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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엘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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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리엘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1
최근연재일 :
2023.08.19 19:20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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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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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글자수 :
296,827

작성
23.05.1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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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윤중령의 휴대폰

DUMMY

사고 발생 후 한 시간.


서울로 돌아가던 택시기사는 저 앞에 비를 맞으며 한손을 높이 들고 서있는 손님을 보았다. 기사는 시트가 더러워질 것이 신경쓰여 세울까 말까 얼른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도, 빈차로 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서울 손님인 것 같은데, 요즘같은 불경기에 3만원이 누구 집 애 이름도 아니고.


그러나, 막상 손님의 행색이 헤드라이트 불빛에 여실히 드러나자 기사는 곧 후회했다. 비를 맞은 정도가 아니고, 어디 흙탕 물 구덩이에 빠졌다가 기어나온 행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미 세운 차를 어쩌겠냐, 씁!


유대위는 뒷자리에 앉자마자 옷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백미러로 기사의 마뜩찮은 눈빛을 보고, 핏대를 올리기 시작했다.


“내 참, 재수가 없으려니! 아저씨, 응암동 오만원이면 되죠? 아, 시트 청소하시려면 만원 더 드려야겠구나.”


기분이 좋아진 기사가 미터기를 꺾지 않고 출발하며 물었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저기 모텔 옆에 토종닭 백숙하는데 있잖아요? 아시죠, 저기?”


서울 인근 모텔 근처에 백숙집은 어디든 있기 마련이다.


“백숙에 소주 한잔 찌끄리는데, 아, 글쎄 이년이 지 남편이 잡으러 온다고 그냥 차를 몰고 토끼는거예요. 제 혼자 말예요. 남편이 짭새라서 걸리면 큰일난다나. 내참, 재수가 없어서···.. 어떻게 합니까? 나도 일단 튀었지. 에이, 스벌. 길도 모르는 촌구석에서 한참 헤맸네.”

“하하하, 잘하셨네요. 그럴 때는 그저 일단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죠. 나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이 택시를 하다보면 말이죠···.”


다행히 서울 시내로 들어올 때까지 검문은 없었다.


띡, 띡, 띡, 띡!

철컥!


시열은 세영의 아파트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갔다. 소파 옆 탁자 위의 스탠드만 켜져있고, 세영은 소파에 잠들어 있었다. TV에서는 흘러간 오락 프로그램이 재방송되고 있었지만, 볼륨을 줄여놓아서 연예인들이 까르륵 웃는 소리는 아주 작게 들렸다. 전화를 기다리며 TV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잠든 것 같았다.


시열은 깨울까 하다가 냉장고를 열어 물 한병을 꺼냈다.


꿀꺽, 꿀꺽!


물 한병을 다 비운 후, 후우! 길게 한숨을 내뱉고 나니 이제 팽팽했던 온 몸의 근육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젖은 옷의 주머니에서 소지품들을 꺼내던 그는 대대장의 휴대폰에 전원을 넣어 보았다. 삐,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은 켜졌지만 윤중령의 지문을 요구하고 있었다.


전화기의 배터리를 제거하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젖은옷들을 벗어 욕실 안에 던져넣고, 침실로 들어가서 옷장에서 티셔츠와 반바지를 꺼내 입고 나왔다.


세영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그는 세영이 자고 있는 소파 앞의 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이내 잠이 들었다.







차량 사고 현장은 비가 그친 새벽 세시경, 서울의 화훼 시장에 납품할 꽃을 싣고 가던 트럭에 의해 발견되었다. 운전자는 끔찍한 광경을 발견하고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119에 신고했다.


이십분 후, 소방차와 경찰차가 잇달아 현장에 도착했다.


순찰차를 타고 온 두명의 경찰관들은 사망자들의 머리에서 총상을 발견했고, 차량 조회 결과 사망자가 군인 신분임을 알게 되었다.


보고를 받은 경기북부 경찰청 상황실은 육본 상황실에 통보할테니,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딱히 할일도 없는 경찰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붉은 경광등을 번쩍이며 헌병 찝차와 검은 색 SUV가 도착했고 사복을 입은 군 수사관들이 SUV에서 내렸다. 경찰관들은 담배를 끄고 그들과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수고하십쇼,라고 말하고 철수했다.



