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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미카의 서재

우리 동아리에서는 내기 게임을 잘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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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미카
작품등록일 :
2016.10.17 22:58
최근연재일 :
2019.03.21 23:16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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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04
추천수 :
86
글자수 :
998,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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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2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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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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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7쪽

10화. (5)

DUMMY

※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작중 내에서 표기된 인물, 지명, 단체 등은 모두 허구적 요소입니다.










10화. 윤정이는 여자친구 (일일한정) (5)





무대 앞으로 선 나와 윤정이. 그리고 사회자 반대편에 서 있는 민아와 승민씨.


“그럼 우승자를 가릴 마지막 결승전 경기종목을 공개합니다!”


사회자의 말과 관객의 환호성과 함께 무대 위로 등장하는 테이블. 그 위에 올려져 있는 테이블을 보자마자.


“아... 잠깐만, 이거 설마.”


무슨 게임을 할지 단숨에 감이 왔다.


“자, ‘우리 동네 베스트 커플 콘테스트’ 결승전 경기 종목은, 말 그대로 커플 간의 사랑과 믿음을 테스트할 수 있는 종목이지요! 서로 간의 배려와 희생이 중요한 이번 마지막 경기는 바로... 아이스크림 한 통 빨리 먹기입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아이스크림 통 하나. 그리고 스푼 ‘한 개’.


이리 눈을 씻고 저리 눈을 씻고 봐도 아이스크림 통 하나 앞에는 오로지 숟가락 ‘딱 한 개’ 만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순서는 관계없습니다! 게임 규칙도 간단합니다! 커플이랑 같이 협심을 해서 이 아이스크림 한 통을 먼저 다 먹는 사람이 이깁니다! 물론 아이스크림은 숟가락으로만 먹어야 하겠죠... 뭐 설마 지저분하게 입대고 먹거나 손으로 먹진 않겠죠? 그것도 좋아하는 남친, 여친 앞에서... 주접을 떨어서야 되겠어요?”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솔직히 주접을 떨더라도 그렇게 먹고 싶은 기분은 든다. 저 숟가락으로 나누어서 먹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간접으로 그거 하는 거잖아. 아, 물론 아까 과자 먹으면서 ‘직접’ 한 대담한 커플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런 커플 얘기고...


“아, 그래도 혹시나 모르죠! 만약 이 아이스크림을 혼자 다 드실 수 있는 분이 있으시다면! 혼자 다 드셔도 됩니다! 근데 보아하니... 딱 봐도 혼자 드실 분은 없어 보일 것 같은데 말이죠.”


- 탁.


“됐다, 윤정이 너만 믿는다!”


“에에에?”


나는 사회자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윤정이의 등을 탁 쳤다. 너만 믿는다.


2인 1숟가락 사용을 피하기 위한 나의 판단 속도는 빛과도 같았다. 평소 옆에서 그녀를 보아온 나로서, 먹는 것에 있어서 윤정이는 단연 보증수표라고 자부할 수 있다. 왕돈가스 2인분을 10분 동안 거의 다 해치웠으면서 다음 날 멀쩡하게 올 정도로 소화력 좋은 이 비상한 아이에게 있어서 이런 아이스크림 한통 따위는 문제도 안 될 것이다.


“뭐야 민준 오빠! 괜히 또 귀찮아가지고 안 하려고 하는 거지?”


“윤정아. 내가 너의 그 비상한 먹기 재능에 대해 잘 알고 있잖니. 지금 너에게 이렇게 말한 건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니라 너에게 그 영예를 돌리기 위해서 그러는 거야. 먹는 거만큼은 정말 우리나라 사람 상위 0.01%. 이번이야말로 너의 그 비상한 능력을 보여줄 절호의 찬스라는 거지?”


어떻게 든 같이 숟가락 쓰기를 피하고 싶어 하는 본심을 억누른 채, 겉으로는 윤정이를 그렇게 띄어주는 척 말했다.


“오오, 그런가? 하긴 저 정도 아이스크림쯤이야 한입이지! 후훗, 벌써 승리가 눈앞에 왔네!”


“그지? 벌써 승리가 눈앞에 보이지! 우리 윤정님이라면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거지!”


