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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님의 서재입니다.

전음으로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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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rkwang
작품등록일 :
2005.05.20 19:27
최근연재일 :
2005.05.20 19:27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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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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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5
글자수 :
158,711

작성
05.04.2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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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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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전음으로 죽다] 2. 세상의 이치란 어디에 있는가? (2)

DUMMY

"난 말야. '무림맹 연쇄살인사건' 같은 건, 소설에나 나오는 줄 알았다. 그리고 만약 그런 게 터져도, 나와는 별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고.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너나 나나 무림맹 관리하는 사람들이지, 사건 사고 수사하라고 월급 받는 건 아니지 않냐?"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조금은 지친 모습의 이사가 총관에게 말을 받는다. 총관 역시 피곤한 표정이긴 매한가지다.

"어쨌건 보고서는 살펴봐야겠지. 이거저거 일 처리하려면 말야. 에휴... 내 팔자야."

이사가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한다.

"어제와 똑같습니다. 단지 사람만 다를 뿐이죠. 고막이 터졌고, 그 안의 기관들도 상했답니다. 이번에는 등쪽의 자그마한 상처조차 없어서 더더욱 확실합니다. 그런데..."

약간 뜸을 들이고.

"똑같기 때문에 오히려 이상합니다."

"왜?"

총관은 짤막하게 반문한다.

"아시겠지만 당가는 독에 강합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분야에 강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내공이 엄청나게 강하거나 하지는 않고, 특별히 귀나 눈을 보호하는 수련 같은 것도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불문은 좀 다릅니다. 그쪽은 항상 염불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거야 저자거리의 어린아이도 다 아는 사실인데..."

아직 이해하지 못한 총관을 위해 이사가 말을 더 길게 붙인다.

"염불은 소리가 납니다. 그것도 자주 크게 말이죠."

"아 그러니까..."

"예. 불문의 제자들은, 어느 정도 소리에 대한 내성을 갖고 있습니다. 특별히 음공에 대항하는 무엇을 익히려 해서가 아니라, 항상 그들은 염불을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소림사정도 되는 큰 사찰이라면, 그들이 모두 모여서 올리는 예불의 소리란 결코 범상한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더 시끄러운, 목탁이라는 타악기도 있습니다. 그 엄청난 소리를 오랜 세월동안 견뎌온 승려들은, 절대 쉽사리 음공에 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거 하지 않을 때는, 굉장히 조용한 곳이 사찰이잖아. 일정 기간동안 아예 말을 하지 않는, 묵언수련이라는 것도 있고."

총관이 이의를 제기한다.

"양쪽 모두에 내성이 길러지는 거죠. 시끄러운 쪽과, 고요한 쪽. "

"그럴싸하군. 그럴싸해.... 결국 일반적인 사람도 아닌 소림의 승려조차 여기 당했을 정도니, 살행을 저지른 자의 '전음'은 심하게 무섭다는 거 아냐? 근데... 이걸로는 좀 부족한 거 같다. 추가적으로 붙일만한 사항 없냐?"

"한가지 더 있습니다."

이틀 간 하도 인상을 써 미간에 주름잡힐 지경이 된 총관이 반문하자, 이사가 그에 답한다.

"공아는 불문의 사자후를 익혔습니다. 그것도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고 하더군요."

"사자후라면 꽤 시끄러운 소리내는 음공 아닌가. 그렇다면 그 자신도 나름대로는 음공의 고수라는 건데, 그의 고막을 터트릴 만큼 강력한 '전음'이라..."

잠시 생각에 빠진 총관이 이사에게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알아낸 자료에 의한 결론은 뭐지?"

침중한 표정으로 이사가 답한다.

"흉수의 음공은,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입니다."

어색한 침묵은 대기를 잠식하고.

조금 더 암울해진 표정의 총관이 말한다.

"별로 달라진 게 없잖아. 이미 당구호 사건에서도 나온 결과고."

"그렇긴 합니다만... 그 때 예상했던 것 보다, 조금 혹은 훨씬 센 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말해놓고도 뻘쭘한 모양인지, 이사는 눈길을 조금 돌려 벽을 본다. 그 상황도 오래가진 않았다. 총관에게 중요한 사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 얘기들을 왜 이사 자네가 보고하고 있지? 어제 담당자 뽑았잖아. 걔네는 뭐하고?"

