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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엘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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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리엘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1
최근연재일 :
2023.08.19 19:20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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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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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글자수 :
296,827

작성
23.05.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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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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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허둥대는 사단 사령부

DUMMY

사단장 박병태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 도망친 놈이 가져갔다는 거야?”


휴대폰이 없어졌다니 !

불길한 생각 때문이었을까, 박소장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높아져 버렸다.


“아마, 윤중령이 그자에게 맡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

“만약, 그 안에 메모나 녹음 같은 것을 남겨 놓았다면 말입니다.”


최중령을 바라보는 박소장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제 거사가 마지막 단계로 가고 있는데, 만약 그 휴대폰에 담겨있을지 모르는 결정적인 무엇인가가 공개된다면, 당장 체포조가 들이닥칠 것이고 거사는 그대로 물거품이 된다.

박소장은 차라리 어젯밤 윤월호를 그자리에서 체포해서 무슨 명목으로든 구금시켜놓을 것을 잘못했다고 후회했다. 하긴, 그랬다면, 일이 더 꼬여갔을 것이다. 깨끗하게 죽여버린 것이 더 확실하기는 했다.

진정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대책이 뭐야?”

“군이나 경찰에 먼저 잡히면 휴대폰이 공개될테니그건 막아야 합니다. 제가 특임조를 동원해서 먼저 잡도록 하겠읍니다. 물론, 잡더라도 검거 사실은 발표되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그놈이 자수라도 한다면?”

“빼돌려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사단장님께서 수사 및 검거 작전 지휘권을 틀어쥐고 계셔야 합니다. 다른 부대나 경찰이 자체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구체적으로 말해봐!”

“사단장님께서 수사본부를 먼저 설치하시는 겁니다. 그래야, 앞으로 그 친구가 저지를 추가 범행을 빌미로 언론 플레이를 할 수 있고, 혁명 분위기를 조성해나갈 수도 있습니다.”


박소장은 가끔 최중령이 기다렸다는 듯이 주도면밀한 계획을 내놓는 것이 못마땅할 때가 있었는데, 지금같은 때였다. 들어보면 다 맞는 말이었으나, 누가 주군이고 누가 책사인지,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넘어오는 그의 태도가 불쾌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천하를 바꿔보겠다는 영웅호걸이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대인배스럽지 않았다. 한번 따끔하게 혼내줄 때가 오겠지.


“그만 가봐. 아침까지 한숨 더 자야겠어.”

“주무십시요. 물러가겠습니다.”



93도로 오월리 근방 사고 현장, 비가 그친 하늘이 점차 밝아지고 있었다.


도로변을 따라 병력을 싣고 온 수송 트럭과 앰뷸런스, 헌병대 차량, 그밖에 세단과 이런 저런 차량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소총을 든 군인들이 현장 주변에 경계총 자세로 서있었고, 나무를 들이박고 대파된 차량 주위에 현장 감식반과 수사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사고 차량 안에 몸을 들이밀고 윤중령의 시신을 살피고 있었는데 원상철 준위다. 그는 차량에서 몸을 빼낸 다음, 앞쪽으로 가서 엎어져 있는 윤일병의 두부 총상을 확인하고, 두어걸음 물러나 에어백이 터진 운전석 옆자리와의 각도를 가늠해보았다.


그가 돌아서자, 옆에 있던 오중사가 도로 저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차가 저기 쯤에서 도로를 이탈했읍니다. 그러니까, 시간상으로 볼 때 용의자가 뒷자리에 있던 윤중령을 먼저 쏘고, 그 다음에 저 지점 바로 직전에 운전병에게 격발한 것 같습니다.”


원준위는 그 지점과 사고차량과의 거리를 눈으로 가늠하며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쪽으로 와보시죠.”


그는 감식반이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는 하천 경사면을 보여줬다.


“빗물에 씻겨 내리기는 했지만, 여기 발자국을 보십시요. 추정컨대, 용의자는 범행 후, 차량에서 빠져나와 여기 경사면을 따라 내려간 다음 수로를 가로질러 저기 반대편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수로를 따라 이동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몸을 숨기면서 이동하기에는 수로가 유리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용의자 숙소에 수사관들 보냈고?”

“네, 단서가 될만한 건 다 걷어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통신 조회는?”

“물론이죠. 요청하라고 했읍니다.”


원준위가 제법이네,하는 표정으로 오중사를 보자, 그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수고했어. 현장 감식 끝나는대로 시신 옮기라고 해!”

“네, 알겠읍니다.”


