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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미카의 서재

우리 동아리에서는 내기 게임을 잘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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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미카
작품등록일 :
2016.10.17 22:58
최근연재일 :
2019.03.21 23:16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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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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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98,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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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27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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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9쪽

14화. (4)

DUMMY

※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작중 내에서 표기된 인물, 지명, 단체 등은 모두 허구적 요소입니다.










14화. 숨바꼭질, 그리고... (하) (4)





다음 숨바꼭질 할 때는 여기도 숨을 수 있다고 그 날 수진이와 약속했다.


비록 내가 숨바꼭질은 못해도, 이렇게 힌트를 주면 다음에 숨바꼭질을 할 때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결국에는 그녀를 찾아내고는 했다.


그리고, 오늘도 그랬다.


“민준아...”


... 물론 이번에는 숨어있는 수진이를 찾아내는 데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역시 여기 있었네.”


나를 바라본 수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놀라지도 않았고,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저 우산을 쓴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그냥 산에 올라가는 일도 버거울 텐데, 이런 교복차림으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녀의 다리를 보니 마치 그걸 말해주듯이 운동화와 흰 양말은 흙탕물로 잔뜩 더럽혀져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다. 비 오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와가지고 숨은 거야? 아, 물론 내가 다음에도 아무리 여기 숨을 수 있다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그걸 곧이곧대로 할 필요는 없지 않았어?”


반은 농담 식으로 말했지만, 여기까지 올라오는 엄청 힘들었다. 이런 비 오는 날에 동네 산에 올라가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도 이미 빗속에서 한참을 돌아다니고 산을 올라온지라 이미 발속까지도 젖어서 축축했고, 교복 바지에도 흙탕물이 잔뜩 배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힘이 빠지고, 올라오느라 다리도 아프고, 우산 잡느라 팔도 아프고, 축축하게 젖은 발이 찝찝하고, 이보다 더한 생고생이 없었다. 평소 체력에 있어서는 젬병인 수진이가 이런 궂은 날씨에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그게 더 신기할 정도이다.


“하긴, 이런 멋진 풍경 보는데 날씨가 뭔 상관이야.”


그렇게 말하며 나는 수진이 옆으로 다가가 그녀가 아까부터 보고 있던 그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 뻥 트인 풍경을 두 눈으로 맞이하니 그간 올라오느라 겪었던 고생이 가시는 듯 했다. 나는 아까보다는 약하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눈에 들어오는 우리 시의 풍경. 한눈에 보아도 예전에는 없던 도로와 건물들이 많이 생겼다. 바로 앞에 보이는 목현동 동네도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렇게 구조물 하나가 바뀌고 도로 한 줄기가 더 생겨난다고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 전체의 모습은 5년 전 똑같이 이 자리에서 바라보는 날과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


“우리 사는데 이렇게 딱 보이고. 역시 지금도 여기가 최고네.”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우리 시의 아름다운 풍경을 이렇게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 내가 세상을 알고 산지도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지금 서 있는 이곳보다 더 아름답게 우리 시를 볼 수 있는 장소는 없었다.


“누가 이런 데를 알려줬을까?”


‘누가’ 이런 멋진 곳을...


여전히 우리 시의 모습을 둘러보면서 조용히 ‘옆에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왜 온 거야?”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침울한 목소리로 나를 대했다.


“왜 오긴. 오랜만에 얼굴 보고 싶어서 왔지.”


그렇게 말하며 수진이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렸던 시절 나는 수진이보다 항상 키가 작았다. 성격도 악동 같으면서도 늠름했다. 그나마 옆머리는 귀엽게 땋고 뒷머리는 길렀던 게 그녀의 여자아이다운 모습이었다.


그녀를 찬찬히 보았다. 이제는 다른 여학생들처럼 한참을 내려다봐야하는 평범한 키, 항상 봐 와서 알지만 나긋나긋한 말투와 성격, 그리고 확연히 짧아진 머리. 나는 그런 수진이를 앞에 두고도 전혀 그녀가 어린 시절의 그녀라는 것을 알지 못 했다. 누군가 먼저 말을 해 주지 않았다면, 나는 앞으로도 이 앞에 있는 여학생을 내가 아는 그녀와는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뭐라고...”


수진이가 시선을 피한 채 말했다.


“겨우 기분 상한다는 이유 하나로 상처만 주고. 나중에 화해한다고 말만 당당하게 하고 아무 말도 안하다가 괜히 다른 사람들까지 폐만 끼치고...”


화가 난 목소리. 그러나 그 분노의 화살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오해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아무도 너한테 기분 나쁘다고 한적 없는데.”


“이제 솔직히 말해도 되잖아.”


내가 수진이를 미워하고 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뭘 솔직히 말해. 난 너 만나러 - ”




“왜 자꾸 숨기는 거야! 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 하냐고?”




그녀는 그렇게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며 소리를 치는 수진이를 보고도 달리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난 네가 뭔 말 하는지 모르겠어.”


정말로 그녀가 무슨 말 하는지를 모르겠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진짜 모르는 거야? 그래, 그럼 내가 직접 다 말할게. 내가 얼마나 답답하고 미련한 애인지.”


수진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한번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도 마음속으로 준비를 하였다.


그녀가 뭘 오해하고 있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알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기억 나? 항상 네 생각은 하지도 않고 나 좋다고 하면서 늦은 시간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항상 귀찮게 교실 오고 다니면서 놀자고 하고. 그래... 그렇게 노는 건 그렇다고 쳐. 나중에 와서 괜한 기분 때문에 널 피해 다니고 같이 놀자고 말 거는 거 보고 귀찮다고 화내고. 그러다가 결국 그 날 너보고 싫다고 말하면서 기분 상하게 하고. 그리고는 아무런 사과도 안 하고 이사가버리고. 이게 친구라고?”


