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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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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
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최근연재일 :
2023.11.01 13:07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57,213
추천수 :
856
글자수 :
509,104

작성
23.09.13 19:00
조회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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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1쪽

제83화, 팔방풍우(八方風雨) 진정일

DUMMY

언제 나타났는지 기척도 없이 서있는 두 괴한이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흰옷을 입은 사람은 얼굴이 백짓장처럼 희었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얼굴이 숯처럼 검었다.


그들은 둘 다 비쩍 마른 모습으로 빨랫줄에 걸린 옷처럼 흐느적거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걸어왔다.


두성이가 경계심을 갖고 살펴보니 그들은 천천히 움직였는데도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두 발은 반 자 가까이 지면에서 떠 있었다. 최고가 아니라 극상(極上)의 경공을 구사하고 있었다.


아니 이 깊고 깊은 동굴 속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지극한 상승무공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이들 외에 또 얼마나 있는지···, 두성이는 갑자기 두려움이 앞섰다.


두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 기척도 감지 못했으니 오늘 일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잔뜩 경계하며 서 있었다.


“글방샌님처럼 곱상하게 생긴 놈이 상승의 무공을 지니고 이곳에 온 걸 보면 결코 좋은 목적은 아닐 거야.”

“사십 년 만에 바깥세상의 무공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두 괴한은 두성이와 일행들을 둘러보며 서로 번갈아 말을 했다. 그러자 난처해진 노인이 사정했다.


“백무정(白無情)과 흑무정(黑無情), 내가 이미 보내준다고 했으니 내 체면을 세워주게.”

“자넨 언제 우리한테 물어본 적이 있는가?

자네 체면을 봐서 어린놈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겠네,

자네가 우리한테 빚을 진 거네. 어흠!”


흑무정의 말이 끝나자 이번엔 백무정이 거만하게 나섰다.


“너의 두 놈 중에 하나라도 우릴 이긴다면 군말 않고 통과시켜 주겠다.

목숨은 살려준다고 했지만 손발이 떨어져나가도 원망은 하지 마라.”


백무정과 흑무정은 사십여 전에 이미 무림 십대 고수에 드는 사악한 인물로 강호에서 활동하는 자들은 이들 이름만 들어도 도망치기 바빴다고 한다.


백무정은 백무상(白無常)이라고도 한다. 백무상은 도교의 호법신으로 사람이 죽으면 혼(魂)을 인도하는 저승사자로 알려졌다. 세속에서는 그를 존칭하여 ‘칠야(七爺)’라고 부른다.


백무정 호필사는 덩치가 큰 마동탁이 맘에 들었는지 그를 향해 다가섰다.


‘팔야(八爺)’라고도 부르는 흑무상(黑無常), 흑무정 탁유명은 아주 오만한 태도로 두성이를 힐끗 쳐다보며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두 손 사이에 검은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공처럼 둥글게 뭉치기 시작했다.


두성이는 뭔가 불길한 예감에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빼어들었다.


흑무정은 두성이가 검을 빼어들어도 전연 동요하지 않고 내력을 손에 모으더니 공중을 향해 번쩍 쳐들었다.


두 손 사이에 모여 압축되어있던 검은 기운도 손을 따라 머리위로 올라가더니 흑무정의 기합소리에 사방으로 쪼개지며 화살로 변해서 두성이를 노리고 떠 있었다.


검은 화살의 숫자는 어림잡아 이십여 개.


두성이도 내력을 모아 검을 휘두르자 영롱한 기운이 두성이를 둘러싸고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산의 정기를 흡수한 이후 그 빛이 더욱 영롱해졌다.


노인은 물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두성이가 처음으로 시전하는 호신강기를 보고 놀란 눈으로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일촉즉발의 순간, 두성이가 몸을 날리자마자 흑무정이 기합 소리를 질렀다. 공중에 떠 있던 검은 화살이 일시에 두성이를 향해 쇄도했다.


소리도 없이 빛살처럼 날아가는 검은 화살은 두성이의 전신 요혈을 노리고 공간을 파고들었다.


두성이가 검을 재빠르게 휘둘러 화살을 퉁겨내었지만, 미처 막아내지 못한 화살이 영롱한 빛무리에 부딪치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신만만했던 흑무정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지는 가운데 두성이는 검을 뻗어 흑무정의 아랫배를 향해 곧장 찔러 넣었다.


그러나 흑무정은 최상의 고수답게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결코 당황하지 않았다.


질풍 같은 속도로 일 장 옆으로 피하며 검의 공격권에서 벗어나자마자, 즉각 반격으로 나와 산을 쪼개고 강을 갈라놓을 듯 어마어마한 기세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흑무정의 긴 손톱은 다섯 줄기의 날카로운 창끝이 되어 눈앞으로 다가들더니 갑자기 뱀의 혓바닥처럼 구부러지며 가슴팍을 노리고 비스듬히 찔러들었다.