원상철 준위는 머리 맡의 휴대폰 벨소리에 눈을 떴다. 옆에 누워있던 아내가 저쪽으로 몸을 돌렸다. 헌병대장 정민태 대위였다. 원준위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잠이 덜깬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정대위님.”


정대위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85연대 윤월호 중령하고 운전병이 총상을 입고 사망했읍니다. 원준위가 좀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원준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윤월호 중령이 죽어? 총상을 입고?


“나도 당직 사령한테 사건발생 보고하고 가겠읍니다. 93도로 오월리 근방이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겁니다.”

“용의자는 있습니까?”

“위병소 애들 말로는 20시 27분에 통과해서 나갈 때 탑승자가 세명이었고 그중 하나가 유시열 대위였다고 합니다. 그자 아니겠습니까?”


원준위는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유장현 장군의 아들, 유시열.

그가 침대를 빠져 나오자 이미 잠이 깨어있던 아내가 물었다.


“나가요?”

“응, 일이 생겼다네. 한숨 더 자!”


책상에 발을 얹고 자던 사단 당직 사령 서판호 중령은 정민태 대위의 전화를 받고 급히 일어나다가 의자에서 떨어졌다. 그가 벌떡 일어나서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뭐, 윤월호 중령이 죽었다고? 총을 맞고?”


그말에 당직사령실 근무자들이 모두 일어섰다.


통화를 끝낸 서중령은 뭘해야할지 당장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필 내 당직 때 이런 일이···.


“5분 대기조 출동시킬까요?”


보다못한 배중위가 말했다.


“어, 그래. 출동시켜서 사령부 외곽 경비 강화하고, 각 연대에 당장 병력 출동시키라고 연락해!”

“어디로 말씀입니까?”

“범인을 잡아야할 것 아냐!”


배중위가 침착하게 말했다.


“먼저 사단장님께 보고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서중령은 그제서야 자신이 너무 경황없이 허둥대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단장님 보고올라갈테니까 최대한 빨리 상황 취합해 놓아!”

“네, 알겠읍니다.”


서중령은 급히 풀어진 군화끈을 고쳐메고 화장실로 갔다. 수돗물로 대충 얼굴을 닦고 머리를 매만지고, 거울에 얼굴을 바짝 대고 손가락으로 눈꼽을 떼어냈다.


그러다가, 문득 최교연 중령을 떠올렸다. 그 여우같은 놈을 건너뛰었다가 무슨 해코지 를 당할지 모르니 올라가기 전에 전화라도 먼저 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각, 최교연 중령은 85연대 1대대장실에 있었다.


아무리 뒤져도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다. 지찬원 소령이 분명히 낮에 윤중령이 휴대폰을 갖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으니 여기에 없다면 그가 사단장을 만나러 나갈 때 갖고 나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현장에서 보이지 않았다면, 유시열 대위가 갖고 도주한 것도 분명하다. 아냐, 그가 갖고 도주했다기 보다 윤중령이 그에게 주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


윤중령은 그안에 뭔가를 남겨놓았을 것이다. 메모가 되었든 녹음이 되었든. 혹시 사단장과의 대화를 녹음한 것은 아닐까? 어찌되었든 빨리 찾아서 없애버려야 한다.


대대 당직사관 주영철 중사는 느닷없이 나타난 사단 비서실장이 급한 일이라며 닥달을 해서 얼떨결에 대대장실을 열어주기는 했지만, 그가 대대장실을 뒤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죽을 맛이었다.


“뭘 찾으시는지 말씀해주시면···..”

“됐어. 주영철 중사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내가 다녀갔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할 필요없어. 알겠나?”

“네, 알겠읍니다.”


그건 주중사가 부탁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때, 당직병이 벌컥 대대장실의 문을 열고 말했다.


“당직사관님, 긴급 보고가 있습니다.”


최중령은 그건일 것이라 짐작하며 대신 말했다.


“뭔가? 말해봐.”

“당직사령실에서···. 대대장님께서 사망하셨다고 합니다.”


