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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윤의 서재입니다.

투시透視, Second Sight

웹소설 > 자유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최승윤
작품등록일 :
2014.08.03 00:37
최근연재일 :
2014.12.18 17:34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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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79
추천수 :
518
글자수 :
272,824

작성
14.08.03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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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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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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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isode 01 빨간 드레스 (6)

DUMMY

-*-




도통 이해가 가진 않지만, 계영에게 자신의 파트너가 청담동에서 꽤 놀았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였다.


이후 계영이 선택한 것은 차우현의 집을 방문하거나 샵을 찾는 게 아니었다. 세준은 계영의 지시-라기보다는 명령에 가까운-로 차우현이 사는 오피스텔 근처의 커피숍, 정확히는 희즈 웨딩샵과 문제의 오피스텔 중간에 있는 작고 고급스런 카페를 찾아야 했다.


그 카페에서 세준은 자신의 말처럼 ‘왕년에 놀던’ 무리 중 하나를 불러냈다. 이 모든 것은 계영의 주문으로 비롯됐다. 작지만 위험한 파트너는 마치 커피를 주문하듯 지시했다.


‘네 주변에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여자 있지? 일명 청담동 며느리 정도 되는 여자. 개중에 희즈 웨딩샵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여자, 분명히 있을 거야. 그런 여자. 그 여자를 여기로 불러내. 그리고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걸 물어 봐.’


그런 여자가 없다고 하면 죽일 것 같은 분위기였고, 실제로 그는 비슷한 표현을 했다.


‘좋은 말로 할 때 후딱후딱 해, 사장의 숨겨진 아들. 이럴 때는 누군가 네 대가리에 총을 겨누고 있다고 생각하는 심정으로 해야 해.’


‘……제 머리에 총을 겨눈다는 말씀이신지?’


‘아니지, 이 바보야. 메타포,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며 심상적인 표현이지! 너같이 취미삼아 회사에 다니는 녀석은 모르겠지만, 나 같이 평범한 소시민은 실적 미달에 따른 해고 통지가 거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같은 거란 말이야.’


절대로 취미삼아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지만 통하지 않을 말이었다. 세준은 얌전히 자신의 전화번호부를 뒤져 한 명을 골라냈다. 계영이 말하는 그런 여자를 찾아내는 일은 쉬웠다. SNS 내용이나 전화번호가 최근 몇 달 전부터 급격하게 바뀐 여자, 혹은 클럽 기행과 재등장 사이에 일 년 정도 공백이 있는 여자, 그리고 뭔가 손 댄 듯, 티 안 나게 몇 개월 동안 얼굴을 손 본 여자 정도면 충분했다.


이 바닥에서는 그런 행적들이 일종의 결혼 신호였다. 클럽에서 잘 놀기로 유명하던 여자들이 느닷없이 고상한 인격과 외모로 포장하고 1,2 년 조용하면, 그것은 결혼한다는 징조였다. 그것도 평범한 결혼이 아니라 그럴 듯한 청담동 스타일의 결혼을 한다는 의미다.


유학생인 경우는 더욱 표가 났다. 계영의 요구와 비슷한 사람을 찾는 일은 정말 쉬웠다.


“……갑자기 부른 이유가 뭐야? 잘나가던 때가 기억이 나서?”


여자는 미니MINI를 끌고 나타났다. 여러 대의 차 중에 서브로 모는 차였다. 카페는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근처의 큰 영화관, 그 뒤쪽으로 즐비한 상점들 사이에 위치했다.


둘은 마주보고 앉았음에도 다소 겸연쩍었다. 대낮에, 그것도 서로 멀쩡하게 차려입은 채로 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여자는 그 사실을 비웃듯, 입술을 왼쪽으로 조금 올렸다.


“천하의 한세준이 여자가 없어서 결혼한 전前클럽녀를 만나자고 한 건 아닐 테고.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렇다고 네가 돈이 필요하지도 않을 텐데.”


세준은 거두절미하고 명함을 내밀었다.


“일. 일 때문에 보자고 한 거야.”


찻잔을 채우는 직원의 손이 조금 떨렸다. 여자는 「사후보험처리 시크릿 세이버」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아, 너, 여기 다니는군. 여기 요새 유명하던데.”


“유명하지.”


세준은 잠깐 끊고 뇌까렸다.


“돈 많은 사람들의 비밀을 죽은 후에도 사후 몇 년간 유지하는 것으로.”


여자는 가볍게 콧소리를 내며 명함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나더러 여기 가입하라고? 뭐, 나도 나쁘지는 않지만, 아직 그 정도로 유지해야 할 비밀은 없어서 말이지.”


