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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윤의 서재입니다.

투시透視, Second Sight

웹소설 > 자유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최승윤
작품등록일 :
2014.08.03 00:37
최근연재일 :
2014.12.18 17:34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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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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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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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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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03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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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Episode 01 빨간 드레스 (4)

DUMMY

2. 권계영




역시 그랬다.


희즈 웨딩샵의 이행건은 세준이 짐작했던 바로 그 적임자에게 돌아왔다. X팀으로 옮겨진 후 바로 다음날, 세준은 여느 때보다 일찍 출근해버린 자신의 생체 시계를 탓하며 서류를 내려다봤다. 계영은 회의에서 분명히 ‘다섯 번이나 찾아갔는데 거절을 당했다.’라는 말을 했다. 같은 서류가 자신의 책상 위에 있다는 점, 그리고 계영이 그 입으로 파트너를 요구했다는 점을 보건대, 세준은 이 계약건의 새 파트너였다.


아침의 화창한 햇살을 느낄 수 없는 것도 괴로운데, 권계영과의 파트너 관계는 정말 옳지 않았다. 그러나 X팀의 팀워크는 이상한 방식으로 상당히 강했다.


9시가 되기 직전, 의외로 장가형 팀장이 가장 먼저 출근해서 “어이.”하고 인사에 가까운 탄성을 보냈다. 그저 그것뿐, 권계영의 파트너가 된 것에 대한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김태민이 지하문을 열고 들어서며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놈이 자신보다 먼저 출근한 선배를 향해 지른 한마디는 탄성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었다.


“어라?”


연이어 9시를 몇 초 남기지 않고 유진희도 미끄러지듯 들어섰지만, 역시 희즈 웨딩샵에 대한 말은 전혀 없었다. 그저 김태민과 비슷한 탄사가 전부였다.


“어머!”


권계영은 어떤 반응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세준은 팀 이전 첫날부터 가장 먼저 퇴근해버린 스스로에게 그냥 부아가 났다. 아마도 이 까다로운 계약에 대한 난데없는 파트너십은 권계영으로부터 나온 것이겠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11시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권계영이 커피가 가득 담긴 컵을 들고 등장한 것은 오전 11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아무도 그 일에 대해 터치를 하지 않았고, 세준 역시 목숨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다. 계영은 적어도 팀장에게는 지각에 대한 이유를 둘러댄 눈치였다. 장가형은 계영의 머리 위로 가볍게 인사했다.


“왔냐?”


이후 권계영은 조용했다. 그는 남들이 모두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할 때도 계속 자리에 앉아 신비로운 정수리만 보여주었다.


선배인, 그것도 대리가 -아무리 신비의 문제적 인물이라 할지라도- 파트너로 낙점한 후배 사원이 먼저 말을 꺼내거나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은 어떤 금기에 가까웠다. 세준은 기다렸고, 배가 무지하게 고팠다. 계영은 언제까지나 신묘한 정수리 비주얼만 공개하더니, 정오에서 40분을 넘긴 시각이 되어서야 말을 걸었다.


그것도 메시지로-.


「자네, 혹시 배고프지 않은가.」


딩동-, 회사용 네트워크가 불을 반짝였다. 권계영, 이라고 적힌 닉네임에 문득 한기가 들었다. 왜 계영 대리는 자신의 닉네임을 본명으로 해놓은 걸까. 아니, 왜 그 단순하고 별 거 아닌 사실이 이상하게 오싹한 건가.


세준은 또각또각 정성들여 회신했다.


「약간 그렇습니다.」


「그렇군.」


맞은편에서 신비로운 정수리가 흔들거렸다.


「그렇다면, 자네, 위산을 역동적으로 분비시키지 않겠는가.」


세준이 양복 재킷을 들고 일어나기 무섭게, 신비로운 정수리도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곧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먼저 주차장으로 향하더니, 다짜고짜 세준의 차에 기대어 섰다. 그것도 세준이 거의 이용하지 않는 페라리였다.


“……선배님?”


“왜.”


“제 차로 가는 겁니까? 회사차가 아니고요?”


