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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번가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해도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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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번가
작품등록일 :
2021.03.03 04:09
최근연재일 :
2021.04.02 23:13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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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68
추천수 :
187
글자수 :
13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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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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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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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짝눈

DUMMY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여기까지도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놈이 두꺼운 혓바닥을 회수하는 도중 집중해서 기술을 사용했다.


“송곳니.”


-푸욱!


빅프로그의 입으로 복귀하던 혓바닥을 땅에서 솟구친 송곳니가 관통해 고정시켰다.


개에에에굴!


-푸웨에에엑!


푸른 독액이 뿜어져 나오기 직전, 녀석의 혓바닥에 힘이 풀린 사이 재빨리 옆으로 굴러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녀석의 공격 패턴 가운데 독액을 사용하기 전 혓바닥 색이 푸른색으로 변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일부러 더러운 혓바닥 공격에 고스란히 당해주고, 혓바닥을 쉽게 볼 수 있게 송곳니로 고정해 놓은 것이다. 언제 뿜어져 나올지 모르는 독액 공격의 이점을 잃어버린 빅프로그는 그저 덩치 큰 개구리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다가 혓바닥이 송곳니에 박혀 움직임을 제약받는 빅프로그?

더 이상 놈은 괴수가 아니었다. 그저 뱀 아가리에 놓인 청개구리일 뿐.


“송곳니.”


-푹


만에 하나를 대비해 한 번 더 혓바닥을 송곳니로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가시뼈를 연달아 소환했다.


덫에 걸린 빅프로그의 거대한 한쪽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빙긋이 웃어줬다.


“금방 죽여주마.”


-후우웅 -푸욱!


녀석의 몸에 박힌 가시뼈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던졌다. 개중에는 팔에 힘이 풀려 빗나간 것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명중 시킬 수 있었다.


팔에 힘이 떨어지며 가시뼈가 날아가는 방향을 벗어난다 해도 결국, 빅프로그의 몸통 어딘가에는 꽂혔다. 큰 덩치로 먹이를 삼켜버리는 이점이 지금만큼은 독이 되어 돌아갔다.


개에굴···


마치 놈이 가시갑옷을 두른 듯 머리부터 몸통까지 가시뼈가 박혀, 애처로이 죽음을 기다리며 애통한 울음을 냈다.


팔 근육이 끊어질 것만 같고 과부하에 걸려 정신이 어지러웠지만, 참아내고 가시뼈 하나를 뽑아 들며 멍하니 보고 있는 히어로에게 다가갔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히어로냐?”


대뜸 반말에 기분이 나쁜 듯 인상을 쓴 그가 대답했다.


“그런데요.”


“다시 한번 묻지, 정말 히어로냐?”


두 번이나 묻는 내게 이상함을 느낄 만 했지만, 그는 자신을 놀리는 줄 알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니까요! 근데 왜 반말입니까?”


히어로의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알겠다. 저기 있는 빅프로그 사체, 가져도 좋아.”


“정말입니까?”


표정이 밝아진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목숨값이라고 생각해.”


“목숨값이요?”


그에게 녹아버린 서포터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 그가 핵을 꺼내려고 보위 나이프를 칼집에서 뽑은 다음, 죽어있는 빅프로그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근처에 있는 바위에 앉아, 여명을 만지작거리며 휴식을 취했다.


-딸깍 -착


사체에 다가간 히어로가 불안한지, 슬쩍 보위 나이프 끝으로 괴수의 피부를 찔러 생사를 확인했다. 반응이 없는 놈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핵을 찾기 위해 놈의 피부에 보위 나이프를 박고 절단하기 시작했다.


-딸깍


의외로 피부가 그렇게 두껍지 않은 것을 깨달은 손놀림이 점차 거침없이 사체를 헤집어댔다.


-착


그러던 그때.


-파앙!


공기주머니 터지는 소리와 함께 푸른 액체가 사체 주변으로 터져 나왔다.


“끄아아악!”