“그런 거 아니야. 하지만 네 남편이 네가 결혼 전에 하고 다닌 걸 아는 것도 별로 좋아하진 않을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런 말로 기가 죽을 상대가 아니다. 여자는 씽긋 웃더니 “그래라.”하고 무시했다.


“별 시답지 않은 소리로 시간 갉아먹지 말고 본론을 말하지 그래? 아, 세상 정말 많이 변했다, 네가 일을 하지 않나, 미연이도 결혼한다고 연락을 끊지 않나……. 아, 그런 협박이라면 미연이에게 더 어울릴 거야. 그년이야말로 정말 놀아났잖아. 그리고 남편도 잘 만난 것 같던데.”


“……황미연이 결혼했어?”


세준은 여자와 클럽에서 만났던 다른 미인을 떠올렸다. 눈앞의 여자보다 더 많은 남자와 놀던 여자였다. 뭐, 상관은 없는 일이지만, 가끔 이들의 변신은 사기와 비슷했다.


“황미연이 결혼했어. 응. 남편 잘 만났지. 안 그래도 네 연락 받고 떠올렸어. 6개월 전에 했어.”


세준은 옷매무새를 약간 고쳤다. 여자와 만나기 전에 계영이 알려주던 질문 더미들을 정리해야 했다. 계영이 어떤 질문으로 뭔가를 알아오라고 했을 때야, 그가 떠올리는 게 뭔지 감을 잡았다.


희생자가 느낀 어떤 위험에 대한 경고, 그리고 그 경고를 낳게 한 어떤 비밀.


차희현이 사후보험에 가입한 것은 자신의 신변에 어떤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피해를 당한 신데렐라 스토커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과 가장 밀접한 공간, 희즈 웨딩샵에 대한 것이 분명했다. 그 이유로 차희현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만약 언니와 화해를 하지 못한 상태라면 언니에게 반드시 웨딩샵을 처분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렇다면 비밀을 가진 것은 희즈 웨딩샵이라는 공간 자체였다. 그곳에서 생겨난 어떤 비밀, 그것에 대해 차희현은 공포를 느꼈다. 그는 실제로 그 비밀이 자신을 해칠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 젊은 나이에, 한창 잘되는 사업을 처분해 달라고 서둘러 사후계약을 맺은 것을 보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누가 어떤 짓을 저지른 건가. 계영은 왜 ‘그 사람’이라고 말하고, ‘그런 행동’을 여러 번 했을 거라고 중얼거린 걸까.


계영이 유추해 낸 모든 대답은, 그가 눈앞의 여자에게 간접적으로 던진 질문과 연관이 있다. 세준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태연하게 시작했다.


“아, 맞다, 너희 둘 다 희즈 웨딩샵에서 웨딩 패키지 계약했지?”


여자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남편에게 과거를 이르겠다는 농담에도 거뜬하던 여자였다. 그런 그가 조금 동요했다. 위로 치솟던 눈썹산은 금세 본래로 돌아갔지만, 찻잔을 쥔 손끝은 눈에 띄게 떨어댔다. 툭-. 커피 방울이 잔에서 튀었다. 여자는 그 잔에 황급히 입술을 대고 목을 축였다.


“……맞아, 거기서 했어. 최근 몇 년 동안 이 바닥에서 제일 뜬 웨딩샵이거든.”


여자는 잔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지우며 재빨리 대답했다. 세준은 부드럽게 “워, 워.”하고 그를 달랬다.


“괴롭히려는 거 아니야. 남편에게 말할 것도 아니고. ……진정해.”


그럼에도 여자는 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턱을 치켜드는 자세가 방어적인 고양이와 비슷했다.


“진정하라니, 무슨 말이야. 내가 진정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다고.”


여자의 눈이 세모꼴로 변했다. 세준은 온화한 투로 대답했다.


“그냥 위로의 말이야. 네가 이상하게 놀라는 것 같아서 말이지. 나도 뭘 진정하라는 건지는 몰라. 그냥 위로야. 우리, 왕년에 친구였잖아.”


그 말만은 사실이었다. 여자는 진정한 듯 한숨을 쉬고는, 주변을 의식한 것처럼 몸을 낮췄다.


“……너야말로, 너, 경찰이라도 된 거야? 우리랑 놀 때도 넌 좀 다르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잘 살고 잘 배운 것 같고. 딱히 여자와 자고 싶은 것도 아닌데 클럽을 찾아서 죽도록 술을 퍼마셨지.”


“……그랬지.”


