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21번가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해도 빌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21번가
작품등록일 :
2021.03.03 04:09
최근연재일 :
2021.04.02 23:13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9,417
추천수 :
187
글자수 :
135,616

작성
21.03.10 14:53
조회
447
추천
10
글자
12쪽

새로운 빌런

DUMMY

그로부터 2주가 지났지만, 같은 패턴의 삶을 반복하고 있었다. 괴수를 사냥하고 병참 도시 문산에 거주하는 상인에게 핵을 처분하며 지냈다.


병참 도시 문산의 상인들은 주로 어리숙한 히어로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기 때문에 핵을 비롯한 괴수의 사체를 싼값에 사들였지만,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초능력을 키우고 천년씨앗이 나타날 때까지 조용히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생활비 정도만 있으면 됐기에, 오늘도 사냥한 괴수의 핵을 처분하기 위해 상점을 방문했다.


“아, 글쎄 안된다니까요.”


“아니, 이 가격이 말이 돼요?”


히어로로 보이는 젊은 남성과 말씨름하고 있는 상점 주인이 내 모습을 발견하고 얼른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좀 더 많네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그가 꺼내온 돈뭉치를 받고 나가려는데, 젊은 남성이 앞을 가로막았다. 순간적으로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는 거리낌없이 할 말을 했다.


“저기요. 지금 사기당하신 거예요.”


“사기라니?!”


옆에서 소리치는 가게 주인을 무시하고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핵 10개에 80만 원? 9급 괴수의 핵이라고 쳐도 그 정도면 사기죠.”


“맘에 들지 않으면 나가라니까! 왜 남의 가게에서 영업 방해를 해!”


주인에게 한마디 말도 지지 않겠다는 태도의 히어로.

그를 보고 있자 살심이 동했으나, 여명을 만지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딸깍 -착


보통 히어로가 된 지 얼마 안 된 인간들 가운데 종종 나타나는 특징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마음가짐이 무의식적으로 본바탕에 깔려있었으며 대접을 받고 싶어 했다.


지금처럼 상점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에 가면 그만이었고, 가격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곳에 오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저 히어로는 본인의 주장을 상점 주인이 받아들여야 하며 거기에 더 나아가, 소란을 일으켜도 본인이 우위에 있다는 판단을 아마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을 거다. 사람들이 왜 본인들을 히어로, 영웅이라고 부르고 대우해 주는지 전혀 관심도 없을 게 분명했다.


‘가격을 지키기 위해 히어로가 된 거냐?’


보통 저런 놈들이 높은 등급의 히어로가 되면, 보안관 강봉석과 같은 인간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시간 낭비할 틈이 없었기에, 그를 지나쳐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손을 들고 앞을 가로막는 히어로.


“기다리세요. 사기당했다니까요?”

“비켜.”


본인이 호의를 베푼다고 착각하고 있는 그가 비키라는 말을 듣고 이번엔 타깃을 나로 바꿨다.


“제 말이 이해가 안 되세요?”


히어로 중에서도 특히 이런 놈들만 보면 당장 저 입구녕에 가시뼈를 박아넣고 싶어졌다. 하지만 천년씨앗을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문제를 일으켜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천년씨앗을 손에 넣기 전까지만···’


-딸깍 -착


마음을 다스리고 그의 팔을 치우고 지나치려 했지만, 그가 이번엔 팔을 붙잡았다.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 좀 하지?”


선을 넘는 그의 행동에 몸이 떨려갔다. 두려움이 아닌 기이한 흥분으로 심장이 펌프질하기 시작했다.


빌런 드라큘라로서 10년의 삶, 죽이고 빼앗고 박살 냈다. 그때와 과거로 돌아온 지금의 괴리감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데, 그가 선을 넘자 문득 깨달았다.


마음속 한 편에는 사실 그가 이렇게 행동해주길 원하고 있었던 것을.


몇 초가 지나지 않을 시간에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새로운 기술을 사용해서 죽여볼까? 아니지, 이런 곳에서 죽이면 안 되니깐 팔만 박살 낼까?


‘그것도 아니면 빌런으로 만드는 건 어떨까?’


본인의 목숨과 앞날을 가지고 저울질하는지 모르고 있는 그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예의가 없!...”


-퍼억!


“악!”


발을 걷어차고 몸의 균형을 잃은 그의 머리를 잡은 다음, 곧바로 바닥에 내리찍었다.


-쾅


“크헉!”


‘저질러 버렸다.’


흥분감을 참지 못하고 일을 저질렀지만, 입가에 미소를 지울 수는 없었다. 옷 속에서 나오려는 짝눈을 밀어 넣고, 코가 뭉개진 남성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화들짝 놀란 주인에게 물었다.


“CCTV 있습니까?”

“아, 아니요.”