실수로 독액 주머니를 터뜨려, 빅프로그의 푸른 독액을 뒤집어쓴 그의 몸.

안타깝게도 그의 초능력은 방어계열이 아니었는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던 가운데, 앉아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원망을 담은 눈동자에 어깨를 으쓱하고는 바위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왜?...”


마지막 유언이 될 질문에 대답해줬다.


“밥상을 차려줬으면, 그다음은 알아서 해야지.”


이윽고 숨을 거둔 그를 지나쳐, 이제는 안전해진 사체로 다가갔다. 대개 빅프로그들은 몸속에 독액 주머니가 존재해, 전문가가 아닌 이상 함부로 핵을 찾는 행동은 몹시 위험했다.


‘이제 가볼까.’


죽은 히어로가 독액 주머니를 제거해 줬기에, 망설임 없이 가시뼈로 사체를 뒤져 핵을 꺼내어 챙기고 ‘이무기’가 잠들어 있을 동굴로 향했다.


그렇게 높지 않은 동굴 입구에는 바닷물이 들어와 있었다. 신발이 젖어도 개의치 않고 걸음을 옮겼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계를 하며 전진했지만, 다른 괴수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드디어 동굴 끝에 도달해 보이는 연못 안에 점액질에 덮인 빅프로그의 알 여러 개가 둥둥 떠다녔다.


가만히 놔두면 부화해서 사람들에게 위험할 수도 있겠으나, 내 관심사는 아니었다. 지금 머릿속에는 오직 고대 유물 이무기밖에 없었다.


‘저 연못 안에 있었다고 했었지?’


숨을 가득 들이마시고 연못 안으로 뛰어들었다. 숨을 참고 주변을 보자, 밖에서 볼 때와 다르게 안은 제법 넓었다. 헤엄쳐서 좀 더 밑으로 몸을 움직였다.


밑바닥에 도착해서 주변을 살피는데, 작은 보물함이 놓여있는 것을 확인하고 품에 안은 후,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끼가 잔뜩 묻은 잠겨있는 보물함.

손으로 대충 털어내고 가시뼈를 이용해 검지에 상처를 냈다. 그리고 상처에서 흘러내린 핏방울을 자물쇠에 떨어뜨렸다.


-드드득


바닥에 놓인 보물함이 진동하며 움직였다.


-드드드득


환상적인 긴장을 느끼며 거세지는 진동을 바라봤다.


-콰지직


진동을 멈춘 보물함이 천천히 조각조각 떨어져 나갔다. 마침내 이무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쉬익 쉬익


혓바닥을 내밀며 주변을 둘러보는 붉은 눈의 하얀 백사.

내 모습을 발견하고 스멀 스멀 기어와 머리를 내 손에 갖다 댔다.


그러자!


하얀빛이 손등을 타고 핏줄에 스며들어 몸을 타고 흘러갔다. 이윽고 황홀한 느낌을 만끽하며 고대 유물 ‘이무기’라는 이름과 이무기가 지닌 능력을 알 수 있었다.


생명을 지닌 고대 유물 이무기.

점차 성장할수록 강력한 독을 사용할 수 있으며, 거기에 더해 이무기를 손에 넣고 싶었던 주된 이유인, 초능력 집어삼키기라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초능력자, 예를 들어 화염이나 전격 계열 능력을 적이 사용한다 해도 이무기가 집어삼킬 수 있었다. 물론, 이 기술 역시 이무기가 성장할수록 보다 많은 양과 더욱 강한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게 가능했다.


“음, 네 이름은...”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자, 오른쪽 눈이 왼쪽보다 약간 커 보였다.


“짝눈, 넌 앞으로 짝눈이다.”


삐익 삐익


병아리 비슷한 울음으로 대답하며 기뻐 보이는 짝눈에게 손을 내밀었다.


“짝눈, 손에 올라타.”


삐익 삐익


어지간히도 기분이 좋은지 계속 울어대는 짝눈.