그녀는 내가 ‘그 날’의 일 때문에 자기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하고 모르고 지냈으면 몰라... 차라리 여기로 이사 와서도 이 학교로 안 왔으면 너랑 모르고 그렇게 지냈겠지... 하지만 우연히도 너랑 같은 학교로 와버렸어... 그리고 이제 말하는 거지만 네가 사전 모임 했던 날 게시판 앞에서 보고 있던 거 보고 이미 그때부터 너 인거 알고 있었어. 나도 오랜만이라 가지고 처음에는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어. 그런데 그 때 있었던 일을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자신이 안 나더라고. 혹시나 네가 그것 때문에 나한테 기분나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녀는 고등학교 와서도 여전히 자기를 ‘그 날’의 일 때문에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그 때 우연히 홍보동아리를 알게 되가지고 거기서 아영이랑 윤정이를 만났어. 걔네랑 게임도 하고 친하게 지내가지고 나중에는 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가지고 내가 염치없게 부탁을 했어. 금방 말 할 테니까 그때까지는 비밀로 해달라고 하고 널 우리 동아리에 들 수 있게 설득해 달라고 말이야. 그래서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민준이 네가 우리 동아리에 들어왔어. 그래, 거기까진 괜찮았어. 이제 너랑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 언제 마음먹고 솔직히 말하면 다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여전히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한 그녀는 아영이와 윤정이에게 부탁했다. 그래도 그게 나한테 호된 소리를 듣는 것 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너 그날 기억하지? 버스 정류장 앞에서 네가 뭔 말 했는지 못들은 척 하고 그냥 갔잖아... 사실 네가 뭐라 하는지 얘기 다 들었어. 네가 목현초 나왔다고, 나랑 예전에 같이 지냈던 친구라고 하면서. 다 들었어. 그래. 그런데 내가 거짓말을 한 거야. 근데 그걸 들었으면서 모르는 척 하고. 진짜 나도 내가 뭔 생각으로 그런 소리 한 건지...”


분명 그녀는 내가 ‘그때 너 나한테 왜 그랬냐?’하면서 다짜고짜 시비를 걸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하지만 그러고도 나중에는 언젠가는 말 하겠지 하면서 그렇게 두 달 동안이나 ‘나중에 말해야지’ 하면서 생각만 했어. 아영이가 나중에는 나보고 귀찮다고 그렇게 말하는데도 난 염치 없이 좀 더 기다려 달라고 그러고.,, 걔가 그러는 거 보면 화내는 것도 당연한데 계속 내 사정만 생각하고... 그래, 차라리 아영이한테만 부탁했으면 몰라. 난 말이야, 언제부터인가 내가 말할 거는 제대로 생각도 안 하고 어떻게 하면 네가 날 이해해줄까 하고 생각만 했어. 그래가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염치없게 부탁했어. 우리 선생님한테도 말하고, 학생회장님이랑도 말하고, 문구점 가게 아주머니도 만나 얘기하고, 게다가... 너희 어머니에게도 전화해서 얘기 했었어.”


오죽이면 우리 엄마에게 나도 모르게 전화를 해서 직접 얘기를 했다.


그만큼 그녀에게 나는 ‘무서운 존재’였다.


“자기 사정도 모르고 그렇게 남한테 도움만 받으려고 하고... 그러고 말 했으면 몰라. 결국에는 말도 안하고 있다가 그날 기껏 만나서는 너한테 또 소리 지르고, 도망치고... 그리고 그 날 기분 잡쳤다고 오늘은 학교도 안 가고. 그것 때문에 지금 학교에서는 나 찾는다고 다 난리 났을 거 아니야.”


그리고 그녀는 그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일탈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넌 이게 용서가 될 거라고 생각해? 다른 사람들에게 폐만 끼치는 게. 내가 어릴 때부터 맨날 너보고 바보 멍청이라고 했는데, 누가 누구보고 그런 소리를 하냐? 나 편할 생각만 하고 괜히 민준이 너한테 나쁜 인상 보이고, 고등학생 되가지고 와가지고도 항상 말하겠다고 하면서 질질 끌다가 아영이랑 윤정이만 화나게 하고. 그리고 지금은 네 앞에서까지 거짓말하고... 흐흑....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해서 신경 쓰게 하고. 괜히 일만 엄청 커지게 하고...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오히려 난 사과하고 싶었는데 괜히 네 기분만 상하게 하고... 다들 폐만 끼치고... 미안해. 이런다고 용서 받는 게 아닐 텐데... 진짜 미안해... 흐으윽...”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으흐흑... 으아아앙...”


그리고 소리 내 울었다.


마음속에 담아 둔 채 하고 싶었던 말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마음에 담아두기만 한 채 차마 꺼내지 못한 말들이었다.


그녀는 모두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는 다르게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었다.


...


“수진아.”


... 용서할 수 없다.




“미안해.”


스스로를 말이다.




조용히 우산을 접어 한손에 쥔 후, 그녀 앞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등과 어깨가 비에 젖어 왔다.


그러나 나 때문에 지금까지 마음 졸이면서 힘들어해왔을 그녀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 미안한 건 나야. 네가 그렇게 마음 아파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친구들이랑 선생님이랑 다들 얘기해 주셨는데도 눈치 하나 못 채고.”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했던 친구 한 명.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지금까지 하나도 모른 채 나를 오해하도록 그냥 놔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머리와 등 위로 쏟아지던 빗줄기 멈췄다. 빗소리는 여전히 선명히 들렸다. 머리를 숙인 채로 앞을 보지 않았지만, 수진이가 자기 우산을 내 위로 받쳐주고 있다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물론, 자기는 비를 맞고 서 있겠지.


“왜... 왜 민준이가 사과를 해? 저번에 젠가 게임 할 때 벌써 다 봤어. 마음속으로 아직도 나한테 화가 나 있다는 거 다 알고 있다고. 내가 너였더라도 진짜 화났을 텐데 네가 안 그럴 리 없잖아.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면서 숨기는 게 난 더 힘드니까 그냥 지금까지 나 때문에 힘들고 기분 나빴다고 솔직하게 말하란 말이야!”


수진이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녀의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을 타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그저 우산만을 나에게 들며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 나의 진심이 부족했었던 것일까.


나는 조용히 손을 뻗어 그녀가 건네준 우산대를 천천히 밀어 주었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할게.”


수진이가 다시 우산을 이쪽으로 건네주려고 하였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접었던 우산을 다시 폈다. 그녀 성격이라면 계속해서 우산을 씌우려고 고집을 피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우산을 쓴 것을 본 그녀는 우산을 쓰고 조용히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네가 어떻게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네가 지금 나한테 생각하는 건 전부 오해야.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너를 마음에 담아두거나 그런 적은 없어. 아니...”


