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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미카의 서재

우리 동아리에서는 내기 게임을 잘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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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미카
작품등록일 :
2016.10.17 22:58
최근연재일 :
2019.03.21 23:16
연재수 :
77 회
조회수 :
21,302
추천수 :
86
글자수 :
998,913

작성
17.03.12 23:14
조회
470
추천
2
글자
33쪽

11화. (2)

DUMMY

※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작중 내에서 표기된 인물, 지명, 단체 등은 모두 허구적 요소입니다.








11화. 누가 누가 강하나 (2)



아영이와의 ‘일방적인’ 약속을 나누고 나서 일주일이 지났다. 이번 기말고사 대비 기간 동안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리들은 이번 주에 동아리 활동 및 보고서 제출을 미리 다 마무리 지었다. 물론 담당 선생님에게도 시험기간 동안 동아리 활동 시간을 자습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흔쾌히 허락받았다.


그리고 시험 대비 공부를 시작하는 그 첫 날인 월요일 방과 후 부실. 나와 윤정이가 앉는 책상 위에는 교과서와 각종 자습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방학 기간 동안의 강제 보충수업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한 우리들의 투쟁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좋아, 오늘부터 2주 뒤가 기말고사. 목표는 너희 둘 다 목표 점수 이상으로 넘는 거. 나는 어디까지나 공부하는 방법이랑 조언 같은 거를 해주는 거지 내가 따로 문제 풀어주거나 그런 건 안 한다. 성적 올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너희들 몫이다. 알았냐?”


“예스 맴! 주윤정, 이번 기말고사는 올백을 목표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푸훗.”


느긋느긋한 자세로 경례를 하면서 현실성 제로인 공약을 입 밖으로 내세우는 애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난다.


“아, 이 바보민준이 자기 주제도 모르면서 윤정이를 또 바보 취급했어. 진짜 짜증 나.”


“제발 현실적인 목표를 생각해라. 올백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할 말을 했을 뿐이다.


“남 신경 끄고 네 걱정이나 해 정민준.”


그러나 게 편인 가재에게 핀잔받는 것은 언제나 이쪽이다.


“나는 윤정이랑 너랑 똑같이 가르칠 거야. 방법도 똑같이 알려줄 거고. 그러니까 혹시나 나중에 내가 안 가르쳐줘서 점수가 안 나왔더니 뭐 이런 핑곗거리 생각도 하지 마.”


“알았어. 잘 가르쳐주기나 해.”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배워야 하는 입장인 건 둘째 쳐도 아영이의 태도는 웬만해서는 마음에 안 든다.


“그리고 약속한 거 알지? 만약 점수 안 나오면.”


- 내가 성적 안 나오면 너한테 내가 뭐든 해 줄 테니까.


... 전자기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내 목소리 같지 않은 내 목소리.


“응, 녹음 한 내용 그대로.”


“수진아, 녹음 안 해도 다 알고 있으니까 이제 그것 좀 지우면 안 되겠어?"


아영이는 그렇다 쳐도 수진이까지. 우리 부원들은 왜 한결같이 이렇게 나를 못 믿을 이미지로 보는 것일까.


“그나저나 더워 죽겠는데 왜 학교 도서관은 시험기간에도 저녁에 안 여는 거야. 시립 도서관 자습실도 하마터면 때 안 좋게 리모델링 중이라 하고.”


선풍기 하나 터덜터덜 돌아가는 열악한 현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달리 갈만한 곳이 없었다.


“확실히 우리 학교는 동아리 활동 끝나면 대부분 학생들이 집에 가니까. 그나마 도서관이 괜찮은 장소이긴 했는데, 아쉽네.”


수진이는 오늘도 책을 읽으면서 여름에 걸맞은, 얼음이 담긴 상큼한 블루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신다... 그러고 보니 봄에는 수시로 유자차를 마시더니, 얘는 항상 그렇게 ‘산도 높은’ 음료만을 고집한다. 물론 보통 사람은 절대로 먹지 못할, 금방이라도 목이 타들어가는 식초도 가뿐히 넘기는 애인데, 이런 음료수쯤이야 그녀에게는 그냥 ‘물’이나 다름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아메리카노를 입에 달고 사는 아영이나 신 음료만을 고집하는 수진이나, 그녀들이 마시는 음료수마저 각자의 성격을 닮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수진이 너는 상관없지 않아? 성적도 이미 잘 나왔는데.”