“어서 타.”


고개를 돌려버리는 짝눈을 보며, 혀를 차고 집어 들었다.


“아직 어려서 말귀를 못 알아듣나?”


쉬익 쉬익


혀를 내밀며 짝눈이 손을 타고 옷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토록 원하던 이무기까지 손에 넣었으니, 미련 없이 동굴을 빠져나갔다.


현재 시각은 오후 6시.

시간이 일렀으면 용산에 있는 ‘대시장‘에 가려고 했지만, 도착하면 너무 늦을 게 뻔해 내일을 기약하며 걸음을 옮겼다.


밤 9시가 넘어서 자취방에 도착한 순간, 이날 쌓인 피로가 몰려왔다. 쓰러질 것만 같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씻을 수 있다는 건 행복이지.’


따뜻한 물에 피로를 같이 날려 보내고 침대에 누운 다음, 여명 뚜껑을 여닫으며 일정을 정리했다.


-딸깍 -착


천년씨앗이 피어나기 전까지, 나약한 육체와 초능력을 키워야 했고 그러려면 괴수를 사냥해야 했다.


‘파주, 파주로 가야겠다.’


파주는 등급이 낮은 히어로가 능력을 키우고 돈을 벌기 제격인 장소였다. 사람도 붐볐는데 빌런이 아닌 현재는 그다지 거리낄 게 없었다.


쉬익 쉬익


방이 신기한지 구경하고 다니던 짝눈이 침대로 기어 올라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자취방에 있는 TV를 켰다.


히어로와 연예인들이 진행하는 토크쇼가 보여 눈살을 찌푸리고 채널을 돌렸다. 그러자 이번엔 ‘이주의 히어로’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번 주 화제의 히어로의 공적과 초능력을 설명하고 있었다.


“빌런에게 죽여달라고 광고를 하는군.”


또다시 채널을 돌리자, ‘그야말로 히어로’라는 히어로를 소개하는 화면을 노려보며 채널을 돌리려는데, 소개하고 있는 인물을 보고 리모컨을 내려놨다.


B급 히어로 ‘보안관’ 강봉석.

한때 우상이었지만, 누구보다 증오하게 됐고 결국 내 손으로 죽였던 인물이었다.


이미 그를 한번 비참하게 죽여 빚을 갚아주긴 했었다. 그렇지만 과거로 돌아온 지금, 그가 같은 하늘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다.


괴수가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이후, 가족을 잃은 슬픔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이었다. 당장 옆집 문을 두드리고 할아버지부터 안부를 물으면, 누군가 한 명은 괴수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었다.


온 가족 몰살, 당시 그 사건이 비교적 큰 사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회적 이슈가 되지는 않았었다. 그 비극의 원흉은 일가친척을 포함해 전부 모인 사촌 형의 결혼식 날, 갑자기 나타난 4급 괴수의 존재.


-딸깍 -차악


12괴신을 제외하고, 일반 괴수들의 위험성을 구분하기 위해 정부는 1급에서 9급까지 괴수 역시 초능력자와 마찬가지로 급을 나눴다. 금일 사냥한 악어치는 9급, 터틀보이는 8급, 빅프로그는 7급, 이런 식으로 1급으로 갈수록 감당하기 어려운 괴수였다.


4급 괴수가 일가족을 학살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분.

편의점 인스턴트 식품을 먹듯, 죽이고 짓밟고 뜯어먹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8살 공서진은 죽기 직전, 보안관 강봉석과 또 다른 히어로, 특수경비대가 때마침 도착해 구원을 받았다.


그렇게 끝났으면 나름 정의는 승리했다는 식으로 결론이 지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은 세상에 알려진 것과 정반대였다. 4급 괴수가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이유는 강봉석의 팀 ‘피스’가 무리하게 사냥에 나섰다, 실패하고 괴수를 놓쳐 발생한 불상사였다.