계영은 푸른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잘못 보면 상추처럼 보이고, 잘 보면 탐험가처럼 보였다. 은색 스포츠 카 옆에 서 있는 여자의 얼굴은 그 푸른색 점퍼 때문에 더 하얗게 보였고, 한편으로는 우울해 보였다.


“네 차는 페라리잖아. 컨버터블이라고. 이런 차를 보면 누구나 한 번은 타고 싶지 않겠어? 이걸 지하에 마냥 짱 박아두는 건 정말, 정말, 정말, 이 아름다운 곡선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그 차는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습니다. 제 명의로 되어 있긴 하지만, 제가 회사에 타고 다니는 건 그냥 경차예요. 저쪽에 있습니다. 타시려면 그걸 타시죠.”


“그래, 알아. 너는 사장의 숨겨진 아들이지.”


약간 창백한 여자는 저주 인형처럼 툴툴댔다.


“하지만 그거 정말 좆같지 않아? 숨겨진 아들인데, 사실 다 알잖아? 뭔 표현이 그래? 자자, 몰아보라고, 자네. 나의 꿈이 10살 연하의 식스팩이 있는 남자를 24년 할부 롤스로이드로 꼬드기는 거니까. 24년 할부로 부어서 얻을 만한 미청년이 가치가 있는지, 아니지, 그 반대야, 미청년을 얻기 위해 24년 할부로 명차를 살 가치가 있는지 알아봐야 하지 않겠나. 하긴, 나는 사실 벤틀리 취향이야.”


저주 인형이다, 정말 저주 인형이 나타났다. 세준은 한숨을 쉬며 “대리님.”하고 나무랐다.


“일단 24년 할부가 가능한 곳이 있기나 한지 알아보시죠.”


차는 생물학적 정자 제공체인 아버지가 DNA에 대한 담보로 건넨 것이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자주 이용했지만, 어떤 이유론가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는 그만 두었다.


하지만 저주 인형의 우울한 공세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세준은 오랜만에 페라리를 타며 생각했다. 왜, 왜,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왜?


“우리가 가는 곳이 청담동이기 때문이야.”


푸른 상추 옷을 입은 저주 인형이 선글라스를 끼며 말했다. 볕이 좋은 날과 컨버터블은 궁합이 잘 맞았다. 둘은 처음에 별 말없이 청담동으로 들어섰고, 세준은 「희즈 웨딩샵」이라는 간판이 보일 때야 계영의 말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선배가 다섯 번이나 거절당한 이유가 뭔가 클럽 입구에서 문지기에게 잡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겁니까?”


저주 인형이 홱 하고 돌아보았다.


“뭐라는 거야. 사람의 약점을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다니.”


“제가 먼저 말한 거 아니지 않습니까. 좀 전에 선배가 먼저 말씀하신 것으로 비춰 생각해 보면…….”


“아냐, 나는 청담동에 어울리는 차와 파트너를 갖고 싶었을 뿐이야.”


저주 인형은 참으로 올곧았다.


“그러니까 네가 있어야 내가 저 샵을 들락거리기에 용이한 것뿐이야. 너는 얼굴은 그냥 반반하니까, 차우현 씨가 그 얼굴에 혹해서 문이라도 열어줄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차우현 씨의 집도 청담동이라고. 그러니까 참한 얼굴로 운전이나 집중해줘. 너나 나나 X 팀에서 하는 일은 그냥 쓰레기 처리니까.”


“……듣기가 좀 그런데요.”


“왜? 네가 사장의 숨겨진 아들이라서?”


“아, 그 말끝마다 숨겨진 아들, 숨겨진 아들……, 그냥 아들 하죠? 대리님 말씀처럼 모두가 아는데요.”


“모두가 안다고 해도 말이지……, 실제로 그럴 거라고 공식적으로 밝혀지는 것과 아닌 것은 다른 거야. 사람들의 소문이라는 건 그런 거지. 심리학적으로도 사람들은 좋은 소문보다는 나쁜 소문에 더 반응하게 되어 있어. 그런 거지, 그런 걸…….”


