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되어 이계로

신이되어 이계로 -195.지배-

은성의 저택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일행들의 식사는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해보세요. 방금 뭐라고 했죠..?”

은성이 데이비드 공작을 쏘아보며 물었다.

“비..비밀이오.”

데이비드 공작은 은성의 강렬한 눈빛을 마주하며 대답을 하는 것 만으로도 매우 힘들어보였다.

‘으윽.. 은성 공작이 강할 거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줄이야.’

은성은 데이비드 공작을 쏘아보고 있을 뿐 그 외엔 아무런 압박도 가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데이비드 공작의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그런 그의 눈에 은성의 입술이 달싹거리는게 보였다.

“알고 있어요. 내게 그 비밀을 알려 달라는 거에요.”

“하..하지만 약속하지 않았소? 그 일에 대해선 더 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그거야 소피아 공주와 관련이 없을 때의 이야기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군요..?”

은성의 말에 데이비드 공작이 미묘한 표정으로 은성을 바라보았다.

“소피아 공주와는 대체 어떤 사이길래..?”

하지만 은성은 그에 대한 대답대신 데이비드 공작을 더욱 쏘아보며 물었다.

“데이비드 공작께서는 제가 모르는 비밀을 알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크윽.. 아..알겠소. 말하겠소. 사실은 데니안 왕자님께서...”

더 이상 은성의 눈빛을 견디지 못한 데이비드 공작이 힘겹게 비밀을 밝히려했다.

하지만 그의 옆에 있던 줄리안 왕자가 데이비드 공작에게 소리치며 그를 다급히 말렸다.

“그만! 그만하세요!”

줄리안 왕자가 세차게 고개를 도리질했다..

자신의 형 데니안 왕자는 볼튼 왕국의 차기 국왕이 될 몸이었다.

동생 줄리안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는걸 무척이나 두려워하고 있었다.

소피아 공주를 납치하기 위해 데니안 왕자가 그런짓을 벌였다는걸 세상 사람들이 알게된다면 그가 볼튼 왕국의 국왕이 되었을때 백성들의 제대로 된 신임을 받지 못할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만약 데니안 왕자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면 오히려 줄리안 왕자 자신이 국왕이 될 수도 있는 판국에 그는 형을 계속해서 감싸고 도는 것이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형 데니안을 좋아했다.

“계속 말씀하세요.”

머뭇거리는 데이비드 공작을 향해 은성이 말했다.

줄리안 왕자와 은성 사이에서 데이비드 공작이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비밀을 말하기도 그렇다고 안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절대로 얘기하지 마세요. 데이비드 공작. 제가 이럴려고 데이비드 공작에게 비밀을 알려준건 아니잖아요.”

“크흠..”

줄리안 왕자의 외침에 데이비드 공작의 침음성만 길어졌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다 지친 은성이 갑자기 줄리안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헉! 안돼!”

은성이 줄리안 왕자를 공격하려는줄 착각한 데이비드 공작이 급히 그의 팔을 제지하려 했다.

하지만 데이비드 공작이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은성은 그저 줄리안 왕자를 향해 허공에다 팔을 휘둘렀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방금 뭘 한 것이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데이비드 공작이 멋쩍은 듯 물었다.

“이제 비밀을 털어놓아도 좋아요.”

“하지만...”

“그는 잠들었어요. 깨어나면 지금의 일을 기억하지 못할거에요.”

“그게 무슨...?”

데이비드 공작이 은성의 말에 의문을 가졌다.

줄리안 왕자는 여전히 눈을 말똥말똥 뜬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여태껏 안절부절못하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아까와달리 인자한 미소만이 가득했다.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그런 줄리안 왕자의 말에 데이비드 공작이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방금전까지만해도 절대 비밀을 말하지 말라던 그가 은성의 손짓 한번에 말을 번복했기 때문이었다.

“줄리안 왕자님..?”

데이비드 공작이 줄리안 왕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서요.”

줄리안 왕자가 오히려 비밀을 빨리 밝히라고 재촉했다.

데이비드 공작은 왠지 그가 줄리안 왕자가 아닌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때 다시한번 은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사실대로 비밀을 털어놓으세요. 줄리안 왕자를 영영 잠들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은성의 말에 데이비드 공작이 무슨 뜻이냐며 물었다.

“은성 공작. 도대체 왜 아까부터 줄리안 왕자님께서 잠이 들었다고 하십니까?”

“내가 그를 잠재웠기 때문이죠.”

은성의 말에 데이비드 공작은 어이가 없었다.

“왕자님께서는 이렇게 뻔히 절 바라보고 계시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그의 물음에 대답을 한 것은 은성이 아니라 줄리안 왕자였다.

“왜냐하면 난 줄리안 왕자가 아니니까...”

“그게 무슨..?”

“난 은성이에요.”

줄리안 왕자가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예..?!”

데이비드 공작의 황당하다는 표정에 줄리안 왕자가 다시 한번 대답했다.

“내가 바로 은성이라고요.”

