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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 님의 서재입니다.

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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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
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최근연재일 :
2023.11.01 13:07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57,233
추천수 :
856
글자수 :
509,104

작성
23.07.12 07:15
조회
539
추천
8
글자
10쪽

제45화, 하늘이 무너져도

DUMMY

두성이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벽을 따라서 걸었다. 다행히 벽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폭이 한 자나 되어 위험하진 않았다.


얼마쯤 걸어가자 다시 작은 동굴이 나왔는데, 벽에 야명주가 박혀있어서 어둡지는 않았다.


열 걸음정도 걸어가자 제대로 된 석실이 나타났다. 울퉁불퉁한 돌을 깎아내 다듬었고, 돌 침상은 물론 돌 탁자와 의자 등 생활 집기가 있었다.


벽은 정교하게 파서 서가를 만들었고 한쪽에는 청자와 백자가 늘어서 있었다. 그 옆엔 자단목으로 만든 궤짝이 있었는데 열어보니 검이나 도 등등의 무기가 들어있었다.


두성이는 한가하게 무기를 살필 시간이 없었다. 궤짝을 뒤집어 무기들을 쏟아낸 후 궤짝을 등에 지고 천면노를 구하러 갔다.


홀로 남은 천면노는 그동안 온갖 나쁜 생각으로 마음이 산란했다. 어린애가 보물을 보면 정신이 팔려 자신을 잊어버릴 것 같았다.


보통 엄청난 재물을 앞에 두면 눈이 뒤집힌다. 친구도 형제도 방해물이라며 없애버리고 혼자 독차지하는 게 세상인심이었다.


창에 찔린 다리가 점점 아파오는데 희망을 잃은 마음은 점점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목숨이 끝장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인생이 허무해져 지난날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때 두성이가 나타나 궤짝을 살그머니 내려놓자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두성이도 가볍게 내리뛰어 바닥으로 내려왔다. 다행이 궤짝이 워낙 단단해 부셔지지는 않았다.


궤짝을 벽에 기대놓고 피가 흥건한 천면노의 다리를 창에서 빼내고 옷을 찢어 잘 싸맸다. 그리고 천면노를 부축해 궤짝 위로 올라가게 했다.


두성이도 궤짝 위로 올라와 천면노의 어깨를 밟고 위로 올라갔다. 숨을 고른 후, 천면노의 손을 잡고 있는 힘을 다해 위로 끌어올렸다.


또 한 번 죽음에서 살아난 천면노는 두성이의 어깨를 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처럼 올곧고 심성이 착한 아이를 의심하였으니,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를 의심한 것이다.


마음이 순수한 두성이를 의심한 죄책감으로 자신을 채찍질하자 마음속으로부터 참회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성이는 천면노를 부축하여 석실로 돌아왔다. 두성이가 창에 찔린 다리를 물로 씻고 다시 잘 싸매줬지만, 여전히 쑤시고 아파 천면노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앉아있었다.


석실의 벽을 따라 늘어선 항아리마다 쪽지가 붙어있었다. 읽어보던 두성이가 밀봉된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고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할아버지, 이 약초액은 상처를 치료하고 근육을 튼튼하게 한다고 써 있어요.”


두성이가 차고 다니던 작은 조롱박에 약초액을 떠와서 천면노에게 내밀었다. 천면노는 우선 냄새부터 맡아보았다.


약간 시큼한 냄새와 쌉싸름한 냄새가 풍겼다. 천면노는 반신반의하면서 액을 삼켰다. 두성이는 약초액을 천면노의 상처에 쏟아붓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일각이 지나자 상처주위가 점점 가려워지더니 몸의 열이 상처주변으로 몰리며 욱신거리고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참고 있으려니 상처에 열이 식으면서 점점 시원해졌다. 살며시 눈을 떠보니 상처는 어느새 아물었고 아픈 데가 없었다.


천면노는 훌쩍 일어나 걸어봤다. 상처가 완전히 나은 것이다.


“신투의 비동이라고 해서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가 쌓여 있을 줄 알았는데 전연 눈에 띠지 않네.”


주위를 둘러보던 천면노가 볼멘소리를 하자, 두성이가 서가로 뛰어갔다.


“전 보물보다 책이 좋아요.”


책에는 별 관심이 없는 천면노는 보물을 숨겨둔 또 다른 석실이 있을 거라 믿고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돌아다녔다.


두성이는 서가에서 ‘암영무흔보(暗影無痕步)’라고 쓰인 고서를 꺼냈다.


