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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미카의 서재

우리 동아리에서는 내기 게임을 잘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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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미카
작품등록일 :
2016.10.17 22:58
최근연재일 :
2019.03.21 23:16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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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06
추천수 :
86
글자수 :
998,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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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0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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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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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2쪽

11화. (4)

DUMMY

※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작중 내에서 표기된 인물, 지명, 단체 등은 모두 허구적 요소입니다.






11화. 누가 누가 강하나 (4)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너무나도 깜~찍하고 매력 넘치는 주윤정이 성류고 홍보동아리 스테이지에서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이죠! 놓쳐서는 안되는 빅 이벤트! 한번 잘못 맞으면 그대로 골로 간다는 무시무시한 딱밤을 놓고 펼치는 경기!”


아까 딱밤에 몸져 누운 주제에 내가(어쩔 수 없이) 게임한다고 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팔팔 날아다니는 주윤정. 망치 한방에 불이 났던 이마를 식혔던 콜라캔을 마이크 삼아 캐스터 놀이를 하고 있다.


“그럼 선수 소개를 하겠습니다! 우선, 윤정이도 방금 맞아봤지만 정말 말이 안 나오는 딱밤의 괴... 아니, 여제라고 할 수 있죠! 소개합니다, 강수진! 짝짝짝!”


윤정이의, 말 한마디 잘 못 했으면 ‘위험’할 뻔한 소개를 듣고도 그저 무덤덤한 수진이. 오로지 그녀의 시선은 곧 나에게 공포를 선사해 줄 자기 손가락만을 향하고 있다. 혼자 소개하고 혼자 한참 신나게 손뼉을 치더니, 이내 음흉한 눈으로 이쪽을 째려보는 ‘편파중계’ 캐스터.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런 눈으로 쳐다보니.


“음... 아... 자! 그럼 게임을 시작해보도록 합시다!”


... 윤정이는 비난보다도 더 기분 나쁘다는 ‘무시’로써 이쪽을 응대한다.


“어이, 난 사람도 아니냐?”


“아이 씨. 귀찮아 죽겠네. 정민준. 어차피 질 주제에 립 서비스는 엄청 요구해.”


이 녀석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빠라 부르면서 연인인 척 ‘행세’를 하던 애이다.


그리고,


“김아영 넌 안 볼 거야?”


자기가 먼저 졸고 있는 모습 수진이에게 찍으라고 해놓고서 어느새 혼자 또 단어장을 보고 있는 김아영.


“시작하면 알아서 볼테니까 네 걱정이나 해.”


얘한텐 물어봐야 건질 거리도 없다. 아까까지는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재미있게 구경하던 딱밤게임이었는데, 누구 덕분에 진짜로 하게 생겼네. 그렇게 공부 잘 하면 공부에만 집중할 것이지 남 졸고 있는 사사로운 것까지 신경 쓰고 지적하다니, 정말 얄궂다.


“자, 그럼 상호 간에 인사 부탁드립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시선은 오로지 수진이에게만 꽂혀있는 캐스터. 애초부터 이쪽은 그냥 투명인간 취급이다.


“잘 부탁해 민준아.”


그래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예의를 갖추는 수진이. 물론 이런 모습을 본다고 아까 들었던 그 무시무시한 딱밤의 파열음이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살살해.”


그렇기에, ‘살기 위한’ 나의 본심을 담은 부탁으로 수진이에게 어필을 해본다.


“아아, 동작 그만. 저기요, 벌써부터 밑장까는 건가요? 아아, 이런 더티 플레이 유저를 봤나.”


그리고 그 한마디에 가차 없이 태클을 집어넣는 ‘편파 해설자’.


“와, 어이없네. 자기가 먼저 한 주제에.”


“흥~이다! 어차피 윤정이는 벌써 주사 다 맞았다! 정민준, 넌 죽었다고 생각해 그냥! 크큭...”


비열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목에 손을 갖다 대는 행동이, 진짜 영화에 나오는 악인이나 다름없다.


“이게 진짜...!”


참다못해 윤정이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나 -


“민준아, 이제 시작하자.”


를 붙잡는 수진이의 한마디.


“잠깐만 있어봐, 얘가 자꾸 - ”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시작하자? 응?”




살기(殺氣)...


“네.”


안 그래도 무시무시한 딱밤. 서비스로 더 맞기 전에 일단 순순히 응하자. 주윤정. 지금은 물러나지만 내 기어코 복수를 하리라.


“그럼 가위바위보로 선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수진이가 이겨서 한방에 끝내는 것도 좋지만... 수진이가 잘 참아주면 이 버릇없는 민준이를 두 방 날려줄 수 있죠! 한번 더 참으면 세 번... 아, 수진이도 계속 맞으면 아프겠지. 미안해 헤헤...”


“잔 말 말고 시작...”


“안 내면 술래...”


비겁한 윤정이의 가위 바위 보 구령에는 예고 따위는 없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방책은 한 가지이다. 먼저 이겨서, 어떻게든 수진이에게 결정타를 때려서 한 번에 그녀를 꺾는 것. 그 전략의 초석이 바로 이 가위바위보에서 승리를 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빨리 굴려본다. 가위바위보라는거 자체가 애초부터 전략 따위는 별로 신경 쓸 일도 없는 것인지라, 지금 하는 의미 행동은 엄연히 말하면 ‘생존본능’에 의한 무의식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가위, 바위, 보!”


그녀가 낸 보 앞에 나는 군더더기 없는 가위를 냈다.


