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해리엘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침묵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해리엘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1
최근연재일 :
2023.08.19 19:20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3,847
추천수 :
98
글자수 :
296,827

작성
23.05.20 18:53
조회
52
추천
2
글자
12쪽

만취한 시열

DUMMY

“시열이 문제로 온거지?”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으며 유장현 소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상심하고 계실 것 같아서 찾아 뵈었습니다.”

“고맙네.”


유소장은 잠시 찻잔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놈, 잡히면 어렵겠지?”

“일이 워낙 커졌습니다.”

“그렇겠지. 온 나라를 들쑤셔 놓았으니···..”


원준위는 잠시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

유소장이 돌아보았다.


“군이 용의자 검거보다는 오히려 사건을 키우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럴리가 있나. 시간이 갈수록 더 시끄러워지고 비난이 심해질텐데.”

“그냥 제 생각이었습니다. 괘념 마십시오.”


유소장은 찻잔을 들며 말했다.


“그놈 한테서 전화가 한번 왔었어.”


만났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감청 보고를 받은 원준위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 녀석은 자기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며, 함정에 빠졌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나?”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습니다.”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다···..


좋은 징조였다. 수사 책임자인 원준위가 시열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으니 시열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혹시 유대위에게서 연락이 온다면 제가 한번 만났으면 한다고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


유소장은 원준위를 바라보았다.


“그러지.”


도망다니는 처지에 검거 책임자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원상철 준위라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늦었는데,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원준위가 일어서려 하자, 유장군이 말했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사형장에라도 가야겠지만, 만약 그놈 말대로 억울한 사연이 있다면, 원준위 자네가 밝혀 냈으면 좋겠네.”


원준위는 유장군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단장님.”




날은 충분히 어두워졌다.


시열은 근처 숲 속의 차 안에서 조그만 백팩을 메고 나와 폐차장 안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컨테이너 박스 입구 위에 백열등이 하나 켜져있고, 컨테이너 박스의 창문으로도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씨원의 차는 컨테이너 바로 앞에 있었다.


시열은 최대한 조용하고 신속하게 접근하여 차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컨테이너 박스 안을 살폈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그는 백 팩에서 위치 추적용 송신기를 꺼내어 들고, 몸을 뉘어 차 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신속하게 송신기를 부착하였다.


그리고 다시 빠져나오려 할 때, 그는 인기척을 느꼈다.


누군가가 컨테이너의 문을 열고 나왔다. 컨테이너 위의 백열등 전구가 만들어놓은 그의 그림자가 차 밑에 누워있는 시열의 코 앞까지 다가 왔다.


“그건 1억 받아야겠는데요.”


씨원, 배대정 대위의 목소리, 그리고, 담배 냄새···. 그는 담배를 피우며 통화 중이었다.


커어억!


그는 가래침을 뱉었다. 까칠한 목소리로 보아 숙취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던진 담배 꽁초가 차 밑으로 굴러 왔다. 아직 불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곧 그의 발이 그 담배 꽁초를 짓밟았다. 바로 시열의 코 앞이었다.


“바꾸겠습니다. 1억 2천으로. 전액 선금 결제 조건.”


상대방이 1억에 동의하지 않은 것 같았다. 씨원은 무엇을 흥정하고 있는 것일까?


“죄송합니다. 이제 1억 5천입니다. 역시 선금 조건”


씨원은 차 주위를 서성거리며 통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하죠.”


드디어, 상대방이 동의한 모양이다.


씨원의 그림자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들고 차로 한걸음 다가섰다.


차 밑의 시열은 긴장했다. 만약, 씨원이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면···..


차문을 열고 자리에 앉아 시동을 걸 때까지 2~3초 걸릴 것이다. 그동안 차밑에서 몸을 빼내야 한다. 그리고 그가 후진을 하기 위해 뒤를 쳐다보는 3~4초 동안 저쪽 고철더미 쪽으로 신속히 이동해야 한다. 시간은 충분해보였다.


씨원이 운전석 쪽으로 다가왔고, 그의 발은 바로 시열의 얼굴 앞이었다.


차문이 열렸다. 그의 다리가 올라가고 차문이 닫히면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씨원의 발은 차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시동도 걸리지 않았다. 이내, 차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술병을 꺼내든 씨원이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시열은 그제서야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차밑을 빠져나와 신속하고 조용하게 폐차장을 벗어났다.


은색 소나타의 핸들을 잡고 있는 시열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윤중령이 피살되었던 오월리 사고 현장에서 그 괴한의 몸짓은 눈에 익은 것이었다. 몸을 잔뜩 낮춘 채 권총을 빼들고 달려오는 실루엣도 그랬고, 플래쉬를 입에 문 채 양손으로 권총을 부여잡고 겨누는 자세도, 그리고 왼손잡이라는 것도 시열에게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였다.