전설적인 의적, 빈손으론 가지 않는다는 공수불거(空手不去) 사마통이 직접 쓴 경공법이 적혀있었다.


경공법을 수련하는 구절 옆에 친절하게도 발자국을 그린 도해가 그려져 있었다. 우선 전체적으로 읽어보고 다시 차분히 보기 시작했다.


‘경공법은 우선 몸부터 가볍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금방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우선 발을 디디는 위치와 어느 곳에서 힘을 주고 빼야하는 지를 익혀야한다.’


두성이가 책에 열중하는 사이에 갑자기 우르르릉! 하며 천장에서 돌이 내려와 석실의 입구를 막아버렸다.


두성이가 놀래서 쳐다보니 한쪽에 서있던 천면노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서있었다.


“아 아냐! 내가 그런 거 아니다. 호기심에 이곳을 눌렀더니....”


두성이가 뛰어가서 보니 벽에 네모난 작은 구멍이 생겼다. 그곳의 네모난 돌을 누르자 입구가 막한 것이다.


두성이가 손가락으로 구멍 속의 돌을 눌렀지만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무안해서 얼굴이 벌게진 천면노가 다시 지팡이 끝으로 세게 눌렀으나 그래도 요지부동. 유일한 출구가 막혔으니 이곳을 빠져나가긴 틀려먹었다.


늙어죽을 때까지 이곳에 갇혀있어야 된다니..., 두성이와 천면노의 안색에 먹구름이 끼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던데,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두성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다시 책에 열중했다. 침착한 두성이를 보니 천면노는 나이를 헛먹은 것 같아 허탈하게 웃었다.


암영무흔보는 변화가 무쌍해서 발을 순서대로 디디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도 매우 힘이 들었다. 이마에 땀이 맺혔고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따끈한 식사를 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두성이는 망태에서 마지막 남은 육포와 건량을 꺼내 천면노와 같이 먹었다.


목이 메어 물주머니를 꺼냈더니 천면노가 이미 다 마셔서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천면노는 딴 청을 하며 육포를 씹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두성이는 항아리에 붙은 쪽지를 보며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약숫물을 찾아보았다.


항아리 속에는 소림의 벽곡단, 숙성시킨 신령영지초, 산삼과 동자삼을 달인 물, 황산의 아침이슬로 달인 천년하수오, 갖은 약초를 배합해 빚은 구명환(救命丸) 등이 담겨있었다.


벽곡단은 어느 문파나 만들어 사용했지만, 소림의 벽곡단은 독보적인 효능으로 무림에서 최고라고 알려져 있었다.


아무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아마도 사마통이 훔쳐온 건 아닐까? 하고 두성이는 생각했다.


지기(地氣)를 흡수하여 천 년을 자라게 되면 어린아이 모양과 흡사한 형태를 이룬다는 천년삼이나 동자삼, 그에 버금가는 천년하수오가 두 사람의 눈앞에 있었다.


천년하수오도 일반인에게는 수명을 연장시키는 효력이 있고, 무공을 익히는 사람에게는 단시일 내에 공력을 높여주는 효능을 지녔다고 한다.


천면노는 금은보화에만 관심이 있어 영약이든 항아리엔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러나 꿈도 꾸지 못 할 만고의 영약이 눈앞에 있자 입이 찢어질 대로 찢어져 귀에 걸려있었다.


두성이는 우선 신령영지초의 숙성 액을 조롱박으로 떠서 맛을 보았다. 빛깔은 연한 대춧빛이었고 좀 시큼했지만, 청량하며 은은한 향이 났다.


그러나 그 맛이 깊고 진해서 우선 천면노에게 조롱박을 건네 드렸다. 천면노는 끼뿐 얼굴로 받아 마시고 입을 쓱 훔쳤다.


“아! 맛이 깊고 진득해서 입에 찰싹 달라붙는구나.”

“소림의 벽곡단도 있으니 굶어죽을 일은 없겠죠?”

“근데 네가 열심히 보는 책은 뭐냐?”

“사마통 대협이 손수 지은 암영무흔보라는 경신법 책이에요.”

“무공비급이 많이 있는데 할아버지도 보세요.”

“내가 이 나이에 새로운 걸 배운다고 머릿속에 들어가겠니? 난 욕심 없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천면노는 책이 있는 서가로 갔다. 두성이는 다시 책속에 빠져 들었다.


