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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번가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해도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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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번가
작품등록일 :
2021.03.03 04:09
최근연재일 :
2021.04.02 23:13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9,458
추천수 :
187
글자수 :
135,616

작성
21.03.12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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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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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원하지 않는 도움

DUMMY

“끄아악!”


악력을 버티지 못한 남성의 머리에서 피가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행동을 취할지 말지 고민하는 듯한 내 태도를 본 반안의 미소 역시 진해졌다.


놈이 전혀 예상하지 못할 때, 위력이 강력한 기술을 사용해야 하기에 틈을 때를 기다렸다. 살아있는 인간이 더 효과적인 방패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반안은 남성이 죽지 않게 적당한 힘을 조절해서 비명을 질러대게 만들었다.


반안의 시선이 내게서 떨어지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초능력을 준비했다.


“살, 살려주세요···”


서포터로 보이는 남성의 처절한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아직 살아있는 한 여성을 조심히 살펴봤다.


화장을 했는지 눈가가 검은색으로 번진 여자는 두려움에 질려 나설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저 여자에게 시선이 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눈치 채지 못하게 옷 밖으로 짝눈을 내보내고 반안의 시선에 보이지 않게 등뒤로 여성을 가리켰다. 알아 들었기를 바라며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천천히 남성을 흔들며 내게 다가오는 놈에게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척을 하는 순간, 짝눈이 제 임무를 무사히 해냈다.


“꺅! 뱀, 뱀!”


안 그래도 심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있던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짝눈을 발견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반안의 거대한 눈알이 여성에게 향할 때, 일격에 죽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기술을 사용했다.


“가시지옥.”


-쿠구쿠궁!


파리지옥이 순한 맛이라면, 가시지옥은 매운맛.

드라큘라로 불리던 그때라면 사방을 지옥처럼 만들었겠지만, 지금은 오로지 반안이 서 있는 부근만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허억, 헉···”


순간적으로 정신이 어지러워 비틀거리는 것을 버티고 정신을 부여잡았다. 하늘 높이 치솟던 가시가 다시 땅으로 사라지자, 즉사한 남성의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와 반안의 찢겨진 오른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직 살아 있다.’


크롸아아!


구멍이 뚫려 달려있다고 보기 힘든 다리와 오른팔이 뜯겨져 나간 놈이, 한 쪽 발만으로 땅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파앗!


눈으로 따라잡기 힘든 스피드로 도약한 반안.


-콰앙!


몸통 박치기와 같은 공격을 간신히 옆으로 굴러서 피해내자, 나무를 박살 낸 놈이 균형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송곳니!”


땅에서 튀어나온 송곳니를 반안 역시 굴러서 피해내고,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움직임을 선보여 누운 상태에서 반동을 이용해 내게 날아왔다.


-쾅!


날아오는 상태에서 왼팔을 거세게 휘둘러 내리쳤다. 이번에도 옆으로 피했지만, 아직 놈의 사정거리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퍼억!


“커헉···”


누운 상태에서 휘두른 놈의 주먹을 양팔로 막고 뒤로 날아갔다. 반안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해 살아남긴 했어도, 오른팔이 부러지는 소리와 고통이 물밀 듯이 찾아왔다.


가시지옥을 사용한 여파와 고통에 이를 악물 때, 또다시 몸에 반동을 주는 녀석의 모습.


“짝눈!”


근처에서 틈을 노리고 있던 짝눈의 입이 벌어지며 보라색 연기가 반안의 몸을 덮쳤다.


크라아아라!


상처를 입은 부위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큰지 사방이 떠나가게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뒤트는 놈을 보며 가만히 있을 틈이 없었다.


“송곳니, 송곳니, 송곳니!”


기술을 사용한 여파 따윈 생각하지 않고, 오직 반안을 죽이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푸욱 푹 푹!


몸통에 연달아 구멍이 생긴 놈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녹아내릴 것 같은 정신을 놓지 않고 입술을 깨물었다.


워낙 세게 깨물어 입술이 터졌는지 피 맛이 났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반안은 지독하게도 그 상태에서 아직 살아서 눈알을 움직이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놈이 다시 한번 몸에 반동을 줬다. 반안은 이미 본능적으로 죽음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한번 포착한 먹이를 향한 집요한 공세를 펼쳤다. 주먹을 휘두를 힘이 없는지 그저 몸을 날리는 게 전부인 반안.


생각할 여력 없이 나 또한 피하고자 몸을 날렸다.


-퍼억


피해내긴 했지만, 복부를 가격한 녀석의 발등.


“우욱···”


역류하는 피를 뱉어냈다. 또다시 날아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어서서 바닥에 쓰러진 반안을 바라봤다.


끝까지 내게서 시선을 고정한 놈의 눈알의 힘이 점점 풀려가고 있었다.