괴한은 두번의 사건에서 모두 습관적으로 두발을 연발 사격했다. 확인사살이었다. 총알 한방으로 상대를 쓰러뜨리고 여유있게 돌아서는 멋진 모습은 서부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이었다. 그린베레 교관은 첫번째 한방으로 적의 두개골이 박살나는 모습을 보았다 하더라도 다른 적을 향해 돌아서기 전에 한방 더 갈기라고 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손가락을 움직일 힘이 남아있는 그 적이 너의 등에 총알을 박아넣을 것이라고.


더욱 결정적인 것은, 그가 시열에게 ‘정목사 건, 네가 한거야?’라고 물은 것이었다. 그가 그의 말대로 어제 초저녁부터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면 새벽 한시경에 발생한 그 사건을 알 수가 없었다. 그가 풍기는 술냄새와 아직 술에 취해 휘청거리던 그의 모습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그는 초저녁이 아니고 불과 그 몇시간 전에 마신 것이 분명했다.


씨원은 정목사를 새벽 한 시쯤 살해하고, 새벽 두시경에 돌아와 긴장을 풀기 위해 술을 마시다가 새벽 네, 다섯시 쯤에 잠들었을 것이다.


아까의 그 통화는 무엇이었을까? 다음 번 거래에 대한 흥정이었을까? 그는 전문 킬러가 된 것일까? 그래서, 돈을 받고 친구를 죽이려고 한 것이었을까?


시열은 길가에 차를 멈추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수사본부가 공개수배를 검토 중이라고 해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모니터링하고 있는 10시 TV 뉴스에 시열의 얼굴이 나오자 세영은 절망감을 느꼈다. 윤중령의 휴대폰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는데, 이미 5천만 인구가 그의 얼굴을 알게 되었고, 그중 적어도 천만명 이상은 2천만원이라는 현상금 때문에 그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려고 애쓸 것이 분명했다.


그때, 엘리제를 위하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얼른 휴대폰을 집어들고 발신자를 확인했다.


중화루?


“여보세요.”

“605호죠? 여기 중화루인데요. 손님이 전화 좀 해달라고 하셔서요.”

손님? 중화루? 뭔 소리야?


세영이 중화루에 들어서자 계산대에 앉아 있던 주인 아저씨가 아는체 하고 홀안쪽을 가리켰다.


시열은 취해있었다.그의 앞에 고량주병과 거의 손도 대지 않은 것 같은 팔보채 접시가 있었다.


“다섯병째예요. 그만하시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도···.. 아시는 분이세요?”


그 질문은, 중화루 주인이 열시 뉴스를 보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그는 탈영범의 얼굴을 모르고 있다. 일단 다행이기는 한데···..


“사촌 동생이요. 쟤가 결혼 문제로 속상한게 있어서···.. 무슨 사고친 건 아니죠”

“아뇨,그런 건 없었어요. 그냥 계속 술만···.. 모시고 들어갈거죠? 저희 영업시간이 있어서.”

“그럴게요.”


저 자식, 미쳤어. 미친 게 확실해. 어쩌자구, 지금 이 시국에···.


세영은 가능한 자연스럽게, 하지만, 사촌 동생을 데리러 온 누나가 되어 시열의 앞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조용하게 말했다.


“야, 너 미쳤어?”


시열은 풀린 눈으로 고량주 잔을 비우고 세영 앞에 턱 놓은 다음 잔을 채웠다.

노려보던 세영은 기가 막히지만 일단 잔을 비웠다.


따뜻한 기운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어쨌든 좋았다. 시열의 젓가락으로 팔보채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고 주인을 돌아보니, 얼굴에 실망감이 역력했다. 당장 따끔하게 혼을 내고 사촌동생을 데리고 나가기를 기대했었는데.


하긴, 술 취한 놈을 무작정 끌어내면 오히려 뻗팅길테니 저렇게 살살 달래는 것이 맞지.


그때였다.


“아직 영업 안끝났죠?”


경찰관 두명이 중화루에 들어섰다.

황급히 그들에게 시선을 돌린 주인이 말했다.


“앉으세요. 아직 저녁 안하셨나 봐요?”

“비상 시국 아닙니까? 지금.”


세영의 심장이 터져 나갈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시···..”


세영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아차, 싶었다. 하마트면 시열이라고 말할 뻔 했으니.

두 탁자 건너 편에 앉은 경찰관들에게 들릴 거리는 아니었지만 조심해야 한다.


“....발. 야, 철수야, 그만 가자. 일어나.”


그러나, 눈을 내리깔고 있는 그는 꿈적도 하지 않고 나지막히 말했다.


“세영아, 인생이 왜 이리 꼬이냐?”


세영은 다시 진지하고 긴박하게 속삭였다.


“야, 이철수, 제발 일어나. 얼른 나가야 돼.”


제발, 말 좀 들어라. 이 화상아!


