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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미카의 서재

우리 동아리에서는 내기 게임을 잘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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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미카
작품등록일 :
2016.10.17 22:58
최근연재일 :
2019.03.21 23:16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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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11
추천수 :
86
글자수 :
998,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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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1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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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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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11화. (3)

DUMMY

※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작중 내에서 표기된 인물, 지명, 단체 등은 모두 허구적 요소입니다.







11화. 누가 누가 강하나 (3)




수진이와 윤정이가 서로 마주 앉았다. 나는 둘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잘 보기 위해 둘이 마주 보고 있는 옆쪽으로 위치를 바꾸었다. 아영이는 아이스커피를 또 한 모금 입에 대면서, 그 자리에 앉은 채로 둘을 지켜본다.


윤정이가 제안한 것은 방금 딱밤을 때리는 것에서 모티브를 받은, 이름 그대로 ‘딱밤 참기’라는 게임이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먼저 상대를 때리게 된다. 딱밤을 때린 후에 맞은 상대방은 3초 동안 소리를 안 내고 버텨야 한다. 그렇게 잘 버티면 이번에는 상대방이 공격을 한다. 이렇게 해서 먼저 소리를 내는 쪽이 지는...


한마디로 미련한 게임이다.


도대체 이 게임을 왜 제안한 것인지, 또 왜 받아들인 것인지를 모르겠다. 윤정이는 쓸데없는 복수심 하나를 내세우며 생각 없이 제안한 것인데, 의외로 수진이는 그걸 또 흔쾌히 받아들였다. 졸지 않았던 수진이로써는 이겨야 본전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제안을 받아들인 걸까.


... 상황 자체가 납득은 안 가지만 게임은 재미는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이런 말하기는 좀 미안하지만 어차피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거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번 기회에 수진이가 제대로 한 번 저 버릇없는 윤정이에게 혼쭐을 좀 내줬으면 한다.


“소리를 냈는지 판단은 나랑 민준이가 한다. 원래는 표정 변화도 없어야 하는데 그건 조금 무리일 것 같으니까 소리 안내는 정도까지만 한다.”


나랑 아영이는 심판 겸 관중이다.


“오케이. 수진아, 미안하지만 윤정이도 오늘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머리가 빠개지는 고통이 오더라도 원망하지 마라.”


애초부터 반팔인 여름 교복 와이셔츠를 쓸데없이 겨드랑이까지 걷어 넘기는 주윤정. 하는 행동 자체는 허세였지만, 아까의 충격 때문에 마치 인격이라도 바뀐 듯이 그녀의 눈빛만큼은 평소 보기 힘든 진지함이 묻어났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수진이의 표정은 아까부터 그대로이다. 그녀는 앉은 자세로 그저 윤정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지금 상황에 바짝 긴장을 한 것...


“응. 잘 부탁해.”


같다는 생각은 단단한 착각인듯하다. 오히려 수진이 얘는 좀 긴장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럼 가위바위보로 선공 정하기.”


나의 지령과 함께 중요한 선공을 정하는 가위바위보를 준비하는 두 사람, 서로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아하니 둘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흡사 챔피언 벨트를 놓고 무대 앞에 마주 선 종합격투기 챔피언과 도전자, 혹은 서로를 향해 권총을 꺼내들 준비를 하는 황야의 무법자들처럼 보였다.


““가위, 바위, 보!””


중요한 선공을 정하는 한 판. 그 한판의 승자는.


“아자! 윤정이가 이겼다! 후훗...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 왔다.”


“...”


윤정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허공을 향해 한없이 딱밤질을 한다. 아까까지 진지한 태도는 어디 가고 또 평소 촐싹대는 그 모습 그대로이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는 '복수'라는 한 단어만으로 가득 들이차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들뜬 채로 허공에 딱밤질을 하던 윤정이는.


“아, 손 아파.”


... 하여간, 혼자서 뭐 하냐.


그 모습을 보고 난 후, 그때부터 이미 ‘누군가의’ 배드앤딩을 직감하였다.