“잘 압니다. 심리학을 공부했거든요. 조금 다른 분야이지만.”


계영은 어떤 심리학인지는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다. 사실 저주 인형처럼 보이는 권계영이 다른 사람의 전공에 관심을 가졌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 그렇지. 아, 그렇지.”


계영은 다만 그렇게 말하며 차를 구석에 대라고 지시했다. 정확히는 손가락으로 벽 쪽 응달을 가리키고, 메고 있던 큰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옷처럼 보이는 상추에 둘러싸인 가방이다.


“그게 뭡니까.”


세준이 물었다.


“어, 희현 씨 사건 현장 사진.”


“네? 그걸 선배가 왜……!”


보기에도 참혹한 사진이 지나갔다. 죽은 차희현과 웨딩드레스들이 즐비한 사진이다. 세준에게서는 신음이 흘러 나왔다.


아니, 이런 걸 왜-.


계영은 후배의 신음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고 사진들을 바쁘게 넘겼다. 신비로운 저주 인형이었다. 그는 곧 고개를 갸웃거리며 몇 장의 사진에 주목했다. 여러 각도의 사진 중에서도 시신의 손가락과 잘린 발목 부근을 찍은 사진이다.


“아니, 그런 걸 왜 가지고 있냐고요, 선배가.”


“시끄러워, 후배.”


계영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는 것처럼 들썩이다가 단념했다. 아, 맞다, 나 담배 끊었지. 씁쓸하게 중얼거리던 계영은 사진을 재빨리 숨기며 차가 정차한 맞은편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것은 안정적인 그늘을 제공하는 벽, 그 벽을 소유한 카페였다. 계영은 카페의 푯말을 가리키며 ‘얼른 가서 커피 좀 사오지?’하는 눈으로 돌아봤다. 그 시선이 하도 노골적이어서 세준이 한숨을 쉬자, 저주 인형은 미간을 찌푸리며 툴툴댔다.


“쾌청하게 해줘야지, 후배. 내가 자네를 이 일에 파트너로 낙점한 이유가 뭔데.”


“……그러게요, 저도 알고 싶습니다.”


“뭐, 당연하지 않은가!”


저주 인형은 의젓하게 밝혔다.


“첫째, 거부의 아들이고, 둘째, 커피를 잘 사올 수 있고, 셋째, 나는 내부고발자로 다른 직원들에게 왕따고, 너도 숨겨진 아들로 왕따이니 우리는 어떻게든 잘 해먹을 거란 말이지. 그리고 넷째, 죽여주는 보조개를 가지고 있고, 아, 맞다, 다섯째 이유도 있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아, 기억이 나지 않아, 아름다운 왕따 후배…….”


“아뇨, 선배, 저는 왕따가…….”


상추 옷이 캬캬, 하고 웃었다. 늘씬하긴 하지만 별로 크지 않은 키 때문인지, 숫자를 세는 손가락은 매우 작고 앙증맞았다.


“소용없어, 신입. 일명 X프로젝트 팀은 형사 사건, 그것도 강력 사건에 연루된 고인들의 유지를 어떻게든 이행해야 돈을 받아내는 부서야. 다른 팀들처럼 법률팀의 말만 고분고분 따르면 되는 곳이 아니란 말이지. 경찰들과도 싸우고, 가끔 품위 없는 짓도 해야 해. 그러면서도 가끔 품위 있는 짓도 해야 하지. 거기에 너는 딱 적격이야. 그러니 운전 잘하고, 커피 잘 사오고, 가끔 그 한쪽 보조개 좀 보여주고, 날 잘 깨워주면 돼.”


깨워주는 것도 포함하는 건가. 왜 말이 그렇게 되는 거지.


세준은 스스로가 한심한 기분을 삼키며 카페로 향했다. 카페가 자리한 빌딩에는 「공사예정일」이라는 안내문이 입구에 붙어 있었다.


