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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트노트 님의 서재입니다.

Heroofthe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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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트노트
작품등록일 :
2011.10.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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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4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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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1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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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Hero of the Day - episode 2-11/ 그 여자의 프라이드.

DUMMY

<0>


조용한 아침이다. 트레스는 커피포트에서 한 잔의 커피를 뽑아내며 문제투성이의 상관을 눈으로 나무랐다.


‘프리엘라 N 렌시마이어스’.


로열나이트 두 번째 기사. 시대가 변해, 제 1기사가 왕국 최고의 기사이자 로열나이트 들의 실질적인 기사 단장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 로열나이트 첫 번째 기사는 왕의 호위에만 전념하는 상황. 실질적인 로열나이트의 기사단장으로 프리엘라 N 렌시마이어스는, 리오네 공주님을 향한 충성심이 로열나이트 내에서도 으뜸. 100세를 넘긴 연륜이 넘치는 나이. 하프엘프의 피가 문제로 성장이 멈춘 외모를 제외하면 실력, 인품 어디하나 나무랄 데 없는 제국 최고의 기사.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트레스는 그녀가 가진 하나의 결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군부에는 이미 리오네 공주님과 키로아가 있다.’ ‘이쪽이 걸어올 만큼 더 가깝다.’ ‘잠만 잘 수 있다면 상관없다.’ 며 트레스가 잡아둔 숙소를 찾아와 다짜고짜 침입. 쿨하게 옷을 벗어던지고 샤워. 침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좁은 쇼파에서 무려 호텔 입구에서 대여해온 당근과 토끼 잠옷으로 바로 마법 같은 숙면. 그리고 지금의 아침...


그저 관심이 전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신체가 십대 초의 나이로 성장이 멈춘 것이 문제인 것인지. 트레스가 아는 프리엘라는 이성에 대해서 라던가,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에 대한 관념이 절망적일 정도로 너무 낮다.

게다가 이유 불명의, 말단과 사장의 수준으로 접점이 얕은 트레스에 대해 처음부터 이상 하리 만큼 높았던 신뢰와 평가.


‘언젠가 한번 이부분에 대해서도 확실히 이야기를 해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복잡한 시선을 보내는 트레스 었지만, 트레스가 그랬거나 말았거나. 프리엘라는 숙소의 방바닥에 앉아, 깔아놓은 검을 세심하게 손질하고 있었다.

수입포와 분가루로 쌓인 잔먼지를 털어내고, 어도유와 천, 한지를 써서 검신을 말끔하게 닦고, 검을 역으로 세워 이리저리 돌려보며 검날의 균형이나 손잡이 가드 폼멜 등에 문제가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토끼 잠옷이지만 손길 하나하나가 실로 경건하다 할 만큼 세심했고, 무릎을 굽혀 앉은 진중한 자세에서 검에 집중하는 그녀 진지함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준비해 둔 검은 제각기 다른 모양이지만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기백이 느껴지는 명검.

그렇게 손질하고 검 집과 분리해 둔 검이 벌써 11개를 넘기고 있었다.


‘일단은 맡겨둔 제복을 찾아와야 겠다.’


그렇게 이른 아침 가장 먼저 할 일을 정한 트레스가 검을 손질중인 프리엘라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며 말했다.


“아침 일찍부터 대단하시네요. 전 검의 손질이 이렇게 수고가 가는 일인지 몰랐습니다.”


“수고라-. 검의 손질은 취미로 자주 하다 보니 나는 잘 모르겠군. 하지만 오늘은 확실히 평소보다 신경 쓰는 편이다. 중요한 날이니까 말이다.”


프리엘라는 마지막으로 손질을 남긴 검을 양손으로 들고 천천히 검집에서 검날을 뽑아냈다.


“다행히 이 검도 늦지 않았군.”


칠흑같이 새까만 도신이 인상적이다. 웨이스티드 그립[손잡이 중간이 조금 튀어나와, 위와 아래를 나누어주는 것을 말한다]. 바스타드 정도의 검 폭으로 총길이 1m30cm의 길이가 긴 양날 검. 그 검은 트레스 역시 익히 알고 있는 검이었다.


