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영웅갱생기 1
배달의 기수 1
“재민아, 일어나. 학교 가야지.”
“크흐음...”
재민은 절대 올라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눈꺼풀을 거여 밀어 올렸다.
눈을 뜨니 익숙한 방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좁은 천장을 가득 도배하고 있는 헐리우드의 유명 여배우 사진이 보였다.
물론 짜깁기의 귀재들이 만들어 놓은 실오라기 한 올 걸치고 있지 않은 유명 여배우의 합성 사진이었다.
재민은 몸을 일으키려다가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아래쪽에서 전해오는 낯선 느낌.
“또? 에라이... 오늘도 엄마 몰래 빨래를 해야 겠네.”
재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이불을 개켜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이불장이 따로 없기에 방 한 구석이 이불을 놓는 공간이었다.
“일어났어?”
문이 벌컥 열리며 어머니가 고개를 들이 밀었다.
“아, 깜짝이야. 왜 갑자기 문을 열고 그래요?”
“놀래긴... 엄마가 아들 방문도 못 열어?”
“그냥 그렇다는 거죠.”
재민이 말끝을 흐리며 어머니에게 등이 보이도록 천천히 몸을 돌렸다. 고등학교 2학년이나 된 녀석이 몽정을 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밥은 차려 놨으니까 씻고 밥 먹어.”
“아버지는요?”
“일거리 있나 나가보신다며 꼭두새벽부터 나가셨어. 엄마도 지금 나가야 하니까 문단속 잘하고 나가.”
“제가 한 두 살 먹은 어린애인가요?
***
오늘도 역시 만원의 버스.
재민은 최대한 사람들과의 신체적 접촉을 피하기 위해 출구 가까운 곳에 움츠리고 있었다.
- 이번 정류장은 한성 아파트, 한성 아파트 정문입니다.
버스가 멈추어 서고 한 떼의 사람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내리는 사람에 비해 타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재민의 공간은 점점 줄어들어갔다.
‘제길...’
재민이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물론 다른 이가 들을 수 없는 마음속의 외침이었다.
“야, 오늘 연화여고 애들하고 조인하는거 알지?”
“당근이지.”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재민은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조금 전 말을 한 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노력을 했다.
“전에 만났던 그 애들은 너무 까졌어. 나는 순진하고 착한 애들이 좋던데.”
“야, 네가 까졌는데 그런 애들이 가당키나 하냐?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모르냐?”
“아침부터 무슨 개소리냐? 나라고 공부 잘하고 순진한 애들 만나지 말라는 법 있냐? 아 썅. 왜 이리 사람이 많아.”
주위에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말을 하는 두 사람의 복장이 같고 나이가 어려 보이는 것으로 봐서 고등학생이 분명했다.
“오늘은 정말 괜찮은 애들이 좀 나와야 하는데...”
재민은 음성이 가까워 올 수록 점점 몸을 더 움츠렸다.
툭-
누군가와 몸이 부딪치자 재민은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
“죄송한지 알면 잘 해 씹세야.”
퍽-!
재민의 후두부에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 병신은 왜 또 이 시간에 버스를 탄 거야. 오늘 일진 사납겠네. 아, 시발. 연화여고하고 또 안 되는 거 아니야?”
“크크크, 나는 안 부딪쳤다. 너만 좃 된 거야.”
“아, 썅. 재수가 없을 라니까. 야, 셔틀.”
녀석의 부름에 재민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했다.
“응...”
한 없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
“뭐? 응? 시발놈아. 내가 네 친구냐? 응? 다시 한 번 말해봐. 이런 개나리, 십장생, 진돗개를 봤나.”
“미안...”
“닥치고 꺼져.”
- 이번 정류장은 양풍문고. 양풍문고입니다.
때 마침 다음 정류장에 도착을 했고 재민은 기다렸다는 듯 버스에서 내렸다. 자신을 토해내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출발하는 버스를 보며 재민은 한숨을 토해냈다.
