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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엘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침묵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해리엘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1
최근연재일 :
2023.08.19 19:20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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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1
추천수 :
98
글자수 :
296,827

작성
23.05.15 09:23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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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인파 속으로 숨어라

DUMMY

“칠패산이 뭐냐고? 산이야?“


글쎄, 뭘까?

시열이 알고 싶은 것이었다.


“대대장이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게 하나회 아냐고 물어봐서, 안다고 했지. 그럼 칠패산은 들어 봤냐고 물었거든. 처음 듣는다고 하니까, 별말이 없었어, 아니. 기억해두라고 했어.”


세영이 가볍게 박수를 치며 외쳤다.


“빙고! 쿠데타 맞다. 12.12 일으켰던 하나회 같이, 칠패산이라는 그룹이 있다는 것을 슬쩍 네게 흘린거야. 틀림없어.”


그러나, 논리적 개연성이 있다고 해서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 있어야 했다. 그 사실은 지금으로서는 그가 남긴 휴대폰 뿐이었다.


세영은 윤중령의 휴대폰을 들고 말했다.


“그래서, 이걸 준거야. 이 안에 뭔가가 있어.”


이야기의 초점은 다시 휴대폰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굳게 잠겨져 있다.

세영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탁자에 내던지 듯 내려놓고 앞머리를 히스테리컬하게 쓸어올렸다.


“그럼, 이렇게 잠가놓지를 말았어야지. 아우, 짜증나!”

“일부러 그랬을거야. 돌려달라고 할 때까지 며칠 갖고 있으라고 했었거든. 만약, 별일이 없이 지나간다면 이건 소용이 없어질테니까. 대대장은 그렇게 되기를 희망했겠지. 아니면, 아직 확신이 없었을 수도 있고.”

“어쨌든, 네가 살고 내가 퓰리처 상을 타기 위해서는 이걸 풀어야 해.”

“.....퓰리처상?”


세영이 당황해서 변명했다.


“아니, 그게······ 그건 기자로서 당연한 욕심야. 물론···., 네가 누명을 벗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만 말야.”


시열은 윤중령의 휴대폰을 세영에게 건넸다.


“용산전자 상가에 가보면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까지 네가 갖고 있는 것이 좋겠어. 혹시 내가 잡힐 수도 있으니까.”


세영이 휴대폰을 잡으며 말했다.


“뭐, 그건 좋은 생각이네. 내 가방 뒤지면 언론 탄압이거든.”


하지만, 시열은 휴대폰을 얼른 놓아 주지 않았다.


“뭐야? 왜?”

“한가지만 약속해. 내가 잡히면 할수없지만, 이걸 풀어서 그 안에서 뭔가를 발견하게 되더라도 절대 내 동의없이 신문사의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기사도 쓰지 않겠다고. 너도 위험해질 수 있어.”


세영이 풋,하고 웃었다.


“겁주지 마라. 으시시하다.”


시열이 세영을 쏘아보았다.


“나 지금 진지하다.”

“오케이. 알았어.”


그제서야 시열은 휴대폰을 놓아주었고, 그것은 재빠르게 세영의 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띠리리리리!


그때, ‘엘리제를 위하여’ 음악이 흘러나왔다.

세영은 어머,하고 뭔가 잊고 있었던 듯 황급히 휴대폰을 들고 발신자를 확인했다. 그리고, 긴장해있는 시열에게 말했다.


“쫄지마, 우리 부장이야, 말좆 선생”


시열이 언행이 매우 불량한 학생을 쳐다보듯 쏘아보자, 세영이 생긋 웃으며 변명했다.


“이름이 마성기이거든. 말좆 마성기 선생.”


그말에 시열이 실소를 터뜨렸다.

세영은 통화버튼을 누르고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네에, 부장님!”

“야, 이세영! 너 아직 안갔지?”


시열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였다.


“무슨 말씀이세요, 부장님. 방금 도착했는데요.”