“···가시뼈.”


부러지지 않은 왼쪽 팔을 이용해, 반안의 머리에 가시뼈를 던졌다.


-푸욱!


그제야 숨이 끊어진 반안을 확인하고 바닥에 주저앉고 주변을 살폈다. 내게 기어 오는 짝눈과 조용하다 싶었더니,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모를 여성이 보였다.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옷으로 닦고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핵을 꺼내야겠다는 생각도 못 할 만큼 멍한 정신. 이내, 백팩에 있는 응급키트를 꺼냈지만, 용도를 알 수 없게 찌그러진 최하급 응급키트에 혀를 차고, 멀쩡한 핸드폰과 몇 개의 핵만 챙기고 백팩을 옆으로 던졌다.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킬 때, 짝눈이 반안의 사체 근처에서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쉬이이 쉬이


뭔가를 하려는 행동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짝눈이 놈의 사체를 어슬렁거리다가 상처를 통해 심장을 집어삼켰다. 잠시 후, 부르르 몸을 떨던 짝눈이 허물을 벗고 한층 매끄러운 피부가 드러났다.


삐이 삐이


짝눈이 진화를 한 건지, 지금까지와 다르게 생각이 어느 정도 전해졌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핵 좀 가져와.”


말을 알아들은 짝눈이 반안의 시체를 노려보다가 한쪽을 파헤쳐 핵을 찾아내고 입에 물었다.


“줘.”


나를 한차례 바라본 짝눈이 그 상태로 핵을 집어삼켰다.


-꿀꺽


“하··· 못 알아들었네.”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곧, 팔을 타고 기어오른 짝눈을 옷 속에 넣은 다음, 그 자리를 벗어났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전신이 박살 날 것만 같은 감각. 회귀 전 느꼈던 기분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쓰러질 것만 같은 정신을 버티며 문산으로 향하던 중, 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받지 않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는데, 멈추지 않는 진동.


뭐라도 해야 정신을 차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결국 전화를 받았다.


야, 공서진!-


“···어.”


조민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발을 움직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귓가를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


“왜···”


입을 열었지만, 길게 말할 기력이 없었다.


왜? 왜? 왜라는 말이 나와?-


대답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자, 그녀가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서진아, 무슨 일 있어?-


“아니.”


어디 아파?-


걱정이 묻어나는 그녀의 말투에 대답을 이어갔다.


“아니.”


거짓말, 지금 어디야?-


팔과 복부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흐릿했다. 그랬기에 생각나는 말을 대충 내뱉었다.


“···우리가 친한가?”


무슨 의미야?-


“말 그대로.”


대답을 못 하던 조민아가 조금은 차가워진 말투로 말했다.


무슨 대답을 듣기를 원해?···-


조금 전 내 입으로 했던 말도 인지하지 못하고 걷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그녀의 끊으려는 목소리에 입을 열었다.


“기다려.”


전화를 끊는 순간 정신도 같이 끊길 것 같았다. 이기적이지만, 지금은 그녀가 필요했다.


“아무 말, 아무 말이나 해봐.”


뭐?-


“그냥··· 아무 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조용하던 조민아가 대답했다.


알겠어. 음, 갑자기 말하라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그렇게 무사히 문산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TV프로에서부터 점심때 먹은 음식 종류까지 계속해서 말했고 나는 듣기만 했다. 도착하고 나서, 끊는다는 얘기도 안 하고 끊어버렸지만, 머릿속에 한 가지는 기억했다.


‘빚은 꼭...’


길거리를 걷는 동안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저기 괜찮으세요?”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내 모습에 주변에 있던 사람이 도와주려 했지만, 손을 뿌리치고, 근처에 보이는 상점으로 향했다. 이미 멈춰버린 사고 속에도 히어로처럼 보이는 사람의 도움을 받은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사실 도와주려는 사람이 히어로인지 아닌지 구분은 불가했지만···


“괜, 괜찮으세요?”


눈이 휘둥그레진 상점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응급···”


건네받은 응급키트에서 포션을 꺼내 상처에 뿌리고 들이마신 다음, 그대로 눈이 감겼다.


히어로와 빌런 양쪽에게 쫓기는 다급한 상황.

폭우가 쏟아지며 빗방울이 어깨에 떨어졌다.


“여기만 벗어나면 안전해!”


B급 빌런 ‘나찰녀’ 서나은.

본인 스스로 차가운 미녀라고 말하고 다니는 그녀를 오랜만에 본 반가움에 인사를 하려 했지만, 입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독고현과 나머지 애들은?”


또 다른 동료, A급 빌런 ‘철인’ 독고현의 행방을 묻는 내 말에 서나은이 대답했다.


“걔 걱정은 집어치우지? 그 새끼가 어디 가서 죽을 새끼야? 애들은···”


욕을 하는 말과 다르게 표정이 좋지 못한 그녀.