됐다, 이겼다! 나의 뼛속에 자리 잡은 생존본능은 ‘살아남을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 어렸을 적 감이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나는 소꿉친구였던 ‘수진’이에게 벌칙을 할 때에 어떻게 때리는지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비록 그때는 손목을 때리는 걸로 했었지만.


처음 멋모르고 ‘수진’이의 제안에 다짜고짜 손목을 맞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인정사정없이 세게 때려서 맞고 울었던, 지금 생각하면 제법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수진’이는 그게 미안했었는지 사과의 의미라고 해야 할까, 나중에 어떻게 하면 잘 때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었었다. 잘 때리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애들 시절 때나 하는, 흔히 말하는 ‘허세’나 다름없는 건데... 오늘 이 시간 우연히도, 앞으로 평생 꺼낼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그 허세를 다시 한 번 꺼내야 할 때가 왔다.


수진이의 이마를 보니, 그래도 윤정이의 팔 힘도 장난이 아니었던지 그녀의 이마는 아직도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비록 수진이가 말없이 참아서 그런 것뿐이지 분명 아까 윤정이가 때린 것도 소리가 무척이나 청량했고, 수진이도 분명히 아팠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녀가 윤정이와 먼저 승부를 한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뜻하지 않은 혜택이다. 아픈 데를 또 때리면 더욱 아픈 것은 당연한 사실. 아까 움찔했던 수진이의 표정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그녀라도 참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진짜 이번에 제대로만 때리면 이길 수 있다. 그래도 부원 중에서는 평소 좋은 이미지를 보여준 수진이었기에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이것만큼은 절대로 봐 줄 수 없다.


“아아~ 이 비겁한 민준이 이겨버렸네요. 어~ 그러고 보니 민준이는 남자네? 수진이는 여자고... 설마, 가련한 숙녀분의 머리를 잔인하게 때릴 거는 아니지? 민준아, 그건 비도덕적인 행동이야. 크큭.”


... 내 이 소리 분명 누군가 할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라는 특혜 하나만으로 어떻게든 제대로 못 때리게 방해하려는 주윤정... 애초부터 날 패자 취급하고 편파판정하고 있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게임은 봐 주는 거 없는 거야? 아까 아영이가 말해준 거 못 들었어? 안 그러냐?”


“룰대로 해야지 당연히.”


오오, 웬일로 아영이 얘가 내 말에 공감을 해주냐?


“애초부터 스포츠에서도 성별은 나누게 원칙이지만.”


는 개뿔.


“넌, 그래서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네 맘대로 하라고.”


이런 중구난방한 답변, 정말이지 싫다. 이 녀석은 이렇게 말해놓고서 분명히 나중에 때리고 나서 뭐라고 또 한소리 하겠지.


“게임이니까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둘이 하는 말에 괜한 더 복잡해지던 그때, 머릿속을 파고드는 수진이의 한마디. 수진이는 묵묵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겠어? 나도 이길 각오로 할 거라서 말이야. 진짜 아플 수도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번 더 물어본다.


“응, 괜찮아. 어차피 승부를 내기로 한 거니까. 내가 지면 깔끔히 진 걸로 인정할게."


고개를 끄덕이는 수진이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다.


“우와, 수진이 대박!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오는 감동적인 페어플레이 정신...! 그 정신이 빛을 발해야 하는데 말이죠.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이 경기에서 누가 이겨야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인지. 아아, 이건 인류 문명을 통틀어 -”


“저기 윤정아.”


“응? 왜 불렀어, 수진아~!”


쓸데 없는 말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혼자만의 연설을 하고 앉아있는 윤정이를 보던 수진이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게임 좀 시작하게 그만 좀 질질 끌고 ‘닥쳐’줄래?”





뻥!


그것은 마치 꽉 막힌 하수구를 한방에 뚫어주는 듯한 속 시원한 한마디였다.


“아... 네.”


살기 어린 수진이의 표정을 본 윤정이가 꽁지를 빼고 아영이 뒤로 슬그머니 숨으며 이쪽을 쳐다본다. 비록 아직도 이런 수진이의 '이중인격'에 가까운 돌발행동이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 이렇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나는 그녀의 위업을 기리며 살짝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시작하자.”


음, 위업이라고 한 것은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로...


우와... 그 순간, 수진이의 행동에 마음이 움찔했다.


수진이는 자기 앞머리를 살짝 밀며 자신의 이마를 보여주었다. 아까 윤정이가 이마를 때릴 때도 그녀가 말했던 것이지만, 이렇게 마주 앉아 바로 앞에서 그녀의 이마를 보아하니 더욱 실감이 났다. 원래 지금 우리 나이대야말로 보통 여드름이나 주근깨 같은 것이 한두 개는 있는 것이 보통인데, 수진이의 이마는 정말 윤이 날 정도로 깨끗했다. 더욱이 가까이서 보니, 아까 윤정이가 때려서 일부분이 빨갛게 달아오르긴 했어도 전체적으로 수진이의 이마는 유독 하얗다. 평소 운동을 거의 안 해서 햇볕 밑에서 돌아다닌 적이 거의 없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다른 여학생들과 비교해도 수진이의 피부는 더욱 뽀얗게 보였다. 그야말로 수진이의 이마는, 아니 얼굴 전체가 미형(美型)이었다.


“저기, 민준아... 뭐 해?”


수진이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린다. 알 수 없는 마력에 이끌려 잠시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아 미안.”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서둘러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손을 들었다. 어차피 그냥 딱밤으로는 한방에 승부를 낼 수 없을 것 같아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손가락 망치로 제안을 했는데, 이번에 이긴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군침을 삼키고 결심을 한 후 나는 손끝을 그녀의 이마에 살포시 가져다 댄다.


“아.”