“자 수진아, 머리 대.”


“응.”


수진이는 흔쾌히, 지긋이 눈을 감은 채 이마를 살짝 앞으로 내민다. 음흉한 미소를 짓는 윤정이는 그녀의 이마를 이곳저곳 살펴본다. 무슨 꿍꿍이인지 수진이의 얼굴을 이리저리 훑어본다. 그렇게 잠시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던 윤정이.


“아, 뭐야! 여드름 하나도 없잖아!”


그거였냐! 누가 윤정이 아니라 할까 봐 또 그 사이에 꼼수를 짰던 그녀. 물론 그녀가 생각한 대로 여드름 난 곳에 저 딱밤을 맞는다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꼼수를 쓰려던 윤정이의 희망과는 달리, 수진이의 피부는 그런 자국 없이 너무나도 깨끗하였다.


“간다.”


결국 '자기 나름' 야심 차게 짠 전략을 접고 자기 손가락의 힘을 믿기로 한 윤정이는 자기 엄지손가락에 중지 손가락을 꽉 끼운 후 살포시 수진이의 이마 앞에 갖다 댄다. 나름대로 조준한다고 인상을 찌푸리면서 혀를 쏙 내밀고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가관이다.


- 따아악!


순간, 그런 생각을 하던 나에게 마치 보라는 듯이 윤정이는 아까 당했던 분노를 한꺼번에 담아 수진이의 이마에 일격을 가하였다. 선명하게 울리는 타격음이 내 귀에 꽂히는 순간 여유로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섬뜩한 기분이 그 자리를 메웠다. 듣기만 해도 아파 보인다. 잠시 딴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역시나 몸 쓰는 것에서만큼은 우리 동아리 일인자인 윤정이는 애초부터 무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


그러나, 물론 그녀도 제법 강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수진이의 거침없는 일격에 비해서는 확실히 약했다. 평소 운동능력에서는 젬병인 그녀였지만, 참는 것만큼은 예외였나 보다. 인상을 조금은 찌푸리고 있었지만 별다른 소리는 내지 않았다.


“하나... 둘... 셋.”


“휴...”


그렇게 별일 없이 3초가 지나가고, 인내의 시간을 버틴 수진이는 깊은 한숨으로 ‘참아냈다’는 대답을 대신한다.


“아, 약했어. 아~ 진짜! 수진이 얼굴 너무 깨끗해. 반칙이야!”


또 나왔다. 자기가 못한 주제에 꼭 남들 핑계 대기. 이렇게 근거 없이 억지 부리는 녀석에게는 좀 본보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윤정아 머리.”


평온한 말투로 윤정이에게 말을 거는 수진이. 아까까지는 이렇게 말하는 게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친근하게만 느껴졌었는데,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보고 나니, 이런 태도가 오히려 더 섬뜩하기까지 하다.


“으으...”


아까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맞아야 한다는 생각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윤정이. 아영이에게 구원의 신호를 보내면서 살짝 쳐다보긴 하였지만 아영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다. 그러자 그녀는 이번에는 나를 쳐다본다. 나 역시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간절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보던 윤정이는,


“멍청민준주제에 두고 봐.”


뒤 끝을 남긴 채 단념하고 결국 수진이에게 얼굴을 대는 윤정이.


그건 그렇고 아영이에게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왜 나한테는 꼭 그렇게 말하는데? 그런 불쾌한 감정이 들던 참, 때 마침 수진이가 딱밤을 때릴 준비를 마쳤다. 이참에 저 버릇없는 녀석을 완전히 넉 아웃 했으면 좋겠다.


“수진아, 살살 부탁해~”


“응.”


“저기, 말만 그렇게 하지 마~! 방금 때린 데는 손 대지 말고, 되도록 안 때린 데로 좀...”