“공부라는 건 원래 평생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나도 지금 점수에 만족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해야지. 모처럼 마음먹고 공부하려고 하는 너희들이랑 같이 있으면 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아영이만큼은 아니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학교에서는 성적 상위권인 수진이.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실력에 자만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진이가 조금은 특이할지 몰라도, 평소 그녀가 나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는 이유이다.


“수진이는 뭐 점수 보니까 걱정할 것도 없는데도 저렇게 공부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네가 의지박약이라는 거야.”


겸손해도 다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누구’랑은 참 다르게 말이다. 도대체 누구 의견이냐 그건.


“알았어, 하면 되잖아. 나도 할 때는 한다고! 누굴 애로 아나.”


수진이도 한다고 하는데 나라고 못 할 바는 없다. 비록 아영이 성적을 따라잡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나도 스스로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의지만큼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윤정이도 준비 완료! 이 멍청민준보다 윤정이가 우월하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증명해주지!”


그리고, 철없는 이 녀석에게도 좀 쓴맛을 보여줘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


- 탁! 탁! 탁!


갑자기 들려오는 정적을 깨는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소리가 들려온 쪽을 봐 보니, 나를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한 여학생이 있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나는 갑자기 아영이가 왜 이런 말을 하나 싶어서 빠르게 상황 파악을 해 본다. 지금 한창 문제 풀고 있는 시점에서 아영이가 갑자기 말을 걸어올만한 이유라면...


설마?!


“안 졸았는데.”


“안 졸았다고? 참 나.”


내 입은 강력하게 현실을 부인하고 있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안 졸았다. 나는 모처럼 아영이가 가르쳐준 부분의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고, 잠시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민준아.”


잠깐 어리둥절하는 사이 옆에서 문제집을 정리하고 있던 수진이가 조용히 내가 펼친 수학 문제집 위를 손으로 가리켰다. 문제집 위를 보니, 그 위에는 내가 방금했던 그 말이 ‘부질없는 변명’이라는 것을 당당히 보여주고 있는 증거가 묻어있었다.


“아 뭐야 이거...”


당혹스럽다. 나는 황급히 창가 쪽에서 휴지를 꺼내와서 그 증거를 닦아낸다. 이미 목격자가 도처에 널린 상황에서 증거인멸은 사실상 무의미했지만.


“아 정민준 드러워 죽겠네. 애도 아니고 침이나 질질 흘리면서 자고. 거 봐, 멍청민준은 애초부터 안 된다니까.”


“주윤정씨 너나 잘하세요. 넌 내가 졸기 전에 벌써 두 번이나 졸은 주제에.”


올백을 맞을 각오로 공부하겠다며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윤정이는 책 펴자마자 20분 만에 하염없이 책 앞에 대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수진이가 한번, 내가 한번 깨우고 나서야 그녀는 수진이가 건네준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겨우 정신을 차렸었다. 진짜로 정신을 차린 건지 아니면 그냥 눈만 뜬 건지 알 바는 없지만.


“응? 윤정이 졸은 적 없는데? 그냥 문제 풀다가 생각한 건데?”


그 말도 안 되는 변명은 내가 방금했단다.


“겨우 두 시간하고 벌써 졸리다고 이러고 있고... 게다가 중간에 10분 쉬었는데도 이러냐. 뭐, 맘대로 해. 그러다가 성적 안 나오면 나만 좋지. 부탁 하나 들어주고 말이야.”


그녀의 불공평 대우는 여전하다. 상황으로 보면 윤정이가 더 급한데 아영이의 지적질은 끊임없이 나를 향한다.


그런 아영이의 태도가 불편하긴 하지만 그녀에게 할 말은 없다.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틈이 날 때마다 아영이를 몇 번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부실에서 거의 대부분을 스마트폰을 붙잡고 사는 카우치 포테이토 같은 모습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고 있는 '그녀의 진짜 모습'은 180도 달랐다. 졸기는커녕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필기를 하면서 자신만의 노트를 정리해 나가는 모습이 전형적인 모범생이 보여주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심지어 그녀는 쉬는 시간에도 영단어장을 펴들고 단어를 쭉 훑어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공부하겠다고 눈을 부릅 뜬 채로 '각오한' 우리들과는 달리, 아영이는 무표정에 가깝게 '평소 하던 공부 태도' 그대로 자기 할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보여주는 작위적인 행동이 아닌, 진짜 평소 그녀가 항상 해왔기에 이제는 몸에 밴 모범생으로써의 생활습관이었다.


