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영웅갱생기 36
아귀 2
“우선 눈.”
사람의 얼굴 중 가장 큰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눈이다. 그래서 눈의 모양이 바뀌게 되면 얼굴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바뀌게 된다.
재민의 본래 눈은 보통의 남자들 보다 조금 크고 시원시원해 보이는 눈이다. 재민은 눈의 바깥쪽 끝부분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근육을 수축시켰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눈초리의 근육이 좌우로 당겨지면서 좌우로 쫙 찢어진 날카로운 눈으로 바뀌어 버렸다.
거울의 비췬 눈을 보며 재민이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눈은 이 정도면 됐고...”
다음은 코였다.
우득-
뼈가 제자리에서 이탈하는 소리가 들리며 작은 통증이 전해졌다. 재민은 눈과 눈 사이의 콧대 뼈를 살짝 튀어나오게 했다. 그렇게 하자 시원하게 뻗어있던 재민의 코는 순식간에 매부리코가 되어 버렸다.
“아프네.”
예상하지 못했던 통증이었다. 하지만 참지 못 할 정도가 아니었고 결과가 만족스러웠기에 재민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재민은 더 이상 얼굴을 고치지 않았다.
“변신 시작.”
주머니에서 하얀색의 마스크를 꺼내 썼다. 그리고 모자를 눌러쓰고는 거울을 보았다. 얼굴 중 드러난 부분은 두 눈과 콧대 뿐 이었다.
재민이 눈과 코만 모양을 바꾼 이유가 마스크와 모자를 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춘 얼굴이 낯설다는 생각에 재민의 기분이 좋아졌다.
“이 정도라면 알아보는 사람은 없겠지.”
CCTV에 찍힌다 해도 이 얼굴을 재민의 얼굴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머니에서 가죽장갑을 꺼내 손에 낀 재민이 골목을 벗어났다.
파라다이스 안마시술소를 잠시 바라보던 재민이 주위를 살피고는 곧장 입구로 걸어갔다.
자동문이 열리고 카운터에 앉아 있는 짧은 머리의 사내를 볼 수가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상준이 핸드폰으로 전송을 해 준 사진과 일치하는 사내였다.
“퇴마사.”
“501.”
사내는 바로 상준의 정보원이었다. 본래 재덕이파는 각 업소에 한 명씩의 조직원을 상주시키는데 오늘은 이 사내가 파라다이스에 상주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사내는 오늘 재민이 이곳에 올 것을 알고 자신이 파라다이스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퇴마사라는 말은 아귀를 잡기 위해 왔다는 둘 사이에 약속 된 암호였다. 아귀가 501호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재민이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사내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제발 살살...”
퍽!
재민이 손을 수도로 만들어 사내의 뒷목을 치자 사내의 몸이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이것 역시 약속이 되어 있는 행동이었다.
카운터는 24시간 CCTV로 촬영이 된다.
만약 사내가 재민을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를 시켜 준다면 사내는 조직 내에서 추궁을 받게 될 것이다.
사내를 기절시킨 재민이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이미 건물의 내부 구조는 알고 있었다.
때마침 1층에 서 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재민이 5층을 눌렀다.
띵-
짧은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재민은 층수를 확인하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복도 끝에 위치한 곳이 바로 501호였다.
우드득-
복도를 따라 걸으며 목과 어깨를 풀었다. 긴장을 했기 때문인지 뼈마디가 아우성을 친다.
복도에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는 붉은 빛의 등불들이 오늘 이곳에 있을 일을 예견하는 듯 했다.
“후아.”
재민은 501호 앞에 서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문에 귀를 대고 집중하자 안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 그쪽을 조금 더 세게... 흐음... 좋아.
아귀일 것으로 짐작이 되는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안마를 받고 있는 듯 했다.
‘제발 맹인이어야 하는데.’
긴장이 되는 순간에도 재민은 안마사가 맹인 안마사이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다. 만약 맹인이 아니라면 안마사도 기절을 시켜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문고리에 손을 대고 천천히 돌렸다.
“누구세요? 여긴 손님 있어요.”
‘제길... 맹인이라 귀가 밝네.’
재민이 마음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어내며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최대한 소리를 죽여 문고리를 돌렸음에도 안마사가 그 소리를 들은 것이다.