긴급한 상황에 서둘러 파견된 특수경비대와 팀, 피스는 괴수를 붙잡아 놓을 시간이 필요했기에 결혼식장으로 몰아넣었고, 그렇게 웨딩홀에 있던 내 가족들을 포함해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신랑 신부 4쌍과 몰려있던 하객들이 참변을 당했다.


-딸깍 -착!


더 나아가 강봉석과 팀 ‘피스’ 그리고 당시 특수경비대 책임자는 사실을 은폐했고 본인들이 나서서 사람들을 구해냈다는 식으로 세상에 공표했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구해줬다는 이유로 우상으로 생각했었지.’


당장은 천년씨앗을 생각해서 잠자코 있어야만 했지만, 힘을 손에 넣은 다음엔···


‘빚을 열 배로 돌려주려면, 한 번 더 지옥을 보여줘야 수지 타산이 맞겠어.’


분노를 삭이고 채널을 돌리자, 이번엔 뉴스 속보가 방송되고 있었다.


-오늘 오전 개웅산 인근 주민센터에서 20세 남성 한 명이 뮤턴트로 변한 사건이 발생해, 특수경비대와 초능력 분석탐지대···


관심사에서 벗어난 뉴스를 끄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새벽.

해가 뜨기도 전에 부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체력단련을 시작했다. 찢어질 것처럼 근육이 쑤셔왔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어떤 계열의 능력을 갖고 있든, 초능력자는 일반인과 다르게 단련할수록 강해지는 육신을 지녔다. 회귀 전, 드라큘라로 불리던 그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두라고 소리치는 근육의 외침을 무시했다.


“허억, 허억, 헉··· 반드시 해낸다.”


단련을 마치고,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며 자취방에 들어온 즉시, 괴수 핵을 챙겨 용산 ‘대시장’으로 향했다.


용산 대시장.


한국에서 가장 큰 히어로&서포터 관련 괴수 시장으로, 대시장이라고 불릴 만큼 온갖 물품을 취급했고 규모가 컸다. 빌런의 암시장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규모 면에서는 절대 대시장을 따라갈 수 없었다.


빌런이었을 때는 목숨 걸고 갈 수 있는 곳이었으나, 현재는 그저 히어로 지망생 신분임으로 부담 없이 ‘용산 대시장’이라고 적힌 채,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비행선을 바라봤다.


쉬익 쉬이익


테디 베어가 새겨진 후드티 안에 자리 잡은 짝눈이 바깥 풍경이 궁금한지, 목 소매로 고개를 내밀려는 것을 밀어 넣고 대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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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단편 21.04.01 183 2 12쪽
23 기연 강탈 +1 21.03.31 188 3 13쪽
22 짐꾼 21.03.29 186 1 13쪽
21 악의 태동 21.03.28 195 2 12쪽
20 타깃 21.03.26 215 3 12쪽
19 인재 21.03.25 226 3 11쪽
18 성동격서 21.03.24 249 4 12쪽
17 +3 21.03.22 291 7 12쪽
16 진압대 +2 21.03.21 327 8 16쪽
15 초능력 측정 +2 21.03.19 331 8 12쪽
14 히어로 협회 +1 21.03.18 340 10 12쪽
13 방패막이 +2 21.03.17 338 9 12쪽
12 겁쟁이 +1 21.03.14 413 8 11쪽
11 양 떼 +2 21.03.13 424 10 13쪽
10 원하지 않는 도움 21.03.12 414 10 12쪽
9 반안 21.03.11 426 10 12쪽
8 새로운 빌런 +1 21.03.10 450 10 12쪽
7 다른 종류의 빚 +2 21.03.07 459 9 12쪽
6 대시장 +4 21.03.06 504 10 13쪽
» 짝눈 +1 21.03.05 523 11 13쪽
4 태안 21.03.04 566 10 12쪽
3 빌런이 된 이유 +2 21.03.03 607 10 14쪽
2 회귀 +2 21.03.03 662 11 13쪽
1 프롤로그 +3 21.03.03 767 14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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