고개를 흔든 후, 말했다.





“오히려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어.”




고맙다.


이런 분위기에서 갑자기 고맙다는 말을 해봤자 그녀가 납득해 줄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찌됐건 그녀를 만나면 꼭 이 말을 먼저 전해주고 싶었다.


“고맙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 자꾸 거짓말 할래!?”


오히려 나의 이런 태도에 화를 내는 그녀.


터놓고 말할 시간이 필요했다. 방금 그녀가 나에게 터놓고 말할 수 있도록 잠자코 들어줬었던 것처럼 말이다.


“수진아.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 물론 지금 하는 말에 네가 이해를 못 할 수도 있어. 하지만 일단은 내 얘기를 끝가지 들어 줘. 비록 지금 이해가 안 간다고 해도 일단 끝가지 그냥 들어준 다음에 말을 해줘. 잠깐 시간 내서 들어줄 수는 있잖아? 얘기 다 하고 네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들어 줄 테니까, 일단은 지금 당장만 좀 부탁할게.”


그러고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말해.”


그러자 마지못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하지만 이걸로 됐다. 조금이라도 내 얘기를 들어줄 마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 덕분에 지금 그래도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물론 내가 지금도 그렇게 남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어렸을 때랑 비교해보면 엄청 바뀐 거거든. 진짜 내가 처음 초등학교 들어왔을 때는 말도 아니었거든. 너도 알고 있잖아? 처음 만났을 때 맨날 혼자서 놀이방에서 책 보고 장난감가지고 놀고 했던 거. 맞아, 그 때 진짜 나는 혼자 놀고 그랬어. 다른 애들이랑 너무 안 어울리고 그런다고 엄마한테도 맨날 걱정 들고.”


아무리 다 지나간 일이라고 해도 이런 어렸을 적 인간관계 이야기는 남들 앞에서 그다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걸 바꾸어 준 ‘그녀 앞’이니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네가 와서 같이 놀게 되면서 정말로 많이 바뀌었어.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귀찮다고 생각했었어. 내가 처음 너랑 만나서 젠가 했을 때 기억 나? 그때는 젠가 탑 쌓는 것도 귀찮아했었거든. 그렇게 내가 남들이랑 그렇게 어울리는 걸 싫어했어. 하지만 네가 막상 해보면 재미있다고 해가지고 어쩔 수 없이 한 건데, 그렇게 같이 놀다 보니까 나중에는 마음이 바뀌더라고. 그리고 우리 어렸을 적 밤늦게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녔잖아.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기 싫다는 데도 네가 계속 그러지 말고 한 시간만 더 놀자 하면서 돌아다니고, 결국 늦게 와서 엄마한테 잔소리 듣고. 처음에는 정말 귀찮았는데, 계속 너랑 그렇게 어울리다 보니까 오히려 혼자 놀 때는 몰랐던 재미도 알게 되고 그러더라? 아마그때부터였을 거야. 내가 남들과 어울리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 한 게.”


수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까지 알 리는 없었지만, 분명 내가 아는 그녀라면 지금 하는 말을 마음 깊이 생각하며 들어주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내가 이렇게 홍보동아리에 있는 것도 네가 말해준 덕분이야. 사실 내가 처음 동아리 생각했을 때는 솔직히 활동 같은 건 관심 없어가지고 그냥 적당히 그냥 시간 때우는 데로 들어가려고 했거든. 그 때 아영이가 나한테 말 안 해줬다면, 홍보동아리? 그런 동아리가 있는 줄도 몰랐을 걸. 맞아... 그러고 보니까 아영이 걔도 이런 게임 좋아했었지? 그래서 너도 홍보동아리 들어갔던 거고, 그리고 나도 동아리에 들어오게 한 거고.”


아영이가 마치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듯이 그렇게 말을 걸어왔던 그 날 내가 느꼈던 위화감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수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른 척 하며 나를 맞이해 주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아영이한테 만나고도 원래는 ‘진짜 딱 홍보동아리에 들어가야겠다.’ 하는 생각은 ‘원래는’ 없었어... 그 날 아영이랑 말싸움 했던 거 너도 알고 있잖아. 그래가지고 기분 잡쳐서 나갔던 거... 무슨 말 하려는지 알겠지? 왜 내가 너를 고맙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왜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조심스레 수진이에게 물어보았다.


“아니, 모르겠어.”


... 모른다고 말했다. 모를 리 없는데도.


그녀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잊어버렸을 뿐이다.


“수진이 네가 얼마나 나한테 마음을 써줬는지 모르는구나?”


그렇다면 상관없다. 그녀가 기억할 수 있게 다시 한 번 도와주면 될 일이다.


“그 날 도서관 앞에 왔었던 거. 사실 처음부터 나랑 얘기하려고 왔던 거지?”


아영이와 처음부터 말다툼을 했던 날. 나는 두 번 다시 그 녀석들과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날 저녁, 나는 도서관에서 나오는 길에 수진이와 ‘우연히’ 만나서 고등학교 들어서 그녀와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나에게 이번 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주고 되도록 홍보동아리에 들어오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다시 말하는 거지만, 나는 그때 정말 네가 그 수진이라는 걸 몰랐어. 의심조차 안 했고. 그저 아영이랑 싸운 것 때문에 기분만 잡쳐가지고 말이야. 아마 내가 그때 무슨 생각 했는지 잘 알거야. 그 때 수진이 네가 와서 말 안 해줬으면 홍보동아리라는 건 정말 두 번 다시 생각도 안 했을 거야. 그럼 당연히 너랑 만났을 일도 없었을 거고. 네가 언젠가 따로 말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서로 모르는 사이로 계속해서 지내고 있겠지.”


그녀도 억지로 나랑 얽매이느니 오히려 서로 모르고 지내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수진이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들은 학교에서도 서로를 모른 채(어쩌면 수진이만 나를 가끔씩 의식한 채) 정말 그렇게 각자의 길을 걸어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넌 나한테 ‘기회’를 줬어.”


그렇게 우리들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기로에서, 수진이는 둘도 없는 기회를 주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받아줄 기회를.