“어둠의 신기 다인슬로프. 7대 신기중 하나이자 빛의 검 에벨란체와 한 쌍. 프리엘라 경이 로열나이트가 되는 대가로 하사받은 그 검이 아닙니까?”


프리엘라는 기뻐하며 다인슬로프의 손질을 시작하면서 입을 열었다.


“역시 트레스로군. 이 검을 알아보겠나?”


이후 이검을 가져온 이유를 설명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살짝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그때 이 명검을 손에 넣은 건 좋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천 년 째 이검은 7인의 영웅 중 한명이었던 칼린츠경 이후로는 아무도 주인으로 선택받지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였지. 그래서 이 기회에 이 검을 제대로 쓸 수 있을 진짜 주인을 찾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 중이다.”


이 검을 누군가에게 넘겨주려는 건가는 트레스도 대충 짐작이 간다. 하지만,


“하지만 그 검은 프리엘라 경에게 아주 의미가 깊은 물건이지 않습니까? 그 뿐만이 아니라 외부인에게 넘기기엔 어스트로이아 내부에서도 그 검 자체에 아주 의미 깊은 의미가...”


말하는 도중 트레스는 설마 하고 그녀의 의도를 눈치 챘다. 프리엘라에게 들려온 대답은 그야말로 그 설마였다.


“그래. 그래서다. 내가 로열나이트가 되며 왕과 약조한 것은 나의 후계를 내 임의로 정하는 것. 그에게는 나를 대신하여 로열나이트의 두 번째 기사. 로열나이트의 기사단장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1>


「일어나셨습니까 유하진씨.」


이제는 익숙한 세릴의 목소리로 아침을 맞이한다. 잠들어 있는 모습을 계속 감시하고 있었던 건지. 눈을 뜨자마자 반응하는 목소리에 조금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일어날 때까지 계속 감시하고 있었던가?”


「네. 개인적으로는 그 불편한 헬기의 좌석에서 어떻게 그렇게까지 편히 잠들 수 있나 조금 놀랐습니다.」


세릴의 언제나처럼 무뚝뚝하게 까지 느껴지는 목소리 속에는 한 가닥의 가느다란 놀람이 담겨있다. 이제 나는 그 어감에서부터 그 정도의 작은 감정 변화도 읽어낼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나는 잠들 의지만 있다면 옆으로 공성 급 마법이 펑펑 날아다닌다 해도 개의치 않고 잘 수 있지.”


「어쩐지 경험담처럼 들립니다.」


“하하.”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무마했다. 그 말대로다. 어색한 짧은 침묵. ‘강철같이 무신경한 분이군요.’ 라고 세실의 잠깐의 침묵이 말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얼마나 잤지? 얼마나 지켜보고 있었던 거고?”


「지금은 9시 15분이고 제가 일어난 시간은 3시간 전인 6시입니다.」


그때부터 지켜보고 있던 건가. 3시간이 넘도록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잠든 얼굴을 꽤 오랫동안 빤히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레 낮이 간지럽다.


「곧 있으면 엘피스에 도착합니다.」


대화로 잠깐 멈춰있던 세실의 타자 소리가 들린다.


“오늘 밤에는 브류나드의 봉인이 풀리겠군.”


「그렇습니다. 그걸 위한 준비는 이미 마무리 단계를 향하고 있습니다. 마법진의 해석과 정비에는 3일의 시간도 빠듯했던 이유로, 마법진과 방어 시설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엘피스에서 대기. 마무리가 끝나는 대로 오늘밤 결전지인 렘필드로 향할 계획입니다.」


“별일 없이 준비가 끝난다면 좋겠는데.”


「그걸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의 전투에서 렘필드 지대를 사수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나 역시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군.”


비아냥을 반 섞어 푸념하듯 대답한다. 어차피 최선을 다한다 하더라도 심장을 되찾은 브류나드 와 오늘밤의 결전은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전 말씀하신 세계수의 활성화에 대한 건입니다만.」


잠깐 말을 끊은 뒤. 여전히 투명하리만치 맑고 깔끔하지만 감성의 기복이 부족한 목소리가 뒤를 잇는다.