내 손에 낯선 감촉이 느껴진 그 순간, 수진이가 움찔하고 뒤로 몸을 뺐다. 그 모습을 보고는 나 역시 움찔하고 손을 뒤로 뺀다.


“아 미안해, 잠깐 딴 생각을 했네. 계속해.”


그녀는 미안한 말투로 이쪽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나는 남학생이다. 수진이가 ‘이성’으로써의 시선으로 나의 행동에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아니야.”


그렇게 말을 하고 수진이의 이마를 다시 바라본다. 아까 맞아서 살짝 빨갛게 된 부분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 번 그곳에 손을 가져다 댄다.


아...


자세를 잡기 위해 나의 손끝이 그녀의 이마에 닿은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부드러웠다.


생각해보니 나는 중학생 이후로 여자의 이마에 손을 대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상식적으로 여성의 신체는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까. 그렇기에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너무나도 신선하고 새로웠다. 아까 딱밤을 때리는 모습에서 봐도 그렇고 이마라는 곳에 대한 통상적인 이미지는 피부에 비하면 단단하고 거친 그런 느낌으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손을 대 본 순간, 그것은 완벽한 착각이라는 것을 느꼈다. 손끝으로 살포시 다가오는 수진이의 부드럽고 온기가 느껴지는 살결은, 한마디로 신세계였다.

그렇게 잠시 동안 ‘기분 좋은’ 감촉을 손끝에서 느끼고 있었을 때,


“민준아, 빨리...”


수진이가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에 시선은 얼굴로 향한다. 그녀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살짝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상기된 듯이 달아올라 있었다. 말은 안 하고 있지만, 그녀는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얼른 때려야겠다고 머릿속은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세뇌된 듯한 기분으로 손은 이마에 그대로 댄 채 시선은 그녀의 달아오른 얼굴만을 향하고 있었다.


“와~! 수진이 이마에 손대면서 멍 때리고 있는 것 봐. 저 변태민준.”


“하여간 남자들은... 확 그냥 선생님한테 말해버릴까.”


그 세뇌를 깨뜨리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불편한 목소리에 정신이 버쩍 든다. 저 녀석들이 진짜.


“야, 조준도 못하냐! 나는 지금 생사가 갈려있는데.”


나는 이렇게 말하며 급히 가운뎃손가락을 뒤로 꺾으며 조준점을 살펴본다. 사실 지금 한 말의 반은 거짓말이지만.


일단 그렇게 정신을 차리니 지금까지의 잡생각은 사라졌다. 지금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번에 제대로 수진이를 때리지 못하면 그냥 끝이다. 나는 수진이의 달아오른 이마를 보고 손가락을 꺾었다.


튕긴다는 생각으로, 오로지 힘은 손끝에만, 때릴 때는 쿠션을 주지 말고 간결하게... 어릴 적 ‘수진’이와 수십 번을 연습해봤던 그 그대로만 하면 된다.


그리고, 어렸을 적 몸에 익혀두었던 그 감각을, 지금 온몸으로 느끼는 이 순간.


- 따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 감각이 마침내 행동으로 발현한다.


중지 손가락이 그녀의 이마를 때린 순간, 내 스스로도 믿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파열음이 귓전을 울렸다. 내가 듣고도 정녕 이게 내 손에서 난 소리인가 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파열음. 곧이어 손가락 끝으로 그 소리만큼이나 말 못할 고통이 왔지만, 그렇게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보다 수진이가 걱정되었기에 무심코,


“아 미...”


사과를 하려던 참에 급히 말을 삼킨다.


이건 게임이다. 애초부터 수진이는 이걸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고, 나 역시 그걸 알고 때린 것이다. 지금 하는 것은 정정당당한 승부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사과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수진이가 바라는 것은 그런 페어플레이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던 말을 거둔 채 조심스레 그녀를 살펴본다. 수진이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주먹을 꾹 쥔 채, 입은 다문 채로 코로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더욱 빨갛게 달아오른 이마만 봐도 지금 그녀가 말 못할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정말 이기기 위해서 인정사정 안 봐준 것이다. 살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나... 둘...”


그러나,


“셋!”


수진이는 버텨내었다. 수진이가 말한 대로, 여자인 거 신경 안 쓰고, 오로지 게임이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전력을 다 했다. 그러나 버텨내었다. 어렸을 적부터 간직해오던 그 ‘허세’는 안타깝게도 수진이라는 벽까지 뛰어넘지는 못 했다.


“아, 아파...”


잠시 동안 아픔을 달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수진이. 그녀를 보면서 물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과 함께 사실 그 마음과 함께 마음속으로 느낀 ‘다른 한가지 감정’이 있었다.


홀가분.





그 오묘한 감정을 살면 처음 느낀 것은 아마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었을 것이다. ‘수진’이에게 손목을 세게 맞고 그녀 앞에서 눈물을 보였던 그날, 집에서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았던 나는 ‘수진’이에게 교과서를 빌려달라고 했었다.


- 민준이 또 놓고 왔어? 이번엔 안 돼. 저번이 마지막이라고 약속했었잖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덜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어린 나는 뭔가 잊어버린 게 있으면 망설임 없이 친했던 ‘수진’이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하지만, 매일같이 불평을 하면서도 빌려주었던 그녀였지만, 그날만큼은 ‘수진’이도 나의 부탁을 좀처럼 들어주지 않았다.


- 왜 맨날 놓고 와. 약속 안 지키는 민준이는 나빠.


초등학교 시절 알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같은 반 친구들이었었다. 그렇기에 솔직히 마음을 털어놓고 부탁할 사람은 ‘수진’이 밖에 없었다.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는 게 무서워서 ‘수진’이에게 뭐든 하겠다고 간절히 부탁을 했었었다.