해와 달을 구경할 수 없는 동굴 속이라 시간이 흘러감을 감각으로 느낄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천면노는 우선 탈출구를 찾으려고 이곳저곳을 눌러보며 부지런히 움직였으나 단서하나 찾지 못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서 서가에서 아무 책이나 한 권 빼들고 돌 의자에 앉았다.


책의 내용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신령한 동물(神獸)에 대한 이야기였다.


상상속의 동물이라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물론, 사람의 얼굴을 한 인두수(人頭獸), 하늘을 나는 물고기 비어(飛魚)와 천마(天馬),


그리고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고양이 묵묘(墨猫) 등등 괴상한 동물이 열거되어 흥미를 자아냈다.


마치 어릴 때로 돌아가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천면노는 기분이 좋아져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좌우로 흔들거리며 몸통을 비틀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엉덩이가 돌아가며 돌 의자를 흔들었는데 돌 의자가 엉덩이를 따라 좌우로 움직였다.


무거운 돌 의자가 조금씩 좌우로 돌자 천면노가 두 손으로 잡고 힘을 주어 돌렸다. 돌 의자는 계속 왼쪽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서가가 있는 쪽의 귀퉁이가 스르르 움직이더니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드러났다. 천면노가 신이 나서 외쳤다.


“찾았다, 찾았어!”

“앗! 정말이다.”


두 사람은 만사 제쳐놓고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방 일 장정도의 작은 석실이었는데 안에는 댕그라니 비단으로 만든 보료와 차탁 하나만 있었다.


차탁 위에는 향로와 고급 차도구(茶道具)와 멋진 보석상자가 놓여있었다.


반색을 한 천면노가 대뜸 보석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영롱한 빛의 메추리알만한 백진주와 흑진주가 가득했고, 밀랍으로 단단히 봉한 환약 일곱 개가 들어있었는데 그중엔 자두만큼 큰 환약이 하나 있었다.


두성이가 보석상자 밑으로 살짝 보이는 종이를 꺼내 읽었다.


“나는 사마통이라 한다. 내 나이 이제 백 세, 그동안 힘없고 굶주리는 백성을 위해 노력했지만 세상은 달라지는 게 없었다. 난 이제 모든 걸 내려놓고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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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제50화, 일수불퇴 진용추 대협 23.07.19 515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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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제48화, 왕파리 23.07.17 521 9 10쪽
47 제47화, 검은 고양이 묵묘 23.07.15 515 10 10쪽
46 제46화, 못난 사부 23.07.14 531 11 10쪽
» 제45화, 하늘이 무너져도 23.07.12 540 8 10쪽
44 제44화, 길이 나오면 돌아가라 23.07.10 550 8 10쪽
43 제43화, 의적 공수불거(空手不去) 사마통 23.07.07 576 10 10쪽
42 제42화, 마침내 기연 奇緣 23.07.06 581 11 10쪽
41 제41화, 산적두목 홍미미 23.07.05 582 7 10쪽
40 제40화, 어마어마한 대물 大物 23.07.03 587 9 10쪽
39 제39화, 첫 무공수련 武功修鍊 23.07.01 581 8 10쪽
38 제38화, 각자의 길 (各自圖生 각자도생) 23.06.30 548 8 10쪽
37 제37화, 거지 신세를 면하다. (금선탈각 金蟬脫殼) 23.06.28 561 7 10쪽
36 제36화, 실마리 +1 23.06.27 574 9 10쪽
35 제35화, 누란지위 累卵之危 +1 23.06.26 583 8 10쪽
34 제34화, 창룡검법 蒼龍劍法 23.06.23 602 9 10쪽
33 제33화, 임설매와의 조우 23.06.21 601 10 10쪽
32 제32화, 호가호위 狐假虎威 23.06.19 582 10 10쪽
31 제31화, 애들을 찾아서 23.06.18 601 9 10쪽
30 제30화, 귀환 23.06.18 612 9 10쪽
29 제29화, 모성애 23.06.18 593 8 10쪽
28 제28화, 충 忠, 의 義, 신 信 23.06.18 603 8 10쪽
27 제27화, 처절한 절규 23.06.18 628 7 10쪽
26 제26화, 빗속의 마차 +2 23.06.18 655 10 10쪽
25 제25화, 방황 23.06.17 675 10 10쪽
24 제24화, 억장이 무너지다 23.06.17 688 9 10쪽
23 제23화, 추적자 23.06.16 707 10 9쪽
22 제22화, 두 아이의 운명 23.06.16 743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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