「스폰서 분에 의해 지금까지 모든 종류의 전문, 비전문가를 포함한 가지각색의 방법을 전부 동원해 봤지만 실패로 끝났습니다. 최후에 남은 것은 유하진씨의 말씀대로 제가 노래하는 것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저는 세계수가 있는 엘프의 숲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해가 지기 전 까지는 돌아올 예정이니, 죄송하지만 그때까지 한동안은 언니의 서포트로 만족해 주시기 바랍니다.」


죄송하다니, 게다가 지금 이 상황을 너무 쉽게 넘어가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쉽게 자리를 비워도 괜찮겠나?”


아마도 이 뒤는 심장 폭탄의 스위치가 있으니까 라는 식의 언제나 같은 협박이 들려 올거라 예상했다.


「유하진씨는 그 사이 문제를 일으킬 생각이십니까?」


“아니.”


「그렇다면 유하진씨를 믿겠습니다.」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이, 평소의 냉담한 어조. 하지만 세릴의 대답은 내게 있어 기가 탁 풀릴만한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럼 이 뒤는 언니에게 맡기겠습니다. 아무쪼록 저와 달리 언니께서는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니, 언행에는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릴, 불필요한 참견이야. 이 뒤는 걱정하지 말고 언니에게 맡기라구. 아무 문제없이 잘 처리해 보일 테니까.」


세릴의 목소리보다 아주 작게 세실의 자신 만만한 목소리가 들린다.


「알겠습니다. 여기 매뉴얼은 준비해 두었으니 잠시 동안 뒤를 부탁드립니다. 유하진씨. 그럼 저는 이만.」


잠시 자리를 바꾸는 소리가 들리고,


「오랜만이네요 유하진씨.」


해맑은 세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럼 엘피스에 도착할 때까지 바로 메디컬 체크의 시간을 가져 보죠. 바이탈 수치는 이상이 없으시네요. 체내의 마나도 이정도면 안정돼 있고... 달리 몸에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요?」


“눈이 조금 불편하군. 시야가 가끔 흐릿하고 눈부심이 바로 가시지 않을 때가 있다. 전투의 후유증 역시 꽤 오래 남는 편이다. 밤의 전투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이 이상 문제가 길어진다면 성가셔 지겠는데?”


「후유증이라면 그 후유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세실의 목소리가 시리어스하게 변했다.

‘한계 해제’를 사용한 후의 반동은 세릴이 잠든 걸 확인한 뒤에 치른 후다.

대답이 없는 건 긍정이다. 세실 역시 금방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한번은 정밀검사가 필요하겠군요. 그 힘을... 사용하지 말라고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최대한 무리는 하지 않으시길 바랄게요. 지금 당신은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있어서도, 세계 각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세릴에게 있어 서도요.」


세실의 말속에는 세릴에게도 라는 말이 가장 무겁게 다가왔다.


“마치 내가 살아남는게 세릴을 위해서기도 하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그건-,’ 이라며 잠깐 말문이 막혔던 그녀가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연다.


「겉으로는 저렇게 행동하고 있지만 세릴은 아직 어려요. 그러니 아직 지표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애에게 있어 ‘어른’은 그저 실험을 하거나, 능력을 이용해 왔던 사람들뿐이에요.」


세실은 잠깐 말을 멈춘 뒤, 천천히 입을 연다.


「하지만 최근 저 애의 어깨가 가벼워진게 확실히 느껴져요. 저와 지금껏 이렇게 많은 시간을 있었을 때도 그렇게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역시 저는 실험을 하는 쪽의 어른이라서 일까요?」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세릴에게 있어 네 존재는 크다. 그건 장담하지.”


기운을 얻은 목소리가 조금 자조적인 웃음소리를 흘렸다.


「아니라 해도 역시, 아이에게는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괜한 기대는 실망만 크게 만들어낼 뿐이야.”


「그랬군요. 그랬었지요. 유감입니다.」


유감이라는 말.


‘그렇다면 이런 괴리감 따위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마치 입안만을 맴도는 그녀의 아주 작은 속삭임이 나의 귀에는 똑똑히 들려왔다.