칭찬에 약한 순진한 윤정이. 됐다. 이제 나는 손댈 필요도 없다. 윤정이가 혼자 뚝딱 해치워준다면 기분 좋은 마음으로, 이 길고 길었던 '낮 뜨거운' 일정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선배랑 아이스크림 먹고!” “윤정이랑 같이 힘내서 먹고!”


“우리가 꼭 이겨서 이동네 베스트 커플이 되도록 할게요!"


“네~ 마지막까지 멋진 세리머니 보여준 커플들에게 박수 보내주세요!”


민아와 승민씨가 각각 한 손으로 아이스크림과 숟가락을 든 채 퍼포먼스를 취한다. 왜 안 하나 했다.


하지만, 결승전인 만큼. 그리고 상대가 바로 민아인 만큼, 우리 역시 여기서 그냥 이렇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럼 우리도, 준비됐지?”


나는 윤정이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응!”


고개를 끄덕이는 윤정이. 나는 손가락으로 하나, 둘... 그리고 셋을 가리켰다.


“오빠! 윤정이 오빠랑 같이 밥 먹고 싶어!”


“그래? 그럼, 우리 이 아이스크림 먹고~ 꼭 이겨서 밥 먹으러 가자? 어, 그러고 보니 이건 디저트고 이기면 밥 먹는 거네? 우리는 디저트랑 밥이랑 순서를 반대로 먹네?”


“상관있어?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거기서 거긴데!”


하면서 같이 엄지를 쥐어 보이는 우리 둘.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쥐어짜낸 세리머니.


...


관객들은 반응이 없었다.


“아하하, 모처럼 좋은 세리머니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이쪽도 박수 한번 주세요.”


사회자에 말에야 드디어 '간간이' 들려오는 박수소리, 앞팀에 비해서는 정말 조용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즉 우리가 한 세리머니는 한마디로 하나 마나 한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세리머니가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모로 가도 이기면 된다.


그리고 그 선방에 윤정이가 아이스크림을 든 채 서 있었다. 상대팀에서는 승민씨가 나섰다.


“자, 그럼 준비하시고!”


마치 칼을 든 자세로 아이스크림 통을 찌를 듯이 준비하는 윤정이. 그야말로 쓸데없는 포즈였지만 이기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아니, 그녀는 먹는 것만큼은 확실히 자부할 수 있다. 이번이 기회이다. 잘해라 주윤정. 그 군더더기 없는 푸드 파이팅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시간이다.


“시작!”


사회자의 구령, 그리고 관객들의 환성과 함께 드디어 우승자를 가릴 대망의 결승전 경기가 시작되었다.


시작과 동시에 거침없이 첫 삽을 한술 크게 떠서 먹는 윤정이의 모습이 눈에 비치는 순간,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어. 변함없는 그녀의 먹기에 대한 열정은 나에게 충분한 확신을 주었다. 이어서 두 스푼, 세 스푼을 뜰때에도 그녀의 손놀림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오오! 여학생 분이 처음부터 엄청난 속도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습니다! 와, 겉보기에는 얼마 못 먹을 것 같은데 대단하군요! 이쪽 남학생 분도 제법 빨리 먹기는 하는데, 여학생 분이 엄청 빨리 먹고 있습니다!”


나는 힐끗 상대팀을 보았다. 저쪽은 겨우 두 스푼 정도를 입에 넣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비해 윤정이 숟가락은 마치 흙을 파는 포크레인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입속으로 가져다 넣고 있었다. 윤정이의 식욕은 이미 보통 남자들의 수준을 훨씬 능가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비하면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잘한다 주윤정! 충분히 빨리 먹고 있으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


마치 솜사탕을 입에 물어뜯듯이 정신없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집어넣고 있는 윤정이. 그런 그녀의 식욕에 보답하듯이, 통 속에 있는 아이스크림은 순식간에 줄어들고 있었다. 그녀는 입에 아이스크림을 잔뜩 문채로 쉬지 않고 한입, 또 한입 집어넣었다. 불과 30초 정도 밖에 안된 시간에 순식간에 열 입을 입속에 집어넣은 그녀.