그런 모습은 아영이뿐만이 아니다. 수진이 역시 쉬는 시간에 잠시 자기가 보던 책을 읽는 모습을 빼고는 마찬가지로 조는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가끔씩 아영이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을 제외하고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정말 저쪽 둘과 우리 둘은 생각 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 우리에게 있어서 공부는 '시련'이었지만, 저 둘에게 있어서는 '일상'이었다.

시간은 신경 쓰지 않고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혹을 못 참고 시계를 본다. 4시 반부터 시작했는데, 이제 겨우 6시이다. 딱 세 시간만 버티면 된다. 어차피 우리들은 아무리 늦어도 부실에서는 9시까지만 공부하기로 하였다. 10시 정도 되면 대부분의 대중교통 편이 끊기는지라 나머지 필요한 공부는 각자 하기로 하고, 그전까지는 이렇게 부실에 모여 다 함께 시험 대비를 하기로 그렇게 약속하였다.


약속은 했으면 지켜야 하는 법.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심기일전으로 집중을 한다.








...


“워!”


!!!


나는 갑자기 고막이 떨어질 듯한 큰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동시에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또 잤대요~ 또 잤대요~ 진짜 안되겠네, 크큭.”


아니... 물론 놀래킨 얘도 좀 짜증 나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지금 짜증 나는 심정은 다름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짜증이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정신을 차리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놓고 또 졸다니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답답할 지경이다.


아영이랑 수진이 따라잡기. 말이 쉽지 실제로 해보니 갈 길이 구만리이다.


“그럼 일단 조금이라도 자두는 건 어때? 잠깐 쪽잠이라도 자면 괜찮을 것 같은데.”


고맙게도 수진이는 나를 이렇게 가끔씩 신경 써준다. 확실히 그녀 말대로 한숨 자두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아니야... 잠은 집에서 자야지.”


최소한 첫날이라도 계획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나였기에, 엎드리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서서 잠 좀 깨며 목이라도 축이기 위해 냉장고로 향한다.


“오오! 윤정이는 캔 콜라!”


“네가 가져가. 남 시키지 말고.”


“에? 그런 건 졸린 사람이 가져와야지! 윤정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졸았는데~?”


웃기고 있네. 아까 내 눈앞에서 당당히 두 번씩이나 졸았으면서.


... 그렇긴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윤정이는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졸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집중을 하고 있는 건지 안 하고 있는 건지까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 그녀가 더 이상 졸지는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개인적으로 자존심이 상한다. 사실 수진이의 제안에도 자지 않고 이렇게 억지로 깨어있으려고 한 것도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다. 딴 사람은 몰라도 윤정이한테 마저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학생 신분'으로써의 경쟁심이 가장 불타오르는 때이다. 오늘 나는 그 경쟁심에서 비롯된 자존심이 여러 차례 시험을 받고 있다.


냉수 좀 마시고 속좀 차리자 하는 마음으로 페트병에 든 시원한 물 한통을 가져온다. 그리고,


“에휴.”


- 콩.


나의 복잡한 기분을 한 데 모아 콜라캔으로 윤정이의 머리를 살짝 톡 때린다.


“아~! 왜 때려! 오, 콜라 땡큐!”


...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단순한 사고방식을 하는 애보다도 집중력이 없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답답하다. 진심으로 고민하는 건데, 이제 그만 졸고 싶다.





“내가 갑자기 생각난 게 하나 있어서 그런데, 잠 깨는 게임 한 번 할래?”





...어떻게 하면 잠을 깰 수 있을지 간절하게 생각을 하던 그때, 단어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아영이가 말을 걸어왔다. 방금 전까지 꾹 입 다물고 있더니 뭔 소리를 하려고 -


- 치익!


“아, 깜짝이야!"


잠시 방심한 틈에 들린 시끄러운 소리에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얘는 진짜 잠시도 가만히 안 있는다. 잠깐 아영이에게 시선을 빼앗긴 사이에 바로 내 귀 옆에 대고 콜라캔을 따는 ‘정신연령’ 초등학생 한 명.


“어, 잠 깼다! 오케이! 이걸로 윤정이가 이겼으니까 딸기샌드위치 하나 기부. 오예~!”


...


“뭘 또 하려고.”


