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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엘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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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리엘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1
최근연재일 :
2023.08.19 19:20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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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글자수 :
296,827

작성
23.05.1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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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비가 내린다

DUMMY

지찬원 소령과 통화를 마친 최교연 중령은 곧 바로 사단장 공관으로 올라갔다.


박병태 소장이 공관 뒤 골프 연습장에서 백개들이 한 바구니를 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있을 때 사복 차림의 비서실장 최교연 중령이 다가왔다.


“앉아.”


최중령이 앉기도 전에 박소장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배신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


박소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신음같은 탄식을 토해 내고 뇌까렸다.


“윤월호 그놈 참!”


배신감과 아쉬움, 그리고 분노였다.


“돌발 상황이기는 하지만, 잘된 면도 있습니다. 약간의 수정은 필요하지만, 구상해놓았던 계획에 윤중령을 끼워넣으면 됩니다. 그 친구는 오늘 밤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동승했던 부하 장교가 그를 살해하고 도주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윤중령의 배신이 확인된다면 말입니다.”


아끼던 후배였는데···.

하지만, 아쉬움은 눌려져야 했다. 더 큰 일을 위해.


“특임조가 동원되나?”

“그렇습니다.”


박소장은 침묵했다.


윤월호는 가장 총애하던 부하였으며 육사 후배였다. 그래서, 그가 기꺼이 선봉에 서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며칠 전 박소장은 그를 은밀히 불러 최중령에게 했던 삼국지 얘기부터 꺼낸 다음, 며칠 앞으로 다가온 칠패산 거사계획을 알려주며, 상황이 개시되면 1대대 병력을 이끌고 서울의 중심부로 곧장 처들어 갈 것을 지시했었다. 물론, 칠패산 그룹에 수방사를 포함한 군내 세력과 사회, 경제계가 함께 하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안심을 시키기도 하고, 혁명이 성공되는 날 그가 중요한 자리에 있게 될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기도 하였다.

그건 진심이었다. 박소장은 윤중령을 중용할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박소장은 그때 아주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가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기는 하였으나, 최교연 처럼, ‘사단장님 명령이라면 지옥까지라도 가겠습니다.’같은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상관의 명령에 불복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믿었었는데, 이렇게 면담 신청을 해올 정도라면, 그가 나를 배신하려고 하는 것이 거의 확실해보였다. 그렇다면, 대의를 위해 그는 제거되어야 한다. 아니, 대의가 아니더라도 이 일이 내게 얼마나 중요하고 치명적일 수 있는지 충분히 아는 놈이 나를 배신하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물론, 그놈이 나를 배신한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오늘 밤 알게 될 것이다.


박소장이 침묵 끝에 최중령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준비해!”

“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윤중령을 만나실 때, 제가 동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럴 필요있나?”

“혹시, 그자가 사단장님께 위해라도 가한다면···..”

“윤월호가 그럴 놈은 아냐!”

“사단장님께서는 이제 혼자 몸이 아니십니다. 돌발 상황에 대비한 최소한의 경호를 받으셔야 합니다.”

“알았어. 그렇게 해!”


박소장은 최중령의 뒷 모습을 보며, 그가 최교연을 윤월호보다 한수 아래로 평가했던 것은 적절치 않았다고 생각했다. 군인으로서는 그랬다. 하지만, 저놈은 군인이 아니고, 책사이고, 모사꾼이며, 아첨꾼이었다. 나중에 꼭 청와대로 데리고 가야할 놈이었다.


최중령은 사단장 공관을 벗어나자 마자, 지찬원 소령에게 전화했다. 그가 작전과 유리창 너머로 대대1호차 운전병 윤종일 일병을 보고 있을 때였다. 윤일병은 지붕이 있는 대대장 전용 주차장에서 마른 걸레로 대대장의 승용차를 닦고 있었다.


“네, 실장님.”


최중령의 지시를 받은 지소령은 재빨리 사무실 한쪽의 무기 보관함으로 가서 자물쇠를 열고, 유시열 대위라고 써있는 곳에 놓여 있는 K-5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탄창을 제거해서 안에 탄알이 들어있음을 확인하고 다시 권총에 삽입한 후 서류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그는 무기 보관함을 닫으려다가 총기 소제용 기름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용기를 꺼내어 손바닥에 찌익하고 뿌렸다.


윤일병은 대대본부 건물을 나오는 지찬원 소령을 보고 거수 경례를 했다.


“대대장님, 어디 가시나?”

“아직 행선지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


지소령은 차를 쓰윽 훑어보며 문고리를 잡았다가 손바닥을 보며 말했다.


“세차 언제했냐?”

“뭐가 있습니까?”


지소령은 손바닥에 묻은 기름 자국을 보여주며 당황한 윤일병에게 자상하게 말했다.


“너 이자식! 내가 먼저 본걸 다행으로 알아.”

“어, 그게 언제···..”

“뭐하나, 빨리가서 걸레에 물 묻혀오지 않고. 휴지도 좀 가져오고.”


김상병이 황급히 건물 안으로 달려들어가자, 지소령은 차안의 글로브 박스를 열고 K-5권총을 집어 넣었다.