좋아, 이대로라면 내 도움 없이도 충분히 우승 -




“아아...!”





그 순간,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먹기를 멈춘 윤정이. 그녀는 먹고 있는 아이스크림 통과 스푼을 내려놓더니 돌연 손을 자기 머리로 가져간다. 나는 그녀의 돌발행동에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아아, 머리야! 아아아!”


...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감싸 쥐는 윤정이. 누군가에게 한 대 맞은 듯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하는 윤정이를 보며 나는 당황하여 윤정이에게 다가간다.


혹시 이건. 설마...


“아아! 왔습니다! 여학생 분 빠른 페이스로 잘 나아갔는데 하마터면 이 시점에서 고비가 왔습니다! 아이스크림두통! 찬 걸 급하게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그 두통인데요! 남학생 분은 아직까지 괜찮은 것 같은데...”


“야, 괜찮아?”


나는 윤정이에게 다가가 안부를 물어본다.


“으으, 깨질 것 같아...”


그녀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그저 머리를 감싸 쥔 채로 괴로워한다. 나는 이대로 경기를 계속 진행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회자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본 사회자는...


“아, 아이스크림 먹어서 머리 아픈 건 금방 없어지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오오, 이틈에 속도를 내고 있는 남학생 분! 과연 안갯속으로 가려진 승부는 어떻게 될지!”


...그냥 하는 거냐.


윤정이는 도무지 통증에서 헤아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꾸준히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상대팀... 모처럼 여유롭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한순간에 상황은 역전되었다.


두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윤정이에게 억지로 먹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두통약이라도 먹고 왔는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전히 꾸준히 먹고 있는 승민씨.


이대로 가다가는 승산이 없었다.


...




결국 나서야 하나.




물론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힘을 내준 윤정이를 위해서라도 이런 사소한 것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다.


나는 그런 굳은 마음과 함께 테이블 위로 양손을 뻗었다.


왼손에는 아이스크림 통을. 그리고 오른손에는 방금 그녀의 입속으로 들어갔던 그 숟가락을.


“오오, 여학생팀 분이 남학생 분으로 바통 터치를 하였습니다!”


어차피 승부다. 승부에 세계에서 이런 생각도 한낱 사치에 불과한다.


그런 각오와 함께 나는 숟가락을 한술 떴다.


그리고, 과감히 입안에 넣었다.


...


간접... 특별한 맛은 없었다. 그냥 항상 먹던 그 바닐라 아이스크림 향이 났다. 그런 생각과 동시에 잠시 상대 커플에게 밀렸던 상황을 다시 뒤집기 위해 아이스크림 먹기에 발동을 건다. 그 한 삽을 시작으로 두입 세입 연이어 빠르게 파먹기 시작한다.


“네! 빠른 속도로 먹고 있는 고등학생분인데요... 오오! 동시에 이쪽도 선수 교대를 했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살짝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샌가 민아가 들어와서 재빠르게 아이스크림 한입을 자기 입속에 넣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에 시선을 두고 있는 그녀의 눈빛에서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 나 역시 그 눈빛 하나만으로 경쟁심에 불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입과 혀, 그리고 식도는 차가운 기운으로 덮이기 시작하면서 슬슬 괴로워지기 시작했지만, 숟가락질을 멈출 수는 없었다.



“으으... 머리...”

아직도 두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윤정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가끔씩 나를 응시하면서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 민정이를 보면서, 나는 잠시도 입안에 아이스크림 넣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어느덧 바닥이 보이기 시작한 아이스크림. 조금 괴롭긴 하지만 못 먹을 수준은 아니었다. 이 느낌대로 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


... 머리가 터지는 듯한 그 고통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목뒤에서 오기 시작한 그 통증은 겨우 수 초 만에 내 머리 전체로 뻗어나갔다. 나는 윤정이가 느낀 그 통증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진정하려고 했지만, 이내 통증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다.


“으으... 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음소리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스크림을 더 입에 넣기는커녕 내 몸조차도 가눌기 힘들었다.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민아는 여유롭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쟤네들은 어떻게 저렇게 먹는 거야? 나는 납득할 수 없었지만 아픈 것은 더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아, 남학생 분도 두통이 온 것 같은데... 아, 너무 급하게 먹는 게 아닌가 싶은데 말이죠. 그런데 양을 보면 얼마 안 남긴 했는데. 여학생 분이 계속 따라오고 있습니다!”