청각이 뛰어난 맹인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복도와 마찬가지로 붉은 등 하나만이 켜져 있었다. 재민은 엎드려 누워있던 사내가 벌떡 일어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누구냐?”
사내의 손에는 날의 길이가 30센티미터가 조금 못 미치는 칼이 한 자루 들려있었다.
바로 아귀의 상징과도 같은 무기인 사시미였다.
재민은 아무런 말없이 방바닥을 찍어 차며 아귀에게 달려들었다.
슉-!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붉은 빛이 번뜩였다. 아귀가 재민의 가슴을 노리가 사시미를 베어왔다.
아귀를 향해 달려들던 재민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귀의 측면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천사혈정의 기운을 이용한 천사유령보가 펼쳐진 것이다. 평상시라면 내력을 이용하지 않았겠지만 상준에게 귀가 닳도록 아귀의 칼솜씨에 대해들은 터였다.
“이런 썅!”
자신의 공격이 빗나갔음을 알아차린 아귀가 들고 있던 사시미를 공중으로 살짝 던진 후 역수로 받아 쥐고는 재민의 목을 찍어왔다.
굉장히 빠른 손놀림이었다. 하지만 아귀는 오늘 상대를 잘못 만났다. 재민은 손등으로 사시미를 쥔 아귀의 손목을 바깥쪽으로 쳐 내었다.
아귀의 팔이 재민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바깥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 순간 아귀의 가슴이 환하게 열렸다.
퍽!
말아 쥔 재민의 주먹 중 중지가 도드라지게 나와 있었다. 흔히들 말을 하는 꽁지주먹을 쥔 것이다. 재민의 주먹은 정확히 아귀의 명치를 파고들었다.
모르긴 해도 아귀는 숨이 턱하고 막힐 것이다.
쉐에엑-
재민이 고개를 뒤로 크게 젖혔다. 방안을 밝히는 붉은 등이 물들어 붉게 번쩍이는 사시미의 날이 재민의 목이 있던 공간을 빠르게 가르고 지나갔다.
아귀가 뒤로 튕겨져 나가 벽에 부딪쳤다. 명치를 맞은 와중에도 재민을 공격한 것이다. 확실히 상준의 말대로 실력이 대단하긴 했다.
명치에 전해진 충격을 참아내지 못한 아귀가 가슴을 손으로 잡고 상체를 숙였다. 재민은 이참에 아귀를 끝장을 내려는 듯 발차기를 차내었다.
하지만 재민의 발은 도중에 다시 돌아와야 했다.
아귀가 재민의 발을 베기 위해 사시미를 그어버린 것이다.
“제법이야.”
그때였다.
“꺄아악-.”
아귀를 안마하고 있던 안마사가 뾰족한 비명을 지른 것이다. 재민은 이를 깨물고는 인상을 썼다. 맹인이라는데 안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한시라도 빨리 아귀를 제압해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재덕이파의 조직원들이 이곳으로 꾸역꾸역 모여들 것이다.
“반항하면 더 맞는다.”
재민이 아귀에게 달려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아귀가 사시미를 찔러왔다. 그와 동시에 재민 역시 팔을 뻗었다. 무엇인가를 움켜쥐려는 듯 손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순간 아귀의 사시미와 재민의 손이 허공에서 스쳐지나가는 듯 했다.
우드득- 퍽!
“컥!”
짧은 격타음과 함께 아귀의 입에서 새된 비명이 세어 나왔다. 재민이 사시미를 쥔 아귀의 손목을 틀어쥐고 끌어당기며 그의 배에 무릎을 꽂아 넣은 것이다.
아귀의 상체가 저절로 숙여졌다. 순식간에 재민의 주먹이 아귀의 얼굴에 세 번이나 틀어박혔다. 아귀의 입에서 부러진 이빨과 피가 섞여 뿜어져 나왔다.
아귀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 반항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재민은 확실하게 하기 위해 아귀의 머리채를 잡고 뜰어 당기며 뒷목을 손날로 후려쳤다.
“자, 이제 나가자고.”
아귀를 어깨에 들쳐 메고 곧장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려갔다.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은데.”
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안쪽이 보였다. 덩치가 크고 한 결 같인 인상이 더러운 다섯 명의 사내들이 타고 있었다.
“니들 좀 빠르다? 그런데 내리지는 말아.”
- 작가의말
시각장애인이라는 표현 대신 맹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고 하시는 모든 일 대박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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