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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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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
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최근연재일 :
2023.11.01 13:07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57,232
추천수 :
856
글자수 :
509,104

작성
23.07.10 09:37
조회
549
추천
8
글자
10쪽

제44화, 길이 나오면 돌아가라

DUMMY

그러나 도둑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황궁의 시위나 포쾌들은 애만 태울 뿐, 윗사람이 내린 가혹한 처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당대 제일의 신투 사마통은 환갑이 지나자 금분세수하고 함께 의적활동을 하던 의동생 귀영자(鬼影者) 맹유성에게 비동의 지도를 넘겨주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후, 사파의 우두머리 천살마군 옥수창의 공격을 받아 맹유성이 죽자 의적들도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췄다.


비동의 지도가 천살마군의 손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무림은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쳤다.


정파나 사파나 모두 눈을 벌겋게 뜨고 지도의 행방을 좇았다.


수백 명의 무림인들이 욕심에 눈이 멀어 황천길로 들어선 후에야 소동은 잠잠해졌지만, 지도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그 후, 몇 백 년이 지나서 옛날이야기로만 회자되던 비동의 전설이 천면노 요오성의 눈앞에 정말로 우연히 나타난 것이다.


이 개월 전, 평소 가까이 지내던 사파의 거물 지옥검(地獄劍) 뇌웅이 피투성이가 되어 요오성의 집에 찾아왔다.


온몸에 난도질을 당해 목숨이 경각에 달린 뇌웅이 죽기 전에 품속에서 꺼낸 것이 바로 비동의 지도였다.


요오성이 지도를 따라 이곳 비동에 들어올 때, 뇌웅의 뒤를 추적해온 패거리들이 들이닥쳤다. 사파에서도 명성이 쟁쟁한 놈들이 여섯 명이나 되었다.


요오성은 혼신의 힘을 다해 그들과 싸워 모두 죽였으나, 자신도 배와 등에 깊은 상처를 입어 한동안 꼼짝 못하고 치료에만 전념했다.


다행히도 상처는 아물었으나 준비해온 음식은 이미 바닥이 났고 먹을 물이 없어 기진맥진하여 죽을 날만 기다릴 때 두성이를 만난 것이다.


*******


설명을 끝낸 천면노는 근심스런 얼굴로 두성이를 쳐다봤다.


“이곳은 천연동굴로 길이 사방으로 뚫려있어서 매우 복잡한 구조란다. 그래서 그동안 보물창고를 찾지 못했지. 보물보다도 우선 식수를 찾는 게 급선무야.”

“그럼 빨리 찾으러 가요.”

“그래, 근데 그 지팡이를 좀 빌려주렴.”


두성이가 지팡이를 건네주자 천면노는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일어섰다. 두성이는 천면노를 부축하며 천천히 앞을 향했다. 천면노는 절룩이며 힘겹게 걸었다.


앞에 갈림길이 나오자 천면노는 왼쪽을 가리켰다. 왼쪽 굴로 들어가자 미세하나마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이 이는 걸보니 공기는 통하고 있나 봐요. 그렇다면 어쩌면 물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어쩌면....”


한동안 걸어가자 바닥이 습기를 머금어 미끌거렸다. 천면노가 눈빛을 빛내며 두성이를 힐끗 보았다.


“난 오른쪽에서 왔는데 그곳은 매우 건조했어, 여긴 뭔가 좀 다르구나. 기분 탓인지 물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두성이가 앞으로 뛰어가보니 동굴의 벽은 구멍이 뚫린 울퉁불퉁한 바위로 이끼가 잔뜩 끼어있었다.


두성이가 이끼를 긁어모아 손으로 쥐어짜자 간신히 한 방울의 물을 얻을 수 있었다.


두성이는 다시 벽에 붙은 이끼를 긁어모아 입속에 넣고 씹었다. 이상한 냄새도 나지 않았고 입안이 촉촉해졌다.


자신은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두성이가 생각해내자 천면노는 기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두성이를 쳐다봤다. 이제 제일 중요한 식수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두성이가 이끼를 쥐어짜 물통에 받으며 물었다.


“제가 가진 건량은 얼마 되지 않는데 다 떨어지면 어쩌지요?”

“너처럼 이끼를 씹어 먹으면 되겠지? 그렇지 않으면 고기를 먹는 방법도 있단다.”

“짐승도 없는데 어떻게?”