“그런데 그렇게까지 기회를 줬는데도 정작 난 아무것도 모르고. 하여간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니까. 그래, ‘그 날’도 그랬잖아. 그 날 말 못할 일도 있고 나름대로의 사정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냥 애들처럼 심심하다고 그냥 너한테 철없이 놀자고 하다가 결국 너 짜증나게 하고, 운동장에서 또 무턱대고 말 하다가 진짜로 화나게 하고...”


수진이의 속마음도 모른 채 그저 다시금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에 덜컥 손을 잡았던 그 날. 이제 한참 어른이 되어가는 그녀의 사정도 모른 채 철없이 굴었던 행동이 너무나도 미안했다.


“아니야. 그건 오해야. 그건 네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었어. 그건 그냥 -”


“말 안해도 알아. 물론... 그 때는 하나도 몰랐고.”


그런 걸 진작 알았으면 내가 그 때 벌써 사과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사를 가는 그 날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린 마음에 화가 났을 수진이 앞에서 사과하는 게 무서웠던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인정하면서 사과를 해야 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정작 그녀와 가장 오랫동안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으면서 나는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니지, 그렇게까지 알면 내가 지금까지도 너인 걸 모르고 바보같이 헤매거나 하진 않겠지.”


그리고, 그것은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아, 물론 수진이 너인 걸 전혀 의심 안 한건 아니야. 예전에 정류장에서 너 혼잣말로 뭐라고 하면서 막 흥분하고 그랬었잖아. 그 때 사실 그거... 네 얘기 하는 거였지?”


수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번에 비 오던 날 문구점에서 우연히 만났던 그 때도... 사실 문구점 아주머니께도 미리 말씀 드린 거고... 나한테는 거짓말로 모르는 척 해달라고.”


그녀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생각한건 딱 맞잖아? 그런데 나는 그렇게 감은 다 잡고 의심하고 있었으면서 정작 네가 그 수진이다 하고 한 번도 확신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나중에 네가 아니라고 말하는 거 보고 내가 잠시 착각을 했다고 생각했거든. 되게 웃기지 않아?”


한마디로, 나에게는 결단력이 없었다.


“그건 내 탓이잖아... 내가 그때 더 자신 있게 너한테 말 했어야 했는데.”


여전히 자기 탓을 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너는 이미 할 만큼 다 했어. 너 요즘 엄청 고생 했잖아. 윤정이가 너 보면서 ‘지쳤다’고 나한테 얘기하더라.”


- 성능 좋은 윤정이 탐지기의 생각에 따르면, 수진이가 요즘 좀 ‘지쳤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쩌면 고등학교 들어와서부터는 나보다는 더 가까이 지냈을지도 모르는 윤정이의 숨김없는 한마디.


“너도 말 했잖아. 네가 나랑 얘기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얻을까 해서 아영이랑 윤정이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했다고. 선생님께도 부탁하고, 회장한테도 부탁하고... 그리고 심지어는 우리 엄마한테도 부탁했다고.”


“응.”


“다들 나한테 얘기를 해 주셨어. 비록 네가 자기 일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으니까 직접 너를 언급하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를 이해해 달라는 그런 식으로 나한테 자주 얘기를 해주더라. 분명 다들 네 힘든 사정을 생각해주고 어떻게든 내가 마음을 돌릴 수 있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 하지만 내가 너무 눈치없게 굴어가지고...


수진이는 나와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말 할 수 있는 기회 앞에서 번번이 좌절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면서까지 자기를 도와달라고 용기를 내서 얘기를 했다. 그런 용기와 결단이 없이 과연 수진이가 우리 엄마에게까지 전화를 하면서 부탁을 했었을까.


그것만으로도, 이미 수진이는 할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아니, 설령 아니라고 하더라도 줏대와 결단력이 없는 내가 감히 그녀에게 더 할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물어볼게. 아직도 내가 널 싫어한다고 생각해? 내가 아직도 너를 마음속에 담아둔다고 생각하고, 괜히 죄책감 느껴서 그러는 거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유도심문’처럼 물어보지 말고 솔직하게 진심을 다 전하자.


“아니야. 지금까지 진짜 나랑 애기하면서 노력하고 마음고생 했던 건 너야. 나는 고등학교 와서 너 인거를 모르고 지내왔지만, 수진이 너는 나인걸 알고 있었잖아. 말했지만 나는 정말 너에 대해서 별 생각도 없었어. 솔직히 네가 동아리 올 때도 ‘어, 옛날 친구랑 이름이 똑같네.’ 이런 생각만 했었지. 그런 속사정도 모르고 그냥 멋모르고 내 식대로 해석해서 그냥 넘어가다가 그것 때문에 오히려 네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 비록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윤정이한테 내가 확실히 들었거든. 전화하면서 걔가 나한테 그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한 적은 처음이더라. 너도 알고 있지? 윤정이는 보이는 그대로 솔직한 성격인 인거. 내가 얘기 들었어. 너도 ‘그 날’ 카페에서 만나서 윤정이랑 얘기했다는 거?”


내 말은 듣지 않아도 좋다. 그녀가 ‘믿을 수 있는’ 친구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너는 충분히 할 걸 다 했어. 솔직히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고 하면 아예 말도 안하는 게 편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용기를 내서 나랑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거... 나는 그것만으로도 진짜로 고마워. 그러니까 사과할 건 네가 아니라 나야. 내가 그 전에 이해를 해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진짜 네 속도 모르고 이렇게 행동한 거, 진짜로 사과할게.”


...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나도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었다.


그러나 수진이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실감이 안와? 나한테 계속해서 이렇게 솔직히 말하려고 노력한 네 모습이?”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여전히 훌쩍이면서, 눈물을 훔치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한 말을 제대로 못 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던 참, 우연히 아까 여기 올라와서 보던 곳으로 시선이 향했다.


“저기 한번 봐 볼래?”


나의 말에 그녀도 조심스레 시선을 저 쪽으로 향한다.


“네가 어디 숨어있는지 ‘힌트’를 주지 않았으면 여기 왔을 일이 있을까? 네가 아무 말도 안 했으면 누가 상식적으로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 학교 수업가지 째 가면서, 그것도 위험하게 뒷동산에 올라가겠냐?”