“아, 또 이 멍청민준이 윤정이 말을 물로 알고... 꺄아아~!”


애초부터 대꾸를 하지 않는 것이 답이다. 죽순을 잡아뜯으면서 시선은 아영이에게 고정한 채 그녀의 말에 집중한다.


“별거 아냐. 간단한 거.”


그녀는 단어장을 들지 않은 왼손을 만지작거린다. 엄지와 중지를 맞대면서 천천히 비비는 그녀의 행동을 보아하니 잠깐... 설마, 그건 아니겠지.


“졸면 이마 한 대 맞기. 안 졸은 사람이 돌아가면서 한 대씩 때리는 거.”


“그게 게임이냐...”


딱 봐도 안 맞을 사람이 이런 제안하면 다분히 의도적이지 않니 이거. 애초부터 너랑 수진이는 안 졸고 나랑 윤정이는 조니까 이참에 아예 실컷 때리겠다 그 소리잖아.


“안 할래.”


“왜? 피곤할 때는 가끔씩 이렇게 충격 한 번 주면 잠 깨고 좋잖아. 내가 너희들만 때린다고 얘기는 안 했어, 나도 졸면 너희들이 한 대 때려도 되는 거야.”


“애초부터 뒤에 말한 건 말만 그럴싸하게 한 거지 너희들은 애초부터 졸 생각이 없잖아.”


“왜, 나도 사람이야. 나도 피곤하면 졸 때는 있다고.”


그렇게 말해도 지금 보여준 태도만으로 볼 때 그다지 믿고 싶지는 않다. 특히나 항상 옆에 커피를 소울메이트처럼 두고 있는 아영이의 모습을 보면 더더욱 말이다.


“아냐, 그냥 알아서 잠 깰게. 애초부터 그러면 윤정이가 제일 불쌍하잖아. 안 그래?”


자연스레 조롱의 타깃은 아까부터 주제넘은 채로 나를 박박 긁고 있던 그녀에게 향한다.


“...뭐 하냐?”


“알 바 없어.”


그렇게 말해봐야 네가 손 튕기고 있는 자세만 딱 봐도 진지하게 연습하고 있는 게 보이는데 뭐. 상황으로 볼 때 열의 아홉은 나를 때릴 작정으로 그러고 있는 거겠지. 자기 분수도 모른 채 심혈을 기울여 연습하고 있는 모습이 가관이다.


“윤정아, 잘 좀 생각을 해봐. 여기서 조는 사람이 너랑 나밖에 없는데 이걸 해봐야 무슨 소용이야. 우리가 맞는 거 말고 더 있어?”


“...”


“어이, 주윤정 듣고 있냐?”


딱 봐도 전혀 듣고 있지 않는 그녀에게 지금의 질문은 무의미했다. 내 말을 깡그리 무시한 채 손을 몇 번 튕기던 그녀는,


“오케이 됐다. 이제 이 나태민준이 졸기만 하면 된다.”


... 이게 진짜. 아주 작정을 했구먼. 자기 주제도 모른 채로 감히 도전장을 내밀어?


“너 눈만 감기만 해봐. 내가 딱밤 때리는 건 자신 있거든?”


“어차피 뭐 윤정이는 졸 일도 없는데 자신 있는 거랑 뭔 상관.”


참나... 아까까지 그렇게 신나게 졸더니 도대체 얘는 진짜 뭘 믿고 이러는 걸까. 슬슬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좋아, 그럼 하는 거지? 게임은 지금 쉬고 바로 공부할 때부터다. 조는 사람은 가차 없이 한 대 맞는 거야.”


“맘대로 해! 난 절대로 안 졸으니까.”


일방적인 것을 떠나서 은근히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이 둘의 태도를 보고 한번 제대로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아영이가 제안한 이 내기를 다짜고짜 ‘윤정이의 말을 듣고’ 받아들였다.


운 만 좋으면 이 타이밍에 윤정이와 아영이를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는 통쾌한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참, 수진이는 어떻게 할 거야?”


참, 그러고 보니 수진이에게 의견을 아직 안 물어봤다.


“응. 다들 한다고 하니까 나도 할게.”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게임 제안을 수락하는 수진이. 전혀 졸 것 같은 기세가 없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지금 하는 게임은 하나 안 하나 차이도 없을 것이다. 그녀가 걸릴 일도 없을 것 같지만, 걸려도 그녀에게 맞는것은 별다른 타격은 없을 것이다.