라일락 꽃향기가 영외 아파트 단지에 가득했다.

유시열 대위는 5월, 이 계절이 좋았다. 라일락 꽃 향기 때문이다. 라일락 꽃 향기는 늘 세영을 떠올리게 한다.



10여년 전 시열은 대학 입학 후 첫번째 중간고사의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벤취에 앉아 있었다. 대학본부 건물 앞 한켠에 놓여있는 그 벤취 뒤에는 라일락 나무 가지가 드리워져 있었고, 그 가지들에 눈꽃처럼 달려있는 꽃들이 달콤하고 싱그러운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시열은 첫번째 시험에 대한 부담감을 떨어버리고 상체를 맘껏 눕히고 눈을 감은 채 그 향기를 흠뻑 들이마시고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중령이었을 때, 대대장 관사 마당의 라일락 꽃을 따먹었던 생각이 났다. 지금도 그게 먹을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라일락 꽃 향기는 그게 어디든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들게 했다.


“저기요”


눈을 떠보니, 단발 머리의 여학생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검은 끈에 묶여있는 책 몇권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유도부나 태권도부가 도복을 저렇게 걸치고 다니는 것을 본 것 같지만, 여학생에게 그리 어울리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시열은 뻗었던 다리를 얼른 거둬들이며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짙은 감색 티셔츠, 하늘색 청바지, 봉긋한 젖가슴과 늘씬한 다리. 플레어 치마였다면 5월의 라일락 꽃 향기에 더욱 어울렸을텐데.


“좀 앉을게요.”

“물론이죠.”


시열은 한쪽끝으로 옮겨 앉았다.


그나저나 낯이 익은데··· 시열의 머리가 기억력을 총동원하며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고, 잠시 후 서서히 느려지더니 두달 전의 입학식 장면에서 철컥,하고 멈추었다. 그래, 맞아!


“정외과···. 맞죠?”


그녀는 시열을 쳐다봤다.


“저를 아세요?”

“입학식 때, 정외과 팻말 뒤에 서있는 모습을 봤었죠.”

“기억력이 좋은건가요, 아니면, 제가 눈에 띌만한···. 뭐가 있었나요?”

“남자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해서요.”


그녀 얼굴에 황당함을 보고 시열은 아차 싶었다.


“뭐라고 생각했었어요? 설마, 남자?”


시열이 차마 대답하지 못하자 그녀가 재촉했다.


“말해봐요.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지금보니···. 여자였었네요. 머리가 많이 길었어요.”


그녀가 하하하! 웃고 말했다.


“사실은 나도 그때 봤어요.”

“저를요?”

“운동 좀 한 것 같아서, 우리 종류인가 싶었죠.”

“어떤 종류죠?”

“운동 특기생요. 전 태권도인데···. 맞나요?”

“죄송합니다. 군인 아버지 따라 시골로 돌아다니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이세영예요. 시험 잘 봤어요?”


시열과 세영은 그렇게 만났었다. 라일락꽃 향기 나무 아래에서.


십여년이 지나 세영은 신문사 사회부 기자가 되었고, 시열은 ROTC 출신 육군 대위가 되었다. 그동안 두 사람은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고, 그러다가 한동안 만남이 끊어진 적도 있었는데, 시열이 장기복무 신청서를 낸 후였었다.


그러다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만남의 계기는 시열의 미국 파견이었다. 그린베레라고 불리는 미국 특수전 부대 파견 기간동안의 어느 주말에 시열은 문득 세영을 떠올렸고 이메일을 보냈었다. 쌓여가는 외로움과 불현듯 찾아온 그리움 때문이었다.


보고 싶다는 시열의 메일에 세영은 답장했고, 시열은 가끔씩 전화를 하기도 했다. 태평양을 오고가던 통신 교제는 반년 전에 그가 귀국하면서 다시 예전의 불꽃같은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서울에서 신문 기자를 하고 있는 여자와 2년마다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위관급 장교인 남자가 당장 결혼해서 동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결혼 이야기는 아직 꺼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곧 그런 때가 올 것이라는 교감은 있었다.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세영의 스물 다섯평 아파트에서 주말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부대 비상훈련이 있거나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하는 주말은 할 수 없지만.


사복 차림의 유대위가 아파트 건물을 나오며 휴대폰을 꺼내들었을 때, 맞은 편에서 지찬원 소령이 걸어오고 있었다. 유대위는 휴대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이제 퇴근하십니까?”

“어! 유대위, 데이트 가나?”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요.”


유대위는 그렇게 얼버무렸다. 남들이 자신의 사적 영역을 침범해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도 있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오라는 대대장의 지시 때문이기도 했다.


“유대위, 주말에 친구 만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예쁜 여자 하나 소개 시켜줘?”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들어가십쇼. 충성!”


지찬원 소령은 단지 입구로 걸어가는 유대위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최교연 중령은 왜 유대위의 권총을 대대장 차 안에 넣어놓으라고 지시했을까?