동료들과 뿔뿔이 흩어져버린 상황에 혀를 찼다. 뒤 따르던 C급 빌런 ‘귀수’ 방주안이 말을 덧붙였다.


“나찰녀 말이 맞습니다. 독고현이라면 어떻게든 빠져나올 겁니다. 나머지도 분명 쉽게 죽을 애들입니까?”


쥐 같은 인상 때문에 놀림을 받던 방주안의 얼굴에 반가운 웃음이 나왔다.


“내가 나찰녀라 하지 말랬지?!”


나찰녀라는 칭호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서나은의 말을 무시하는 방주안이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에 보는 그들의 모습에 반가움도 잠시, 알려줘야 했다.


독고현이 위험에 처했고, 이대로 있다간 독고현뿐만 아니라 너네도 죽는다는 사실을.


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몰이 사냥을 당하듯 철저하게 좁혀오는 놈들의 포위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움직일 뿐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비극은 이미 알고 있던 대로 진행되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히어로의 습격으로 방주안이 목숨을 잃었다.


분노를 삭이고 그곳을 벗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대기하고 있던 히어로들의 모습과 동시에 발밑으로 날아온 누군가의 머리.

박살 나버린 휘어진 안경을 낀 독고현의 머리였다. 그때부터 나와 서나은은 미친 듯이 길을 뚫기 위해 죽고 죽이는 싸움을 시작했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겨우 길을 뚫어내고 앞으로 달리던 도중, 멈춰선 그녀를 영문을 몰라 바라봤다.


“꼭 살아.”


미소를 짓던 그녀가 쓰러지자, 작살나버린 등이 보였다. 뒤를 따르며 등으로 공격을 받아낸 서나은도 그렇게 죽어갔다.


살아남으라는 그녀의 말에도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쫓아오는 히어로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히어로들을 죽이는 데 성공했지만, 나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만신창이가 돼버린 몸과 잘려버린 팔을 붙잡고 살아있을 또 다른 동료들을 찾기 위해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벌떡!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깁스한 팔과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주변을 훑어보니, 병원으로 보였다.


“일어났어요?”


처음 보는 여성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틀 만에 깨어나셨어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짓누르며 문득, 짝눈이 떠올라 말했다.


“뱀은?”


“아, 하얀 뱀은 거기 있어요.”


쉬이 쉬이이


침상 한편에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짝눈이 보였다.


“나머지 짐은 제가 따로 챙겨뒀어요.”


미소를 띤 여성의 얼굴에 약간의 기억이 돌아왔다. 그녀는 분명 상점에 있었던 주인으로 보이던 여성.


“···감사합니다.”


손을 휘저은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당연히 도와야죠. 그보다 히어로세요?”


히어로라고 묻는 그녀의 말에 일단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역시! 저도 히어로에요!”


히어로라는 그녀의 말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일단 빚을 졌기에 힘을 풀고 물었다.


“상점 주인 아니었습니까?”


“아니요. 풋, 그때 제가 얼마나 당황한 지 아세요? 서점에 오셔서, 책을 고르고 있는 저한테 갑자기 응급 키트 달라고 하셨어요.”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의 모습에, 결과적으로 히어로에게 빚졌다는 한심한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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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끝맺음 21.04.02 176 4 12쪽
24 단편 21.04.01 183 2 12쪽
23 기연 강탈 +1 21.03.31 188 3 13쪽
22 짐꾼 21.03.29 186 1 13쪽
21 악의 태동 21.03.28 194 2 12쪽
20 타깃 21.03.26 215 3 12쪽
19 인재 21.03.25 226 3 11쪽
18 성동격서 21.03.24 249 4 12쪽
17 +3 21.03.22 291 7 12쪽
16 진압대 +2 21.03.21 327 8 16쪽
15 초능력 측정 +2 21.03.19 330 8 12쪽
14 히어로 협회 +1 21.03.18 339 10 12쪽
13 방패막이 +2 21.03.17 338 9 12쪽
12 겁쟁이 +1 21.03.14 413 8 11쪽
11 양 떼 +2 21.03.13 424 10 13쪽
» 원하지 않는 도움 21.03.12 414 10 12쪽
9 반안 21.03.11 424 10 12쪽
8 새로운 빌런 +1 21.03.10 450 10 12쪽
7 다른 종류의 빚 +2 21.03.07 459 9 12쪽
6 대시장 +4 21.03.06 504 10 13쪽
5 짝눈 +1 21.03.05 522 11 13쪽
4 태안 21.03.04 566 10 12쪽
3 빌런이 된 이유 +2 21.03.03 605 10 14쪽
2 회귀 +2 21.03.03 662 11 13쪽
1 프롤로그 +3 21.03.03 766 14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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