얼마 안 남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도무지 손이 나서질 않았다. 물결이 이는 파문처럼 주기적으로 퍼져나가는, 그야말로 머리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나는 꼼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여학생 팀!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과연 이대로 끝날 것일까요?”


진심으로 이제 못 먹겠다. 정말 이대로 끝나는 것일까.


...






“수고했어. 민준 오빠.”





그때였다. 나는 내 옆에 아까까지 지금의 나처럼 괴로워하고 있던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말과 함께 나의 양손이 가벼워졌다. 나는 고통 속에서도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윤정이를 바라본다. 아까까지 두통에 괴로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녀는 남은 아이스크림 통과 나의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방금 내가 먹던 그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한입 떠서 자기 입에 넣는다.


... 이걸로, 서로 한 번씩 주고받은 걸까.


잠깐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다시 밀려온 두통이 그 생각을 잊게 하였다.


“아! 아까 엄청난 식욕을 보여준 여학생이 다시 발동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따라잡고 있는데요! 지금 상황으로는 누가 이길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당최 투통이 가라앉지 않는지라 나는 상황이 어떻게 돼가는지 똑똑히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녀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민아와 승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 직감할 수 있었다. 타이밍 상으로 볼 때 다시 내가 저 아이스크림에 입을 댈 여지는 없어 보였다.

즉, 윤정이의 마지막 스퍼트에 모든 결과가 달린 것이다!


“자! 양쪽 팀 이제 불과 세네 스푼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먼저 아이스크림을 다 비우고 손을 드는 쪽이 이깁니다! 자, 흥미진진한데요! 누가 최종 우승자가 될까요!”


사회자도, 관객석도 흥분한다. 두통이 한껏 밀려와도, 그 때문에 눈으로 직접 보지 못 하더라도, 윤정이의 마지막 페이스를 올리는 숟가락질 소리는 여과 없이 귀에 선선히 들려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였기에, 그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잘해라 윤정아!


그저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다.


...


“네! 마침내 오늘의 승자가 가려졌습니다! 정말 박빙의 싸움이었는데요! 이번 경기 우승자는...”


경기가 끝났다. 머리가 아파서 누가 이겼는지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경기 결과가 발표를 그저 들을 준비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오른팔이 허공으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익숙하고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말이다.


윤정이가, 내 팔을 잡고 위로 올리고 있었다.


천천히 돌아보니, 비록 입가에 아이스크림이 조금 묻었지만 그녀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손에는 당당하게 ‘거꾸로 든’ 빈 아이스크림 통이 있었다.





“두통에도 굴하지 않고 놀라운 정신력을 발휘해준 이쪽 고등학생 커플 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승전보. 관객들의 환호. 마치 그 소리는 얼어버린 내 머릿속을 따뜻하게 녹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두통도, 긴장감도 그 소리와 함께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야! 이겼다! 민준 오빠 이겼어! 이겼다고!”


신이 난 윤정이는 그대로 나를 껴안았다.


“야, 갑자기 확 껴안지 말고...”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그녀를 떼어내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나한테 착 달라붙은 채로 다른 한 손을 관객들에게 흔드는 윤정이. 그런 윤정이의 표정은 예전에 본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아 보였다.


...


뭐, 지금 남들의 시선에는 우리들도 커플이니까. 뭐 잠깐 정도는 이래도 상관은 없겠지.


“잘했어. 윤정아.”


나는 그녀를 떼어 네지 않고 조용히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아, 아쉽게 됐네. 나도 먹는 거라서 조금은 자신은 있었는데 확실히 아영이 말대로 윤정이 넌 먹는 건 진짜 타고났다 보구나?”


“헤헤~! 윤정이는 먹는 거 하나는 복받은 것 같아! 오오, 그나저나 아이스크림 진짜 맛있다. 나중에 또 사 먹어야지~!”