강수진. 예전에 오락실에서 의외의 승부욕을 보여주었던 발판 리듬게임을 제외하면 평소 운동이랑은 거리가 너무나도 먼 그녀이다. 솔직히 그녀가 마음먹고 딱밤을 때린다고 해도 뭐, 솔직히 여기 둘에 비해서는 뭐 때리는 것도 아닐 것이다.


확실히, 수진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 몸이 극도로 나른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설마 또 졸았나?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내 바로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


망했다.


순간 이 한 마디가 확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방금 풀던 문제집 위에 선명하게 떨어진 또 한 방울의 타액... 이건 백 퍼센트다. 나는 상황 파악을 하고 일단 황급히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때 마침 아영이는 뭔가를 적고 있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수진이 역시 노트만 넘기면서 책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윤정이는 바로 옆에 있으니 졸고 있는 걸 봤으면 뭐 진작에 얘기했겠지. 결론을 내리자면 잠깐 깜빡 졸았는데, 다행히 운 좋게도 들키지 않은 것 같다. 상황 파악이 끝난 나는 옷자락으로 재빠르게 증거를 닦아낸 다음에 페이지를 넘겼다.


솔직히 딱밤 자체가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그것에 앞서 학생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는 공부에 있어서는 자연스레 학생의 본분으로써의 자존심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 경쟁 요소의 주된 원인은 결국은 시험 성적인데, 그런 시험 성적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평소의 공부 태도이고, 그 중에서 민감해하는 것이 바로 조는 것이다. 물론 일과가 빡빡해서 피곤하다면 어느 정도 조는 것은 납득이 가지만, 솔직히 우리 성류고 홍보동아리는 그래도 그렇게 빡빡한 일과를 보내는 여타 고등학생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말하기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솔직히 요즘 따라 충분히 자고 다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그런 일상을 내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지금 조는 것은 내 스스로써 더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이런 심정인데, 거기에 주제를 넘나드는 이 녀석의 도발을 듣자 하니 그냥 참고 넘어갈 수 없다. 이 주제 모르는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


그런 생각을 하던 침, 나는 내 옆에 상당히 조용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기분에 조금씩 들뜨기 시작한다. 그런 기대감과 함께 살짝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가슴이 터지는 듯한 감격을 느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꾸벅꾸벅하고 있는 그녀. 아까까지 주제 모르고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더니 불쌍한 녀석. 아, 벌써부터 손이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이로써 정정당당하게 윤정이를 한 대 딱밤을 때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일단 그 전에, 일단은 이 영예(?)의 순간을 직접 그녀에게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아영이와 수진이를 조용히 손짓으로 불렀다. 나의 손짓에 금세 반응한 두 사람도 윤정이가 졸고 있는 그 모습을 금세 확인하였다. 이어서 손짓으로 사각형을 그리며 수진이에게 동영상을 찍어달라고 하였다. 친절한 수진이는 거리낌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바로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졸고 있는 윤정이를 두 손으로 가리키면서 동영상 속에 한없이 손짓으로 그녀를 놀려대는 모습을 남겼다.


아, 이것만으로도 통쾌하다. 이제 증거도 확보되었으니 심판을 시작하자.


“자, 주윤정 딱밤 맞을 시간!”


그 말과 함께 나는 윤정이의 목을 탁탁 친다. “어?” 하면서 두리번거리며 일어나는 모습이 딱 봐도 자다 일어난 그런 눈치이다.


“어? 윤정이 안 졸았는데, 봐. 침 자국 없잖아.”


침을 흘려야 꼭 조는 거니? 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줄 알고 미리 물증을 다 준비해놨단다 얘야.


“수진아, 방금 찍은 거.”


“응.”


수진이는 방금 찍은 영상을 나와 윤정이에게 보여준다. 방금 내가 했던 그 모습 그대로, 윤정이가 눈을 감은채 꾸벅이는 그 모습이 그대로 찍혀있었다. 참으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게 증거 영상이다. 현실을 그대로 재연하는 21세기의 영상기술의 위대함에 감탄하는 순간이다.


“아아아...”


윤정이는 뒤늦게 고개를 흔들며 자기 머리를 탁탁 두드리지만, 이미 결정은 났단다.


“그렇게 자기는 안 졸 것 같다고 얘기하더니 결국 다 허세였네?”


“허세 아니야. 지금 문제 푸는 데가 어려웠던 거야!”


