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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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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
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최근연재일 :
2023.11.01 13:07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57,265
추천수 :
856
글자수 :
509,104

작성
23.06.18 10:05
조회
657
추천
10
글자
10쪽

제26화, 빗속의 마차

DUMMY

얼굴과 몸은 진흙투성이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두성이는 소매로 눈부터 닦았다.


멀리 가물가물 불빛이 보였다. 불빛을 보자 한줄기 희망에 부풀어 갑자기 힘이 솟았다.


표국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사정하고 동생을 구해달라고 부탁을 해야 했다.


두성이는 부나방처럼, 가물거리는 불빛을 향해 비칠거리며 달려갔다.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 왼쪽으로 나무다리가 있었는데 다리 밑에는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떠들고 있었다.


두성이가 그쪽으로 달려가며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좀 도와주세요...“


불 가에 있던 사람들이 빗속에서 험한 몰골을 하고 뛰어오는 두성이를 발견하자 하던 말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두성이는 사람들을 만나자 긴장이 풀어져 다리에 힘이 빠졌다. 털썩 땅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알고 보니 거지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빙 둘러앉아 젖은 옷을 말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자기 또래의 아이들도 있었고 좀 더 나이가 많은 아이들이 있었는데 십여 명이나 되었다.


모닥불에 커다란 솥을 걸어놓고 음식을 끓이고 있었고 아이들 앞에는 동냥그릇이 놓여있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두성이를 쏘아보며 거만하게 물었다.


“처음 보는 놈인데, 어디에서 왔고 이름은 무엇이냐?”


두성이가 그 사람을 보니 나이는 스무 살 정도 인데 몸은 호리호리 했으며 얼굴은 세모졌고, 사팔뜨기라 어디를 쳐다보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아마 이들 중에 나이가 제일 많은 두목인 것 같았다.


“전 두성이라고 하는데 동생이 비를 맞아 열이 심해요. 제발 좀 구해줘요.”


“동생이 아프다고? 그건 네 사정이지 우린 알바가 아니야.”


사팔뜨기는 냉정하게 말하곤 김이 나는 솥을 숟가락으로 휘저었다. 구수한 냄새가 퍼지자 두성이는 갑자기 허기가 져 자신도 모르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나왔다.


배고픔을 참고 두성이는 다시 간절하게 애원했다.


“제발 불쌍히 여기고 도와줘요. 동생이 위험해요.”


두성이가 울면서 애원하자 사팔뜨기는 초점이 안 맞는 눈을 굴리면서 냉랭하게 물었다.


“그래, 만약에 네 동생을 구해준다면 넌 우릴 위해 뭘 해줄 거냐?”


이때 두성이의 심정은 동생만 구해준다면 못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말했다.


“동생만 구해준다면 뭐든 시키는 대로 할게요.”


“그래? 사나이 약속은 중천금이라고 너는 잘 생각해보고 말해라.”


“뭐든 할 테니 동생만 구해주세요.”


“알았다. 일단 약속을 했으니 구해주마, 만약 어긴다면 우린 널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괴롭힐 거다. 알겠지?”


“네, 네. 알았으니 빨리 동생을......”


사팔뜨기의 이름은 모지리(毛至理)로 강자에겐 굽실거리고 약자에겐 호랑이처럼 무섭게 구는 자였다.


모지리는 집을 잃거나 부모가 없이 혼자 떠도는 아이들을 강제로 부하로 삼아 종처럼 부렸다.


저자거리에 나가 돈을 동냥해오게 하거나, 집집마다 돌며 밥을 얻어오게 하거나, 심지어 도둑질을 시키며 푼돈을 긁어모았다.


모지리가 주머니에서 감기에 먹는 환약을 꺼내 비교적 덩치가 큰 애에게 주며 말했다.


“너희 둘은 빨리 가서 이 약을 먹이고 애를 업고 와라.”


명령을 받은 두 녀석은 음식이 다 끓어서 곧 먹을 텐데 두목이 명령을 하자 두성이를 노려보며 볼멘소리를 하였다.


“개뼈다귀 같은 놈 때문에 밥도 제때에 먹지 못하네, 에이! 야, 임마! 어디냐? 앞장서라!”