유대위는 걸어가면서 다시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음이 몇번 울리고 세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유대위! 약속 한 시간 전에 웬 전화? 불길한데, 야, 너 또 깨려는 거 아냐!”


결혼하기 전에 세영의 말투는 반드시 바뀌어져야 한다. 부모님이 들으시면,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익숙하고 편했다.


“빙고! 어떻게 알았지?”

“장난해!”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야 할 정도로 꽥 질러대는 소리에 시열은 좀 진지해지기로 했다.

“정말 미안한데, 갑자기 대대장님 호출이지 말입니다.”

“주말 저녁에? 그 대대장 미친거 아냐? 전쟁났대?”

“오래 안걸릴거야···. 아마.”

“아, 스발! 오랜 만에 일찍 퇴근해서 장 봐놓고, 목욕하고, 또 뭐냐, 야시꾸리 속옷까지 챙겨입었는데, 증말 뚜껑열린다.”


신문사 몇년 굴러 먹더니 입 거친 것이 군발이 저리 가라,가 되어 버렸다.


“끝나고 전화할께.야시꾸리 속옷 한번 봐야지”

“관심꺼라. 차려입은 김에 나이트 클럽가서 언놈이든 하나 꼬셔야겠다.”

”아이고 아주머니, 애들 노는데 물 흐리지 말고, 그냥 조신하게 밥이나 챙겨 드세요.”

“야, 유대위! 끝나면 즉시 전화하고, 뭣빠지게 달려온다, 알았지?”

“알~겠슴다. 충성이지 말임다, 이기자님.”

“올 때 족발 큰 놈으로 하나 들고 오고.”


유대위는 대대장이 말한 편의점, ‘백마처럼’으로 갔다. 밖에 서있기 뭣해서 안에 들어가 아이스 크림 하나를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일곱시 이십분이 조금 넘은 시간, 외박 나가는 사병들의 모습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고, 부대 근처의 풍경은 한산했다. 가끔 이런 저런 차량들이 지나갔고, 맞은 편 식당의 여주인이 가끔씩 나와 혹시 손님이 오나, 둘러보고 들어갔다.


대대장의 전화가 온 것은 대략 한시간 전이었다. 시열이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막 끝냈을 때였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7시 30분까지 이 편의점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했었다. 군복을 입어야 하냐고 묻자 그는 그럴 필요없다고 했었다.


시열은 대대장이 금요일 저녁 시간에 자신을 만나자고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혹시, 사모님이 어디 가셨나? 그래서, 나를 불러 소주라도 한잔 사주면서 대대 안의 이런저런 일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시나? 하도 짚이는 데가 없어서 해본 생각일 뿐, 그럴 일은 없었다. 대대장은 회식자리라면 몰라도 어떤 간부를 은밀히 만나 술자리를 가질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금요일 저녁에.


시열은 지금이라도 대대장이 전화해서, 어, 유대위, 이제 가봐도 돼,라고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쏜살같이 세영의 아파트로 달려갈텐데.


대대장의 차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자, 유대위는 아이스크림을 휴지통에 던져넣고 편의점을 나왔다. 비가 오려나 보다. 어느 새, 피부를 스쳐가는 공기가 눅눅한 것을 보니 아침에 확인했던 작전정보의 일기예보에서 보았던 그 비가 드디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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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침묵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8 시열은 죽었어도 살아날 놈 23.05.24 53 2 11쪽
27 C-1의 죽음 23.05.23 54 2 11쪽
26 탈주 23.05.23 50 2 12쪽
25 살인 사건 예고 23.05.21 51 2 12쪽
24 거사 후 계획 23.05.21 50 2 11쪽
23 만취한 시열 23.05.20 53 2 12쪽
22 원상철표 더덕주 23.05.19 45 2 12쪽
21 범인은 영낙없이 유시열 대위 23.05.19 50 2 12쪽
20 미행 23.05.18 52 2 12쪽
19 C-1은 취해 있었다 23.05.18 60 2 12쪽
18 정목사 피살 23.05.17 59 2 10쪽
17 노을이 지는 낚시터 23.05.16 62 2 12쪽
16 스티브 잡스를 찾아라 23.05.16 66 2 11쪽
15 기특한 내 새끼 23.05.15 66 2 13쪽
14 인파 속으로 숨어라 +3 23.05.15 71 2 11쪽
13 칠패산 23.05.14 70 2 11쪽
12 모텔 가자 23.05.14 78 2 11쪽
11 허둥대는 사단 사령부 23.05.13 76 2 12쪽
10 윤중령의 휴대폰 23.05.13 79 2 11쪽
9 대대장 피살 사건 23.05.12 78 2 12쪽
» 비가 내린다 23.05.12 81 2 13쪽
7 랭글리 23.05.11 90 2 13쪽
6 풍운아 박병태 23.05.11 95 2 12쪽
5 다시 쓰이고 있는 쿠데타 23.05.10 96 2 11쪽
4 독을 품은 장미 23.05.10 97 2 13쪽
3 화창한 봄날 23.05.10 117 2 11쪽
2 드디어 바람이 불기 시작하다 23.05.10 178 2 15쪽
1 친서 교환 +4 23.05.10 374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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