이런 몰상식한 짓, 나도 하고 싶을 리가 없다. 가방 메고 우산 들며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손도 어깨도 다리도 여기저기 쑤셨고 이미 발은 양말까지 다 젖어서 말도 못 하게 찝찝했다. 이미 교복 셔츠도 바지도 만신창이이다. 나에게 있어서 비 오는 날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는 것이 최고의 호사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런 날씨에 어디 나돌아 다니는 것은 정말이지 딱 질색이다.


“아직도 내가 너를 마음에 담고 있다고 생각해? 난 너 덕분에 지금 여기 이렇게 같이 서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지금 여기에 서 있다.


그녀가 먼저 말해주지 않았다면, 지금 ‘결코’ 서 있을 리 없는 이곳에.


“모르겠어.”


수진이는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했는데 왜 네가 잘못했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가. 그렇잖아... 이건 내 잘못이지 네 잘못이 아니잖아.”


“수진아...”


그렇게까지 다 말해줬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자책하고 있었다. 아직도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문득 한 가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물론 이번 일은 내 잘못이다. 나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말해도 수진이는 이번 일을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할 말을 그렇게 다 했는데도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더 이상 내 생각을 그녀에게 강요할 수 없다.


아니... ‘강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우리 이렇게 할래?”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분명 수진이도 납득해줄 것이라 믿는다.


나의 제안에 그녀도 조심스레 다시 이쪽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나는 마음으로 고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번 일에 대해서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거든. 네가 그렇게 지치도록 힘들게 보내왔는데 그런 마음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그렇지만 너는 여전히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지금도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고 있는 거잖아. 그러면, 우리 더 고민하지 말고 이렇게 하자. 서로 그렇게 미안한 거면, 차라리 서로 그렇다고 인정하고 화해하자. 너랑 나랑 서로 그 동안 오해하고, 잘못한 거 서로 인정하고, 지금 이 순간 너랑 나랑 같이 너그럽게 용서해 주자. 어때? 그거면 괜찮겠지?”


“...”


그간 서로를 오해해 오면서 자기 잘못이라고 믿어왔던 우리 둘.


그렇게 지금 우리는 이 자리에서 만나 서로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가 자주 즐겨 했던 게임과 무척이나 닮아보였다.


어느 한쪽이 이기면 어느 한쪽이 지는 그 내기 게임과 말이다.


어쩌면 우리들이 지금 이렇게 서로를 보며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는 말하는 건, 오래 전부터 그렇게 몸에 배어온 ‘습관’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내기 게임과는 분명히 다른 게 있다.


게임에서는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것’이 가장 깔끔하지만, 이것은 다르다.




여기서 가장 깔끔한 것은, ‘같이 승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몇 초 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보던 그녀가 마침내 나를 보며 말했다.


“정말... 용서해 주는 거야?”


여전히 자신을 의심하며 되묻는 그녀를 보며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라고 말하려고 하던 참, 나는 말을 삼켰다. 분명 이렇게 말하면 또 분명히 수진이는 그럴 리 없다면서 나한테 되물을 것이다. 계속해서 고리를 묶을 필요는 없다.


지금은 그저 수진이가 생각하는 대로 인정해 주면 될 일이다.


“응, 용서해 줄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할 것은 먼저 인정하자는 생각으로.


잠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던 수진이는,


“그래... 그럼 그렇게 할게...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흐윽...”


이내 울먹이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나도 고마워.”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고마워.


그것은, 우리가 감정다툼을 했었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서로 오해를 떠안고 가슴아파하며 지내왔던 길고 긴 시간의 끝을 알리는 한 마디였다.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를 5년 만에 다시 만난 오늘.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용서해주었다.




- 꼬르륵.




... 참나, 이런 상황에서도 배에서 신호가 오냐. 사람 분위기 파악도 안 하고 자기 할 말만 내뱉고... 하여간 내 몸이지만 내 스스로도 참으로 얄궂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점심에 사둔 샌드위치 딱 한입 먹고 있던 참에 윤정이가 와가지고 결국 아무것도 못 먹었었지.


“흐윽... 배고파?”


아직도 눈물이 가득 고인채로 훌쩍이면서 쓸데없이 사사로운 걱정을 하는 그녀.


“됐어... 뭘 배가 고파.”


“그러고 보니 점심 안 먹고 온 거야? 아무리 배고파도 밥은 먹고 오지. 흐윽.”


“네 걱정 하는데 밥 생각이 나겠냐? 괜찮으니까 신경 안 써도 돼.”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저어 보였지만, 사실 배가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아까까지는 수진이 찾는다는 생각에 별다른 허기도 없었는데, 막상 수진이 찾고 나서 사과도 하고 마음이 진정되니까 배고픔을 견딜 수가 없었다.

“민준아. 사실 별거 아니긴 하지만 너 만나서 사과하면 주고 싶었던 게 하나 있는데 지금 줄까?”


수진이가 이쪽을 잠시 쳐다보더니 말했다.


“... 너 기분은 괜찮아?”


“응... 이제 좀 나아졌어. 그것보다 줄까? 먹는 건데?”


눈에 고인 눈물을 애써 닦으면서 말하는 수진이. 그래, 자꾸 무거운 분위기 잡는 것도 사치다. 그런 생각에 뭔가 하고 물어보려고 하던 참, 문득 아침에 일이 떠올랐다.


먹을 거 하니까 갑자기 떠오른 것.


“저 수진아. 지금 나도 생각난 건데, 사실 나도 너한테 사실 주고 싶은 게 있었거든?”


“어, 진짜?”


지금 생각났다. 혹시나 오늘 수진이랑 이야기를 잘 나누게 되면 어렸을 적 이야기도 하면서 같이 먹을까 하고 무심결에 챙겨 왔던, 추억이 담긴 ‘그거’ 말이다.


“그럼 모처럼 옛날 기분도 내고 이렇게 하자. 하나 둘 셋 해서 같이 건네주는 걸로.”


어차피 우리를 보는 사람도 없겠다. 모처럼 옛날 친구도 만났으니 어렸을 때처럼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응. 그러자...”


그런 마음을 바로 알았는지,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만나 다시 사과한 기념... 이라고 하기에는 분위기가 솔직히 좀 껄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에전부터 꼭 그녀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소소하지만 추억이 담긴 먹을거리. 분명, 수진이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 준비 된 거지.” “응.”