“후우... 이런 시발놈아. 개나리, 십장생, 진돗개. 언젠가 니들 다 죽여 버릴 거야.”
버스의 뒷모습을 쫓으며 중얼거리는 재민의 눈에는 광기가 일렁였다.
***
- 따라라라 라라라
“매점에는 내가 먼저 간다.”
“닥치삼. 내가 더 빠름.”
“야, 다음 시간 숙제 좀 줘봐.”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자 아이들은 저마다 한껏 목청을 키워 떠들어댔다.
키순으로 자리 배정을 하였기에 가장 앞자리에 앉은 재민은 교과서를 보며 조금 전 수업 시간에 놓친 것이 없나를 확인하고 있었다.
퍽-
“야, 셔틀.”
“무식하게 셔틀이 뭐냐? 순 우리말 사용 몰라? 어이, 배달의 기수.”
재민의 뒤에 불량스럽게 다가선 두 명의 아이가 재민의 뒷통수를 툭툭 건들며 이죽거리고 있었다.
“응... 왜?”
“시간 됐잖아. 빨리 안 가냐?”
재민은 책상 밑에 숨기고 있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시발놈들, 다 죽여 버릴 거야.’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재민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 나왔다.
“미안... 아, 알았어. 바나나 우유 세 개하고 소보르 빵 세 개 맞지?”
“아니. 오늘은 내가 배가 고프니까 빵 두 개 더 사와라.”
“으응...”
재민은 벌떡 일어서 교실의 문 쪽으로 달려갔다.
이미 2분이 흘렀으니 8분 안에 매점에 다녀와야 했다.
‘그래 난 배달의 기수다.’
배달의 기수는 좋은 의미다.
‘저런 개새끼들이 사용해서 빛이 바래긴 했지만...’
재민은 스스로 배달의 기수라 위로하며 매점으로 달려갔다.
무사히 매점에서 바나나 우유와 빵을 사서 돌아온 재민은 소위 일진이라 불리우는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저, 여기...”
“고맙다. 잘 먹을게. 너 때문에 요즘 내가 살이 찐다.”
재민의 반을 잡고 있는 민석이 재민의 머리를 툭툭 건들며 속삭였다.
무엇이 그리 재밋는지 깔깔거리며 웃는 일진 녀석들을 뒤로한 채 재민은 자리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 했다.
“야, 셔틀.”
조금은 날카로운 음성에 재민은 저도 모르게 몸을 돌렸다.
“응... 채린아. 뭐 시킬 것 있어?”
이제는 자신도 모르게 다른 이의 부탁을 친절하게 들어주는 재민이 되어 있었다.
“심부름 좀 해라.”
“그, 그래야지. 그런데 다음 시간에 하면 안 될까? 이제 곧 수업 시작이라.”
“그래서?”
“그러니까...”
“닥치고.”
채린의 말에 재민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뭐 사올까?”
재민의 물음에 채린이 두 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을 붙힌 채 검지로 네모를 만들었다.
재민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채린을 빤히 쳐다보고 있을 때 재민의 뒷통수에 또 불이 났다.
퍽-
“야, 이 새키야. 딱 보면 몰라? 기저귀 사오라잖아.”
어느 새 재민의 뒤에 다가온 민석이 크게 외쳤다. 그러자 채린인 눈을 가늘게 뜨며 민석을 바라보았다.
“쪽 팔리게 왜 그래?”
“미안!”
한 손을 들며 피식 웃고 도망을 치는 민석을 보매 채린이 짜증이 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 새끼 뭐야?”
그리고는 자신의 짜증을 풀 상대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있는 재민이 보였다.
“가서 사와라.”
“아, 알았어.”
재민으로서는 2학년 일진 광훈의 여자친구인 채린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재민이 몸을 돌려 달려가려 할 때 채린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거 매점에서 안 판다.”
- 작가의말
주인공이 많이 찌질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찌질하란 법 없지 않겠습니까?
주인공 힘내라고 덧글로 화이팅 좀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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