는 손씨 말고."
"네. 우리 손노대 맞습니다."
총관의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한다.
손노대가 여기서 일한 지 꽤 오래 되었는데, 그 동안에 거쳐간 시신이 하나 둘이 아니지. 그냥 하급 무사나 낭인도 더러 있었지만, 개중에는 잘 나가는 집안의 인물들도 있었어. 게다가 소문이 좋게 퍼져서, 부근의 부잣집이나 관리 쪽에도 가끔 출장 나갔단 말이야.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당가와 소림의 시체도 하나씩 나왔는데.
그 모든 시신을.
시독 익힌 인간이 건드렸단 말인가! 그렇다면 분명히, 거기서도 독을 뺐을텐데. 묘자리도 방위 봐가며 치르는 인간들이, 이 사실을 알면 엄청난 항의를 해올텐데. 아니 아예 눈에 불을 켜고, 욕지거리를 입에 달며 쳐들어올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하나 어쩌면 좋을까...
아직은 덜 깬 탓인지, 머리가 그 이상 돌아가지 않았다. 어쩌면 최근의 살인사건보다도 훨씬 큰 일이다. 그런데 그 이상 뻗어가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머리가 터져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살려준 것은 허조장이었다.
"지금 도주중이라고 합니다."
"도주? 도망가고 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의 악행을 밝힌 사마철과 독고광이, 지금 저희 무사들과 뒤를 쫓고 있습니다."
다행이네. 녀석들이 좀 했나보군. 독공의 고수라고 해도 특별한 경공을 익히지는 않았을 테니,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경비조 만으로는 조금 꺼림직 하니, 일류 무사 몇을 깨워 빨리 보내야겠어. 그가 저지른 일이 큰 건 사실이지만, 산채로 잡아다 넘겨주면 원망은 여기까지 오지 않을 거야.
숙취 때문에 안 돌아가는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꽤 그럴싸했다. 고용인의 신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책임은 면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감정적인 분노는 손노대 이 시러배놈의 자식이 대신 맞아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이다.
바로 그 때.
"총관님! 총관님!"
경비조의 일반무사 중 하나가 뛰어들어왔다.
"손노대가..."
갑자기 뛰어 숨이 찬 탓인지, 한번에 말을 끝내지 못한다.
그리고는.
"손노대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총관의 혼잡한 두뇌 안에, 벽력탄을 기차게 터트려 준다.
술이 다 깨버렸다. 더 이상 잠도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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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총관이 갑자기 연무중인 이유는 간단하다.
속에서 울화가 마구 솟아오르는 중인데, 어떻게 풀 길이 없어서다. 이미 담배나 술로 해결될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 파팡.
"어떻게 하면 좋겠냐. 어쩌면 좋겠냐고."
아예 소매로 파공음까지 내며, 옆에 서있는 이사에게 묻는다. 그나마 힘을 쓰며 조금은 진정되었는지, 목소리를 크게 높이지는 않는다.
"아무도 모르던 손노대의 마각을 밝혔으니, 내가 걔네한테 큰 상을 주는 것이 맞냐. 아니면 주요 용의자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으니, 중대한 벌을 내리는 것이 옳은 거냐."
권을 장으로 펴 두 번 더 격하고.
"그래. 손노대 잡은 것까지는 좋다고 치자. 당구호 시체가 산산조각 났다며. 그 뒷감당은 또 어찌 해야하냐. 곱게 잘린 손노대 목 주면 끝나는 거냐, 아니면 걔네까지 화풀이용으로 당가에 넘겨야 되냐."
얼이 빠져서 묻는 말의 끝조차 올리지 못하는 총관에게, 이사가 대답한다.
"다행히 당가에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만독문의 시독이라면 자신들도 상대하기 어렵다며, 독고광한테 수고했다는 공치사까지 던지고 갔습니다."
평소와 달리 이사의 말투는 굳어 있다. 뺀질거리거나 유들거리지 않는다. 현재 상황이 워낙에 복잡하기 때문이다.
- 팡.
소매를 넓게 후려치며 큰 소리를 낸 후, 총관은 연무를 멈춘다. 그리고는 이사에게 묻는다.
"그건 그렇고... 아무도 모르던 손노대의 마각을, 도대체 어떻게 벗겨 냈다냐?"
"그것이..."
이사는 말끝을 흐린다. 들은 걸 그대로 보고해도 될지 감이 안 오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을 정한다. 쫓겨나도 자기가 당할게 아니다.
"그냥 찍었답니다."
"... 찍어? 그냥?"
"예. 이미 아시는 바와 같이, 다른 데서도 한번씩 넘겨짚지 않았습니까? 손노대 만나며 나오면서도 그냥 그래봤는데, 그게 정말이었다는 거더군요."
총관은 잠시 가만히 있는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건지, 감도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하!하!하!"
크게 소리쳐 웃는다.
한참을 그러다 멈춘 총관은 이사에게 묻는다.
"너 혹시 가위차기라고 아냐?"
"그... 땅을 박차 양다리를 높게 띄운 후, 상대의 목을 감는 각법 말씀이십니까?"
"맞어. 내가 요즘은 잘 안 하는데, 한때는 그거 가끔 썼거든? 각 맞추기가 좀 어려워서 자주 쓰지는 않았지만, 다른 공격 중에 섞어 쓰면 의외로 괜찮은 기술이었다. 이래 뵈어도 다리 힘이 좀 강해서 말야, 제대로 기술 들어가면 상대의 목뼈는 와자작! 소리도 요란하게 부러져 버렸지."
총관의 전투를 본적이 없는 관계로, 정말일지 허풍일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이사는 긍정하기로 한다.
"그런데 말야... 지금 내가 걔네 만나면, 그대로 가위차기 들어갈 거 같아. 부하가 좀 엄한 짓 했다고, 가차없이 처치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겠어? 걔네는 나름대로 맡은 바 직분을 다 했단 말이지."
운동을 해서인지 말이 길어서였는지, 총관은 숨을 고르고 계속한다.
"사실 우리가 기대한 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주변 수풀을 흔들어서 뱀이 튀어나오기를 바랬던 거잖아. 저 정도라면 할 만큼 한 거지, 아니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준 거 아니냐. 심지어 무림 공적이 되어도 마땅할, 손노대까지 잡았다는 거 아냐. 잘 한 거지. 암. 정말 제대로 해낸 거고 말고. 상을 줘도 모자람이 없어!"
거기까지 말하고는 표정이 차가워진다.
"그런데도 열 받는다. 놈들 덕분에 생겨난 이런 저런 것들 생각하면, 앞뒤 안 가리고 보자마자 가위 찰 거 같다. 그러면 안 되는 거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따라갈지 자신이 없다. 그러니까..."
잠시 끊은 후.
"너가 걔네 만나서 보고 받고, 정리해서 나한테 줘라. 알았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총관은 뒤돌아 가버린다. 하긴 돌아가는 사정 뻔히 다 아는 이사가, 그 말에 대놓고 거부할 수도 없었을 거다.
홀로 남은 이사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럼 나는 뭘로 이 열불을 꺼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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