살기 위해서 최후의 변호를 해 보는 윤정이 앞으로 수진이는 아까와 같이 손을 조용히 내민다. 살살해 달라는 윤정이의 부탁과는 무색하게 신중하게 조준을 하는 수진이와 그렇게 부탁을 해놓고도 마음이 안 놓이는지 눈을 감은 채로 움찔움찔하는 윤정이.


서로 간에 잠시 동안 그렇게 묘한 긴장감이 오갔다 그리고,


- 따악--!


우와... 자비 없는 한방이다.


그녀의 승부욕이 담긴 딱밤 소리를 다시 한 번 들어보니, 통쾌함도 느꼈지만 동시에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느꼈다. 정말이지 이건 딱밤을 때리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머리에 돌을 던지는 소리에 가깝다.


“흠... 흠...”


아니, 표정만 보면 소리만 그런 게 아니라 분명 그 느낌 그대로 아플 것이다.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로, 코로 거친 숨을 내뿜으며 꾹 참고 있는 윤정이.


“어, 소리 낸 거 아니야 지금?”


“정민준, 넌 숨도 안 쉬냐.”


윤정이가 버티는 게 왠지 마음에 안 들었던지라 혹시나 해서 지적을 해봤는데, 가재 김아영이 바로 나한테 쏘아붙인다. 뭐,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억지이긴 하다. 아니 잠깐만, 다시 생각해보니 오히려 잘 된 것 같다. 이참에 지금 수진이가 잘만 버텨준다면 오히려 윤정이를 한 대 더 때릴 수도 있으니까.


“둘... 셋.”


“으아아앙! 아파!”


카운터다운이 끝나자마자 참았던 고통을 내뱉는 윤정이. 확실히 아까 수진이가 맞았을 때의 반응과 비교해봐도 이건 뭐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윤정아, 내가 볼 때는 그만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가재가 윤정이 보호 차원에서 또 나선다. 하여간 김아영 얘는 아주 대놓고 편애를 하고 있구만.


“아니, 한번 승부 한 건 끝장을 내야지? 윤정이 네가 먼저 하자고 해놓고 넌 자존심도 없냐?”


이렇게 애매하게 그만둘 수는 없기에 자존심을 빌미 삼아 그녀의 속을 긁어본다.


과연,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오케이, 이대로 윤정님이 질 수야 없지.”


좋아, 걸렸구나. 홍보동아리에서 지낸 2개월 반 간의 내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간의 내공 덕분에, 이제 윤정이의 생각은 딱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때,


“대신 때리는 방법 좀 바꾸면 안 돼? 이걸로.”


윤정이가 돌연 때리는 자세를 바꾸는 것을 제안하였다. 그녀는 가운뎃손가락을 다른 한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혹시 그 포즈 설마...


“야, 주윤정. 그걸로 하다가 네가 걸리면 너 일어나지도 못할걸?”


지금 이 말은 진심으로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그녀가 보여주고 있는 동작은, 딱밤보다 세 배는 더 강하다는 ‘손가락 망치’이다. 방금 오고 간 딱밤만 해도 무시무시한 파괴력이었는데, 이건 말도 못한다.


​ “괜찮아 이기면 되니까. 수진아 오케이?”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딱 보아하니, 애초부터 이건 윤정이가 마지막이다 하고 제안한 것 같다. 방금 수진이에게 딱밤에도 쩔쩔맸던 모습을 볼 때 이거 걸리면 그냥 그대로 끝이다. 물론 그녀는 애초부터 질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대담함 아니면 무모함이지만, 그녀의 성격에로 볼 때는 후자에 가깝다.


아픈 것은 걱정되지만, 솔직히 심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기분 좋다. 이참에 스스로 무덤을 파니 고이 들어가게 해 주어야지.


“그래.”


수진이 역시 윤정이의 제안에 순순히 응하였다.


“수진아 너 괜찮겠어? 이거 장난 아니게 아픈데.”


이쯤 되니, 다음으로 맞아야 하는 수진이가 걱정이다. 아무리 그녀라고 할지라도 이건 차원이 다르다. 제대로 맞으면 순간 의식을 잃고 저승도 구경하고 올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끔찍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것이 손가락 망치이다.