최중령은 얼어붙은 주중사의 어깨에 손을 얹고 침착하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온거다”

“넷, 알겠읍니다.”

“뭐하나? 대대 병력 전부 기상시켜 정위치하게 하고, 대대간부들에게 빨리 연락해야지!”

“넷, 알겠읍니다.”


주중사가 당직실로 달려갔고, 최중령은 대대장실을 나가기 전에 눈으로 다시 한번 안쪽을 훓어보았다.

최교연 중령은 사단 사령부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서판호 중령의 전화를 받았고,그들은 10분 후 사단장 공관 앞에서 만났다.


“사단장님”


공관 근무병이 나즈막히 부르자 박병태 소장은 단번에 눈을 떴다. 사관학교부터 삼십여년 군생활 동안 만들어진 조건 반사였다.


“비서실장과 당직 사령 와계십니다.”


윤월호 건이겠구만.

가운을 걸친 사단장이 거실로 나오자 두 중령은 충성,하고 거수 경례를 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서중령이 굳은 표정으로 보고했다.


“85연대 1대대장 윤월호 중령이···. 총기로 피살 되었습니다.”

“피살?”

“넷, 현재 헌병대에서 출동 조사 중입니다만, 93도로 오월리 근방, 대파된 차량 안에서 운전병과 함께 두부에 총상을 입고 사망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보고입니다. 사단장님, 병력을 출동시킬까요?””

“출동? 어디로?”

“네?, 그게······”


서중령의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범인은 잡았나?”

“아직···. 추적 중입니다.”

“어느 부대가 추적 중이야? 도주 방향은?”

“···..”


서중령의 머리가 하얗게 되어가고 있었다. 할수만 있다면 도망가고 싶었다.

최교연 중령이 거들고 나섰다.


“용의자 신원은 나왔는데, 아직 위치 파악은 안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사단 인원인가?”

“윤월호 중령의 대대 작전과 유시열 대위입니다.”


박소장은 서중령을 빨래 내보내기로 하고 그의 앞으로 가서 느닷없이 정강이를 걷어찼다. 서중령은 정강이의 고통을 느끼면서 그나마 군화발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단 지역내 검문 검색 강화하고, 각 대대 5분 대기조 모두 출동시켜서 경계 근무 강화하고, 사단 병력 전부 기상시켜서 당장 총기 상황 점검 후 정위치하게 하고, 아침 08시에 연대장회의 소집하고 당직 사령이 상황보고 한다. 알았나?”

“넷, 알겠읍니다.”


서중령은 군화에 겨우 발만 집어넣고 지옥같은 공관을 허겁지겁 빠져 나가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사령부 건물로 가는 차안에서 방금 사단장이 말한 지시사항을 잊지 않기 위해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서중령이 나가자 최중령은 거실 한쪽에 서있는 공관 근무병을 보고 말했다.


“자네는 그만 들어가 봐.”


근무병이 나가자, 박소장이 짙은 갈색 가죽 소파에 풀썩 앉으며 말했다.


“일은 계획대로 된거야?”

“한가지만 빼고 그렇습니다.”

“뭐야?”

“윤중령의 휴대폰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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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만취한 시열 23.05.20 53 2 12쪽
22 원상철표 더덕주 23.05.19 45 2 12쪽
21 범인은 영낙없이 유시열 대위 23.05.19 50 2 12쪽
20 미행 23.05.18 52 2 12쪽
19 C-1은 취해 있었다 23.05.18 60 2 12쪽
18 정목사 피살 23.05.17 59 2 10쪽
17 노을이 지는 낚시터 23.05.16 6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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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칠패산 23.05.14 70 2 11쪽
12 모텔 가자 23.05.14 78 2 11쪽
11 허둥대는 사단 사령부 23.05.13 76 2 12쪽
» 윤중령의 휴대폰 23.05.13 80 2 11쪽
9 대대장 피살 사건 23.05.12 78 2 12쪽
8 비가 내린다 23.05.12 81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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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드디어 바람이 불기 시작하다 23.05.10 178 2 15쪽
1 친서 교환 +4 23.05.10 374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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