두성이의 예리한 검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과 목, 그리고 옆구리를 향해 마구 휘저으며 난도질하려는지 폭풍공격을 퍼부었다.


그 쾌속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두성이는 거의 숨 한 모금 들이켤 여유조차 없었다.


두성이가 휘두르는 검이 지나가는 순간,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날카롭고 흉맹한 손톱의 기세에 두성이의 옷자락이 찢겨나갔다.


그나마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하는 통에 심한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태였다.


“이야앗!”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반격으로 나간 두성이의 군자검 끝에서 한줄기 검기가 뻗치며 칼 빛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날카로운 검기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순간적인 변화에 화들짝 놀란 흑무정이 반사적으로 뒤로 몸을 뺐다. 그러나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공격할 틈을 주지 않는 두성이.


두성이의 검은 흑무정의 가슴을 겨누고 한 치 앞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지남철처럼 붙어 흑무정을 옭아매었다.


두성이를 떼어낼 수 없는 흑무정은 어린애처럼 허둥대기 시작했다.


한편, 백무정은 마동탁을 맞아 여유롭게 싸우고 있었다.


유유히 창공을 날다가 순간적으로 내리꽂히며 공격하는 매처럼, 빠른 경신법으로 마동탁의 주위를 흐트러뜨렸다.


그러나 앞서 노인과의 대결에서 혼이 난 마동탁은 백무정이 눈앞에 나타나자마자 재빨리 몸을 한 바퀴 돌리며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림자처럼 마동탁의 등 뒤로 나타난 백무정은 어깨를 맞을 뻔하자 공격 방법을 바꿨다.


백무정의 절기는 양손으로 날리는, 하늘에 돈이 가득하다는 만천전우(滿天錢雨)라는 암기술이다.


여기서의 돈(錢)은 백무상답게 무덤 앞에서 태우는 망자의 노잣돈을 말한다.


손으로 잇달아 쏘아내는 지전의 위력에 웬만한 돌무더기는 쉽게 부서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백무정이 양손을 쳐들자 두 줄기의 지전이 꼬리를 물고 튀어나와 빳빳한 강판처럼 마동탁의 팔다리를 향해 사정없이 들이닥쳤다.


마동탁이 쇠방망이를 휘두르자 강판처럼 빳빳한 지전들은 옆으로 튕겨나갔다가 다시 몰려들었다. 그야말로 마동탁 주위의 하늘은 돈으로 가득했다.


어디 한군데라도 맞으면 부러지거나 잘려나갈 만큼 위력적이었고 위협적이었다.


마동탁은 쇠방망이를 백무상의 가슴을 향해 힘껏 던지고, 큰 등치에 어울리지 않게 땅으로 구르면서 백무상 앞에까지 다가갔다.


쇠방망이를 잡으면 공격의 거리가 길고 넓어질 뿐이지 적에게 주는 타격은 주먹의 힘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근접전에서는 오히려 불편하기도 했다.


땅바닥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주먹을 날리는 기세는 매우 흉험하여 백무정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 주먹을 휘두르며 연달아 발길질하는 마동탁의 공세에 백무정은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지전을 날렸다.


그러나 상처를 무릅쓰고 공격을 몸으로 받으며 코앞까지 다가선 마동탁은 백무정의 양손을 움켜쥐고 허리를 틀면서 허공으로 빙빙 돌렸다.


산도 들어 옮긴다는 타고난 신력에 백무정은 꼼짝달싹 못하고 허공에서 옷자락을 나부끼며 마동탁의 손아귀에 몸을 맡길 수밖에.


만약 마동탁이 맘먹고 땅바닥에 패대기를 친다면 꼼작 없이 온몸이 터지며 곤죽이 될 것이다. 보다 못한 노인이 큰 소리를 질렀다.


“모두 손을 멈추시오!”


노인의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호통소리는 사람들의 고막을 찢듯이 매우 우렁찼고 예리했다. 마치 사자후처럼···.


백무정과 흑무정은 모두 비 맞은 장닭 같이 풀이 죽어 거만하고 오만하던 품새는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두성이와 마동탁은 조금도 우쭐대지 않고 가만히 노인을 지켜볼 뿐이었다. 노인은 만면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두성이와 마동탁을 향해 걸어왔다.


“파국으로 몰고 가지 않은 두 분께 감사드리오. 이제 지하통로를 통과해도 괜찮습니다.”


“의원이신 제 할아버지를 납치한 독수방 패거리들을 찾아온 것인데 노인께서 혹시 그런 자를 보셨다면 사실대로 일러주십시오.”