“괜찮아. 아까도 버틸만했는데 뭐.”


그러니까 아까랑은 차원이 다르다니까... 이렇게 말했는데 수진이는 요지부동이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할 말은 없다. 그녀가 무사히 잘 버티기만을 기대해본다.


“오케이, 이번엔 진짜 한방에 간다. 수진아, 아까 거는 그냥 장난이었고 이번이 진짜야. 아프다고 울면 안 돼?”


어딘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윤정이를 본 수진이는,


“응.”


여전히 무반응이었다. 이러고 보니 나 역시 걱정이 앞선다. 수진이가 잘 참긴 했지만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이건 좀 무리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상 다음 기회가 없는 윤정이는 이번 한방에 모든 것을 걸 것이기 때문에, 여차하면 못 버틸 수도 있다.


“후후훙~”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검지와 약지를 수진이의 이마에 살포시 댄 윤정이는 다른 한 손을 주먹으로 꽉 쥔 후에 확 뒤로 잡아당긴다. 그녀의 조준하는 모습을 본 순간 가슴이 철렁한다. 손가락이 얼마나 유연한지 거의 90도 넘게 뒤로 꺾인 그녀의 중지손가락. 그냥 봐도 엄청난 반동으로 발사 준비를 마친 손가락에는 한방에 끝내버리겠다는 결의가 한가득 담겨있었다. 아까 손가락으로 때린 강도를 생각해 봤을 때 이 한 방은 정말 위험하다. 아무리 잘 참는 수진이라지만 이걸 버틸 수 있을까.


“수~진아.”


여유롭게 미소를 한번 지은 윤정이는,





“잘 가!”


​ - 따아아아아아아아악!!!!!!!





“허억...”


내 입에서 무심코 헛바람이 나올 정도로, 윤정이의 진격의 한방이 수진이의 이마를 강타하였다. 아까 수진이가 때린 한방보다도 더욱 청명한 타격음이 부실 안에 퍼졌다.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지금 때린 소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에 손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다. 더욱이 그런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입증해주는 것은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윤정이의 이 무시무시한 타격과 함께 진짜로 수진이의 목이 뒤로 확 밀려난 것을 나의 두 눈으로 확인했다.


주윤정 이 괴...


“...”


이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사실 이보다 더 안 믿기는 광경이 펼쳐진다. 그 말도 안 되는 한방을 말없이 참고 앉아있는 모습 말이다. 방금 목이 뒤로 넘어갈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 간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수진이는 이를 꽉 깨물고 눈을 감은 채 고통을 인내하고 있었다.


아영이 역시 유심히 수진이를 보고 있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에도 말없이 참고 있는 수진이에 대해서 지적사항은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둘... 셋... 통과...”


결국 내가 세던 카운터다운이 먼저 끝을 맺었다.


“아아...”


그와 동시에 수진이가 머리를 감싸 쥐며 짧은 신음소리를 낸다. 저걸 맞고 아프지 않을 리가 없다. 오히려 저 충격에 저 정도의 미묘한 반응만을 보여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얘 뭐야 진짜...”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사람은 단연 윤정이 본인일 것이다. 유감없이 전력을 다 쏟아내고도 수진이를 꺾지 못한 그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하고 있는 수진이를 살펴보던 윤정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말없이 내 옆자리로 온다. 책상 아래로 뻗은 그녀의 손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자기 가방이다.


“어딜 도망가시려고?”


자신의 미래를 직감한 윤정이의 도피 행위를 막기 위해 나는 그녀의 가방을 먼저 낚아챈다.


“아하하... 그러고 보니 오늘은 집에 8시까지 돌아가야 하는데... 아아, 지금 가봐야겠네? 오늘 게임 진 걸로 할 테니까 윤정이는 먼저 가볼게. 늦으면 엄마한테 혼나거든!”