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수진이도 한 손으로 치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뒤로 조용히 감추었다.


““하나, 둘, 셋...””


우리들은 동시에 그렇게 말하고 서로 숨겨둔 것을 앞에 내밀었다.


““어.””


그리고 마치 짜고 친 듯이 함께 놀랐다.


수진이가 내 앞으로 조용히 내민 것은 어렸을 적 그녀와 즐겨 맛보았던 그 백 원짜리 초콜릿들이었다. 하트 모양, 별 모양, 동전 모양, 그리고 물고기 모양. 어렸을 적 수진이가 보여준 노트에 적혀 있었던 그 그리운 초콜릿들이 종류별로 빠짐없이 한 손에 다 모여 있었다.


예전에 문구점에 갔었을 때도 떠올렸던 거지만, 그 많던 간식들 중에서도 유독 우리들이 가장 좋아했었던 녀석이다. 어렸을 적, 그것이 아주머니의 배려였던 것도 모르고 운 좋을 때는 백 원짜리 하나로 열 개 넘게 뽑아 먹으면서 철없이 즐거워했던 그 추억의 초콜릿. 한 번 손을 대면 술술 계속해서 뽑던 수진이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물론, 그런 추억에 젖어든 사람은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이거 어디서 본 과자인데... 혹시 그 때 엄청 유행했던 그 초코 과자 아니야? 와, 나 이거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먹어 봤는데.”


편지로 그녀와 만나기 전 문구점에 우산을 사러 갔을 때 문구점에서 아주머니께 받았던 초코 과자. 차마 저번에는 나눠먹지 못한 채 넣어두었다가 오늘 아침에 우연히 눈에 들어왔던 녀석이다. 혹시나 사과를 하게 되면 수진이와 옛날 생각도 하면서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도 할까 하고 바지에다 살짝 챙겨온 것이다. 하루 종일 내 바지 속에 넣어두었는데도, 하나도 안 부서지고 멀쩡히 그대로인 게 신통하다.


“맞아. 그 때 새로 과자 나와 가지고 수업시간 끝나고 너한테 와서 같이 먹으러 문구점에 가자고 했잖아. 근데 너 그때 바쁘다면서 그냥 가버렸었잖아.”


그런 인기 있는 과자. 수진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꼭 같이 먹어보고 싶었었는데...


“그러게... 그땐 왜 그랬을까. 나도 나중에 먹어볼까 했는데 내가 그 과자를 모르니까. 진짜 먹어보고 싶었던 과자인데. 그때는 이거 엄청 인기 좋았지?”


“당연하지. 처음에 문구점 갔을 때는 나도 줄서서 겨우 사 먹었어. 그러다 나중에 너 바쁜 것 같아 가지고 대신 좀 사줄까 하고 그 날 다시 문구점 가봤는데 그때는 벌써 다 떨어져서 없었더라.”


그 때의 생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그 과자를 다시 사러 갔다가 거기서 수진이랑 만나가지고 말싸움하고 헤어지게 됐는데 기억이 안 날수가 없다.


“왜 그래?”


혹시... 얘도 그 때의 일이 또 신경 쓰여서 그런 건가.


“아... 그래서 너랑 그 시간에 만났던 거구나. 난 원래 그날 안 만나려고 일부러 그 시간에 왔는데 뜬금없이 너랑 만나가지고.”


...?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가 지금까지 몰랐던 뭔가를 지금 안 것 같은 표정이었다.


“뭘 계속 신경을 써. 화해도 했겠다, 게다가 예전부터 먹고싶었던 과자도 나눠주고.”


사과도 했으니 이제 그 날의 일은 더 이상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수진이 앞에 과자를 건네주었다.


“그렇지...”


그 과자를 받아드는 수진이의 얼굴이 확 펴졌다. 기분 펴진 수진이의 모습을 보니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 다행이다. 이럴 줄 알고 챙겨오길 잘 한 것 같다.


그녀에게 과자를 건네주고는 나 역시 수진이의 초콜릿을 받아들었다. 다양한 색의 은박지에 싸인 초콜릿들. 용돈 천원에도 행복해하던 그 시절의 우리들에게는 이보다 더 기억에 남은 간식이 없다.


그런데 수진이는 과자를 집어 들더니 먹지는 않고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본다.


“뭐 하는 거야?”


“그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데, 네가 그때부터 주고 싶었다고 말 했었잖아. 음...”


수진이의 미심쩍은 행동. 뭐지...? 혹시 내가 착각하고 다른 과자를 가져왔나?




“너 혹시 이거 ‘5년 전에 사 놓은 거’ 지금까지 보관해 놨던 거야?”




...?


얘는 갑자기 뭔 쓸데없는 소리 하는 거야.


하고 생각하려던 참, 나는 뭔가 오묘한 기분을 직감했다.


수진이의 말투는 어딘가 흠이 있었다.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거는 말투가 아니라, 약간 ‘짠 듯한 투로’ 말하는 그런 말투 말이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하고, 이렇게 답했다.


“어 어떻게 알았냐? 맞아, 사실 그 때부터 너 만나면 주고 싶었던 거라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잘 보관해놓다가’ 오늘 챙겨 온 거야.”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수진이에게 거짓말을 했다.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오오, 좋다. 5년 동안이나 숙성시킨 초코 과자라고, 이거 무슨 맛일까?”


“대박이지, 그거. 그거 알아? 오렌지주스도 몇 년 숙성시키면 양주만큼이나 비싸대?”


“오, 진짜? 그럼 이것도 맛있겠는데... 아, 그럼 나 이거 안 먹고 팔아도 돼? 5년산이니까 한 10만원에 팔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거 지금 팔면 손해야. 그거 5년 더 숙성시키면 100만원으로 뛰거든. 요즘은 10년 묵은 산삼보다 과자가 더 인기라던데.”


그렇게 우리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뚝 끊겼다. 우연히 과자를 쳐다보던 우리들의 시선이 딱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던 수진이는,


“푸훗...”


피식 하면서 웃었다. 아직도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 고인 주제에 이제 와서 웃기는.


“아하하... 민준이 진짜 뻔뻔하다. 윤정이 말이 진짜였어. 사람을 대놓고 속이고. 후훗.”


“야, 누가 누구한테 그런 말을 해.”