“맞아, 그때도 그래서 다들 네가 경찰이 아닐까 의심했어. 유학생들 사이에는 특히 그랬다고. 잘사는 것 같은데, 정체를 알 수 없으니까 말이지.”


정체란 단순히 ‘어떤 잘나가는 부자의 숨겨진 아들’이다.


세준은 됐고, 하고 손을 저었다.


“내 정체는 아무 소용없어. 거기 명함에 적힌 그대로야. 그리고 내 고객 때문에 너를 찾은 거야. 내 고객이……,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이미 안타깝게 횡사한 희즈 웨딩샵의 차희현 씨야. 그 때문에 뭐 알아낼 게 없는가 해서 너를 찾은 거고.”


여자는 긴 속눈썹을 몇 번 깜박였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천천히 두드리는 게 초조해 보였다. 타닥타닥, 손가락이 리듬감 있게 움직였다.


“희즈 웨딩샵의 차희현이 죽었군. 그런 소문이 돌긴 했지.”


“어, 맞아. 범죄로 희생당했지. 하지만 내가 조사하는 건 범죄와는 상관없어. 단지……, 궁금한 게 있는데, 차희현 씨의 웨딩샵이 왜 갑자기 뜬 거지?”


사실 계영이 궁금하던 내용 중 핵심이다.


여자는 숨을 들이쉬고 쏘아보았다. 영원히 입을 다물 것 같은 눈빛이었지만, 의외로 입을 열었다.


“베라왕의 디자인도 한 번에 떴잖아. 너도 알기는 알지? 결혼 같은 것에 관심은 없겠지만. 웨딩드레스도 마찬가지고.”


“베라왕의 웨딩드레스가 뜬 건 연예인들이 입어서 그렇지. 하지만 희즈 웨딩샵은 그렇지 않아.”


고집스런 추궁에 여자는 옷깃을 만졌다. 살짝 떨리는 손끝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뭘 알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희즈 웨딩샵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어.”


“오케이. 알았으니까 아무 거나 말해 봐. 그 웨딩샵의 비밀이 뭐야. 디자인이 괜찮다는 말은 듣긴 했는데-.”


‘디자인’이라는 단어 역시 계영이 제시한 키워드였다. 희즈웨딩샵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상대가 방어적으로 나오면 그 단어를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디자인’이 주요 단서인 것은 확실했다. 여자는 드러내놓고 콧방귀를 꼈다.


“디자인은 무슨. 그 디자이너가 납품 안 한지도 일 년이 넘었는데.”


“그럼 왜······?”


“거긴 원래 자매가 운영하던 곳이지.”


“어.”


여자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중얼댔다.


“내가 듣기에는 언니 쪽이 먼저 그 남자를 좋아했는데 동생이 가로챘다지. 그것도 언니가 모르게.”


분명 그런 일이 두 자매를 갈라놓았다. 태민이 이 이행서에 대해 설명할 때도 비슷한 말들을 했다. 보고계의 마에스트로 김태민의 목소리가 쟁쟁했다.


‘죽기 직전 차희현 씨의 주변에 분란이 많았거든요. 이 계약건에 대해 그대로 진행해도 좋다고 연락해 온 형사님이 말씀하시길, 아무래도 차희현 씨가 살해당하기 직전, 남편 서세영 씨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고······.


뭐, 사고 당일 날도 언니 차우현 씨와 다툼이 컸던 모양입니다. 사실 차희현 씨와 차우현 씨는 세영 씨와의 결혼 문제가 불거진 1년 6개월 전부터 거의 의절 상태였습니다. 원래 서세영 씨와 결혼하기로 한 건 언니 쪽인 차우현 씨니까요.’


“그렇다고 들었어. 하지만 가십이잖아? 그게 희즈샵의 호황이나 비밀과 상관이 있나?”


“……가십으로 취급될 일이 아니야. 이래서 남자들이란.”


낌새가 이상했다. 테이블 위에 올린 손이 눈에 띌 정도로 떨렸다. 세준은 그 손을 토닥이며 달랬다.


“자, 진정하고. 왜 그래. 난 아냐. 나 몰라? 클럽에서 만날 때도 나 매너 좋았잖아. 왜 그래.”


여자는 “……클럽.”하고 뇌까렸다. 착잡하고 모호한 표정이었다.


“그래, 클럽.”


세준이 부드럽게 받아주자, 그는 코를 훌쩍이며 창밖을 응시했다.


“······돌아가면 좋을 텐데, 그때로.”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여자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다. 세준은 한참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더 이상의 진행을 포기했다. 느낌이 정말 좋지 않았다.


창밖으로, 누군가 경적을 울리며 달려갔다.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업데이트 기록 _ 14.11.10 수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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