"사마철과 독고광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조금은 난감해진 이사다. 총관이 갖다 붙인 독고광은 몰라도, 사마철은 자신이 밀어 넣은 인물이니까. 벌어진 그대로 말하기는 조금 애매한 감이 있으니까. 설령 제대로 말하더라도, 자신이 빠져나갈 구석은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이고.

이렇게 이사가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사건의 중심에 선 두 인물들은.


---------------------------------------------------


"당장 나가앗!"

쫓겨나고 있었다.

화산파의 상우는, 도사답지 않게 성격이 화급하다. 보통 때도 그런데, 알고 지내던 사람이 둘이나 죽었다. 신경이 더 갈데 없이 날카로워진 상태인 거다.

다행히 매화 검법도 멧돼지 권법도 사용하지 않은 채, 그저 육체의 힘으로만 둘을 밀어 내보냈다. 차마 무공도 모르는 문사와 한쪽 팔 부근이 시원한 하류무사에게, 화산의 진수를 체험시킬 만큼 막되어먹지는 않은 모양이다.

- 쾅.

거세게 닫힌 방문 앞에는, 두 남자가 서있다. 사마철과 독고광이다.

"거 참. 성질 한 번 되게 급하신 도사님이시군요."

"나라면 더 심했을 거다."

한가롭게 말하는 사마철에게 독고광이 답한다.

"왜요?"

"범인 아니냐고 물었으니까. 그것도 들어가자마자 꺼낸 첫마디부터."

자기가 뭘 잘못했냐고 뻔뻔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마철에게, 독고광이 평소보다 길게 말한다. 여전히 억양도 일정하고 가라앉아 있지만, 화가 난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참 재미있는 장난감이나 놀이 방법을 찾은 듯 싶은, 그런 분위기다.

"그런데 너..."

"왜요? 독고 형?"

"독고... 형?"

어색한 듯 되묻는 독고광에게, 사마철이 천연덕스럽게 말을 잇는다.

"아무리 봐도 저보다는 연세가 많으신 듯 싶은데... 그렇다고 형님이라고 부르긴 직분상으로나 연배상으로나 뭐하니, 형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훗."

약간의 비음이 섞인 웃음이지만, 기분 나빠하는 표정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 더 마음에 들었나보다.

"하지만 형이라는 단어가 거슬리시다면... 독고 협이나 독고 아저씨라고..."

"그냥 형 하자."

그 즉시 끊어버린다.

협 까지는 괜찮았는데, 아저씨가 걸린다. 저대로 그냥 놓아두면, 숙부와 사백을 지나 노대까지도 나올지 모른다. 그러다가 주워 들은 동쪽 섬의 외래어까지 등장한다면, 오야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두목을 의미하는 오야붕도 조금은 껄끄럽지만, 여차하면 잘못 사용해 부친을 뜻하는 오야지라고 하면 인생 서러워진다. 독고광의 삶이 평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이 많은 호칭을 붙이는걸 좋아할 이유란 없다.

보면 볼수록 겪으면 겪을수록, 녀석에게는 새로운 재미가 있다. 어쩌면 그동안 독고광이, 너무 고립되어 심심하게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허나 이쁘고 귀엽다고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저대로 계속 가다가는, 누군가에게 한방에 날아 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잠깐 지내다 보내기에는 아깝다. 적어도 이 일, 난데없이 맡게 된 살인사건 수사의 보조가 끝날 때까지는, 제대로 버티게 해주고 싶다. 그것이 인생 선배로써의, 그리고 사마철을 인정한 그의 마음이다.

그래서 독고광은 입을 연다.

"너의 대화법에는 문제가 있다."

"어떤... 거요?"

틀린 것을 지적하니 경청하려는 자세를 보인다. 싹수가 있는 놈이다.

듣는 이가 자세를 잡으니, 말하는 자도 의욕이 생긴다. 그래서 방금 전 사마천의 행실에서 보고 느낀 단점을, 간략히 풀어 설명한다.

"누가 '당신 범인이지?'라고 말하면 기분 좋겠냐?"

"아니요."

말귀를 알아듣는 놈이다. 고개까지 도리도리하며, 자신의 느낀바를 올곧게 표현한다.