원준위가 차량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충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85연대 조찬영 대령이 걸어 오고 있었다. 정년을 앞두고 있는 원준위보다 조대령은 한살인가, 두살쯤 나이가 적었다.


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발걸음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원준위가 거수 경례를 했으나 그는 답례도 하지 않고 물었다.


“윤월호 중령은 어디있소?”


원준위는 대답대신 사고 차량 쪽을 가리켰다.

조대령은 사건 현장으로 가서 엎어져 있는 운전병과 뒷좌석의 윤중령의 시신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돌아서서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유시열 대위 소행이라고 들었는데, 틀림없소?”

“네, 현재로서는···.”

“그것 참! 믿기지 않는구만.”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윤중령이 내게 대대에 괜찮은 물건을 보내줘서 고맙다고까지 했었거든. 유대위를 매우 신임하는 눈치였는데 말요.”

“연대장님, 유시열 대위가 퇴역하신 유장현 장군의 자제라는 건 알고 계시죠?”

“알고 있소. 그것과 범행이 무슨 관계가 있소?”

“아뇨, 혹시 윤중령께서 그것 때문에 유대위를 가까이 하신 건 아닌가 해서요.”

“공사구분이 확실한 윤중령이 절대 그럴리가 없소. 오히려 유대위가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는다고 기특해 했었소.”

“연대장님께서 유대위를 직접 면담하신 적이 있었읍니까?”

“연대 전입 신고할 때, 그리고는 대대방문할 때 마주친 정도였소.”

“어떻던가요? 부친인 유장군께서 군 지휘부와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셨던 것으로 아는데, 그것 때문에 군에 대해 불만이 있어보였다던가···..”

“그런 건 못느꼈소. 유장군이 자식에게 그런 내색을 할 분도 아니고.”


원준위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 발생 부대 지휘관으로서 범인 검거를 내손으로 했으면 좋겠는데, 원준위가 도와줄 수 있겠소?”

“네, 그럴 일이 있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 제 생각에 유대위는 이미 사단 지역을 벗어났을 겁니다.”


08시, 사단 사령부 대회의실, 부사단장 강세평 대령, 참모장 나재태 대령, 그리고, 네명의 연대장들과 사단 참모들은 침묵 속에 사단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회의실 한쪽 구석에 서서 사건 보고 발표 자료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는 당직 사령 서판호 중령과 헌병대 강민태 대위의 나지막한 대화만 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참석자들은 이 사건의 사회적 파장이 얼마나 클지 잘 알고 있었다. 사병들의 사소한 총기 오발 사건만 발생해도 모든 언론에 기사가 실리는 판국에 육군 대위가 직속 상관을 총기로 살해하고 무장한 채 도주한 사건이라니···..


하지만, 그들에게 이 사건은 단지 잠시 동안의 사회적 파장이었지만, 눈을 감고 앉아 있는 85연대 조찬영 대령에게는 결정적인 개인적 파국이었다. 그는 이제까지 자신의 장성 진급 가능성을 30%에서 40% 사이로 계산해왔지만, 이제 그 수치가 제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최교연 중령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사단장님 오십니다.”라고 말하자 모두 일어나서 부동자세를 취했고 곧바로 사단장 박병태 소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원래 임석 상관에 대한 경례로 시작하는 것이 회의순서였지만, 박병태 소장은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면서, 모두 앉아!라고 말했다.


대형 화면에 ‘사건발생 보고’라는 자막이 뜨고, 준비하고 서있던 당직 사령 서판호 중령이 ‘사건발생 보고를 드리겠읍니다.’라고하자 양쪽으로 앉아있던 참석자들의 시선이 서중령에게 쏠렸다. 그러나, 사단장이, 됐어, 그만해!라고 하자, 서중령은 어정쩡하게 자리에 앉았다.


“작전참모! 군사 분계선 쪽으로 도주한 징후가 있나?”


작전참모 도상겸 중령이 대답했다.


“없읍니다.”

“검문 검색은?”

“네, 새벽 04시부터 사단 지역 전체의 모든 도로에서 실시 중입니다.”

“오월리에서 사단 경계가 가장 가까운 곳이 서울 쪽인데···. 구보로 얼마나 걸려?”

“십칠 킬로미터 쯤 되니까, 도로를 이용해서 달린다 해도 두시간 삼십분 정도, 도로를 벗어나 달리면 세시간 이상 걸립니다.”

“이미 서울로 들어갔다는 말이야?”

“그쪽 방향이라면 그럴겁니다.”


