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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님의 서재입니다.

전음으로죽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mrkwang
작품등록일 :
2005.05.20 19:27
최근연재일 :
2005.05.20 19:27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94,370
추천수 :
2,715
글자수 :
158,711

작성
05.04.29 01:13
조회
2,598
추천
70
글자
9쪽

[전음으로 죽다] 3. 노인은 노인답고, 청년은 청년다운가? (2)

DUMMY

총관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냥 풀린 것도 아니고, 대단히 많이 상쾌해졌다.

남궁기는 간결하고 짧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내용 또한, 매우 긍정적인 것이었다.

'좋은 부하들을 두었소.' 그게 남궁기가 한 말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너무 뜬금 없어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진심 어린 그 말에, 총관의 화는 많이 풀렸다. 사실 제갈훈도 말이 많아서 짜증났을 뿐이지, 결국 둘을 칭찬하고 가지 않았던가.

전체를 만족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욕을 먹고 다니지는 않았던 거다. 어찌 보자면 이 정도 수준, 절반만 흔들어놓은 것은 고단수의 수법일수도 있다. 뭔가 깊은 뜻을 갖고 저랬을 수도 있는데, 이유를 듣기도 전에 미리 열낼 필요는 없다. 잘잘못을 따지더라도, 얘기를 듣고 나서 하자. 그렇게 총관의 생각이 바뀌었다.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궁기가 들고 온 천일취를 놓고 갔기 때문이다. 별다른 말은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를 보이며, 총관의 책상에 놓고 돌아갔다.

그 인간도 파악이 쉬운 성격이라, 겉과 속이 대략 비슷하다. 웃으면서 행동했다면, 정말로 기분 좋아서 그런 거다. 대략 부하들 들어오면 수고했다고, 같이 한잔씩들 하라고 놓고 간 것이리라.

물론 총관은 기다리지 않았다. 밀봉 먼저 뜯어서, 잔의 밑바닥에만 찰랑거리게 한 후 쭉 들이켰다. 꽉 채워 먹는 것은 바보짓이다. 귀한 만큼 양도 적은데다가, 과함은 부족함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팍 오른다. 독한 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끝은 없을 거다. 천일취가 비싼 이유는 거기에 있다. 독하지만 맛도 좋고, 다음날 아침에 편두통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첫 잔은 미리 뜯어 맛을 봤지만, 그래도 사람이 염치와 체면이라는 것이 있다. 사마철과 독고광에게 전달된 술이니, 그들도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애들 찾아오지 않을래? 같이 한 잔 해야지."

느긋하고도 한가로운 목소리로, 이사에게 말한다.

인간이란 단순하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열을 받았더라도, 별거 아닌 계기로 이렇게 풀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잔머리 굴리던 것도 다 잊고, 당당한 부하와 선임자로써 술자리도 같이 가지려는 경우도 가끔 생긴다. 흔하게 벌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이사는 방을 나간다.

총관이 발행한 면죄부를 머리에 품고.


---------------------------------------------------


그렇게 사마철과 독고광은, 자신들도 모르고 있던 역경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중요한 하나가 남아있었다.

바로 앞에 서있는, 손노대를 눕혀야 한다.

얼마나 정적이 흘렀을까.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 따위 잴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독고광의 목소리가 침묵의 벽을 허문다.

"좀 하네."

더 이상 말을 높이지 않는다. 강적, 그것도 시독을 익힌 자에게 올릴 경의 따위는 없다.

살인을 일삼는 악인이나 마두들도, 일단 죽은 시체는 훼손하지 않는다. 설령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철천지원수더라도, 목을 베고 나면 더 이상의 폭력은 가하지 않는다. 죽은 자의 육신은 경건히 다뤄져야 하고, 묻어주지는 않더라도 장난은 치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림에서 시독은, 익힌다는 자체만으로도 멸문을 당할만한 최고 악행 중 하나다. 이른바 밝은 세상의 문파들만 금기시하는 것도 아니고, 마교조차도 그 점에 있어서 만큼은 같았다. 사람이 넘어서는 안될 선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거다.

"너도 좀 하는 군."

깊고 낮은 목소리로 손 노대가 받는다. 특별한 의미는 없다.

둘은 여전히 대치상태에 들어가 있다. 그렇다고 정지된 상태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체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발끝만을 슬쩍 들어 조금씩 움직인다. 서로간의 거리를 잡기 위해서다. 그 정도가 워낙 작아, 이동하는 티가 거의 나지 않을 정도다.

적에게서는 멀고, 나에게서는 가깝게. 이것이 모든 싸움의 기본이다. 하지만 말로는 쉬운 그것이, 실전에서는 꽤 어렵다.

단거리 무기로는 먼 곳을 때리기가 어렵고, 그 반대도 정확히 성립한다. 검술을 쓰는 이라면 멀리서 활을 쏘는 인간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고, 창술을 펼치는 자라면 가까이 붙은 놈에게 휘두르기가 까다로울 것이다.

차라리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다. 거기에 응용과 변수가 붙으며 달라진다.