녀석들은 두성이보다 세 살이나 많았다. 놈들은 투덜거리며 두성이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두성이는 그들을 데리고 관제묘로 향했다.



두성이가 관제묘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 대의 호화로운 마차가 빗속을 뚫고 나타났다. 마차는 관제묘 앞에 멈추더니 마부가 관제묘의 문을 열었다.


뒤이어 마차의 문이 열리고 여자애가 내리더니 우산을 펴고 마차 문에 가까이 받쳤다.


마차 안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이 사뿐히 내리더니 우산을 쓰고 관제묘 안으로 들어갔다.


마부가 마차 안에서 등을 들고 관제묘 안으로 들어가 불을 붙였다. 어둡던 사당 안이 불빛에 그 윤곽을 서서히 드러내었다.


불빛에 비친 여인은 이십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매우 아름다웠다.


여인은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상아처럼 뽀얀 손으로 살짝 쓸어올렸다.


옆에서 불빛을 따라 사방을 둘러보던 여자 아이가 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나, 아씨. 저기에 웬 애가 있어요, 어린애네요.”


여인은 놀라지도 서두르지도 않고 천천히 다가가 내려다보았다. 어린애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아픈 소리를 내며 떨고 있었다.


여인은 매우 기품이 있는 모습으로 섬세한 손가락을 뻗어 취영이의 이마를 짚었다.


“조그만 애가 열이 심한데 왜 여기에 있을까?”


여인은 다시 취영의 맥을 짚어보더니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데..., 이걸 어쩌나.”


그때 웅크리고 있던 취영이가 갑자기 손을 휘저으며 애처롭게 말했다.


“엄마, 어딨어? 엄마!”


취영이는 꿈을 꾸었는지 다시 조그만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여인은 병아리처럼 나약한 어린애의 애처로운 외침을 듣자 가슴 한구석이 에려왔다. 옆에 있던 여자애가 혀를 차며 말했다.


“이 애가 병이 들자 애 엄마가 이곳에 버리고 갔나 봐요. 쯧쯧, 어린 것이 불쌍하기도 하지.....”


측은한 눈길로 취영이를 보고 있던 여인이 마부를 보고 말했다.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아 이곳에서 비를 피하려 했지만 안 되겠네. 아직 그리 늦지는 않았으니 성안의 약국으로 가야겠네, 어서 서두르게.”


마부는 등불을 들고, 여인은 어린 취영이를 안고, 여자애는 우산을 받치고 밖으로 나가 마차에 올랐다. 마부는 마차를 돌려 큰길로 향했다.


오들오들 떠는 어린애가 불쌍해서 여인이 가슴에 품어주자 취영이는 엄마! 엄마! 하며 여인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여인은 취영이를 꼭 끌어안으며 마부에게 말했다.


“속력을 내게!”


마부가 채찍으로 가볍게 말 엉덩이를 내려치자 말은 빠르게 달려갔다. 마차는 진흙탕을 튀기면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헤치고, 어둠을 뚫고 쏜살같이 달렸다.


두성이는 취영이가 걱정이 되어 쉬지 않고 달렸다. 같이 온 두 녀석도 빨리 애들 데리고 가려고 불평 없이 달렸다.


세 명이 빗속을 달려가는데 갑자기 앞에서 마차가 달려와 한쪽으로 비켜섰지만 마차의 속도가 워낙 빨라 진창의 흙을 튀기며 지나갔다.


그 바람에 애들은 흙탕물을 흠뻑 뒤집어썼다. 두성이를 따라왔던 거지 녀석들이 멀어져가는 마차를 향해 고래고래 욕을 퍼부었다.


“제미랄 놈들아, 가다가 바퀴나 몽땅 빠져버려라!”

“육시랄 놈아, 눈깔은 뒀다 어디에 쓸 거냐. 에, 퉤퉤!”


놈들은 분풀이 할 곳이 없자 공연히 두성이를 노려보며 발길질을 하였다. 두성이는 좀 미안한 맘이 들어서 맞고도 아무소리도 못했다.


방금 지나간 마차가 취영이를 태운 마차인 걸 알지 못하는 두성이가 관제묘에 당도해보니 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다.


두성이는 불안감에 훌쩍 뛰어들며 취영이를 불렀다.