“응, 변명은 됐고 한 대 맞자.”


“아 잠깐, 이건 아니지! 아영아...”


급해지니까 역시나 자기 가재를 찾는 아영이를 찾는 윤정이. 하지만,


“미안하지만 이번에 확실히 졸은 건 봤어. 어쩔 수 없지. 규칙은 규칙이니까.”


김아영 나이스 잡. 평소 가재 같은 그녀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룰이 확실한 게임의 세계에서는 아영이도 냉철하다. 홍보동아리 컨셉인 내기 게임 자체도 부장인 그녀가 제안한 것이니 그 점에 대해서는 윤정이도 예외는 없었나 보다. 물론 이거 하나 가지고 그녀에 대한 태도가 180도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은 해 보게 된다.


“쭉 한 바퀴 돌면서 우리들한테 맞기. 먼저 나부터.”


드디어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평소 나에게 무슨 민준 하면서 놀려온 이 버릇없는 녀석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줄 기회 말이다. 그동안 죽순 뜯기 말고 그녀에게 보여준 것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야말로 그녀에게 제대로 매운맛을 보여줄 수 있는, 둘도 없는 찬스이다. 윤정이는 아직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아마도 뭔가 지원 요청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증거도 확보된 상황에서 너의 의견을 들어줄 친구는 없는 것 같다.


그녀는 잠시 둘러보다가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는 갑자기 씨익 웃으면서.


“예에~! 윤정이는 사실은 졸은 것이 아니라 잠깐 문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거야! 이놈의 문제 하나가 얼마나 머리 아프게 하는지, 윤정이는 진심으로 눈을 감고 고민을 했단 말이지. 그 심연의 명상 속에서 마침내 답을 -”


- 틱.


잔소리 말고 그냥 맞아라. 그녀가 막을 틈도 없이 나는 재빨리 오른손에 딱밤을 장전해서 윤정이의 이마를 무차별 폭격하였다.


“꺄아~”


갑작스러운 딱밤 세례에 짧은 외마디를 남긴 윤정이, 그러나...


“아, 빗맞았어!”


나의 애매한 손의 감각과 생각보다 여유로워하는 윤정이의 표정을 보고, 나는 소중한 첫 회심의 일격이 허무하게 날아갔다는 사실을 직감하였다. 모처럼 얻은 기회인데, 너무 빨리 치려던 나머지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될 줄이야. 모처럼의 기회가 이렇게 날아가 버리다니. 울고 싶다.


“오케이 끝났어! 이걸로 멍청민준 몫은 끝났다!”


“네가 말을 해서 그런 거잖아!”


“참나 어이없네, 윤정이가 말한 거랑 뭔 상관? 그렇게 말하는 멍청민준 때린다는 말도 안 하고 때렸으면서?”


... 뭔가 말을 하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내 실수다.


“너 다음에 걸리면 진짜 두고 봐.”


“후훙, 윤정이는 두 번은 안 걸린다고! 아영아~ 살살 부탁해~!”


여유로운 표정으로 아영이 앞에 이마를 내미는 윤정이. 보나 마나 아영이랑 수진이는 살살 때리겠지.


“아영이 너 룰대로 제대로 해라. 어차피 하는 거 제대로 -”


- 탁.


.. 아영이는 보나 마나였다. 누가 봐도 때릴 의지가 없어 보이는 힘 없는 소리.


“아 세게 때리라니까! 친구라고 봐주기 있어?”


“애초부터 얼마나 세게 때려야 한다고는 정한 적 없거든. 그리고 나도 때리면 제대로 때린다. 일단 처음이니까 이 정도만 한 거다.”

누가 말은 못하냐.


“수~ 진~ 아~! 부탁할~께! 에헷.”


여유로운 미소로 수진이 앞에 총총거리면서 다가선 윤정이. 애초부터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수진이가 때리는 것은 때리는 것 계산에도 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윤정아, 잠깐 눈 감고 있어.”


“응? 오케이.”


수진이의 말에 여유롭게 뒷짐까지 지면서 눈을 감은 윤정이. 평소 수진이의 이미지로 볼 때 딱밤과는 전혀 연이 없어 보이는 그녀였기에 윤정이가 저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얄궂다.


