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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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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
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최근연재일 :
2023.11.01 13:07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57,270
추천수 :
856
글자수 :
509,104

작성
23.07.21 17:00
조회
488
추천
8
글자
12쪽

제51화, 불새단

DUMMY

복용하면 십 년 이상의 수명이 연장된다고 했지만, 조 의원은 선뜻 먹지 못하고 손에 들고 쳐다보기만 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가 자신을 친할아버지처럼 여기고 구해온 귀하디귀한 영약이다. 안 먹어도 먹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할아버지, 어서 드세요.”


두성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신 재촉을 했다. 결국 성화에 못 이겨 밀랍을 깨고 단약을 입에 넣었다.


씹지도 않았는데 스르르 녹더니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박하처럼 화하고, 청량한 향기가 입안에 가득했다.


“할아버지, 어때요?”

“십 년은 젊어진 것 같구나. 이참에 장가라도 갈까?”

“이웃집 개똥이네 엄마가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 헤헤.”


개똥이와 소똥이를 키우는 이웃 아줌마는 키는 작고 뚱뚱했지만, 넉살맞아서 자주 약방에 들려 너스레를 떠는, 한마디로 오지랖이 넓은 수다스런 여자였다.


조 의원은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됐다, 너나 이담에 그런 여인을 만나 장가들어라.”

“헤헤!”


두성이는 흑진주와 백진주도 꺼내 드렸다. 영롱한 빛으로 반짝이는 흑백의 진주를 보자 할아버지의 눈이 등잔만큼 커졌다.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진주를 쥔 손이 가볍게 떨렸다.


돈으로 바꾼다면 엄청난 금액이었다. 혹시라도 남의 눈에 띈다면 필시 피를 부르는 참극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재빨리 문을 걸어 잠그고 스무 알의 구명환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할아버지, 한 알 잡숴보세요. 효능이 아주 좋아요.”

“아니다, 네가 잘 보관했다가 요긴할 때 써라.”

“할아버지가 잡숴보셔야 다시 만들 수 있잖아요?”

“으응, 그렇구나.”


조 의원은 조심스럽게 밀랍을 깨고 냄새부터 맡아보았다. 여러 가지 진귀한 약초냄새가 두루 섞여있었다.


앞니로 살짝 깨물어 혓속에 넣고 굴려가며 분석하고 있었다.


“허, 반 정도는 알겠는데 나머지는 긴가민가하군. 앞으로 연구를 해봐야겠어.”


두성이는 구명환 열 개를 챙기고 나머지는 할아버지에게 억지로 드렸다.


조 의원이 보자기에 싼 군자검을 꺼내들고 칼을 뽑아보니 은은하게 어리는 빛 이외에는 특별함이 없었다.


“이제 네 실력이면 검을 차고 다녀도 되겠다. 그러나 함부로 검을 뽑아서는 안 된다.”

“네, 할아버지.”

“진주는 만금전장의 개인 금고에 맡기고 올 테니 그동안 좀 쉬고 있거라.”


두성이가 탁자에 엎드려 한참 쉬고 있는데 조 의원이 돌아왔다. 조 의원은 지금까지 개인 금고에 숨겨놓았던 피독주를 두성이에게 주었다.


“자, 이건 피독주란다. 앞으로 너한텐 꼭 필요할 테니 항상 몸에 간직해야 한다.”

“네, 고맙습니다.”

“참! 할아버지. 동굴에서 만난 내 친구 깔끔이에요.”


두성이가 옆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검은고양이를 소개하자 깔끔이가 앞발을 내밀며 인사를 했다.


“아, 노인 안녕하시오? 앞으로 잘 부탁하오.”

“어, 어, 어? 마 말을 하네. 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니?”



그날 저녁 뒤꼍에선, 두성이를 위해 꼬치에 꿴 돼지고기가 장작불 위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고기에서 나오는 기름이 장작불에 떨어지며 작은 불꽃을 일으켰다. 구수한 냄새가 뒤란을 가득 채우더니 이웃집 창문을 습격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아우성이다.


“이게 뭐야? 돼지고기 냄새 아냐?”

“누군 입이고, 누군 주둥이냐?”

“지들끼리만 먹으며 냄새피우지 말라고!”

“염치가 있다면 적어도 옆집은 부르란 말이야!:”

“난 벌써부터 젓가락 들고 대기하고 있다.”


그러자 조 의원이 껄껄 웃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먹고 싶은 사람은 젓가락을 들고 모두 모이시오!”


그러자 갑자기 쿠당탕! 소리가 나며 옆집, 이웃집, 앞집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 약방의 좁은 뒷마당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사람들을 시켜 돼지고기와 술을 넉넉히 사오라고 시켰다.