“보셨죠?”

“뭐, 뭐를?”


“정당방위.”


나중에 문제가 될 여지를 남겨두지 않기 위해선 사전에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이 사람이 먼저 가만히 있는 저를 폭행하신 거 보셨죠?”


대답을 못하는 가게 주인.


“보셨죠?”

“예··· 봤습니다.”


히어로간의 다툼은 종종 벌어지는 일이기에, 이 정도에서 끝내면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번 튀어나온 살심을 가라앉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작정하고 도발해서 현실을 알려주기로 결정했다.


순간적인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히어로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너,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누군데?”


“내가!”


-쾅


“아악···”


그가 말을 하려는 찰나 다시 한번 머리를 바닥에 내리찍고 물었다.


“누구냐고? 계속해봐.”


얼굴이 피에 물든 히어로는 벗어날 생각도 못 했다. 초능력을 사용해서 반항하면 되지 않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경험이 없고 낮은 등급의 히어로가 괜히 등급이 낮은 게 아니었다.


돌발 상황에 대처 하지 못하는 그가 살기 위한 발악으로 본인 소개를 했다.


“···나는 ‘로프‘소속의 히어로야!”


‘로프?‘


듣도보도 못한 팀 이름을 말하며 통할 거라 생각하는 그가 우스웠다. 적어도 내게 겁을 주려는 목적이었으면, S급 히어로나 A급 히어로가 속한 유명한 팀 예를 들어, 팀원 한명 한명이 사냥개라 불리며 빌런을 사냥하기 위해 살아가는 놈들인 ‘테리어’ 정도는 돼야 한발 물러서겠지만··· 로프?


그의 머리를 놔주고 과장되게 말했다.


“설, 설마 로프 소속이셨습니까?”


놀리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겁을 먹었다고 착각한 그가 이제 알았냐는 식으로 소리쳤다.


“이 개새끼, 너는 이제 뒤졌어!”


“그런데 로프가 뭐냐?”

“뭐?”


-퍼억!


“커헉.”


배를 부여잡고 몸을 뒤트는 그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로프가 뭐냐고?”


자신의 팀을 말했는데도 내게 먹히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공포와 분노에 얼룩진 그가 드디어 초능력을 사용했다.


“이 개새끼가! 장발!”


그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닿고도 계속해서 자라났다. 이때만을 기다리며 초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걸려들었다.’


초능력을 먼저 사용하느냐 안 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했다. 만약 혹시라도 일이 커져서 초능력 분석탐지대가 사건을 조사하고 나서면 누가 먼저 초능력을 사용했는지부터 알아냈다.


초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저 가벼운 폭행 정도였지만, 맹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초능력을 사용해 피해를 입히는 순간, 일종의 흉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훨씬 강력한 처벌을 받았다. 이제 그가 공격을 시작하면, 죽이지 않는 한 명백한 정당방위였다.


확실하게 도발하기 위해 비웃어주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로프가 뭐냐니까?”


“닥쳐! 귀발!”


언뜻 ‘가시‘와 비슷한 능력으로 허공에 뜬 머리카락이 뾰족한 송곳처럼 뭉쳐서 내게 날아왔다.


-콰앙!


벽에 박힌 머리카락을 옆으로 피한 다음, 뒤따라오는 머리카락을 유인했다. 목표는 가게 주인.


“어? 어!”


당황한 가게 주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뒤로 몸을 숨겼다.


“잠깐! 안돼!”


히어로 역시 당황하며 머리카락 송곳을 빗겨나가게 했지만, 예상대로 완벽한 조절이 불가능한지 개중 하나가 주인의 팔에 박혔다.


“끄아악!”


팔을 잡고 주저앉은 주인 때문에 당황한 히어로가 초능력을 없애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에 웃으며 말했다.


“너, 빌런이구나? 가시뼈.”


“뭐?”


당황한 그의 틈을 놓치지 않고 가시뼈를 던졌다.


-후웅 -푸욱!


가시뼈가 어깨에 박힌 채, 히어로의 몸이 벽으로 날아갔지만, 멈추지 않고 연달아 가시뼈를 소환해 던졌다.


“아아아악!”


팔과 다리를 관통당해 벽에 꽂혀 옴싹달싹 못하는 히어로의 비명을 즐기며 다가갔다.


“로프라고 했지? 민간인을 습격한 빌런이 같은 팀원인 걸 알면 어떻게 되려나?”


“개, 개소리!”


빌런과 히어로는 한 끗 차이. 남에게 피해를 주느냐, 아니면 주지 않느냐였다.


멋모르는 초능력자들이 종종 착각하는 게 한 가지 있었는데, 그건 은행을 털고 테러를 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 같이 큰 사건을 일으켜야만 빌런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착각.