“독수방이라···, 그럼 얼마 전에 와서 잔뜩 허풍을 늘어놓다가 탈혼수 무염장에게 된통 혼이 나서 도망친 자들을 말하는 건가? 이봐, 백무정! 그자 이름이···? ”


노인은 뒤를 돌아보며 말하다 말을 잇지 못했다. 그곳에 있을 줄 알았던 흑, 백무정이 보이지 않았다.


체면을 잔뜩 구겨 불편했는지 올 때처럼 소리 없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노인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가까이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두성이와 마동탁이 노인 맞은편에 앉자 탁일문이 차를 끓일 준비를 했다.


차의 향기를 음미하고 한입 마신 노인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차로군···, 얼마 만에 마셔보는지도 잊어먹었어. 빛깔과 향기가 뛰어난 것을 보니 벽라춘이군.”


노인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옛 일을 회상하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곳에만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걸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뭐 굳이 알고 싶지는 않지만.

그러나 이왕 말이 나왔으니 독수방이란 패거리들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차분하게 말해보게.”


두성이는 독수방이 온갖 희귀한 독물을 채취해 사람들을 죽이고, 요즘엔 아편을 만들어 사람들의 정신을 해치고 있다는 것을 요약해서 말했다.


“해룡방이란 거대한 조직이 있는데 사파의 내로라하는 거물들을 끌어드리고,

은거했던 마두들을 영입하여 세를 불리며 악행을 일삼고 있습니다.

게다가 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독수방을 이용해 뭔가 큰일을 벌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못하면 무림뿐만이 아니고 양민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시끄러워질 우려가 있군. 서둘러 싹을 잘라야 하네.”

“좋은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이 동굴 속에 삼십여 년 전에 무림을 뒤흔든 십대고수 중에 다섯 명이 바깥세상을 등진 채 은거하고 있다면 믿어지겠는가?”

“허!”

“십대고수가··· 다섯이나!”


두성이와 마동탁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어지지 않는 말에 서로의 얼굴만을 멀뚱히 쳐다봤다.


“인사가 늦었지만, 난 과거에 팔방풍우(八方風雨) 진정일이라고 불렸지.

하기야 한 때는 비바람이 몰려오듯 거세고 빠르게 상대를 몰아붙였다네.

그래서 붙은 별명이지만 그 당시엔 무소불위, 거칠 것이 없었지.”


당시를 회상하는지 꿈꾸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허공을 쳐다보며 진정일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십대고수들은 어느 날, 깎아지른 화산 정상에서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공전절후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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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제110화, 아, 취영아! - 완결- 23.11.01 124 4 16쪽
109 제109화, 무공을 폐하다 23.10.30 118 5 10쪽
108 제108화, 성녀 설중매 23.10.28 133 3 10쪽
107 제107화, 궁주 혁밀지 검을 뽑다 23.10.27 138 3 10쪽
106 제106화, 기동대의 활약 23.10.25 146 4 10쪽
105 제105화, 유아독존 (唯我獨存) 23.10.23 153 3 10쪽
104 제104화, 시간이 멈췄다 23.10.21 153 4 11쪽
103 제103화, 첫 승리 23.10.20 165 5 12쪽
102 제102화, 정사대전의 서막 23.10.18 162 5 10쪽
101 제101화, 척살대 척살하다 23.10.16 183 5 10쪽
100 제100화, 혈미상단 23.10.14 190 4 10쪽
99 제99화, 두 개의 장원 23.10.13 202 3 11쪽
98 제98화, 마동탁의 활약 +3 23.10.11 199 4 10쪽
97 제97화, 신궁 神弓 23.10.09 203 5 11쪽
96 제96화, 재회 23.10.06 212 4 10쪽
95 제95화, 독수방 방주 노팔보 23.10.04 223 3 12쪽
94 제94화, 궤멸 潰滅 23.10.02 232 3 10쪽
93 제93화, 낭인부대와 전투 23.09.30 252 3 10쪽
92 제92화, 낭인곡 십자검 채이평 23.09.29 248 4 10쪽
91 제91화, 모홍강의 말로 23.09.27 234 4 10쪽
90 제90화, 소인배 모홍강 23.09.25 238 4 11쪽
89 제89화, 오독교주 사명명 23.09.23 240 4 10쪽
88 제88화, 오독교 23.09.22 258 4 10쪽
87 제87화, 지피지기 백전불태 23.09.20 275 5 10쪽
86 제86화, 사천당문 23.09.18 280 4 11쪽
85 제85화, 외나무다리 23.09.16 309 5 11쪽
84 제84화, 걸개법사와 탈혼수 23.09.15 315 4 11쪽
» 제83화, 팔방풍우(八方風雨) 진정일 23.09.13 314 7 11쪽
82 제82화, 지하동굴의 노인 23.09.11 325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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