“독사가 드글드글 하지 않던? 그걸 잡아먹어야지.”

“네에? 독이 있는 걸 어떻게?”

“독만 빼내면 아주 맛있단다.”


물통에 물이 어느 정도 차자 두 사람은 앞을 향해 걸었다. 점점 어두워져 두성이는 다시 화섭자에 불을 붙였다.


앞에는 세 갈래의 길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면노는 다시 왼쪽 길을 가리켰는데 두성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할아버지, 혹시 지도를 보여주실 수 있어요?”

“길만 표시되어있지 특별한 점은 없단다.”


천면노는 품에서 양피지로 된 지도를 꺼내 두성이에게 주었다. 지도에는 두성이가 들어온 길은 표시가 없었고 천면노가 들어온 곳은 입구라고 적혀있었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길을 자세히 보니 지금 있는 위치는 중간쯤 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밑에 작은 글씨로 ‘막히면 눈을 뚫고 가고, 길이 나오면 돌아가라.“라고 적혀있었다.


“할아버지 이게 무슨 뜻인가요?”

“아무래도 누가 심심해서 지도에 장난질을 한 모양이다.


막히면 눈을 뚫고 가라니, 눈을 뚫으면 장님이 되라는 말이잖아? 장님이 돼야 길이 보인다는 말인가? 장난 한번 고약하군!”


“제 생각에는 뭔가 오묘한 뜻이 있는 것 같아요.”

“오묘하다고? 글쎄다, 난 모르겠는걸.”


그렇게 얘기하면서 걷다보니 동굴이 막혀 더는 갈수가 없었다. 그러자 천면노는 쩔룩이며 오던 길로 돌아갔다.


“막히면 돌아가야지.”


그런데 뒤돌아보니 두성이는 막다른 곳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뭐하냐? 거기서 한가하게 면벽수행이라도 할 생각이냐?”

“먼저 가세요, 전 생각 좀 해보구요.”

“알았다, 고집이 센 놈이군..., 먼저 가마.”


두성이는 막힌 벽 앞에서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며 떠날 생각을 안했다.


갑자기 커다란 돌멩이를 집어 들더니 벽을 콩콩 치고,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묘한 울림이 들려왔다.


“할아버지, 이리 와보세요!”


두성이가 큰 소리로 부르자 천면노가 쩔룩이며 힘겹게 다가왔다.


“뭘 발견한 거냐? 뭔데?”

“이 벽 뒤론 비어있는 것 같아요.”


두성이가 돌멩이로 벽을 두들기자 과연 울림이 있는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천면노가 그동안 먹지를 못해 공력이 전만 같지 않았지만 미세한 소리를 듣는 것은 두성이가 따라오지 못했다.


뒤가 꽉 막혀있는 벽을 때릴 때 나는 둔탁한 소리가 아니라 공명으로 울리는 소리였다. 이제 자신이 나설 때였다.


천면노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기마지세로 서서 온 힘을 다해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주위에서 바람이 모여들며 손에서 뻗어나간 세찬 장풍이 마주하는 벽을 때렸다.


“꾸왕!”


벽을 때린 바람이 반탄력으로 튕겨 나오며 두성이와 천면노를 휘감았다. 두성이는 바람에 밀려 뒤로 나뒹굴었고, 천면노의 옷자락이 마구 펄럭였다.


그러나 벽은 요지부동 어떤 변화도 없었다. 일어나서 옷을 툭툭 털던 두성이가 갑자기 눈빛을 빛냈다.


두성이가 망태에서 대나무 칼을 꺼내 벽에 잔뜩 붙은 이끼를 걷어내어 망태에 담기 시작했다. 천면노는 두성이의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한 차례의 음식을 먹을 만한 시간인 일식경(一食頃)이 지나자 두성이는 전면 벽에 붙은 이끼를 거의 다 걷어내고 손으로 쥐어짜 물주머니에 물을 모았다.


두성이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이끼를 걷어낸 벽을 응시했다.


천면노는 두성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물도 조금 얻었겠다, 얼른 다른 길로 가보자.”

“할아버지, 저거 보이세요?”

“뭐 말이냐?”


이끼를 걷어낸 벽 가운데 뭔가 희미하지만 어룽져 나타난 무늬 같은 게 보였다. 그렇지만 그게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머리를 삐딱하게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며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나 상상력이 부족한 천면노는 머릿속이 엉클어져 결국 포기하고 힘이 드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두성이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몇 발짝 뒤로 물러나서 보더니 드디어 그 희미한 무늬가 사람의 눈 모양이라고 확신했다.