말은 그렇게 해도 스스로도 어이가 없긴 하다. 아영이나 윤정이에게 이 소리를 했으면 헛소리 그만하라고 하면서 대반 핀잔을 줬겠지.


하지만 나와 수진이는 이런 농담을 주고받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도 틈만 나면 뭐가 재미있다고 이런 시시껄렁한 농담을 자주 주고받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런 농담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것. 그것은, 그 동안 멀어졌던 우리 사이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는 ‘좋은 징조’라고 생각한다.


“지금 먹어봐도 돼?”


“응.”


수진이는 조심스레 내가 건네준 초코 과자의 봉지를 뜯고는 조심스레 한입 입에 물어넣었다. 5년 전 그 날부터 꼭 전해주고 싶었던 그 초코 과자를 우물우물 거리는 수진이를 보니 남다른 감회가 들었다. 계속해서 주고 싶었다고 생각했지만 앞으로 평생 주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그 과자. 지금 그녀가 마침내 그 과자를 건네받고 조심스레 맛을 보고 있었다.


“어때?”


아직 다 먹지도 않은 그녀를 보면서 무심코 실례되게 먼저 물어봤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맛보던 것을 씹어 넘기고 입을 열었다.


“확실히 애들 때 먹었던 그런 맛이네. 뭐라고 할까...”


예전부터 먹어보고 싶어 했던 그 과자를 맛본 수진이의 평가.


“싸구려?”


싸구려... 뭔가 지나치게 군더더기 없는 솔직담백한 평가였다.


“뭐야... 기껏 구해왔더니 싸구려라니...”


뭔가 그래도 오래전부터 먹어보고 싶었던 걸 맛본 만큼 남다르다고 하던지 그런 평가를 해 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돌 직구를 던질 줄이야.


그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비록 시간과 함께 그녀는 정말로 많이 변했지만, 어렸을 적 그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은 구석도 조금씩은 남아있다는 것을.


“후훗, 그래도 이 가격에 이 정도면 맛있네. 네가 왜 그렇게 이 과자를 주려고 했는지 알겠네. 사실 그 때 얘기 듣고 먹어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는데. 이런 것도 챙겨온 덕분에 먹어보고. 고마워.”


그렇게 미소를 짓더니 다시 한 입 맛보는 수진이. 그래도 좋아하는 것 같으니 다행이다.


“그럼 나도 초콜릿이나 먹어볼까.”


수진이가 건네준 초콜릿 네 개. 처음 먹어보는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시절 이래로 먹어본 적은 없었다. 맛이 어떤지조차도 가물가물하기에 궁금하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조심스레 초콜릿 하나를 까서 입에 넣으려던 참, 우연히 은박 포장지에 눈이 갔다.

“어 아무것도 안 쓰여 있네?”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 은박 포장지. 예전에는 초콜릿 은박지 뒷면에 당첨이라는 글귀 같은 게 써져 있어가지고 그걸 보여주면 초콜릿을 또 뽑을 수 있었는데.


“어, 진짜다. 예전에는 여기에 당첨이면 ‘하나 더’라든지 ‘당첨’이라든지 써져 있었는데? 요즘 나온 초콜릿에선 없어졌나보다. 아쉽네...”


수진이도 내가 보여준 초콜릿 은박지를 보고는 잔뜩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이걸 보고 놀란다는 건 얘도 몰랐나 보다. 사실 이 초콜릿의 묘미는 백 원짜리 하나로 초콜릿을 몇 개씩이고 뽑아먹을 수 있는 것이다. 어렸을 적 추억을 되새기면서 혹시나 그 때처럼 당첨이 나올지 안 나올지 마음속으로 내심 기대했는데, 그건 이제는 정말로 과거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뭔가 좀 아쉬운 생각이 든 나머지 나는 입을 열었다.


“잠깐만. 그럼 너 이 초콜릿 설마 이거 최근에 샀다는 거야? 와, 난 5년 전부터 준비해왔는데... 수진이는 준비성이 없네.”


“너 5년 된 과자를 네가 직접 먹어 보고 장담하고 하는 말이지?”


“하하... 으이구, 농담도 못 하냐?”


“후훗, 오늘 민준이 아주 이런 농담에 신들렸네.”


결국 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서운한 마음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서운하지만은 않았다. 물론 또 초콜릿을 뽑거나 하는 재미는 이제는 즐길 수 없게 되었지만,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이 초콜릿은 즐거웠던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해 주고, 그렇게 우리 사이를 계속해서 이어주고 있으니까.


그런 고마움이 담긴 초콜릿을 조심스레 입에 집어넣고 맛을 보았다.


“어때?”


비록 뽑아먹는 것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지만, 지금도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 초콜릿. 만약 이 초콜릿에 또 한 가지 바뀐 게 있고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응... 확실히 싸구려 맛이다.”


그것은 나의 입맛이랑, 이 초콜릿 그 자체의 맛일 것이다.


“푸훗... 뭐야, 너도 결국 생각하는 건 똑같네. 그것 봐, 아까는 뭐 나보고 싸구려라고 하더니,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너무나 친숙한 맛. 역시 말보다는 직접 경험하는 게 답이다.


“야, 진짜 네가 아까 왜 싸구려니 그런 소리 했는지 바로 알겠다. 이게 뭐라고 해야 할까. 진짜 별로 그렇게 맛있지는 않아. 이건 진짜 초콜릿이라기보다는 그냥 쉽게 말하면 설탕 맛 같다고 해야할까? 진짜 네가 말한 대로 그런 싸구려 맛이다. 근데 되게 맛은 있어!”


초등학생 때 그렇게 즐겨먹었던 이 초콜릿. 이제는 고등학생이 되어 용돈도 더 받게 되고, 자연스럽게 먹는 간식도 문구점에서 편의점이나 슈퍼로 옮겨지면서 어느새 ‘진짜 초콜릿’ 맛에 길들여진 나. 그렇게 입맛은 고급지게 바뀌었지만, 이 조그마한 추억의 백 원짜리 초콜릿의 맛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다.


그렇게 바뀐 입맛만큼이나, 우리들은 어느덧 이렇게 자랐다.


“기억 나? 그때 내가 초콜릿 또 뽑아 줄 때마다 ‘와아아!’ 하면서 호들갑 떨었던 거.”