그러자, ‘수진’이는 한가지 제안을 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자기를 이기면 아무 말없이 교과서를 빌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 민준이가 지면 나한테 한 대 맞고 빌려 가기. 잘못했으니까 내가 혼내줄 거야.


초등학생에게 ‘선생님이 무서워 친구가 무서워’라고 물어보면 답은 사실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건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수진’이의 제안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어진 가위바위보에서 졌다.


‘수진’이가 때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순진한 나는 그래도 일단 한 대 맞으면 오늘도 아무런 일 없이 교과서를 받아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만을 했었고, 그녀에게 망설임 없이 손목을 내밀었다. 이제 쉬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내 머릿속은 일단 빨리 맞고 교과서를 빌려 가야겠다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수진’이와의 약속을 지켰다.


- 딱.


...


선생님에게 실컷 꾸중을 들은 수진이와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던 나.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그녀에게 오히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이를 물고 참았더라도 이렇게 ‘수진’이가 혼날일은 없었을 텐데.


- 미안. 너무 세게 때렸지?


그런 생각을 하던 참, ‘수진’이가 나를 쳐다봤다. 한 대 맞고 바로 울음을 터뜨렸을 정도로 세게 때린 그녀의 손가락은 연약한 소녀로서의 손이 아니라, 교과서를 안 가져온 잘못을 치르기 위해 맞은 회초리 같았다. 그녀에게 맞은 오른손이 아직도 얼얼했다. 나는 차마 다른 말은 못하고 그저 아프다는 것만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를 잠시 쳐다보던 ‘수진’이가 말했다.


- 그렇지만 민준이가 잘못한 건 맞잖아. 분명히 다음부터는 가져오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안 가져온 민준이가 나빠.


나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 고개를 또 끄덕였다. 그러자 ‘수진’이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까 자기가 때렸던 나의 손목을 어루만져 주었다. 아까 느꼈던 회초리 같은 느낌의 손과는 전혀 다른, 그저 평범한 여자아이의 손길이었다.


- 그러니까, 서로 잘못한 거니까 이걸로 땡 하자. 알았지?


그렇게 금방 싸우고도 금방 친해지는 사이, 그것이 ‘친구’라는 특별한 인연인 것이다.


‘수진’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였다. 다시는 교과서를 두고 오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그런 고리타분한 의미에서의 다짐이 아니다. 그것은 친구와의 약속이다.


너무나도 소중한 약속.


- 아침에 학교 올 때 교과서 잘 챙겨 오기. 약속 잘 지키는 거야?


손을 어루만져 주는 ‘수진’이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밝게 웃고 있었다. 어쩌면 그때 정정당당하게 맞은 것 덕분에 ‘수진’이와 조금 더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홀가분.


그날 처음 느꼈던 그 감정은 낯설었지만, 정말로 기분 좋았다.


- 헤헤, 그러면 민준이가 약속 잘 지키면 좋은 거 하나 알려줄게!


그날 이후, 교과서를 잘 챙겨오는 약속을 지키면서, 나는 ‘수진’이에게 아프게 때리는 법을 배웠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생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진짜 초등학생이었으니까 상관은 않는다. 서로 게임을 하면서 몇 번식 때려가면서 우리들은 날이 갈수록 때리는 데에 능숙해져가고 있었다. 아, 물론 우리 둘 사이에서만 이 게임을 했다.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이런 행동은 ‘장난’ 그 이상의 의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진’이와 함께 이렇게 때리는 것을 하면서도 울었거나 했던 기억은 그날 이후로는 없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에도, 솔직히 말해 물론 교과서를 몇 번 더 안 가져오긴 했지만,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선생님에게 좀 꾸중을 듣더라도 그녀에게는 비밀로 하였다.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고 넘어갈 때마다,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꼈다. 수진이와의 약속을,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매우 기분이 좋았다.


... 그렇기에, 그때는 머릿속에도 두지 않았던 1년 뒤의 ‘그날’이 더욱 아팠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 그럼 이제 이 비겁한 배신자에게 형을 내리시죠!”


갑자기 들린 처형이라는 섬뜩한 단어에 정신을 벌떡 차린다. 잠시 동안 어렸을 적 생각에 잠시 잊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시 현실을 직시할 때이다.


“수진이도 지금 보니까 엄청 아파했는데, 넌 죽었다. 크흐흣.”


윤정이가 마치 이 날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상당히 불쾌한 목소리로 웃으면서 내 귀에 속삭인다. 방금 전의 망치 한방은 손가락이 얼얼하리만큼 아팠다. 더욱이 그녀의 이마는 방금 윤정이와의 게임으로 아직 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이다. 그런 상태의 이마를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서 전력으로 때렸다. 딱 봐도 엄청나게 아파 보인다.


“저... 수진아, 괜찮아?”


그리고...


“응. ‘괜찮아’.”


나를 조용히 바라보는 수진이의 표정은, 웃고 있었다.


입만.


웃고 있는 입과는 어울리지 않게 무표정한 그녀의 눈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살인마에 가까웠다. 살기 가득한 눈빛. 마음만 먹으면 지옥 끝가지라도 쫓아올 것 같다.


“수진아... 게임인데 그렇게 정색하지 말고, 살살하자 응?”


“응? 정색 안 했어. 그냥 ‘룰대로 하는 거니까’, 이기려고 하는 거지.”


... 그 말이 한마디로 안 봐주고 전력으로 때리겠다는 거잖아.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안되겠다.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하다.


좀 비겁하긴 하지만 상황 봐서...


응?