그들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사람은 자신의 죄의식조차 건드리지 않을, 전설 그대로의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이고 냉혹한 반역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저들과 허물이 너무 없어지는 건 상황 상 아주 좋지 않다. 괜히 자신들까지 관리자들의 집중 견제 대상에 들어갈 뿐이었다. 그런 상황은 서로에게 불리하기만 할뿐. 특히 세실의 경우는 더 그렇다. 초기 세실의 모습 정도가 딱 좋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내 생각엔 아무리 봐도 반대인데? 어떤 면을 비교해 봐도 네 쪽이 애같고 동생 쪽이 더 착실하고 제대로 되지 않았나?”


「으, 유하진씨-! 어째서 당신은 항상 안 그래도 제가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을...! 이제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유하진 씨하고는 진지한 이야기가 불가능하군요. 그 뿌리부터 삐뚤어진 성격. 냉혈한. 그러니까 천년이나 지난 뒤에도 희대의 반역자라 불리 우는 거예요.」


역시나 그 점이 콤플렉스 같은 건지 그녀는 평소보다도 매우 뾰족하게 반응 했다.


“알았으면 됐다. 그래서 슬슬 목적지가 보이는 것 같은데?”


「정말, 유하진씨는 불리할거 같으면 말을 돌리시고. 이전부터 절 알거나, 학회에서 저에 대해 아는 사람이 지금의 상황을 봤다면 깜짝 놀랄 겁니다. 세상에 ‘세실 크레니아’를 이렇게 놀리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에요.」


학회에서는 분명 천재라고 했나? 생명공학이라 했던가, 세실이 그 분야의 천재라는 것은 부인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그 결과물이 나니까 말이다. 무려 천 년 전에 죽었던 사람을 살릴 정도라면, 아마 그 분야에선 거의 독자적인 위치였을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흥,’ 하고 콧방귀를 끼며 아이같이 화내는 모습이라니. 영락없이 애라 불러도 될 정도다.

삐진 세실을 뒤로하고 저 멀리, 모래로 된 드넓은 황야를 지나. 신기루처럼 끝없이 펼쳐진 건물들의 향연이 보였다. 대낮부터 하늘을 수놓은 형형색색의 전광판이나 반듯하게 정돈되어 빛에 반짝이는 건물들의 바다가 수도인 리드 바칼라스에 비견될 만큼 크고 화려해 보이는 도시였다.


“내가 알던 엘피스와는 이미지가 전혀 다르군.”


「천 년 전 이면... 아. 천 년 전 엘피스는 광산마을이었군요.」


무언가를 툭툭 두드리는 소리 이후로 광산마을 이라는 어느 정도 진정된 세실의 대답이 들려온다.


“그래, 천 년 전에는 유명한 철광산이었다. 오하시스에 커다란 돌산. 철과 함께 꽤 많은 금광도 있고, 엘피스의 철은 질이 좋기로 유명했지.”


「정말 천 년 전의 살아있는 정보로군요. 엘피스는 그 후 광물 자원을 통한 부흥으로 시작해 지금의 대도시 엘피스로 발전했네요. 그때가 대략 800년 전... 도시 규모의 터가 잡힌 이후로는 관광사업으로 더 유명하게 발전해서, 지금은 광산마을이었던 엘피스를 알고 있는 사람조차 거의 없을 것 같네요.」


“그만큼이나 시간이 지났으니 말이지.”


「공항에 도착하면 사,고,없,이 준비해둔 가이드 분과 합류하시기 바랍니다.」


사고없이를 특별히 강조해서 말한다. 저렇게 말하니 꼭 내가 여기저기서 항상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처럼 들린다.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 자신은 해결사를 자처하지만 말이다.


“노력하지. 하지만 나도 이제 이 시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딱히 가이드가 필요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일정에 관한 사항은 세릴의 메뉴얼에 적혀 있습니다. 이미 계획 된 사항이니, 아무쪼록 현지의 지원은 감사히 받으시기 바랍니다.」


강압적인 어투. 어떻게든 그 메뉴얼의 내용을 지키고 싶어 하는 세실의 의지가 느껴진다. 이래서 정말 누가 언니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 가이드란건 누구지?”


「엘피스의 전 도지사이자, 리스티아 최대 규모의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는 공작 이십니다.」


“그건 또 단순한 도시 안내 가이드 치고 대단한 사람을 불러놨군.”