어딘가 자랑스러워하는 말투로 얘기를 꺼내는 수진이.


“아니... 기억 안 나는데.”


“그때 나보고 맨~날 고맙다고 말했었는데. 아아... 방금 미안하다고 한 거 취소해야겠다.”


역시, 얘는 내가 알고 있는 수진이가 맞다.


“당연히 농담이지.”


“나도 농담.”


어느새 자연스럽게 섞인 농담과 고백이 우리 사이를 오고갔다.


비록 그렇게 몸은 자랐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그 시절의 순수함을 품고 있었다.


덕분에 멀어졌던 우리들 사이도, 그 시절 티 없이 친했던 그 시절처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비 언제 그쳤네.”


“어, 진짜다.”


아까부터 비가 조금씩 잦아드는 기미가 보였는데, 보아하니 어느새 비가 완전히 그쳐있었다.


“비가 그치니까 확실히 잘 보인다.”


나는 우산을 접어놓고 뻥 뚫린 하늘을 배경으로 우리 동네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하늘은 구름이 잔뜩 낀 채 우중충했지만, 먼지들이 씻겨 내려가서 그런지 비가 그친 동네는 오히려 더 환한 느낌이었다.


“진짜 오랜만에 보네. 그 때는 봄이었지?”


우리는 그렇게 서로 나눈 간식을 맛보며 비 그친 우리 동네를 구경하였다. 그리고 잠시 그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싸구려 초콜릿과 초코 과자. 진짜 초콜릿에 길들여진 입맛들이 어쩌다가 그냥 이 초콜릿을 먹었다고 하면 이걸 맛있다고 생각이나 했을까. 그건 설령 나라고 해도 ‘같은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지금 나눠먹은 간식은, 그 시절의 추억을 담은 ‘특별한’ 맛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간식을 스스로 우리 동네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 이곳에서 즐기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 추억으로만 남았던, 어렸을 적 그녀와 함께 말이다.


소꿉친구. 어렸을 적 순수한 마음으로 놀면서 함께 자라온 친구.


물론 수진이가 내 유일한 소꿉친구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진이는 내가 아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랐다. 어떤 모습으로 봐도 정말 특별했다. 그녀는 가장 먼저 나와 함께 놀았고, 가장 가까이서 나를 대하고, 가장 오래 내 곁에 머물렀었다.


그리고, 그 정든 사이만큼이나 가장 마음 아픈 상처를 주고받았다.


비록 오늘 서로 사과를 하고 어렸을 적 이야기도 나누긴 했지만, 이 짧은 이야기만으로 그 시절 서로 겪었던 오해와 아픔을 전부 털어 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 나는 수진이에게 못 다한 이야기들이 많다. 비록 말은 안 하더라도, 그건 수진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길고 길었던 공백만큼, 그리고 두텁게 쌓여온 앙금만큼, 우리들은 앞으로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별로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기대된다. 그건, 우리들에게는 어린 시절 함께 놀면서 쌓아온 수많은 추억과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그 시절 ‘공감대’라는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 다리를 통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공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계기로 서로에게 그 동안 쌓였던 의심과 미움을 하나 둘 털어낼 수 있다면, 분명 우리가 친했던 그 시절처럼 다시 친해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제 내려가자. 지금 엄마랑 선생님이랑 애들 다 찾고 있겠지?”


마지막 초콜릿을 입에 넣었을 때 수진이가 말했다. 아까도 눈물을 머금고 있던 그녀는 이제 눈물을 다 닦고 항상 보아오던 자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너 아마 잔소리 말도 못하게 들을 걸.”


“괜찮아. 처음부터 그건 다 알고 있던 거니까.”


그런 걱정되는 이야기를 듣고도 수진이의 표정은 오히려 아까보다 밝아보였다.


남들은 왜 그럴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딱 봐도 안다.


그런 문제는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는, 매우 ‘사소한’ 일이니까.


“그래, 슬슬 내려가자.”


나는 이렇게 말하며 마지막으로 우리 동네를 죽 둘러보았다. 어렸을 적 수진이와 함께했던 추억이 깃든 장소. 우리들은 오늘 또 하나의 추억을 여기에 심었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게 해준 이곳을, 이제는 두 번 다시는 잊지 못 할 것이다.


그런 가슴 벅찬 기분을 마음을 품은 채 내려가려고 하던 참,


“민준아.”


수진이가 나를 불러 세웠다.


우산을 공손이 접은 채 손을 모으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수진이.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진짜로.”


5년 만에 다시 만난 소꿉친구의 인사.


고등학교 와서 만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인사.


비록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미 가슴은 한껏 벅차올랐다.


“응. 오랜만이야.”


나도 그 친구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 날, 하늘로 날아갈 뻔했던 풍선을 잡고 다시는 놓지 않겠다고 하면서 다짐했었다.


그 끝에 무엇이 써져있는지도 모른 채 언제까지나 소중히 꼭 잡고 있었다.


어느 날, 그렇게 꼭 잡던 풍선 끝에 써져 있는 조그마한 글씨를 보았다.


거기에는 ‘수진’이라는 반가운 친구의 이름이 써져 있었다.





- 14화. 숨바꼭질, 그리고... (하). (끝).


작가의말

 코노미카입니다.
 이번편을 마지막으로 13~14화에 걸쳐서 제법 길었던 이번 스토리를 정리했습니다.
 제가 처음 스토리를 구상할 때도 이 부분을 언제쯤 넣으면 좋을까 하고 계속 생각했었고, 무엇보다 이 작품을 꾸준히 쓰면서 과연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 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래도 이 부분을 마무리 지을 수 있어서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즐겁게 감상하셨기를 바랍니다.
 우내게 연재는 계속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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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15화. (2) 17.07.22 203 1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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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4) +1 17.06.27 271 1 49쪽
41 14화. (3) 17.06.21 267 1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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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10화. (4) 17.02.24 265 1 21쪽
25 10화. (3) 17.02.13 411 2 36쪽
24 10화. (2) 17.02.04 441 1 31쪽
23 10화. (1) +2 17.01.24 788 1 29쪽
22 9화. (2) 17.01.21 400 1 37쪽
21 9화. (1) 17.01.09 653 1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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