“취영아, 취영아!”


그러나 구석에 누워있어야 할 취영이가 보이지 않았다. 두성이는 놀라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춥다고 오들오들 떨던 취영이가 이렇게 비바람이 치고 깜깜한 밤에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두성이는 엉엉 울면서 관제묘 주위를 돌아다녔으나 어디에도 귀여운 동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쪽에서 두성이의 모습을 보고 있던 두 놈이 갑자기 두성이의 뺨을 후려치고 발길질을 하였다. 두성이는 눈앞에 별이 번쩍거렸고 발길에 채인 데가 아파 바닥에 쓰러졌다.


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성이를 걷어차더니 욕을 했다.


“이 잡종 놈아! 네 동생이 어디 있다는 거냐? 지금 우릴 놀리는 거야? 이 개 같은 놈아. 네놈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이게 무슨 지랄이냐. 이 후레자식아!”


놈들은 배가 고파죽겠는데 당장 밥을 먹지 못하자 갖은 욕을 다 퍼부으며 두성이를 때렸다.


두성이보다 나이도 많고 덩치도 커서 두성이는 대들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얻어맞았다.


얼굴은 퉁퉁 붓고 코에선 피가 흘렀으며 발길질에 배를 채여 몸을 잔뜩 구부린 채 숨도 겨우 쉬고 있었다.


한바탕 손찌검을 하고나자, 놈들의 화가 조금은 풀렸는지 한 놈이 두성이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더 늦기 전에 빨리 돌아가자.”


멱살을 잡힌 두성이는 동생을 찾아야 한다고 버텼지만 놈들은 두성이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질질 끌고 갔다. 힘으로는 당할 수 없는 두성이는 놈들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두성이가 조금만 일찍 당도했더라도 마차를 타고 온 여인을 만났을 것이고, 만약 만났더라면 동생과 헤어지지 않고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동생과 만나지 못해 그 뒤로 오랜 시간동안 자책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인생이란 생각지도 않았던 한 순간에 의해 운명이 뒤바뀌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긴 순간이 일생을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행운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두성이가 조금 늦어 동생을 잃은 것은 그를 일생 동안 어둡고 긴 회한의 터널 속에서 방황하도록 만들었으니, 짓궂은 운명의 장난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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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제45화, 하늘이 무너져도 23.07.12 540 8 10쪽
44 제44화, 길이 나오면 돌아가라 23.07.10 550 8 10쪽
43 제43화, 의적 공수불거(空手不去) 사마통 23.07.07 576 10 10쪽
42 제42화, 마침내 기연 奇緣 23.07.06 582 11 10쪽
41 제41화, 산적두목 홍미미 23.07.05 584 7 10쪽
40 제40화, 어마어마한 대물 大物 23.07.03 588 9 10쪽
39 제39화, 첫 무공수련 武功修鍊 23.07.01 581 8 10쪽
38 제38화, 각자의 길 (各自圖生 각자도생) 23.06.30 549 8 10쪽
37 제37화, 거지 신세를 면하다. (금선탈각 金蟬脫殼) 23.06.28 561 7 10쪽
36 제36화, 실마리 +1 23.06.27 574 9 10쪽
35 제35화, 누란지위 累卵之危 +1 23.06.26 584 8 10쪽
34 제34화, 창룡검법 蒼龍劍法 23.06.23 602 9 10쪽
33 제33화, 임설매와의 조우 23.06.21 603 10 10쪽
32 제32화, 호가호위 狐假虎威 23.06.19 582 10 10쪽
31 제31화, 애들을 찾아서 23.06.18 601 9 10쪽
30 제30화, 귀환 23.06.18 612 9 10쪽
29 제29화, 모성애 23.06.18 593 8 10쪽
28 제28화, 충 忠, 의 義, 신 信 23.06.18 603 8 10쪽
27 제27화, 처절한 절규 23.06.18 628 7 10쪽
» 제26화, 빗속의 마차 +2 23.06.18 658 10 10쪽
25 제25화, 방황 23.06.17 675 10 10쪽
24 제24화, 억장이 무너지다 23.06.17 688 9 10쪽
23 제23화, 추적자 23.06.16 707 10 9쪽
22 제22화, 두 아이의 운명 23.06.16 743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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