「본 빌딩에 입주한 카페는 *월 *일을 기점으로 하여 이틀 동안 내부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갑니다. 이번 공사에는 외벽 도장 공사와 타일 공사도 포함되어 있어, 빌딩 전체를 오가는 고객 여러분께 피해가 예상이 되오니, 소음과 분진 등의 피해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여, 뒤편에 있는 남쪽 입구로 출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사를 예정으로 건네는 상투적인 안내였다. 세준은 그 안내문을 흘깃 보고는 유리문에 손바닥을 댔다. 손바닥의 열기로 인해 유리에 옅은 김이 서렸다. 바로 그때, 묘한 느낌이 뇌의 시냅스를 건드렸다.


“……이상한데?”


유리문을 짚은 열기는 점점 강해졌다. 컨버터블 차량에서 신비로운 정수리가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이상해……. 세준은 저도 모르게 다시 중얼거리며 안내문을 응시했다. 대수롭지 않은 공사안내문, 그 문장을 습관적으로 읽다가 다시 한 번 의문이 들었다.


정말 이상했다.


왜 아까는 몰랐을까. 주의를 기울이면 금방 알 수 있는, 눈앞의 이 안내문과 같은 맥락이 그 계약서 안에 있는데……?


“커피는?”


계영이 빈손으로 돌아온 후배를 보며 물었다. 세준은 넥타이 매듭을 조금 고치며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했다.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선배?”


뭔지는 모르지만, 권계영은 이 사건에 관심이 있다. 어떤 연줄인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몰라도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데이터도 가지고 있다. 명백히 합법적인 경로로는 받을 수 없는 자료였다. 세준은 그때서야 계영이 자신처럼 ‘어떤 목적’을 가지고 X팀을 기다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여자는 비밀을 갖고 있어.


세준은 신음을 삼키며 탄식했다.


물론 나도 갖고 있고.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작고 하얀 얼굴에서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세준은 눈앞의 여자가 가진 뭔지 모를 비밀, 그리고 스스로의 비밀, 그리고 지하실 팀에 대한 이야기 등을 한꺼번에 떠올렸다가 고개 저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막 떠오른 차희현에 대한 사실이다.


“아침에 차희현에 대한 계약서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습니다.”


머리 위로 오후의 참새가 후드득, 날아갔다. 몇 개의 나뭇잎이 공기 속에서 와류하듯 떠다녔다. 그래서, 하고 계영이 물었다. 세준은 대답했다.


“뭔가 이상한데, 하고 계속 생각했습니다. 정말 이상한데, 하고 말이죠. 그리고 방금 막 알아차렸는데……, 실은 별 거 아닐지도 모릅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닐지도 몰라요. 그래도 이상한 건 이상한 겁니다, 그렇죠?”


세준은 시간, 하고 덧붙였다.


“……시간, 시간 말입니다.”


나뭇잎이 부드러운 소용돌이와 함께 내려앉았다. 길가는 조용했다. 따뜻한 햇살이 온화한 부의 향기처럼 마녀의 정수리를 데웠다. 햇빛 속에서, 여자의 눈동자는 황금색과 비슷한 갈색을 띠었다. 이런 색이 있나, 세준은 새로운 것을 알아낸 기념으로 약간 흥분했다.


“……시간, 이라.”


여자가 웃었다.


“……다섯 번째 조건이 생각났어, 후배. 맞아, 내가 찾는 건 뇌 주름이 아름다운 놈이었어.”


계영의 환한 웃음은 세준이 막 알아챈 무언가에 동의였다. 정말, 그렇습니까. 세준이 물었다. 정말 그렇지. 계영이 대답했다.


“시간이……, 정말 이상하지. 맞아, 정확히는 일시가 이상하지.”


“네, 시간, 그러니까 순서도 이상합니다. 그게 그렇게 된 게 아닌 거 아닙니까?”


그저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는 게 일인 참새들이 다시 후드득, 날아올랐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그뿐, 비싼 대지에 맞지 않은 맑은 고요함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여자가 웃었다. 살짝 올라가는 입 꼬리가 봄의 속도처럼 초연했다.


작가의말

업데이트 기록 _ 14.11.10일 수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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