사단장은 두손을 책상 위에 모으고 두 엄지 손가락을 마주 비비며 생각에 잠겼다. 최교연 중령은 이제 특별수사본부 구성을 지시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고, 사단장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도중령을 본부장으로 해서 당장 특별수사본부를 꾸려서 보고해. 그리고, 각 연대는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사병들의 외박, 면회 및 모든 체육 및 여가 활동을 금지하고 24시간 비상 출동 태세를 유지한다. 그리고, 특히 대간첩 경계 태세에 절대 허점이 없도록 할 것. 이상.”


사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두 일어나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때, 수행부관 장중위가 들어왔다.


“사단장님, 군단장님 전화와 있습니다.”


빚쟁이 전화가 온 듯, 그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회의실을 나가 곧 바로 사단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십 오분 쯤 흘렀을까, 최교연 중령의 책상에 놓여있는 인터폰이 삐이,하고 울렸다.


“네, 사단장님”

“들어와.”


심기가 매우 불편한 목소리였다.

최중령이 들어오자 박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 창가 쪽으로 갔다. 아직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군단장님께서 무슨 말씀있으셨읍니까?”

“뭐라고 했는지 아나? 나보고 옷 벗을 각오하라는 거야. 제놈이 내 옷을 벗겨? 허참! 그놈은 나중에 내가 제일 먼저 옷을 벗기고야 말겠어.”


최중령은 사단장을 진정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사본부 설치 건에 대해 보고 하셨습니까?”

“했지. 그것 때문인데 말야. 수사본부를 좀 키워야 하지 않겠나? 본부장을 내가 직접 맡는 것이 좋을 것도 같고 말야.”

“무슨 말씀이신지···.?”

“12.12 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말씀해 주십시오.”

“전두환이가 수사본부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야. 중정, 경찰, 검찰 다 틀어쥐고, 정보 독점하고···..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본부라는데 누가 감히 토를 달겠어? 그러다보니, 참모총장도 잡아들인 것 아니겠어? 세상이 그런거야. 한놈이 완장차고 나서면 다들 알아서 설설 기는 법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사실, 이 얘기는 오늘 새벽 공관 거실에서 내가 사단장에게 했던 말이다. 사단장은 그 뼈대에 약간의 살을 붙여 자신의 계책으로 바꾸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자신이 처음부터 생각해낸 일이라고 믿는다면 결과가 좋아질 확률은 급격히 높아진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는 약간의 반대나 이견이 필요하다. 반대를 극복하면서 그는 그 계획이 정말 자신의 것이라고 확신하게 될 것이고, 혹시 나중에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더라고 함부로 바꿀 수 없게 된다.


최중령은 작은 이견을 던지기로 했다.


“오늘 밤 유대위의 2차 범행이 예정되어 있는데, 그후에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2차 범행?”

“기왕에 이렇게 된 상황, 혁명 분위기 조성에 이용하자는 것이 칠패산의 전략이라고 합니다. 곧 탈영한 유대위가 2차 범행을 저지르게 될겁니다.”

“김실장한테 연락이 왔었나?”

“네, 사단장님.”

“구체적으로 말해 봐.”

“그게···.”

“왜? 내게 말못할 내용이야?”

“요인 암살이라고만···.. 곧 언론에 대서특필될텐데 조금만 기다려 보시지요.”

“탈영한 장교가 요인을 암살한다···.. 사회적 파장이 크겠구만.”

“그러니, 그때 사단장님께서 전면에 등장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아냐, 그땐 늦어. 잘못하면 내가 덤터기를 쓸 수도 있고. 오히려 지금부터 치고 나가는 게 맞아. 어떤 놈도 주둥아리 함부로 놀리지 못하게 막으려면 지금 목줄들을 쥐어 잡는 것이 맞아.”


최중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은 본 박소장이 호기롭게 말했다.


“군단장 전화 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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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원상철표 더덕주 23.05.19 45 2 12쪽
21 범인은 영낙없이 유시열 대위 23.05.19 50 2 12쪽
20 미행 23.05.18 52 2 12쪽
19 C-1은 취해 있었다 23.05.18 6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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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칠패산 23.05.14 70 2 11쪽
12 모텔 가자 23.05.14 78 2 11쪽
» 허둥대는 사단 사령부 23.05.13 76 2 12쪽
10 윤중령의 휴대폰 23.05.13 79 2 11쪽
9 대대장 피살 사건 23.05.12 78 2 12쪽
8 비가 내린다 23.05.12 80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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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풍운아 박병태 23.05.11 9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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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창한 봄날 23.05.10 117 2 11쪽
2 드디어 바람이 불기 시작하다 23.05.10 178 2 15쪽
1 친서 교환 +4 23.05.10 374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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