윤정이는 해맑은 표정으로 손에 쥔 봉투 한 장을 흔들어 보인다. 이번 ‘우리 동네 베스트 커플’ 행사 우승 상품으로 받은 5만 원짜리 브랜드 외식 상품권이다.


그리고,


“그나저나 아까 보니까 선택상품 되게 여러 가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많은 거 중에 하마터면 곰인형이냐? 애들도 아니고.”


그녀의 등 뒤에는 자기 몸집만 한 곰인형이 있었다. 윤정이에게 있어서는 말 그대로 ‘집채만한’ 곰인형. 그녀는 항상 그래왔듯이 남들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 곰인형의 양 팔을 꼭 잡고 있었다.


“나 이거 꼭 가지고 싶었어. 예전에 아영이네 집에서 봤던 곰인형 컬렉션 보고 이런 거 큰 거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후훙~!”


“에휴, 뭐 맘대로 하세요.”


곰인형 컬렉션이라. 그러고 보니까 저번에 페스트푸드점에서도 아영이에게 서프라이즈 선물로 줬던 그 인형 뽑기에서 나온 곰인형이랑 모양이 비슷해 보이긴 하는데... 뭐 나는 이런 것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고 크게 관심도 없는지라 뭐라고 평가를 해 줄 수가 없다.


“어, 시간이 벌써 4시 반이네! 나는 이제 선배랑 다음 데이트 장소 가야 할 것 같아서. 이쯤에서 헤어져야겠네.”


여전히 사이좋게 손을 붙잡고 있는 ‘진짜 커플’. 비록 졌긴 하지만 기분 나빠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덕분에 남자친구인 승민씨랑 사이가 더 좋아진 것 같다고 자랑을 할 정도이니,


“축하해. 우리가 진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승부였어!”


“여어, 재미있었어.”


깔끔하게 승부를 인정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오늘의 승리가 더욱 기분이 좋았다. 솔직히 말하면 사실 더 대단한 쪽은 민아 커플이다. 정말 오늘 보여준 퍼포먼스와 이 이벤트를 즐긴 것만 보면 누가 봐도 민아와 승민씨 커플의 승리이다.


“역시나 아영이는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똑같구나. 친구들한테 시간 되면 게임하자고 하고 놀자고 하고. 그러면서도 공부는 엄청 잘해. 에휴 부러운 녀석. 그래도 재미있게 놀았으니까 됐지. 나중에 아영이랑 문자나 또 한번 해야겠다.”


어쩌면 민아와 나의 이런 ‘특별한’ 라이벌 관계를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아영이일지도 모른다.


응? 잠깐만. 그러고 보니 민아랑 아영이랑 서로 중학교 동창이었지...? 그럼 아까 나랑 윤정이가 했던 모든 일들을...


“야 잠깐만! 너 오늘 있었던 일 아영이에게 절대 말하지 마라! 나 진짜 큰일 난다!”


민아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아영이에게 ‘언제든지’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방금 전의 있었던 황당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초콜릿 과자 하나에 닿았던 우리 사이의 숨결, 슬라이딩으로 넘어지면서 전력을 다해 그녀를 받아준 포즈, 기마전을 하면서 한없이 느꼈던 그녀의 종아리와 ‘베게’의 감촉, 그리고 승부를 위해서 번갈아가면서 한 번씩 주고받은 ‘하나의 숟가락’까지.


지금 생각하면... 이건 위험하다. 진짜 돌이킬 수 없다.


“응? 오호~! 그러고 보니까 둘은 아직 커플 사이가 아니었지? 근데 오늘 딱 한거 보면 커플 사이가 된 것 같은데? 뭐 부끄러워할 거 없이 그런 거 그냥 아영이에게 잘 얘기해주면...”


“진짜 큰일 난다고!”


나는 당혹스러운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훗, 장난이야 장난! 나라고 그런 마음 모르겠니? 오늘 게임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해줬는데. 그 정도야 비밀로 해주지.”


“제발 부탁이야... 오늘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온 지경인지라 나는 간절히 그렇게 말해두었다. 솔직히 말해두었지만 믿을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럼 우린 이제 가 볼게! 기회가 되면 나중에 한번 또 보자! 선배~ 우리 이제 뭐 해요? 모처럼 게임하고 났더니 다리 아파요~♡”


“그래? 그럼~ 우리 잠깐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잠깐 쉴까?”