맨 손이었던 독고광은, 바로 앞의 근접전투만 가능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소매에서 꼬챙이를 뽑아낸 덕분에, 순간적으로 공격 범위가 늘어났다. 가느다란 형태로 보면 찌르기에만 집중할 듯 싶지만, 꼭 그런다는 보장은 없다. 뭔가 더 변칙적인 수를 숨겨놨을 것이고, 거기에 제대로 걸리면 골로 갈 거다.

손노대 또한 어려운 상대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봐서는, 손톱을 이용한 공격만 조심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놈은 오랜 세월동안 무공을 숨겨온 전력이 있으니, 싸울 때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거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허공을 격한 독공, 다시 말해 독이 실린 장풍은 쓰지 못하는 듯 싶다. 허나 독 암기라도 던질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기에, 그들은 탐색을 길게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영원일 수는 없었다.

- 턱.

손노대가 먼저 들어갔다. 아마도 나이가 많아, 참고 기다리는 인내의 지구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리라.

오른 손을 높이 들어, 대각선 아래로 할퀴며 들어간다.

동작이 크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는다면, 중독될 것이기 때문이다.

독고광은 슬쩍 뒤로 물러서며, 꼬챙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공격이라기보다는 견제용이다.

그러자 손노대는 왼쪽으로 깊게 발을 딛은 후, 독고광의 오른 쪽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머지 왼손을 아래에서 위로 제껴 올린다.

이건 제대로 된 공격이다. 손노대가 노린 독고광의 우측은, 옷의 소매만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신체적인 약점을 노린 것이다.

독고광은 왼 발을 축 삼아, 몸의 오른 쪽을 공격권에서 멀도록 회전해 나간다. 그러면서 왼 팔의 꼬챙이는 앞으로 길게 뻗어, 노리고 들어오는 손노대의 목을 향한다.

손노대는 올라가는 왼 손의 손톱으로 꼬챙이를 위로 밀어 제낌과 동시에, 역시 왼 발을 중심으로 돌며 오른 발로 차 들어간다.

독고광은 차오는 발을 맞받아치며 제압하려다, 오히려 뒤로 성큼 물러서 버린다.

어느새 손노대의 신발 앞에는, 가늘고 긴바늘이 나와있기 때문이다. 독이 묻어있을 가능성 매우 높다.

기세를 잡은 손노대는, 더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제는 손톱으로 긁는 것에다, 가끔 발로 한 번씩 차주며 주의를 흐트러트린다.

제아무리 무공의 고수라도, 상체와 하체를 모두 신경 쓰기는 쉽지 않다. 인간의 눈은 높은 꼭대기에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독고광은, 회피하며 물러설 수밖에 없다.

연무장 만큼이나 넓디넓은 지하지만, 어느새 물건들이 놓여있는 가장자리에 도달하게 되었다. 손노대가 일부러 몰았기 때문이다.

- 턱.

독고광의 허벅지가 탁자에 닿는다. 뒤는 막혔다.

오른 쪽에는 벽이 있다. 역시 갈 수 없다.

회심의 미소를 띤 손노대가 우측 발로 쳐올린다. 옆으로 피해 나감도 방지하기 위해, 왼손은 위에서 아래로 긁어내린다.

그리고 독고광은.

뒤로 누워버린다.

탁자가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다. 독고광의 상체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다. 다행히도 놓인 물건은 없다.

그렇다면 하체는?

뒤구르기 하는 힘으로, 다리를 올려 뻗는다.

- 퍽.

올라가는 우측 발로 찍어 내려오는 손목을 냅다 차버린다.

- 푹.

손노대의 우측 발에 붙은 바늘이 탁자 아래에 박힌다. 손목을 차인 아픔 때문에, 주춤해서 조금 늦었다. 탁자의 위로 뚫고 나왔지만, 이미 독고광은 거기에 없다.

독고광은 눕기 전에 왼 손에 들었던 꼬챙이를 버려 빈손을 만들었고, 다 구른 뒤 손을 짚어 물구나무를 섰다.

급해진 건 손노대다.

물구나무섰던 놈이 어느새, 양발로 손노대의 안면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탁자를 받치는 왼손은 거들뿐이다.

- 뚝.

발에 힘을 주어 박힌 바늘을 끊어내고 나서, 손노대는 뒤로 급하게 빠졌다.

- 탁.

독고광의 두 발이 땅을 짚는다. 아까 버린 꼬챙이까지 여유롭게 주워든다.

"좀 하네."

아까와 같은 얘기지만, 표현과 의미는 다르다.

입가에 생긴 잔주름은, 웃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손노대는 대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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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전음으로 죽다] 7. Ende gut, alles gut (2) +33 05.05.19 2,071 70 13쪽
30 [전음으로 죽다] 7. Ende gut, alles gut (1) +26 05.05.18 1,962 6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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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음으로 죽다] 2. 세상의 이치란 어디에 있는가? (2) +30 05.04.22 3,566 90 11쪽
5 [전음으로 죽다] 2. 세상의 이치란 어디에 있는가? (1) +20 05.04.20 3,932 87 12쪽
4 [전음으로 죽다] 1. 돌고 도는 것은, 사람인가 세상인가? (3) +30 05.04.20 4,989 10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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