“그래 돌아갈 일 있으면 가도 좋은데, 어차피 맞는 거는 10초면 되니까 빨리 맞고 끝내자.”


나는 ​가방을 뒤로 숨긴 채 윤정이가 가져가지 못하도록 한다. 잠시 나를 쳐다보던 그녀는,


“후에에엥~! 아영아 도와줘!”


가재 아영이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것 같은데,


“나도 이 이상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다. 네가 먼저 제안했는데 내가 할 말이 있냐... 그냥 한 대 맞고 말아.”


“그, 그럴 수가!”


오늘따라 왠지 아영이가 현명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기회가 되면 칭찬해주고 싶다.


​ 믿었던 아영이마저 고개를 돌리자 맥이 풀린 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윤정이.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김아영에게 엄지를 올린다. 나의 그런 그 모습을 본 아영이는,


“흥.”


콧바람을 날리며 단어장으로 시선을 돌린다. 얘는 항상 이렇지 뭐.


“윤정아, 얼른 와.”


수진이가 평소와 같은 조용한 목소리로 윤정이를 부른다. 그러나 윤정이는 도무지 다가갈 기미가 없어 보인다.


“싫어. 안 가면 끝이지 뭐.”


아영이 뒤에 숨은 채로 수진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어떻게든 안 맞고 버텨볼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주윤정... 좋은 말할 때 안 올래?”






상대는 수진이다. 응, 한번 화나면 답 없는 그 수진이 말이다. 윤정이는 그 모습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더니 다시 한번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뭘 빤히 봐. 내 얼굴에 뭐 얼굴에 묻었냐.”


“하아... 네~ 윤정이 지금 죽으러 갑니다...”


결국 안된다고 생각을 했는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진이 앞으로 다가가는 윤정이. 흡사 처형을 앞둔 죄수처럼 보였다.


다시 말하지만 동정심은 느끼지 않는다. 처음부터 자기가 하자고 제안해 놓고서 뭘.


그렇게 윤정이가 털썩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수진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의 손을 윤정이의 이마에 갖다 댄다. 보기만 해도 아픈 손가락 망치 자세로 말이다.


“아, 잠깐만! 제발 부탁인데 좀 살살 때려.”


대지도 않았지만 엄살을 피우는 윤정이. 그렇지만 이미 두 대나 맞은 상태에서 저 고통을 또 겪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게 꼭 엄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당연한 생존본능이라고 해야 할까나.


“아아 역시 무리야!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말 잘 들을게. 내가 졌으니까!”


“아니야. 네가 맞기 전까지는 너는 진 게 아니야.”


“왜 항복이 안되는데! 흰 수건 어디 있어! 아님 휴지라도!”


어떻게든 이 게임을 끝내기 위해 하얀 수건과 휴지를 찾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조용히 다가갔다.


“민준이 잘 왔다, 나 좀 도와줘!”


윤정이가 이렇게 간절히 부탁을 하는데, 좀 도와줘야 할 것 같다.





- 꾸욱...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녀의 어깨를 양팔로 꽉 짓눌렀다.


“아, 누르지 마! 이 멍청민준, 뭐 하는 거야!?”


“도와달라면서, 그래서 네가 말 한대로 ‘못 도망가게’ 눌러주는 거야.”


“누가 수진이 도와달래, 윤정이 도와 달라고!”


“이게 너 도와주는 거지. 빨리 한 대 맞고 끝나라고.”


그녀가 뒤늦게 상황 판단을 하였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진짜 이 치사민준 다음에 걸리기만 해봐! 아주 머리에 구멍을 내버릴 테니까!”


바둥거리면서 피하려고 하는 그녀를 꼭 붙잡은 채로 나는 수진이에게 신호를 보낸다. 수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재빠르게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 따아아아아아아아악!!!!!!!!!!!!!!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치 ‘망치로 돌을 부수는’ 듯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안타까운 윤정이의 비명이 동아리 부실 안에 울려 퍼졌다. 아, 물론 안타까운 생각을 하는 건 주윤정 본인 혼자겠지만.