「그분의 의향이죠. 이번 가이드 분은 스스로가 먼저 도시의 가이드를 자처하고 나선 지원자입니다. 이번 마왕과의 전투준비에도 전폭적인 도움을 주시는 분이니 요청에 응하기로 한거죠.」


그녀? 그 공작은 여성인 듯 하다.


“어쩐지 정치 같은 이야기인데?”


「유하진씨는 표면상으로 일개 ECSS의 프리랜서 용병일 뿐입니다. 일이 표면에 나온 이상, 이제 저희 역시 그런 이야기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다는 겁니다.」


“흐음-.”


그녀가 말하는 공작이라는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볼 수 있었다.

헬기의 착륙 지점은 그야 말로 인산인해. 여기저기서 빛이 터지는 물건이나, 네모나고 손바닥만 한 물건을 든 사람들이 몰려와 헬기 아래를 점령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그 앞에 몰려들어 눈부신 빛의 세례와 질문을 쏟아낸다. 일일이 상대하다간 끝이 없을 것 같다. 문을 열고 힘으로라도 피해서 빠져 나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쯤,

공작의 등장에 의해 그 상황은 완전히 돌변했다.


“자리를 비키세요. 이곳은 출입 통제구역입니다.”


소란스런 사람들을 잠재우는 커다란 목소리. 소리의 근원지는 입구로 보이는 통로에서 들어선 가녀린 몸집의 여성에게서였다. 마치 장례식에서나 볼법한 칠흑의 드레스. 얼굴은 짙은 검은색의 면사에 가려져있다.


“오너.”


“엘피스의 오너다.”


그녀를 본 헬기 밑의 사람들이 면사의 여성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대동해온 검은 옷의 사람들에 의해 헬기와 통로를 잇는 길이 만들어진다. 마치 바다가 갈라지는 것 같은 사람들의 길 사이로 높은 힐을 신은 그녀가 우아하게 걸어왔다.


“이런 형태의 마중이라 죄송합니다. 일부러 조용한 곳에 불렀는데 어떻게 이곳 창구로 올 것을 알아낸 것인지. 매스컴은 정말 바퀴벌레 같은 분들이네요.”


그게 문을 연 그녀가 가장 처음 한 말이었다.


“오너라고 했나?”


“예. 이 도시 카지노의 전반을 쥔 오너 이니까 현지인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 뿐입니다. 우선은 이동하기로 하지요.”


다른 소개도 없이 그녀가 앞장섰다. 나는 별 말없이 그녀를 따라 뒤를 걸었다. 그 사이에도 계속해서 여기저기서 터지는 빛과 질문공세가 이어졌지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준비된 검고 긴 차에 앉았다. ‘오너’라 불린 엘피스의 도지사이자 공작은 마주보는 반대쪽 좌석에 앉아 위축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전체적으로 체형이 좁고 가녀리지만 가슴과 힙의 발육이 아주 뛰어난 육감적인 몸매다. 특히 윗 가슴이 일부 노출된 드레스 차림은 어른 모습의 블리슈와 비견될 만큼 박력이 있는 크기였고, 얼굴은 검은 면사포에 가려 정확히 보이지 않지만 짙은 붉은빛 립스틱만은 면사의 뒤로도 선명히 그 색이 드러났다. 의식하면 무릎도 닿을 거리다. 그녀의 몸이 있는 방향에서 은은하게 달콤한 향기가 났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남편분이 별세하신 이후 밖을 나오는 것은 오랜만이라. 다른 분들이 보는 앞에서는 당당하게 있으려 했지만 이정도 사람의 공세가 도저히 익숙치 않아서...”


그녀가 오른손을 나의 앞으로 내민다.


“조금, 손을 빌려 주시겠습니까?”


그녀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녀의 어깨와 몸도 가늘게 파르르 떨린다. 노출이 있는 목 주위와 가슴께에는 조금씩 식은땀도 흐르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손을 쥐자 떨림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검은 망사장갑 너머로 느껴지는 그녀의 손은, 보통 사람보다 조금 체온이 차가웠다.


“고맙습니다.”


그녀는 손을 때지 않고 가볍게 쥐었다.