문사란 이게 좋다. 칼차고 다니는 무식한 자들하고 달리, 말하면 빨리 알아먹는다. 물론 보통의 문사들이란 꼬장꼬장과 깝깝함을 겸비해, 말은커녕 근처에도 가고싶지 않은 존재들이지만. 그래도 이 녀석은 다르다. 아주 좋다.

맘에 드는데다가 말도 통하니, 사마천은 좀 더 얘기를 해준다.

"바로 그거다. 넌 새파랗게 젊은 놈이다. 게다가 신입사원이니, 여러가지로 봐서 차이가 많이 난다."

독고광답지 않게 긴 얘기를 하고 있다. 물론 일반인에 비하자면 지나치게 간결한 문장들이지만, 그의 평소 생활로 보자면 엄청나게 많이 말하는 거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녀석을 만난 탓인지, 꽤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셈이다.

"너도 동네 꼬마가 와서, '당신 나쁜 사람이지?'하면 기분 안 좋겠지?"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이건 기본 상식이니까. 그래서 독고광은 말을 이어간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물으면 된다."

간만에 너무 말을 많이 해 어색한 탓인지, 잠시 쉰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얘기를 꺼낸다.

"'당신 범인이지?' 같은 얘기 꺼내지도 마라. 그건 좋지 않은 대화법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예. 이후에는 어떻게 묻는 것이 좋을까요?"

녀석은 귀까지 쫑긋 세운 듯 싶은 느낌이 든다. 경청하고 있는 거다.

독고광의 기분은 제법 좋아졌다. 자신은 특별히 배운 것 없이, 굴러다니며 몸으로 익힌 사람. 하지만 세상은 그런 능력을, 별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무림도 마찬가지다. 가문이나 문파가 좋지 않다면, 실제 가진 실력보다도 낮은 대접을 받기 마련이다. 게다가 우습게도 무사들은 스스로의 강함 보다, 오히려 유약한 문사들의 글줄을 부러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와중에 제법 우수한 성적(이라고 사마철에게서 들었다.)으로 입사한 문사 출신의 녀석이, 자신의 말을 귀기울여 들어준다. 좋아할 이유가 너무 많을 지경이다.

그래서 독고광은, 진솔하게 사마철에게 충고를 내린다.

"이제부터는 '실례지만 혹시 범인 아니십니까?'라고 물어라. 존대를 통해 상대의 기분을 존중해줘야 한다."

... 똑같은 놈들이다.

하지만 사마철에게는 제대로 먹힌 듯 입을 떡 벌리며 감탄하고, 독고광은 그를 보며 흐뭇해한다. 워낙에 냉랭한 체질이라 표정으로 티가 나지는 않지만.

그래서 다음에 방문한 종남파의 소요에게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예우를 갖추며 물었다.

"혹시... 범인 아니십니까?"

소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심지어 비꼬거나 조롱하는 대사도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채, 조용히 오른 손을 들어 문을 가리킨다. 손에 뭔가 일렁거리는 것이, 아마도 공력을 운용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독고광은 재빨리 사마철의 허리를 잡고 들어, 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뒤에서 나무가 터지는 소리가 났지만, 결코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뛰었다.

더 이상의 위험이 없음을 확인한 독고광은, 사마철을 내려놓고 말했다.

"미안하다. 틀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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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전음으로 죽다] 7. Ende gut, alles gut (3) <완결> +32 05.05.20 2,548 7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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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전음으로 죽다] 7. Ende gut, alles gut (1) +26 05.05.18 1,962 6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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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전음으로 죽다] 6. 이것이 정말로 모든 것의 끝인가? (2) +24 05.05.15 2,004 66 11쪽
26 [전음으로 죽다] 6. 이것이 정말로 모든 것의 끝인가? (1) +20 05.05.14 1,935 6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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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전음으로 죽다] 5.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은가? (4) +23 05.05.11 2,107 7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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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전음으로 죽다] 5.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은가? (1) +26 05.05.07 2,188 7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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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전음으로 죽다] 4.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2) +28 05.05.04 2,455 8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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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전음으로 죽다] 2. 세상의 이치란 어디에 있는가? (3) +21 05.04.24 3,186 95 8쪽
» [전음으로 죽다] 2. 세상의 이치란 어디에 있는가? (2) +30 05.04.22 3,566 90 11쪽
5 [전음으로 죽다] 2. 세상의 이치란 어디에 있는가? (1) +20 05.04.20 3,932 8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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