“와아 신난다~♡! 고마워요! 역시 우리 선배 최고!”


그렇게 사이좋게 가던 데이트 코스를 떠나는 두 사람. 민아가 조금 마이페이스 기질은 있긴 해도, 그렇게 나쁜 성격의 애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도 이제 가자.”


“오케이! 그럼 윤정이도 이제... 어 잠깐. 아이, 왜 이렇게 인형이 커! 모처럼 이렇게 윤정님이 이겼는데 이런 거 기본적으로 택배서비스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자기 몸만 한 큰 인형을 부담 없이 들기에는 윤정이의 팔이 조금은 작았다. 곰인형이 그녀의 팔이 불편했는지 자꾸만 그녀의 어깨에서 달아나려고 하는 곰인형.


“영차.”


“어?”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곰인형을 한 아름 대신 들어준다.


“너 가는 데까지 들어다 줄게. 어차피 나 오늘 특별히 볼일도 없으니까.”


“에~ 딱히 들어줄 필요는 없는데. 허세민준주제에 아주 폼 잡고 허세 부리기는.”


행사가 끝나자마자 윤정이는 내가 알던 그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모처럼 들어주는데 칭찬 한 번 해주면 덧나냐.





- 수고했어. 민준 오빠.





... 그래도 아까 그 말은 진심이었겠지.


아무리 머리가 아팠다고 해도 그건 분명 환청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오빠라고 안 하네. 아까까지는 한 번도 안 빼고 오빠라고 붙이더니.”


내가 그냥 떠보는 식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하자 윤정이가 나를 보면서.


“왜, 오빠라 불러줘?”


“아, 아니 됐어 씨... 우리가 뭐 사귀는 사이냐.”


“그러게, 이런 귀한 몸인 윤정이가 허세민준을 오빠라고 불러주는 건 고맙게 생각해야지!”


“이게 진짜...”


시간이 지나도 항상 그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지구와 달과 같이 사이. 그게 나와 윤정이의 사이이다.


그렇지만.


오늘 윤정이와 이렇게 즐겼던 시간이 그렇게 나쁘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함께 게임을 한 만큼 그녀를 가까이서 대한 적이 없었다. 철없고 어린애 같은 윤정이에게도 여자스럽고 어른스러운 구석은 분명히 있었다. 아... 단순히 신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나에게 있어서 남이 아닌 그녀. 어쩌면, 지금까지 알던 윤정이의 모습보다 분명 좀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쓸데없는 상상일 수도 있지만, 정말 어쩌다 내가 윤정이와의 관계가 ‘친구 이상’으로 돈독해진다면, ‘오늘의 이 추억이’ 그날을 만든 가장 중요한 날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재밌었어.”


“응? 뭐라고 말 했음?”


“... 아냐, 가자.”


“아, 윤정이도 디저트 먹고 싶은데 모처럼 이긴 김에 하나 사주면 안 돼?”


“방금 아이스크림 그렇게 먹고 또 디저트냐?”


“아이스크림과 빵은 별개!”


“하여튼 먹는 거는...”






어느 평범한 주말. 그날 나는 또 다른 윤정이를 만났다.

















윤정이와의 특별한 주말이 끝나고, 다시 돌아온 월요일 방과 후 시간.


“안녕.”


“안녕.”


“오오! 막내 민준 입장!”


변함없이 인사를 하며 부실로 들어가 보니 오늘은 내가 마지막이었다. 아영이와 수진이, 그리고 윤정이 모두 항상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맞이해준다. 그나저나 같은 나이면서 누가 막내냐.


“아, 정민준 때 마침 잘 왔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가지고.”


이렇게 말을 건 사람은 다름 아닌 김아영이었다. 평소 성격대로라면 보통은 인사도 안 하고 그냥 눈치로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먼저 말을 거네. 무슨 바람이라도...


잠깐만, 뭔가 느낌이 안 좋다. 평소와는 다른 아영이의 태도라면... 설마!


“민준이 너 토요일에 혹시 민아 봤었냐?”