죽은 줄 알았던 두성이가 기연을 얻어서 일류 무인이 되어 돌아왔는데, 크게 한턱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처음 단출하게 시작됐던 식사가 마침내 밤이 늦도록 흥청대는 동네잔치가 되었다. 이런 게 사람 사는 맛이 아니겠는가.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놀던 잔치는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끝났다. 뒷정리를 대충한 두성이가 이층으로 올라와 쓰러지듯 누웠다.


정말로 오래간만에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어린 취영이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낼까?


어린 동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서 잠이 오지 않았다. 빨리 찾아야 할 텐데 딱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뒤척이고 있는데 창문가에서 인기척이 났다. 꼼짝 않고 누워서 살펴보니 누군가 창문을 살며시 열고 있었다.


잠시 후,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흰 연기가 방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두성이는 동굴 속에서 약숫물에 들어가 운기조식을 했고 귀한 영약을 계속 복용했기에 웬만한 독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오늘은 할아버지가 주신 피독주까지 가지고 있었다. 두성이는 상대가 어떻게 나오나보려고 잠든척하고 있었다.


일다경이 지나자 창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체구가 날렵한 복면인이 잽싸게 안으로 들어왔다.


“잠에 곯아떨어졌군, 반지를 가지고 빨리 나가야지.”


체구가 작은 복면인이 중얼거리며 두성이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려고 힘을 주었다. 누워있던 두성이가 손을 홱! 뒤집더니 오히려 괴한의 손목을 거머쥐었다.


“아앗!”


깊이 잠든 줄 알았던 두성이가 억센 힘으로 손목을 거머쥐자, 괴한은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손을 빼려고 했으나 전연 힘을 쓸 수 없었다.


창문을 막아선 두성이가 등잔불을 밝혔다. 복면을 쓴 괴한이 연속 발차기로 두성이를 공격했으나 두성이는 손바닥으로 공격을 막으며 손을 뻗어 복면을 나꿔챘다.


괴한의 정체는 황산에서 보았던 곱상한 소년이었다. 소년은 얼굴을 붉히고 두성이를 쳐다보았다.


“이 반지를 훔치려고 이 밤중에 이곳까지 온 거야?”

“그래, 반지를 확인해야 해서 어쩔 수 없었어.”

“그럼 낮에 와서 보여 달라면 보여줬을 텐데....”

“미안해, 나한텐 중요한 일이니 반지 좀 보여줄 수 없니?”

“뭐 어려운 일도 아니지, 그렇지만 이유는 알아야지. 그리고 넌 누구니? 난, 두성이라고 해.”

“난..., 사마리라고 해. 그 반지가 혹시 우리 선조의 유물인가 해서. 겉으로 보기엔 똑같이 생겼거든.”

“음..., 그래?”


“확인만 하면 돼, 달라고 하는 건 아냐.”

“그럼 사마통 대협이 너네 선조님이시니?”

“어마!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너 지금 어마!라고 했지? 사내애가 왜 여자들 말을 쓰지?”

“아, 그 그건..., 우리 집은 여자형제가 많아서 가끔 여자 말을 써.”

“그랬구나, 그럼 이 반지 확인해봐.”


두성이는 구리반지를 빼서 사마리에게 주었다. 사마리는 재빨리 반지를 받아 불빛에 비춰보며 자세히 살피더니 웃음을 지었다.


“아! 선조님의 유물이 맞아. 반지 안쪽에 ‘사마’라는 아주 작은 글자가 있어. 근데 이 반지를 어떻게 얻었니?”


등불에 비친 소년의 얼굴은 몹시 아름다웠다. 커다란 눈은 호수처럼 맑았고 오뚝한 작은 코에 앙증맞은 입, 하얀 이를 드러내고 미소 짓는 모습은 여자처럼 예뻤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지 않고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며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은 마음이 올곧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성이는 소년의 태도를 보고 거짓말을 늘어놓지 않고 진솔하게 말하는 것임을 확신했다. 그래서 처음 만났지만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사실 우연히, 사마통 대협이 남긴 비동에 들어갔어. 거기서 지금 사부님을 만났고 ‘암영무흔보’와 구리반지를 얻게 되었어.

사마통 대협이 남긴 편지에 구리반지를 끼고 세상에 나가면 ‘불새단’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지.”


“저..., 그런데 ‘불새단’이란 뭘 말하는 거지?”


소년은 말없이 구리반지를 돌려주며 의미심장한 눈으로 두성이를 바라보았다.


“얘길 듣고 보니 이제 이해가 되네, 할 얘기는 많지만 오늘은 늦었으니 다시 만나자. 자, 그럼!”


소년은 말을 마치마마자 유령처럼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두성이가 창문에서 내다보니 이미 소년의 모습은 어둠속에 녹아들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바로 암영무흔보의 신법이었다.


두성이는 잠이 달아나버려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양의분심신공이 생각났다. 탁자에 종이를 펴놓고 양손에 붓을 쥐었다.


왼손으론 삼각형을 오른손으론 원을 동시에 그렸다. 처음에는 삼각형이나 원이 비슷하게 그려졌으나 낙심하지 않고 그리고 또 그렸다.