“으...”


윤정이는 아직도 얼얼한 이마를 방금 냉장고에서 가져온 차가운 콜라캔으로 문지르면서 아픔을 달래고 있다. 맞고 나서 한참 동안 사경을 헤매던 윤정이는 지금도 반쯤 멍한 표정으로 자기 책상에 앉아있다. 망치질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혹이 아파 보였지만, 내가 제대로 때리지 못한 몫을 수진이가 그 이상으로 해 준 것 같아 속이 다 후련했다.


“그래도 덕분에 잠은 확실히 깼네. 그리고 오늘 일을 계기로 앞으로도 안 졸 거고 말이야.”


“시끄러워. 민준이 넌 걸리면 진짜 머리 둘로 쪼개버린다.”


하나마나인 위로인 거 다 알고 그냥 말해본 거다.


“맘대로 하세요~ 어차피 난 안 졸 테니까.”


분한 표정으로 날카롭게 째려보는 윤정이의 말은 가볍게 무시하고,


“그건 그렇고 수진이 진짜 세다. 뭐 따로 어디서 배웠어?”


시선은 다시 평소처럼 책을 읽고 있는 수진이를 향한다. 물론 맞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저 정도 세기라면 때린 사람도 상당히 아플 텐데... 그녀는 방금 마치 뭔 일이 있었냐는 듯이 태연하다. 태연한 표정과 무시무시한 강도의 딱밤이 이루어낸 부조화 덕분에 오늘따라 수진이가 유독 무섭게 느껴진다.


“글쎄. 그냥 친구들이랑 좀 이런 게임을 많이 했긴 했는데, 친구들도 다들 내가 때리는 게 세다고 하더라고.”


분명 몸쓰는 거랑은 인연이 없어 보이는데, 설마 이런 구석이 있었을 줄이야. 어디서 그런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 것일까. 한마디로 연구대상감이다.


아, 물론 그 연구 대상으로써 그녀에게 맞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도리어 자비 없는 그녀의 손가락을 의식하고 나서는 ‘살기 위해서’ 확실히 더 이상 졸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더욱 굳게 다잡는다.


“아, 이제 난 제대로 공부해야겠다. 수진이한테 안 맞으려면 열심히 해야지.”


정신없던 시간이 겨우 끝났다는 것을 알고는, 긴장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한번 펴고는 다시 문제집을 펼친다. 그러고 보니 아까 몰래 졸았었던 거는 확실히 못 본 것 같다. 아까 만약 걸려가지고 수진이에게 맞으면 지금쯤 옆에서 골골거리는 얘처럼이라고 있었을 텐데.


다행이다, ​ 정말 다행이 -






“아, 또 하나 있지, 다음에는 민준이 네 차례.”






...응? 뭐라고요?


나는 순간 잘못 들은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 믿음과 함께 설마 하는 생각으로 나는 곁눈질로 흠칫 그녀를 쳐다보았다.


정확히 수진이와 눈이 마주쳤다. ​


“뭔 내 차례야? 난 졸지도 않았는데.”


“아, 그러고 보니 앞에서 찍은 걸 안 보여줬네... 잠시만.”


그녀의 손이 뻗은 곳은 책상 위에 놓인 자기 스마트폰... 아, 이거 왠지 슬픈 예감이 든다.


“저기, 굳이 안 보여줘도 되는데.”


“자.”


나의 바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녀는 찍은 동영상을 나한테 보여준다. 화면을 통해서 책 앞에서 꾸벅꾸벅하는 나의 모습이 여과 없이 눈앞에 비추었다. 더욱이...


​- 수진아 입, 입...


화면에서 들려오는 아영이의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내 입으로 확대되는 화면에는...


“야. 그만해!”


여과 없이 공개된 추태를 감추기 위해서 나는 황급히 동영상을 꺼버렸다.


그러나,


“아 뭐야 이거! 또 침 질질 흘리고 있었냐? 아 애도 아니고 진짜 추첩민준!”