벽 가운데 커다란 눈동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막히면 눈을 뚫고 가고, 길이 나오면 돌아가라.’라고 했지?)


두성이는 벽 앞에 기마자세를 하고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고 지팡이를 들었다. 일 년 전에도 돌멩이를 맨손으로 깨부순 적이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면 못할 일이 없다! 두성이는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면서 소릴 질렀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精神一到 何事不成)”


대나무 지팡이의 끝이 정확하게 눈동자를 찔렀다.


지팡이가 눈동자를 뚫고 단단한 벽속으로 깊이 박히자 지팡이를 중심으로 벽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으지지직!”


균열이 퍼져나가자 순식간에 벽이 무너져 내려 작은 문 크기의 공간이 드러났다. 두성이의 행동이 못마땅해서 입을 씰룩이던 천면노가 놀란 눈으로 벌떡 일어섰다.


안쪽 공간에서 환한 빛이 흘러나와 어두운 동굴을 밝혔다. 천면노는 바닥에 떨어진 지팡이를 짚고 안쪽 공간을 향해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두성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할아버지, 무작정 들어가시면 안돼요!”

“뭐가 두려워서?”

“길이 나오면 돌아가야 해요!”

“너나 돌아가라!”


눈앞에 보물이 있을 텐데 돌아가라니, 천면노는 두성이를 비웃으며 어디서 힘이 났는지 날쌔게 안으로 몸을 날렸다.


“아아악!”


천면노의 느닷없는 비명에 두성이는 놀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몰랐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발밑은 엷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안개 속에서 천면노의 신음소리가 들려와 두성이는 구부리고 앉아 안개 속으로 얼굴을 드밀었다.


일 장 아래에 천면노가 다리를 창에 찔려 피를 흘리며 앉아있었다.


밑에는 온통 뾰족한 창이 튀어나와 위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겨냥하고 있었다. 두성이는 이제야 ‘길이 나오면 돌아가라’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두성이가 일 장이나 되는 곳을 내려가 천면노를 데리고 올라올 방법이 없었다.


“할아버지, 조금만 참으세요. 도구를 찾아서 구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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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제46화, 못난 사부 23.07.14 531 11 10쪽
45 제45화, 하늘이 무너져도 23.07.12 539 8 10쪽
» 제44화, 길이 나오면 돌아가라 23.07.10 550 8 10쪽
43 제43화, 의적 공수불거(空手不去) 사마통 23.07.07 576 10 10쪽
42 제42화, 마침내 기연 奇緣 23.07.06 581 11 10쪽
41 제41화, 산적두목 홍미미 23.07.05 582 7 10쪽
40 제40화, 어마어마한 대물 大物 23.07.03 587 9 10쪽
39 제39화, 첫 무공수련 武功修鍊 23.07.01 581 8 10쪽
38 제38화, 각자의 길 (各自圖生 각자도생) 23.06.30 548 8 10쪽
37 제37화, 거지 신세를 면하다. (금선탈각 金蟬脫殼) 23.06.28 561 7 10쪽
36 제36화, 실마리 +1 23.06.27 574 9 10쪽
35 제35화, 누란지위 累卵之危 +1 23.06.26 583 8 10쪽
34 제34화, 창룡검법 蒼龍劍法 23.06.23 602 9 10쪽
33 제33화, 임설매와의 조우 23.06.21 601 10 10쪽
32 제32화, 호가호위 狐假虎威 23.06.19 582 10 10쪽
31 제31화, 애들을 찾아서 23.06.18 601 9 10쪽
30 제30화, 귀환 23.06.18 612 9 10쪽
29 제29화, 모성애 23.06.18 593 8 10쪽
28 제28화, 충 忠, 의 義, 신 信 23.06.18 603 8 10쪽
27 제27화, 처절한 절규 23.06.18 628 7 10쪽
26 제26화, 빗속의 마차 +2 23.06.18 655 10 10쪽
25 제25화, 방황 23.06.17 675 10 10쪽
24 제24화, 억장이 무너지다 23.06.17 688 9 10쪽
23 제23화, 추적자 23.06.16 707 10 9쪽
22 제22화, 두 아이의 운명 23.06.16 743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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