하지만 데이비드 공작의 머릿속은 아직도 혼란으로 가득했다.

“줄리안 왕자님.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은성 공작은 이쪽에 있지 않습니까?”

데이비드 공작이 은성을 가리키며 줄리안 왕자에게 물었다.

“물론 저도 은성이죠.”

데이비드 공작이 자신을 가리키자 은성이 한 대답이었다.

서로 자신이 은성이라고 하니 데이비드 공작의 혼란은 커져만 갔다.

“설마 두 분이서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데이비드 공작은 차라리 그들이 자신을 놀리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자 은성과 줄리안 왕자가 똑같이 대답했다.

“제가 데이비드 공작을 놀려서 뭐하겠어요? 말했잖아요. 줄리안 왕자는 잠들어 있다고... 내가 줄리안 왕자의 몸을 지배했거든요.”

은성이 팔을 휘저으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의 기운’ 중 하나를 줄리안 왕자의 몸에 침투시켜 지배했던 것이다.

자연히 ‘신의 기운’에 의식이 제압되어 버린 줄리안 왕자는 정신을 잃고 깊게 잠든 상태였다.

사실상 은성이 그의 몸을 지배한 ‘신의 기운’을 거두지 않는 이상 줄리안 왕자는 영영 못 깨어나는 것이다.

“그..그게 가능하오?”

데이비드 공작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충분히 가능하죠.”

은성의 대답에 데이비드 공작이 허탈해했다.

“허.. 이런 마법이 있을 줄이야?”

최면술과 비슷한 마법인 상대방을 꼭두각시철머 조종하는 마법이 있다고는 들었으나 이렇듯 상대방의 영혼과 육체를 완전히 지배하는 마법은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데이비드 공작은 은성을 마검사라 여겼기 때문에 이게 ‘신의 기운’이라는 걸 알지 못한 결과였다.

그렇다고 은성이 마법이 아니라고 굳이 밝힐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물론 그에게 알려줄 생각도 없었지만...

“이제 그럼 비밀을 알려주실까요?”

데이비드 공작이 잠시 머뭇거리는 듯 했으나 이내 모든 걸 포기한 듯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실 슈베트 왕국에서 소피아 공주가 납치될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러쿵 저러쿵해서..”

사실을 알게 된 은성이 한껏 신중한 표정으로 데이비드 공작에게 물었다.

“그럼. 데니안 왕자가 그 당시 납치사건의 주범이란 말이군요? 그리고 그는 아직까지 소피아에게 미련을 버리지 않았고요?”

“그럴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저도 줄리안 왕자에게 들은 내용일 뿐이니...”

데이비드 공작이 혼란스러워하며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곳에 온것과 소피아 공주의 납치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이는데요?”

은성이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여태껏 데니안 왕자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닙니다. 만약 줄리안 왕자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데니안 왕자는 분명 소피아 공주를 차지하기 위해 이곳에 들렸을 겁니다.”

소피아 공주와의 결혼약속이 파기된지 며칠지나지도 않았다.

목적의식이 뚜렷한 데니안 왕자라면 충분히 그가 이곳에 온 주된 목적이 그녀라고 볼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엔 소피아 공주가 없는데..?”

줄리안 왕자가 물었다.

물론 그의 몸을 지배한 은성의 물음이었다.

“데니안 왕자는 목적이 없이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 분이 여기에 오셨다면 그만한 목적이 있는게 분명합니다.”

“흐음.. 여기에 올만한 목적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혹시 데니안 왕자께서 이곳에 온 목적을 아십니까?”

“데니안 왕자는 여기서 저와 앤드류 공작과 같이 검술훈련을 하고 있어요.”

은성의 말에 데이비드 공작이 혼돈스러워하며 대답했다.

“흐음.. 그럼 제가 착각한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검술을 좋아하는 데니안 왕자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데이비드 공작은 차라리 데니안 왕자가 소피아에 대해 미련을 완전히 버리고 검술에 매진하기 위해 이곳에 왔을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은성도 데니안 왕자가 소피아와 관련없이 단지 검술을 익히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직 그를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가 소피아 공주에게 위협을 가했던 일은 사실이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겠죠?”

“설마.. 데니안 왕자를 처벌하시겠다는 말입니까?”

“왜요? 그러면 안되나요?”

“하지만 그는 볼튼왕국의 왕자이지 않습니까? 그를 죽인다면 저희 볼튼 왕국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데이비드 공작의 말에 은성이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그를 죽인다고 했나요?”

“그럼..?”

“반성할 기회를 주자는 거죠. 만약 그가 충분히 반성하고 소피아 공주가 그를 용서한다면 저도 그를 용서해 줄 용의가 있어요.”

은성의 말에 데이비드 공작이 침음성을 흘리며 대답했다.

“크흠.. 알겠소. 헌데 데니안 왕자를 어떻게 용서할 생각이오?”

“그건 지켜보면 알겠죠..? 단! 그가 용서를 받을지 벌을 받을지는 그의 행동에 따라 다르겠지만..”

줄리안 왕자의 몸을 지배한 은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