​ 방금 전까지 머리를 감싸 쥐며 옆에서 엎드려있던 녀석이 이미 냄새를 맡고 쫓아왔다.


아무 일 없이 넘어가나 했었는데.


“수진이 너 알면서 모른 척했던 거야? 시치미 뚝 떼고 일부러 그런 거야?”


“아니, 민준이가 윤정이 졸은 거 먼저 얘기해가지고 먼저 한 것뿐인데?”


... 나름대로 최선의 연기를 한 건데, 결국 얘네들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구나.


“자~ 드디어 왔습니다! 비겁민준을 처형할 시간! 수진아, 본때를 보여줘!”


이런 나의 무거운 심정과는 반대로 환호성을 지르는 녀석. 참으로 얄궂다. 웬만하면 이 버릇없는 녀석에게 보여준 복수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누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날 줄이야.


“아영이 넌 조는 거 봤었냐?”


“그 동영상 내가 찍으라고 한 거야.”


...아영이에게는 애초부터 질문을 하는 쪽이 않는 것이 답인 걸 알면서도, 왜 나는 매번 같은 실수를 하는 걸까.


“수진아, 난 지금 잠 이미 깨어 있는데 굳이 꼭 해야겠어?”


“해야 한다니? 원래는 그냥 맞아야 하는 건데 특별히 가위바위보 해서 너도 딱밤 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야.”


그런 걸 혜택으로 포장해줘도...


“그건 그렇고 다 알고 있었으면 미리미리 얘기했어야지. 남은 맞을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 - ”





“빨리 안 와?”





... 눈빛 가득 느껴지는 살기(殺氣).


“어휴... 네.”


더 세게 맞기 전에 일단은 순순히 가자. 멋모르고 가만히 버티다가는 더 큰일 날 것 같다.






- (4)화에서 계속.


작가의말

코노미카입니다.
12화 종료후에 스토리 정리를 위해서 초반부의 스토리를 수정을 해나갈 예정입니다.
스토리 수정이 이루어지는 대로 공지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화도 즐겁게 감상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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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아리에서는 내기 게임을 잘 해야 돼!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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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16화. (2) 17.08.22 197 1 24쪽
49 16화. (1) 17.08.16 192 2 38쪽
48 15화. (4) 17.08.11 221 1 41쪽
47 15화. (3) +2 17.08.03 307 1 29쪽
46 15화. (2) 17.07.22 203 1 28쪽
45 15화. (1) 17.07.17 216 1 34쪽
44 막간 4. 17.07.09 193 1 37쪽
43 막간 3. 17.07.04 206 1 28쪽
42 14화. (4) +1 17.06.27 270 1 49쪽
41 14화. (3) 17.06.21 267 1 34쪽
40 14화. (2) 17.06.15 285 1 25쪽
39 14화. (1) 17.06.08 292 1 25쪽
38 13화. (4) 17.06.02 306 1 25쪽
37 13화. (3) 17.05.27 317 1 39쪽
36 13화. (2) 17.05.20 271 1 36쪽
35 13화. (1) 17.05.13 305 1 27쪽
34 12화. (3) 17.05.05 451 1 30쪽
33 12화. (2) 17.05.01 225 1 39쪽
32 12화. (1) 17.04.26 218 1 23쪽
31 11화. (4) 17.04.05 253 1 42쪽
» 11화. (3) 17.03.19 338 1 23쪽
29 11화. (2) +1 17.03.12 471 2 33쪽
28 11화. (1) +2 17.03.05 566 2 27쪽
27 10화. (5) 17.02.28 288 1 27쪽
26 10화. (4) 17.02.24 265 1 21쪽
25 10화. (3) 17.02.13 411 2 36쪽
24 10화. (2) 17.02.04 441 1 31쪽
23 10화. (1) +2 17.01.24 788 1 29쪽
22 9화. (2) 17.01.21 400 1 37쪽
21 9화. (1) 17.01.09 653 1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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