머리로는 방법을 이해했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쉬웠으면 누구든지 다 불세출의 영웅이 되고도 남았을 거다.


개인의 자질도 중요하지만 끈기와 집념이 뒤따라야 진정한 무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손이 먹물투성이가 되었다.


머지않아 온몸이 먹물색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밤을 꼬박 새웠다. 뒤꼍으로 내려와 손을 씻고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삼각형과 원을 그리는 연습을 꾸준히 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하나둘 원이나 삼각형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오른손잡이는 평소에 왼손을 잘 쓰지 않아 오른손을 다쳤을 때는 생활하는 모든 게 불편했다. 두성이는 의도적으로 왼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양의신공을 익히면서부터는 자유롭게 왼손을 쓸 수 있었다.


그 뒤로 소년을 기다렸지만 며칠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는 이층에서 진한 약초냄새를 맡으며 현무심법을 수련했다.


주위에 매달려있는 모든 약초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호흡했다. 약초의 향이 조용히 흘러들었다가 날숨과 함께 살며시 빠져나갔다. 몸속에 온갖 종류의 약초향이 머물러 자신이 약초가 된 느낌이었다.


내가 꽃이 되고 약초가 되며, 바람이 되고 심심산천의 벽계수가 되어 자연과 하나를 이룬다는 물아일체의 심공.


거북이처럼 천년을 기다리며 서두르지 않고 진중히 수련해야 그 진수를 깨우칠 수 있는 심법이었다.


수련할수록 몸속의 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약방이 그다지 바쁘지 않았고, 두성이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조 의원의 배려로 무공수련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기억력과 오성이 비상한 두성이는 곁에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혼자서 막힘없이 수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뒤로 곱상한 소년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금방 다시 만날 것처럼 말했던 소년이 나타나지 않자 두성이는 괜스레 불안해졌다.


(혹시 그 소년한테 무슨 나쁜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됐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한 살 더 먹어 열세 살이 된 두성이는 키가 한 뼘이나 더 자랐고 근육도 보기 좋게 붙었다. 이제는 순진무구한 소년티를 완전히 벗고 제법 청년티가 물씬 풍겼다.


하루하루가 변함없이 흘러가던 어느 날, 조 의원은 두성이를 불렀다.


“오늘은 왠지 돼지고기가 당기는 구나, 한 근만 사오너라.”


두성이가 시장거리로 나왔을 때, 좁은 골목에서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람 살려요,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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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제51화, 불새단 23.07.21 489 8 12쪽
50 제50화, 일수불퇴 진용추 대협 23.07.19 515 8 10쪽
49 제49화, 방귀 뽕! 왕王자 23.07.18 521 7 11쪽
48 제48화, 왕파리 23.07.17 521 9 10쪽
47 제47화, 검은 고양이 묵묘 23.07.15 515 10 10쪽
46 제46화, 못난 사부 23.07.14 531 11 10쪽
45 제45화, 하늘이 무너져도 23.07.12 540 8 10쪽
44 제44화, 길이 나오면 돌아가라 23.07.10 550 8 10쪽
43 제43화, 의적 공수불거(空手不去) 사마통 23.07.07 576 10 10쪽
42 제42화, 마침내 기연 奇緣 23.07.06 583 11 10쪽
41 제41화, 산적두목 홍미미 23.07.05 584 7 10쪽
40 제40화, 어마어마한 대물 大物 23.07.03 588 9 10쪽
39 제39화, 첫 무공수련 武功修鍊 23.07.01 581 8 10쪽
38 제38화, 각자의 길 (各自圖生 각자도생) 23.06.30 549 8 10쪽
37 제37화, 거지 신세를 면하다. (금선탈각 金蟬脫殼) 23.06.28 561 7 10쪽
36 제36화, 실마리 +1 23.06.27 574 9 10쪽
35 제35화, 누란지위 累卵之危 +1 23.06.26 584 8 10쪽
34 제34화, 창룡검법 蒼龍劍法 23.06.23 602 9 10쪽
33 제33화, 임설매와의 조우 23.06.21 603 10 10쪽
32 제32화, 호가호위 狐假虎威 23.06.19 582 10 10쪽
31 제31화, 애들을 찾아서 23.06.18 601 9 10쪽
30 제30화, 귀환 23.06.18 612 9 10쪽
29 제29화, 모성애 23.06.18 593 8 10쪽
28 제28화, 충 忠, 의 義, 신 信 23.06.18 603 8 10쪽
27 제27화, 처절한 절규 23.06.18 628 7 10쪽
26 제26화, 빗속의 마차 +2 23.06.18 658 10 10쪽
25 제25화, 방황 23.06.17 675 10 10쪽
24 제24화, 억장이 무너지다 23.06.17 688 9 10쪽
23 제23화, 추적자 23.06.16 707 10 9쪽
22 제22화, 두 아이의 운명 23.06.16 743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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