수진이가 가운뎃손가락을 몇 번 튕겨보더니, 살포시 윤정이의 이마 앞에 갖다 댄다. 자세 자체는 우리들이 딱밤을 때리던 자세와 별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애초부터 수진이의 힘은 기대할 것이 못된다. 벌칙이니까 게임을 하면 제대로 충실하게 벌칙을 수행하는 수진이의 모습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별로 큰 타격은 못 될 것 같다.


“간다.”


가거나 말거나. 나는 그런 둘의 모습은 무시한 채 윤정이에게 어떻게 하면 딱밤을 한대 제대로 먹일 수 있을지 고민을 하며 아까 잘못 쳤던 그 감각을 다시 떠올리며 한번 허공을 향해 세게 딱밤질을 한다.





- 따아아아아아아아아악!!!!!!





...?


나는 그 짧은 순간 내 귀를 의심하였다. 순간 내가 손에 화약이라도 쥐었었나, 갑자기 뭐가 폭발하는 듯한 파열음이 귓속에 똑똑히 파고들었다. 허공에 대고 딱밤질을 했는데 이런 소리가 나다니! ...가 아니라 내가 무슨 초능력자도 아니고 그런 소리를 아무것도 없는 내 손에서 낼 리 없었기에 나는 자연스레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본다. 방금 들은 그 소리는 마치 벽에다 대고 있는 힘껏 돌을 집어던지는 소리, 아니면 천장에서 무슨 추 같은 것이 바닥에 떨어질 때 나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무튼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 소리가 사람의 손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으으으윽!”


그 설마 하는 생각에 희생양이 된 그녀의 신음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야? 주윤정, 너 왜 그래! 괜찮아!?”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윤정이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뒹굴뒹굴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윤정이가 아프게 맞아 괴로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기뻐했던 나마저도, 이건 확실히 너무 지나쳤다는 나머지 오히려 그녀를 걱정한다.


그리고,


“아... 조금 빗맞았다. 다음에는 좀 신중하게 해야겠네.”


진짜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방금 윤정이에게 ‘지옥’을 선사했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수진이. 윤정이가 괴로워하며 뒹구는 모습을 앞에 두고서도 수진이는 ‘평소 태연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항상 말하지만, 수진이는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여도, 알고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그리고 오늘 또 하나, 그런 그녀의 모습을 찾아내었다.


“뭐, 뭘 아프다고 그래? 윤정이 너는 운동도 좋아하면서.”


...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본심과는 전혀 달랐다. 어떻게든 방금 수진이가 윤정이를 말 그대로 ‘때려눕힌’ 한 방이 그저 나를 놀래기 위한 연기이기를, 진짜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한 영혼 없는 한마디였다. 평소 연기도 잘하고 거짓말도 잘 하는 윤정이었기에, 이번에도 ‘헤헤, 뭐야? 모처럼 수진이랑 연기해 봤는데, 너무 티 났나?’ 하면서 태연하게 일어서기를 바라고 있었다.


“흐윽, 너무 아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었지 현실이 아니었다. 어렵게 고개를 들어 일어선 윤정이의 모습을 보아하니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한가득 고여있었고, 고통의 흔적이라고 해야 할까나, 그녀가 서 있는 자리에서 제법 떨어진 여기서도 선명하게 남은 빨갛게 부어오른 자국이 눈에 보였다. ‘수진이의 딱밤 한 대는 무시무시한 살상 무기에 버금가는 파괴력’이라는, 어떻게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 가설을 더 이상 이의 제기 없이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민준이 네가 한번 직접 맞아봐.”


평소 장난기 어린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진지하게 정색하는 윤정이. 다른 사람의 인격이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근데 소리는 들었는데 나도 깜짝 놀랐다. 진짜 누가 이마에 돌 던지는 줄 알았어.”


“그런 것 같은 게 아니라 그냥 그거야. 와, 수진이 진짜 너무해...”


자리에 털썩 앉은 윤정이는 응급처치로 콜라가 담긴 캔을 자기 머리에 갖다 댄다. 그녀의 이마는 눈에 띄게 선명하게 부어있었다.


“미안해. 그렇게 센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아팠으면, 윤정이도 나한테 딱밤 한 번 때려도 돼.”


수진이가 의도치 않게 너무 세게 때린 게 마음에 걸렸나 보다. 물론 나도 윤정이의 입장이었다면 아마 저런 상황을 그냥 넘어갔을 리가 없을 것이다.