갑자기 양손이 꽉 조여오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그때였다.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꽉 양 팔목을 짓누르는 압력과 함께 내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주윤정! 너 뭐 하는 거야! 안 놔?”


윤정이가 자기 손으로 내 팔목을 있는 힘껏 의자 등받이 위로 누르고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뒤늦게 손을 빼보려고 하였지만 완력 하나만큼은 웬만한 남자들 못지않은 윤정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왜? 윤정이가 도와주는 거야! 기왕 맞을 거 시원하게 한 대 맞으면 깔끔하고 좋잖아? 윤정님에게 감사하라고!”


“알았어! 알아서 맞을 테니 손 좀 놔! 손에 피 안 통한다!”


“아 피 안 통하면 큰일이네! 그럼 얼른 빨리 맞아야겠다!”


저 말... 한 10분 전 내가 했던 말이었는데. 설마 이렇게 입장이 바뀔 줄은... 이 타이밍에 아영이는 뭐 하고 있는...


“이 타이밍에 인터넷 강의 듣지 말고!”


간절한 외침은 이미 이어폰을 귀에 꽂고 강의를 보고 있는 그녀의 귀에는 미처 닿지 않았다. 아니, 진짜로 안 닿은 건지, 아니면 다 듣고도 한 귀로 흘려보낸 건지는 모르지만.


“수진아 제발 부탁이야, 살살 좀 해줘...”


벌써 이 말만 몇 번째이다. 하지만 수진이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이마를 잠시 보더니, 자기 손가락을 내 앞에 가져다 댄다.


어...


그녀의 손가락이 내 이마에 닿는 순간이었다. 방금 전까지 불안했던 감정이 순간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낯익은 기분이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아까 윤정이를 반쯤 돌아눕게 했던 박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손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익숙했다. ‘수진’이가 나에게 가르쳐 줬던 그 때리는 방법과 너무나 닮았다. 어렸을 적, 서로 그렇게 내기를 아고 아파하면서도 그녀에게 나름대로의 ‘기술’을 배운다면서 그렇게 기뻐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게임을 하며 몇 번의 아픔을 주고받으면서, 어떻게 때려야 아프게 때릴 수 있는지를 몸이 알아서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갈게.”


손목을 맞고 울었던 그 날, 나는 오히려 홀가분했다. 그녀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 하나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낯익은 기분이 그 홀가분함과 너무나 닮아있음을 느낀다.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 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블랙아웃.


너무나도 선명한 그 소리를 들으며 의식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후후훙~ 오늘은 민준이에게 제대로 복수한 날~ 아이 신나!”


밤 9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까부터 윤정이는 자기 일인 듯이 아주 신났다고 난리이다. 가뜩이나 아까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질 않는데 이 녀석 때문에 더 골치 아프다.


진짜 손가락 망치 맞고 아픈 걸 넘어서 의식을 잃어보기까지는 평생 처음이었다. 윤정이가 아까 말한 감상대로, 도무지 손가락으로 때렸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강도였다. 한마디로 그냥 ‘망치’로 머리를 내려친 기분이었다. 준비 자세에 그녀의 손끝이 닿았을 때는 오히려 기분 좋을 정도로 부드럽게 느껴졌었는데, 그 여유로움은 그녀의 한 방에 나의 영혼과 함께 가차 없이 나가떨어져 버렸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유독 생각나는 얼굴이 하나 있다.


그래, 먼저 자기가 하자고 제안해 놓고서 정작 본인은 한 대도 안 맞은 녀석 말이다.


“김아영,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그렇게 한 번도 안 조냐?”


“난 너 같이 의지박약한 인간이 아니니까.”


의지 하나만으로 그게 되는 거냐. 부러운 녀석.


내 기어코 얘가 안 졸고 버티는 비결을 찾아내고야 말겠다.


“그래도 게임하니까 나름대로 재미는 있네, 그리고 민준이랑 윤정이한테는 나름대로 꽤 안 조는데 실제로 도움이 된 거 같기도 하고? 아까 나랑 게임하고 난 뒤에는 한 번도 조는 모습은 못 봤던 것 같은데.”


“그래?”


수진이의 말이 사실이긴 하다. 실제로 그 화끈한 감각이 공부시간 내내 남아있었으니까. 아울러 그 무시무시한 망치를 다시 맞는다고 생각하고 바짝 정신 차리다 보니까 조금 더 집중이 되는 것 같기는 하다.


“글쎄... 근데 너무 세게 때리는 건 좀 자제 좀 부탁할게."


다만, 아직까지 상용화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임상 실험 후 보완 단계라고 보는 게 맞을지도.


“아, 아까는 미안. 앞으로는 적당히 세게 때릴게."


굳이 살살 때려도 되는데 수진이 얘는 그래도 ‘세게 때리겠다’고 자부한다.


“저기 저기 수진아! 어떻게 그렇게 세게 팍하고 때릴 수 있는 거야? 혹시 잘 때릴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응? 별거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이렇게 뒤로 꺾어서... 아 맞다, 이게 사실은 누르듯이 때리면 안 되고..."


그러고 보니 수진이가 아까 내 이마에 손을 짚었을 때, 그녀가 상당히 ‘때리는 것’에 감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내가 어렸을 적 소꿉친구 ‘수진’이랑 게임을 하면서 그녀에게 여러 번 맞은 것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딱 봐도 얘는 때리는 것을 해본 경험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음, 감으로 봐서는 모르겠는데? 저기 저기 수진아! 괜찮으면 내일 자습할 때 시간 되면 어떻게 때리는지 알려주면 안 돼?"


“그래... 사실 뭐 가르쳐줄 거는 없고 많이 해보면 아는 거긴 한데...”