그러나 시열은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미치겠다, 정말!”


세영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경찰관들이 돌아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타이밍이 안좋은 것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 걸려있는 TV에서 현상 수배범 유시열 대위의 얼굴 사진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열이 버럭 소리를 지른 타이밍은 완벽했다. 이제는 그들이 TV화면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도록 세영이 뭔가 해야할 차례였다.


벌떡 일어나서 시열에게 언성을 높였다.


“야, 이철수! 그러니까, 네가 똑바로 했었어야지.”


그 다음에는 뭐라고 하지? 30초 이상은 끌어야 하는데···. 중화루 주인에게 사촌동생이 결혼 문제가 있다고 둘러댄 것이 생각났다.


“남자 새끼가 제대를 했으면 공사판에라도 가서, 딱 직장잡고···. 그래야 걔네 부모들도 안심할거 아냐! 도대체 몇년 째냐! 나 같아도 내딸 너 같은 놈한테 안주겠다. 요즘 취직 안되는 게 너만이 아니잖아! 그래도 다들 어떻게든 살아 가잖아! 뭐라도 해야지. 정신차려, 이 자식아!”


증화루 주인과 경찰관들이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았다.


세영은 이 정도면 20초는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뉴스가 다음 꼭지로 넘어가기 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시열이 세영을 쳐다보기 위해 고개를 들자, 그가 쓰고 있던 두산 베어스 모자의 채앙을 잡고 푹 눌렀다.


“니가 지금 두산 베어스 쫓아 다닐 나이냐? 너도 너지만 너 좋다고 한 그년도 참 한심하다. 당장 일어나! 너 누나 말안들으면···.. 경찰 아저씨! 얘 좀 잡아가세요.”


그제서야 시열도 식당 안에 경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한손으로 모자를 고쳐쓸 뿐 고개를 들지 않았다. 세영은TV화면에 시열의 얼굴이 더이상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이제 어떻게 마지막 대사를 치고 여기를 빠져 나갈지 잠시 궁리했다.


그런데, 마침 경찰관 한명이 세영의 연기에 화답했다.


“청년! 많이 한 것 같은데 누나 말 들어요.”


세영의 입에서 퇴장을 위한 마지막 대사가 나왔다.


“누나가 걔 한번 만날테니까 일어나자. 고모 생각해야지.”


시열이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일어나 걸어갔고, 세영은 그의 얼굴이노출되지 않도록 경찰관 쪽으로 서서 시열을 부축했다.


그들이 식당을 나가자, 경찰관이 한마디 했다.


“그래도 착한 동생이네. 누나 말 잘 듣고.”


그들은 짜장면 두 그릇을 주문하고, TV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울 지역의 오늘 밤은 구름이 제법 짙게 예상되지만 비 예보는 없습니다. 한편, 충청권 지역은······ ”


일기예보가 나오고 있었다.


아파트에 돌아온 세영은 취한 시열을 침대에 눕혔고 그는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시열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의 침묵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8 시열은 죽었어도 살아날 놈 23.05.24 53 2 11쪽
27 C-1의 죽음 23.05.23 54 2 11쪽
26 탈주 23.05.23 50 2 12쪽
25 살인 사건 예고 23.05.21 51 2 12쪽
24 거사 후 계획 23.05.21 50 2 11쪽
» 만취한 시열 23.05.20 53 2 12쪽
22 원상철표 더덕주 23.05.19 45 2 12쪽
21 범인은 영낙없이 유시열 대위 23.05.19 50 2 12쪽
20 미행 23.05.18 52 2 12쪽
19 C-1은 취해 있었다 23.05.18 60 2 12쪽
18 정목사 피살 23.05.17 59 2 10쪽
17 노을이 지는 낚시터 23.05.16 62 2 12쪽
16 스티브 잡스를 찾아라 23.05.16 66 2 11쪽
15 기특한 내 새끼 23.05.15 66 2 13쪽
14 인파 속으로 숨어라 +3 23.05.15 71 2 11쪽
13 칠패산 23.05.14 70 2 11쪽
12 모텔 가자 23.05.14 78 2 11쪽
11 허둥대는 사단 사령부 23.05.13 75 2 12쪽
10 윤중령의 휴대폰 23.05.13 79 2 11쪽
9 대대장 피살 사건 23.05.12 78 2 12쪽
8 비가 내린다 23.05.12 80 2 13쪽
7 랭글리 23.05.11 90 2 13쪽
6 풍운아 박병태 23.05.11 95 2 12쪽
5 다시 쓰이고 있는 쿠데타 23.05.10 96 2 11쪽
4 독을 품은 장미 23.05.10 97 2 13쪽
3 화창한 봄날 23.05.10 117 2 11쪽
2 드디어 바람이 불기 시작하다 23.05.10 178 2 15쪽
1 친서 교환 +4 23.05.10 373 5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