“으아, 진짜? 고마워! 에헴. 수진아, 이건 룰 위반이야. 강도가 국제규격을 넘었어. 그러니까 한 대만 딱 때려도 이해를 해줘. 알았지?”





“스톱 윤정아.”





그러나 그때, 윤정이가 수진이 앞으로 다가가려는 것을 제제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영이였다.


“강도는 아무 상관없어. 우리는 일단 조는 사람만 때리기로 약속했잖아? 우리 홍보동아리 룰 몰라? 약속된 규정 외에는 안 하는 거.”


“그치만 수진이가 때려도 된다고 했어.”


“그래?”


윤정이는 벌써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겨보고 있었다. 잠시 윤정이를 보던 아영이가 시선을 수진이에게로 향한다.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쏘아보면서.


“강수진, 너는 항상 룰 까다롭게 지키면서 왜 지금은 윤정이한테 그렇게 선뜻 대해주는 거야?”


“아니, 나는 그냥 좀 세게 때린 게 미안하니까...”


“그런 거 미안해할 필요 없어? 규칙대로 한 거잖아. 윤정이는 아무 말 안 하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네가 그런 말을 해?”


“그, 그건...”


수진이는 말문이 막힌 듯했다. 뭐야 이건, 즐기는 듯 가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야, 김아영 너 왜 그래 갑자기?”


나는 뭔가 불편한 표정으로 수진이를 쏘아보고 있는 아영이에게 말을 걸었다. 왠지 이대로 가만히 가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내린 판단이었다.


“어? 아... 내가 뭔 소리를 한 거지 지금. 미안, 나도 좀 더워가지고 정신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아이스커피를 입에 무는 아영이었지만, 솔직히 여름이라고 해도 해가 거의 기울은 지금 시간, 아직은 그렇게 더운 날씨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아무리 봐도 그녀의 이마에는 땀 한 방울도 맺히지 않았다.


딱 봐도 거짓말이었다.


요즘 아영이와 수진이의 둘 사이의 분위기가 좀 이상한 것 같다. 저번에 지우개 펜싱을 할 때도 둘이 게임을 했을 때 뭔가 좀 분위기가 축 처져있었다. 최근 와서도 계속해서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어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지금도 내가 말을 하니까 평소 모습대로 응대를 하는 모습이 딱 봐도 뭔가를 숨기고 있다.


아무래도 시간 날 때 한번 직접 물어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


“체에, 윤정이가 이렇게 아파하는데 아영이도 좀 도와주지... 아아, 수진이 졸 때까지밖에 기다릴 수밖에 없나.”


그렇게 말하면서 남은 콜라를 한 번에 들이키는 윤정이.





“그럼 그렇게 하고 싶으면 윤정이 네가 예전에 했던 그 게임 방식대로 해도 되고.”





아까 전 수진이에게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던 아영이의 목소리는 다시 평소 그대로이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아무래도 좀 찝찝하긴 하지만 지금 서로가 있는 앞에서 구체적인 사정을 물어보는 것은 그만두기로 하였다. 정 궁금하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수진이에게 따로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전에, ‘나랑 상관없는 둘만의 이야기’에 끼어드는 것은 오히려 실례일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얘네 둘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어, 설마 그거 말하는 거야? 오케이... 수진아! 나랑 내기 게임 한번!”


뭔가 텔레파시 같은 거라도 둘 사이에 오고 갔는지, 윤정이가 수진이에게 다시 다가가 말을 건다.


“응 무슨 게임?”


“그게 말이지, 소곤소곤...”


... 뭔 소리인지 들었다. 설마 수진이가 그걸 받아들이겠니. 본전도 못 뽑을 제안을 애초부터 받아줄 리가 없잖아.


“그래, 하자.”


...라고 생각했건만 수진이는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바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왜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지 솔직히 납득은 안된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윤정이도 박빙인데.


덕분에 은근히 재미있는 한판 승부가 성사되었다.





- (3)편에서 계속.


작가의말

코노미카입니다.
현재 이 파트 말고 추후 연재할 뒷부분이 조금 막히고 있네요. 나름대로 스토리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 잘 풀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화도 즐겁게 감상하셨기를 바라면서, 다음화도 기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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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akrasia
    작성일
    17.07.26 01:49
    No. 1

    안녕하세요. 다시 정주행 중입니다. 블로그에서 새 일러스트도 잘 봤어요. 채색 기술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네요. 전 셀식 채색밖에 못해서 배울 점이 많은 것 같네요. 건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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