초능력자가 됐다 하더라도 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으면 그때부터 빌런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처벌은 받지 않더라도 그 꼬리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히어로를 그만둔 인물을 몇 알고 있었다.


멋모르는 히어로들은 본인의 힘을 뽐내는 게 가벼운 일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그건 빌런이 되는 엘리트 과정 중 하나였다. 부정부패가 심한 히어로협회 역시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초능력자 간의 다툼이 아닌 민간인에게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나를 공격하려다 실수로 가게 주인을 상처입혔다? 모든 것은 결과가 중요하지 과정이 중요하진 않았다. 급이 낮은 히어로인 그가 뒷배가 있다면 계속해서 히어로 생활을 할 수 있을 테고 그게 아니라면···


현실 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빌런의 길을 걷게 된 것을 축하한다.”


무슨 일이 벌어진 지 감이 잡히지 않는 그를 무시하고, 팔을 잡고 있는 가게 주인에게 다가가 배낭에 들어있던 응급 키트를 건내며 물었다.


“괜찮습니까?”


“···예.”


“특수경비대를 부르세요.”


지금까지의 상황을 지켜본 주인은 바보가 아닌 이상, 내가 의도적으로 현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벽에 박혀있는 히어로를 변론해줄 이유 따윈 없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히어로가 초능력을 써서 민간인에게 상처를 입힌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잠시 잠깐 고민하던 가게 주인의 손이 핸드폰으로 향했다.


주인에게 귓속말로 앞으로 벌어질 일을 몇 가지 당부하고, 곧 당도할 특수경비대를 기다리며 벽에 꽂혀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있는 그에게 한마디 해줬다.


“나중에 유명한 빌런이되더라도 나를 잊지 말라고.”


“···헛소리 하지 마.”


직접 처벌을 당하기 전까진 현실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빌런이 되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이었음을.


경찰과 구급차 그리고 특수경비대가 도착하고 나서 상황은 종결됐다. 끝까지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름 모를 히어로는 가게 주인의 증언으로 일단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구급차에 실려 갔다.


이내 나는 특수경비대의 인솔을 따라 경찰서에 도착해서 진술을 시작했다. 그가 시비를 걸고 먼저 폭행을 해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항을 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혔는데, 끝내 그가 초능력을 사용해서 가게 주인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초능력 분석탐지대가 조사한 결과, 내 진술과 일치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폭행 건과 히어로협회를 방문해서 등급을 측정 받으라는 가벼운 구두 경고를 받고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모든 일이 묻힐 만큼 히어로가 민간인에게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엄격하게 통제됐고 심한 처벌을 받았다.


이번 생에서는 나보다 먼저 빌런이 되는 코스를 밟기 시작한, 이제는 이름을 알게 된 김승엽. 처벌을 받든 무죄를 선고받든, 그는 어엿한 빌런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만약 그가 히어로의 길을 계속해서 걷는다고 하더라도 로프라는 팀에서 쫓겨나는 것은 당연하고 예비 빌런 꼬리표를 단 히어로 취급을 받는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시간을 지체했지만, 보람찬 하루였다.’


새로운 빌런 후배의 탄생을 축하하며 후드티 안에서 고개를 내민 짝눈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회귀해도 빌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부상 당했습니다... +2 21.04.05 152 0 -
25 끝맺음 21.04.02 174 4 12쪽
24 단편 21.04.01 183 2 12쪽
23 기연 강탈 +1 21.03.31 188 3 13쪽
22 짐꾼 21.03.29 186 1 13쪽
21 악의 태동 21.03.28 192 2 12쪽
20 타깃 21.03.26 213 3 12쪽
19 인재 21.03.25 226 3 11쪽
18 성동격서 21.03.24 249 4 12쪽
17 +3 21.03.22 290 7 12쪽
16 진압대 +2 21.03.21 326 8 16쪽
15 초능력 측정 +2 21.03.19 329 8 12쪽
14 히어로 협회 +1 21.03.18 338 10 12쪽
13 방패막이 +2 21.03.17 337 9 12쪽
12 겁쟁이 +1 21.03.14 412 8 11쪽
11 양 떼 +2 21.03.13 423 10 13쪽
10 원하지 않는 도움 21.03.12 411 10 12쪽
9 반안 21.03.11 422 10 12쪽
» 새로운 빌런 +1 21.03.10 448 10 12쪽
7 다른 종류의 빚 +2 21.03.07 457 9 12쪽
6 대시장 +4 21.03.06 500 10 13쪽
5 짝눈 +1 21.03.05 519 11 13쪽
4 태안 21.03.04 564 10 12쪽
3 빌런이 된 이유 +2 21.03.03 603 10 14쪽
2 회귀 +2 21.03.03 659 11 13쪽
1 프롤로그 +3 21.03.03 761 14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