“따스한 손이네요. 돌아가신 남편이 떠오릅니다. 조금만 이대로 있게 해주시겠습니까?”


「그녀의 기분에는 가능하면 맞춰 주시길 바랍니다. 단, 그녀의 미모에 홀려 실수하지 않게 주의해 주세요.」


세실의 말끝이 탐탁치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미모라니. 에초에 그녀는 짙은 면사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도 않는데다가. 게다가 아무리 떠올려 봐도, 이 시대에 깨어난 이후 세실이 걱정할 만큼 내가 미인에 약한 모습을 보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륙의 10대 미녀라 하면 빠지지 않는. 여신의 환생, 경국지색이라 까지 불리는 미인을 동생으로 둔 나다. 미인에 대한 내성은 상당히 높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3분이 지났을까, 나는 계속해서 그녀의 손은 쥔체다. 먼저 그녀의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잡는 것만으로 이렇게 진정이 되다니.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완전히 안정된 목소리로 그녀가 입을 연다.


“제가 이 도시의 가이드를 자청한 것은 리스티아의 국민을 대신해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이곳도, 이 나라도 손쓸 방도 없이 무너졌을 겁니다.”


“브류나드를 막지 않으면 어차피 파멸뿐이다. 생존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을 뿐이야.”


“하지만 오늘밤에도 당신의 손은 싸우며 누군가를 지키게 되겠지요.”


오너라 불린 여성은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나의 손을 살며시 양손으로 포개어 자신의 얼굴 가까이로 가져갔다.


“그렇다면 저는 기도하겠습니다. 이 세상이 당신이 목숨을 걸고 지키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기를.”


기도를 올리는 모양세로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실은 당신을 위해 숙소까지 퍼레이드와 환영 파티를 준비할 생각이었습니다만.”


그녀는 나의 노골적인 표정을 읽은 건지 가슴을 쓸어내리며 즉답했다.


“준비하지 않아 다행이군요.”


그 뒤로 시간이 얼마 더 지나지 않아 이윽고 차가 완전히 멈춘다.

끝까지 쥐고 있던 손을 놓으며, 조금 아쉬움이 남는 목소리로 그녀가 입을 연다.


“벌써 도착했군요. 호텔 하나를 완전히 비워 두었습니다. 우선은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제 어드레스를 보내 드릴테니, 무언가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연락해 주시겠습니까?”


“알겠다. 그런데 조금 도시를 둘러봐도 괜찮겠나? 그저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너무 따분해서 말이지.”


“그렇다면 뛰어난 안내역을 붙여드리겠습니다. 경비도 전부 저의 쪽에서 지불해 드리지요.”


“자유롭게 움직이는 편이 좋다. 마음만 고맙게 받지.”


“그렇습니까? 당신이라면 문제될 일은 없겠지요. 하지만 이대로는 당신의 눈과 머리카락은 너무나 눈에 띕니다.”


그녀가 좌석 옆의 케이스를 연다. 그 안에는 와인과 술, 작은 모래가 담긴 병. 그보다 깊은 쪽에 케이스에 담겨 주먹크기 보다 작은 호신용 총 하나. 그중에 그녀가 꺼내든 것은 분홍색의 고운 모래가 담긴 작은 유리병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병에 담긴 모래를 나의 머리에 뿌렸다. 먼지처럼 퍼진 가는 모래가 내 머리위에 흩어져 내렸다.


“진실을 가리는 요정의 모래여-.”


그녀가 주문을 외자 모래가 나의 머리카락에 녹아내리듯이 달라붙어 흰색이 많이 섞인 밝은 회색빛이 났다.


“취미로 마법을 조금 배워 이런 잔재주가 있습니다. 저녁까지는 이 색이 유지가 될 겁니다.”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요염한 향기와 부담스럽게 눈앞에 아른거리던 새하얀 가슴이 원래 위치로 돌아간다.

밝은 은회색의 머리칼도 그런대로 눈에 띄지만 특징적인 검은 머리보다는 나아보였다.


“이색도 어울리시는 군요.”


그녀가 옅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더 이상은 용무도 없이, 나는 문을 열고 내렸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차의 그늘 안에서 들리는 그녀의 마지막 인사를 뒤로하고 차의 문이 닫혔다.