예전부터 계속 느낀 것이긴 하지만, 언제 보면 수진이는 소꿉친구 ‘수진’이와 닮아있다. 그것은, 마치 평행세계에 살고 있는 두 명의 수진이 같아 보였다.


“민준이도 가르쳐 줄까?”


윤정이와의 이야기를 마친 후, 나를 보며 이야기하는 수진이.


‘수진’이도, 그때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던 것 같다.


“뭐, 가르쳐 주면 고맙지.”



그 날 이후, 본격적으로 우리는 기말고사 시험 대비를 위해서 매일 방과 후 시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함께 모여 자습을 하였다. 첫날 했던 아영이의 약속대로, 나와 윤정이는 같은 내용의 학습 내용을 같이 공부했다. 대부분은 자습시간이었지만, 대신 아영이는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정리를 하고 어디를 중점적으로 학습해야 하는지를 절묘하게 잡아주었다. 무조건 쉬운 문제부터 풀고 점차 어렵게 풀어야 한다는 그런 단편적인 지식과는 다른 아영이의 공부 비법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왜 나한테는 이런 재능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워하면서도, 아영이에게 이런 방법을 전수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손가락을 밀어 누르는 식으로 하는 게 아니고,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가면 반동이 생기잖아, 그리고 때리는 부분이 이 끝이니까 반동과 손가락 끝의 완력을 합쳐서 짧고 굵게.”


쉬는 시간에 가끔씩, 약속한 대로 수진이한테는 딱밤이나 손목 등을 때리는 방법을 배웠다. 사실 어렸을 적에 배운 내공이 있어가지고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수진이 앞에서는 비교 불가였다.


- 따아아아아악.


“와아!”


그녀의 손가락 망치가 얼마나 강했는지는 그녀가 무표정하게 내려친 망치 한 방에 무참하게 부러진 나무젓가락만 봐도 알 수 있다. 실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대박! 수진님! 이 가련한 윤정이를 부디 제자로 써주세요! 이 무식한 녀석을 어떻게 하면 박살 낼 수 있죠?”


“수진아 알려줘, 어떻게 하면 얘한테 좀 제대로 한방 먹일 수 있는지.”


그렇게 서로 간의 실랑이를 하면서 그렇게 때리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내공은 머지않아 빛을 발휘하게 된다. 수진이의 그 무시무시한 한방을 경험한 후 마음속으로는 이제 진짜로 더 이상 졸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나 현실은 참으로 냉정했다.


“민준이 당첨.”


하루에 거의 한 번씩은 꼭 졸은 것 같았다. 그때마다 아영이와 윤정이에게 한방 맞았다. 자비 없는 아영이의 한방과 날이 갈수록 아파지는 불쾌한 기분의 윤정이의 한 대. 그리고,


- 따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악!”


그렇게 살살 해달라고 해도 최대 출력으로 무자비한 고통을 선사하는 수진이었다.


그렇지만,


“윤정이 딱 걸렸어.”


내 곁에는 항상 똑같은 ‘초등학생 인내심’의 주윤정이 있었기에 가는 길이 외롭지 않았다. 그때마다 윤정이에게 맞은 몫을 곱해서 통쾌하게 되갚아주었다. 수진이에게 받은 노하우까지 합쳐, 스스로도 점점 때리는 느낌이 점점 찰져가는 기분을 느꼈다.


게다가 가끔씩은,


“수진이 걸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도 흐른다. 두 번 보기 힘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녀에게 배운 노하우를 이용하여 그녀에게 그 배움의 성과를 여과 없이 발휘해 보기도 한다. 신중에 신중을 가해 조준을 한 후 배운 대로 때리니, 하루가 멀다 하고 선명한 딱밤 소리가 부실 안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런 끊임없는 단련에도 불구하고,


“아아... 세진 것 같네 확실히.”


기말고사 대비 기간이 끝날 무렵까지, 수진이가 나에게 보여 준 가장 눈에 띄는 반응은 고작 이 정도였다.


음, 아무리 예리한 칼이라도 그것보다 더 튼튼한 방패 앞에서는 무용지물인 것 같다.





그렇게, 하루라도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던 기말고사 시험이 모두 끝났다.


시험이 끝난 다음 날 방과 후 금요일. 홍보동아리 부실.


“와아~ 아영아 고마워! 윤정이 통과했어! 크흑... 이제 여름방학에 저 끔찍한 보충수업에 안 나가도 돼! 고마워! 윤정이의 생명의 은인 아영이~!”


“윤정이 수고했다.”


홍보동아리 부실에 들어서자마자 무슨 대학 시험에 합격한 듯이 울먹이며 아영이를 부둥켜 안은 윤정이와 마주했다. 딱 보아하니 일단 통과는 한 것 같다. 전과목 낙제점이라더니 그래도 용케 통과는 했네. 한 과목이라도 낙제점 걸려서 보충이나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건만.


“넌 어떻게 됐냐 시험.”


“에헴, 보나 마나 떨어졌지 뭐.”


“웃기고 앉아있네. 네가 통과했는데 내가 못 했겠냐?”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윤정이가 됐으면 나야 뭐 백 퍼센트...는 아니긴 하지만 기말고사는 다행히 무사통과했다.


“고마워. 가르쳐준 덕분에 시험은 통과했네.”


“뭐, 나는 별로 가르쳐준 것도 없는데. 너희들이 열심히 한 거지 뭐.”


어? 지금 칭찬해준 거야? 웬일이래. 평소 아영이 성격이라면 ‘그거 가지고 호들갑 떨고 있네’ 하는 식으로 단박에 핀잔을 줄 줄 알았는데, 무슨 바람인지 평소 안 하던 칭찬이다.