... 민아 이 배신자! 아영이에게 안 말하겠다고 그렇게 약속했더니... 아, 역시나 믿으면 안 됐었다.


“응? 민아? 걔가 누군데? 나 주말에 도서실 밖에 안 있었는데?”


일단 나는 애써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얼버무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민아가 나한테 톡으로 얘기했더라 청년에 거리에서 너 만났다고 얘기했는데. 뭐 자기 남친이랑 커플 대회인가 나갔는데 거기서 봤다고 얘기해가지고.”


... 끝났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윤정이랑 내가 커플 행세를 하면서 온갖 말도 안 되는 것들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이다. 이건 진짜 심각한 문제이다. 잘못하면 이 3년간의 청춘을 윤정이와의 있었던 이번 사건에 대한 스캔들 속에서 보내야 할지도... 아니, 앞으로 평생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어... 다 알고 있었네. 나랑 윤...”


“설마 내가 민아랑 중학교 동창인 거 얘기 안 했나? 너 거기서 만나가지고 걔랑 한참 떠들고 왔다면서? 뭐 커플들이랑 여러 가지 게임한다고 하는데 거길 뭐 하러 간 거야? 너 여자친구 있었어 혹시?”


응? 잠깐만. 잘 들어보니 아영이가 하는 말에서 조금 빈틈이 느껴진다.


“아니, 그냥 우연히 만났는데 걔가 한번 보고 가라고 해가지고.”


나는 조용히 거짓말을 섞어 넣었다.


“그래, 하여간 걔는 자기 커플 자랑하는데 아주 일색이라니까. 아무튼 뭐 자기네 말로는 결승에서 아쉽게 졌다고 하더라, 상대가 ‘처음 본 고등학생 커플’이었다고 해서 되게 아쉬워하더라고.”


... 우리가 그 고등학생이었다는 것을 모르는구나. 잠깐 민아를 의심했었다. 나는 그런 안도감과 함께 패션잡지를 보고 있는 윤정이를 바라보았다. 윤정이가 나랑 시선이 살짝 마주치더니 살짝 윙크를 한다.


“참, 그러고 보니...”


“어어!?”


나는 갑작스레 아영이가 말을 걸어서 깜짝 놀란다. 바보같이 티 내고 있냐!


“왜 놀라? 내가 뭐 이상한 말했냐?”


“아, 아니야! 잠깐 멍 때려가지고.”


“... 아, 너 때문에 뭔 소리 하려고 했는지 까먹었잖아.”


결국 아영이에게 핀잔 한 바가지를 먹었다. 그래도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으니, 이 정도 한 바가지는 달게 받는다.


“그러고 보니까 다음 주 시험이네. 비록 모의고사긴 하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이것도 일정 점수 못 넘으면 보충학습한다고 했지.”


...수진이가 말한 대로 모의고사도 그렇고, 좀 있으면 바로 기말고사도 그렇고... 학생에게 있어서는 공사다망한 시험의 계절이다.


“아, 그러고 보니까 벌써 6월이네... 아 짱 귀찮아... 봐야 할 시험이 잔뜩.”


그 말에 윤정이가 털썩 엎드린다. 나는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심정은 같았다.


또 한번 지겹게 공부해야겠군.





- 10화. 윤정이는 여자친구 (일일한정). 끝.


작가의말

 코노미카입니다.
 앞으로 소설 분량을 쓰는데 있어서 조금 변경사항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긴 글로 쓰는것보다는 짧은 글이 조금 더 보시기 편하실 것 같아서 한 편의 분량을 조금 줄이는 대신, 업로드하는 빈도수를 늘릴 생각입니다. 전체적인 분량은 크게 바뀌지 않지만, 현재 소설의 반절정도 되는 분량 (5천~7천자)이 3~4일을 기점으로 업로드를 할 예정입니다.
 이 점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내게에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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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5) 17.02.28 288 1 27쪽
26 10화. (4) 17.02.24 264 1 21쪽
25 10화. (3) 17.02.13 411 2 36쪽
24 10화. (2) 17.02.04 441 1 31쪽
23 10화. (1) +2 17.01.24 788 1 29쪽
22 9화. (2) 17.01.21 400 1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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