타앙-,

방음이 완벽한 차안에서 총성이 울린다. 그리고 그 뒤를 연이어 울리는 두발의 총성.


“모처럼 좋은 분위기 였는데 정말로 눈치가 없으시네요. 한 시간, 아니 최소한 30분 정도는 더 다른 길로 돌아와도 괜찮았는데 말이지요.”


오너는 끼릭, 하고 리볼버 형태로 된 탄창을 돌려 한발 더 발사했다. 총에서 쏘아진 탄환은 운전사의 오른쪽 귀 아래의 유리에 박혔다. 그녀가 가진 권총으로 운전석과 좌석 사이에 있는 방탄유리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리볼버 형태의 탄창을 다 비울 때까지 권총을 방탄유리에 발사했다. 마지막까지 방탄유리는 뚫리지 않았지만. 생생한 형태로 방탄유리에 박혀 찌그러진 탄알과, 거미줄처럼 금 이간 방탄유리는 운전사의 심장을 싸늘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지금은 마침 기분이 좋으니 이정도로 용서해 드리지요. 자, 그럼 빨리 차를 출발시켜 주시지 않겠나요?”


운전사는 창백한 얼굴로 마른 침을 삼키며 차를 출발시킨다.


“정말이지, 오늘은 서로에게 긴 하루가 될 테니까요.”


움직이는 차창 밖을 보며. 검은 면사 아래, 붉은 립스틱이 미소지었다.


작가의말

 먼저 정체무실님의 추천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읽어 봤는데 추천글의 과분하신 극찬에 몸들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

 다음화는 최대한 빨리 올리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p.s. 댓글에 달린 오타는 다음에 날을 잡고 대대적으로 수정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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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Hero of the Day - episode 2-13/ 재보의 여왕. +14 16.07.10 1,617 48 11쪽
123 Hero of the Day - episode 2-13/ 재보의 여왕. +19 16.07.08 1,740 49 15쪽
122 Hero of the Day - episode 2-12/ 그 영웅의 광채. +16 16.07.05 1,684 55 6쪽
121 Hero of the Day - episode 2-12/ 그 영웅의 광채. +37 16.07.03 1,948 67 17쪽
120 Hero of the Day - episode 2-12/ 그 영웅의 광채. +7 16.07.03 1,659 43 8쪽
119 Hero of the Day - episode 2-12/ 그 영웅의 광채. +3 16.07.03 1,608 47 9쪽
118 Hero of the Day - episode 2-12/ 그 영웅의 광채. +4 16.07.03 1,557 47 9쪽
117 Hero of the Day - episode 2-12/ 그 영웅의 광채. +7 16.07.03 1,504 44 13쪽
116 Hero of the Day - episode 2-12/ 그 영웅의 광채. +18 16.06.28 1,695 54 12쪽
115 Hero of the Day - episode 2-12/ 그 영웅의 광채. +10 16.06.28 1,550 37 10쪽
114 Hero of the Day - episode 2-11/ 그 여자의 프라이드. +24 16.06.25 1,686 53 17쪽
113 Hero of the Day - episode 2-11/ 그 여자의 프라이드. +12 16.06.24 1,681 47 10쪽
112 Hero of the Day - episode 2-11/ 그 여자의 프라이드. +11 16.06.22 1,537 44 13쪽
111 Hero of the Day - episode 2-11/ 그 여자의 프라이드. +12 16.06.20 1,563 51 11쪽
110 Hero of the Day - episode 2-11/ 그 여자의 프라이드. +13 16.06.19 1,670 54 17쪽
109 Hero of the Day - episode 2-11/ 그 여자의 프라이드. +17 16.06.16 1,734 65 24쪽
108 Hero of the Day - episode 2-11/ 그 여자의 프라이드. +14 16.06.14 1,671 67 8쪽
» Hero of the Day - episode 2-11/ 그 여자의 프라이드. +16 16.06.12 2,006 63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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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Hero of the Day - episode 2-10/ 빛의 가희. +26 16.06.05 2,129 55 17쪽
104 Hero of the Day - episode 2-10/ 빛의 가희. +35 16.06.02 1,865 5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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