“와아~! 이걸로 윤정이랑 아영이는 퍼펙트 한 절친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정하는 바입니다! 윤정이는 보충 시험 안 받고, 아영이는 또 전교 1등하고~! 이예에~!”


그래 뭐 잘 된 거긴 하네. 보충 시험 안 받는 거 기분 좋은 거야 이해 못하겠니. 그리고 아영이가 1등 한 것도...


응?


“김아영 너 또 1등 했냐?!”


“뭐 딴 애들 말로는 다들 그렇게 말하던데. 하여간 나중에 다 성적 나오면 그때 확인하면 될 걸 가지고, 왜 벌써부터 와가지고 계속 물어보는 거야... 말 상대하기도 하도 귀찮아가지고 그냥 다 말해줬어.”


쳇, 왜 칭찬하나 했더니, 그냥 여유로운 자의 관용일 뿐이었나... 얘 성격에 뭘 기대한 이쪽이 잘못이다.


“와, 그러고 보니 너는 시험 대비 내내 한 번도 안 졸았네? 너, 솔직히 말해봐. 우리 모르는데서 몰래 피로회복에 좋은 거 따로 먹는 거지?”


“뭐? 참 나, 하여간 자기가 졸아놓고서 남 핑계는 대기는.”


아영이로 말할 것 같으면, 결국 2주 동안 꾸준히 모여 공부하면서 단 한 번도 졸은 모습을 보지 못했다. 수진이도 간혹가다 몇 번씩 조는 모습을 보면서 아영이도 사람이니까 한 번은 졸겠지 하고 기대도 했었지만, 헛된 기대였다. 어떻게든 때리고 싶어서 한 번은 그냥 대놓고 번갈아가며 딱밤 맞는 게임 한번 하자고 제안도 해봤지만 그런 시시껄렁한 게임 자기는 하기 싫다고 완고히 거절하는 탓에 결국 아영이의 이마에는 손도 한번 못 댔었다. 어떻게 저렇게 멀쩡할 수가 있는 건지. 저런 완벽에 가까운 녀석을 내 눈앞에서 보자니 살짝 짜증도 나고 오기도 생긴다.


“그래도 민준이 넌 최근 와서는 별로 많이 안 졸은 것 같은데? 윤정이도 그렇고.”


질투심에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참, 오늘은 얼음이 뜬 복숭아 아이스티를 옆에 두고 독서를 하고 있던 수진이가 말했다.


“그래? 나는 안 졸려고 기 쓰다가 너한테 수십 번은 맞은 것 같은데.”


가차 없이 내려찍는 망치의 충격을 정면으로 받고도 멍하니 있을 사람이 과연 있을지 궁금하다. 아, 물론 첫날에 ‘기절’한 적은 있었지.


“뭐, 말도 못 하게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고마워. 덕분에 그래도 시험에 통과했네.”


“훗. 아니야. 아무리 깨워준다 하더라도 결국 공부는 자기 스스로 하는 거잖아. 가끔씩 민준이 널 보니까 그래도 공부할 때는 집중에서 열심히 하더라고. 내가 한 건, 네가 계속해서 하던 것에 집중할 수 있게 최소한으로 도움을 준 것뿐이라고 생각해.”


“수진아...”


시험공부. 그리고 그 안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해본 추억의 게임.


시험 기간, 친구들과, 수진이와 내기 게임을 하면서, 조금씩 바뀌고 성장해가고 있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프면서도, 그 끝에서 홀가분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처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낯익었다.




소꿉친구 ‘수진’이도 항상 그렇게 변하는 나를 보면서, 티없는 미소를 건네주었었다.




“그럼 시험 통과 기념으로 제대로 한번 테스트를 해보겠습니다! 수진아, 잠깐 이것 좀 꽉 잡아줘!”


흥분에 들뜬 윤정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수진이에게 나무젓가락을 건네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윤정이도 점점 때리면 때릴수록 뇌 속까지 전해오는 고통의 강도는 하루하루 깊어져왔다.


“자, 그럼! 주윤정 선수 젓가락 격파에 도전, 조준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원래 윤정이는... 운동신경은 타고났잖아.


“한 방!”


- 따아아아아아악!


- 뚝.


그녀라면 못할 것도 없다고 당연히 생각했었다. 물론 그녀의 무시무시한 망치질에 흉즉하게 두 동강이 난 나무젓가락을 보면서 내 몸이 순간 ‘섬뜩’ 했던 것은, 이러한 생각과는 상관없는 ‘생존본능’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와, 부러졌다. 윤정이도 때리는 실력이 좋아졌네.”


그러고 보니 생각해보면 이번 기말고사 동안 수학도 오르고 영어도 올랐지만, 가장 눈에 띄게 실력이 오른 것은 ‘자발적으로’ 쉬는 시간마다 복습을 했던, 다름 아닌 이 딱밤 때리기. 어찌 보면 공부랑은 아무런 관련 없는, 참 쓸데도 없는 것을 제대로 한 번 배운 것 같다.


“와아! 대박! 좋아, 이걸로 나의 최종 병기가 완성되었다. 큭큭큭. 자, 그럼 임상실험은 완료됐으니...”


... 이렇게 말하면서 슬슬 이쪽을 보면서 다가오는...


“이제 실전 테스트를... 끼아아아악!”


‘무모한’ 윤정이에게는 죽순 잡아뜯기가 답이다. 허점을 잡힌 윤정이가 ‘임상 실험이 입증된’ 딱밤을 때리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까짓 것 몸만 살짝 뒤로 빼면 내 가슴밖에 신장이 오지 않는 초등학생 체형의 그녀에게 내 이마에 손이 닿을 겨를 따위는 없다.


“아아 아파! 그만 놔, 이 폭력민준...”


“폭력민준이라니... 여전히 말투는. 자기가 먼저 때리려고 슬금슬금 왔으면서! 잘못 했어, 안 했어?”


“으으으... 이렇게 나오면...!”


머리를 붙잡힌 채 꼼짝달싹 못하는 윤정이가 갑자기 손을 내 팔목 쪽으로 뻗는다. 그리고...


- 따악!


“아앗!”


손목으로 전해져 오는 얼얼하고 짜릿한 통증에 나는 잡던 죽순을 놓치고 만다. 생각해보니까 꼭 때리는 부위가 머리 한정은 아니었지. 방심했다.


“우아앙, 아영아... 저 폭력민준이 내 머리 또 쥐어뜯었어. 아파...”


“괜찮아, 괜찮아. 윤정이는 잘못 없어. 윤정이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저 녀석이 먼저 쥐어뜯은 거니까.”


그리고 이번 기말고사 시험을 대비하는 동안 수 없이 이들을 보면서 확실히 머릿속에 집어넣은 속담 하나가 있다.


가재는 게 편. 주윤정은 김아영 편.


"얘들아! 모두들 기말고사 시험 수고했어!”


그렇게 윤정이를 불편한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던 참, 문을 열고 들어온 최가을 선생님. (직책 : 담임선생님 겸 홍보동아리 담당 선생님)


“야 윤정이 정말 대단하네. 모의고사 때보다 평균이 거의 20점이나 올랐어! 전부 다 낙제점이라고 이야기 들었는데 이번에는 전부 합격점. 굿 잡!”


“와아아! 웬일로 가을쌤이 칭찬을~! 에헴. 이 윤정님이 노력만 하면 못 할건 아무도 없다고.”


그녀가 거들먹거리면서 팔짱을 끼니, 거만해하는 표정만큼이나 툭 튀어나온 ‘그곳’이 눈에 띈다. 물론 겨울 교복 입을 때도 실내에서는 셔츠 한 겹이 전부였던 이 녀석의 여름 교복 차림은 당연히 셔츠 한 겹이다. 이거 학교에서 제재 안 하나.


“어, 일단 보고사항 좀 먼저 이야기할게.”


...


“서, 선생님 잠시만요. 제 이야기는요?”


솔직히 조금 서운하다. 똑같이 낙제점이었다가 공부해서 성적 오른 건데. 왜 윤정이 얘기만...


“응 축하해. 잘했어.”


선생님께서는 웃으면서 이렇게 한마디를 하셨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아영아. 이제 여름방학 시작되기 전까지 1학기 동안 모아놨던 동아리 교내 외 활동 증빙서류랑 같이, 이번 방학기간 중 동아리 활동 계획서 작성해가지고...”


... 하긴, 담임선생님에게는 예전부터 맨날 눈에 띄는 녀석이 또 눈에 띄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좋아, 이걸로 중요한 보고사항은 끝. 그러면... 민준아.”


어?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아, 네.”


타이밍이 정말 절묘한데? 설마, 지금이라도 제대로 칭찬을 해주시려고 그러는 건가?


“지금 잠깐만 복도로 좀 나와줄래?”


... 어? 복도로 나오라고?




일단 순순히 선생님 말에 복도로 나왔다. 다들 동아리 활동을 하는 시간인지라 복도에 돌아다니는 학생은 때 마침 없었다. 내가 나온 것을 확인하신 선생님이 부실 문을 닫고는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하신다.


“혹시 좀 개인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 한 가지 너한테 물어봐도 될까?”


선생님의 뭔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며 나를 쳐다보신다. 뭐야 이건... 뭐 내가 잘못이라도 했어? 나는 일단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과 함께 선생님께서는 어깨에 맨 서류 가방을 뒤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혹시, 네가 아는 친구 중에 ‘수진’이라는 애가 있어?”




... 선생님이 말하신 낯익은 이름을 듣자마자, 가슴이 덜컥한다.


수진이. 내가 아는 친구 수진이.


“수진이요? 지금 부실에...”


“아니, 우리 동아리에 있는 수진이 말고. 물론 얘도 이름은 수진이긴 하지만 그걸 말하는 게 아니고, 혹시 네가 개인적으로 아는 친구 중에 ‘수진’이라고 하는 다른 애가 있어?”


... 홍보동아리의 수진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설마.


“아, 여기 있다. 민준아, 이것 좀 봐 볼래?”


때마침 선생님께서 서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앞으로 건네주었다.


- 어. 이건...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틀림없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수수한 하얀 편지 봉투.


그러나 그것은, 동아리 부원 수진이가 아니라... 소꿉친구 ‘수진’이가 보내온 것.





나에게 쓰라린 아픔을 남겼던 ‘그날’.


‘그날’로부터 4년이 지나고, 5년째가 되어가는 초여름.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던 소꿉친구 ‘수진’이.


그 편지는 무려 5년 만에 처음으로 그녀가 나에게 보내온 안부 인사였다.





- 11화. 누가 누가 강하나. 끝.


작가의말

 코노미카입니다.
 공지사항에 안내해드린 사항대로, 이번 화 업로드 이후, 1~3화에 대한 스토리 재업로드가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스토리 갱신이 이루어지는대로 공지사항에 해당 사항에 대한 업로드를 하겠습니다.
 기존 스토리와 많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는대로, 이미 해당 화를 읽어보신 독자분들도 다시 한번 읽어주시기를 권장해 드리는 바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지사항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우내게를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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