“야, 니가 날 속여? 근데, 왜 코맹맹이 소리야? 좋은 말 할 때 빨리 가라.”


세영이 자기 말투로 돌아왔다.


“부장님, 까놓고 이거 정치부가 가야 되는거잖아요. 우리, 사회부 아녜요?’

“야야야! 몇명 안되는 회사에 그런 부서 이기주의 지껄일래! 그리고, 넌 시집 안갔잖아!”


세영이 손으로 휴대폰을 가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아, 스벌! 시집 못간 년 서러워 살겠나.

그리고, 다시 코맹맹이 소리.


“네에! 부장님, 다음 주까지는 시집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야, 그리고 말야···.. 너 무슨 일있냐?”

“무슨···.. 말씀이세요.”

“아까 회사에 전화했더니 무슨 수사대라는 데서 너 출근했냐고 묻는 전화 왔었다더라.”


시열은 긴장했다.


“글쎄요, 요즘 그쪽 취재하는 것 없는데. 따로 남긴 말은 없대요?”

“월요일 아침에 다시 전화하라고 했더니 그냥 끊더란다.”

“알았어요.”

“참, 오늘 광화문에 미래보수 한교식 대표 온다니까 기사 꺼리있나 잘 들어보고.”

“한대표가 거긴 왜 온대요?”

“몰라, 선거 포기헸나 보지. 그리고, 말야. 요즘 광화문에서 여러 기자 다친 것 알지? 다쳐도 약값없으니까, 기레기 티 내지 말고, 수고해!”


세영이 종료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집에도 찾아오고, 직장도 찾아오고···.. 네 덕분에 내 팬들이 많아졌네.”

“어디··· 가야돼?”

“광화문. 주말마다 대통령 탄핵하고 태극기 하고 부딪치잖아. 내가 오늘 당번이거든. 두어시간 보초서고 그저그런 기사써 보내고 퇴근하면 돼. 같이 가자. 끝나고 용산전자 상가에 가서 휴대폰 풀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시열은 망설였다.


“괜찮아! 십만명 가까이 올거야. 그렇게 사람 많은 데가 더 안전한 법이야.”



두 사람은 인근 유료 주차장에 차를 놓아두고 세종 문화회관 쪽으로 걸어 갔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두 사람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가야했다.

남쪽의 서울 광장 쪽에서는 ‘무능한 독재 정권 끝장내자!’ 따위의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쪽은 보수 쪽인가 보다.

세종로를 따라 흰색의 천막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천막들에는 고엽제 전우회, 해병대 전우회, 애국시민 결사대, 애국기독연합등과 같은 이름들이 걸려있었다.

중,노년층이 대부분인 사람들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있었고, 햇볕 가리개나 운동모자, 또는 군모를 쓰고 있었다.

드디어 세종문화회관의 계단을 올라가자, 거대한 사람들의 바다가 보였고, 그 위에 조기 잡이를 위해 출항하는 거대한 선단의 깃발처럼,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 그밖에 여러 단체나 지역명이 적힌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고, 곳곳에 설치된 대형 확성기에서는 집회를 안내하는 여자의 선동적인 목소리와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미국에서 1년을 지내고 돌아와 육본에서 3개월, 그리고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일선 부대에서 6개월을 보낸 시열은 처음보는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쨌든, 세영의 말대로, 이런 인파 속에 있는 것이 안전해보이기는 했다.

휴대폰으로 이곳 저곳 사진을 찍던 세영이 넋을 잃고 있는 시열의 팔을 툭쳤다.


“민주주의 참 좋지? 군발이가 보기에 어때?”

“······”


글쎄, 씁쓰름하기는 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숨막히는 긴장 속에 적과 대치하고 있는데 막상 그 국민들은 이렇게 둘로 갈라져 있었다니. 그 현장을 지켜보고 있자니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냥 둬. 파도는 바람이 불 때만 있는거야. 그리고, 파도가 없으면 그게 바다냐?”


세영이 손목시계를 보고 말했다.


“집회 시작까지 한 삼십분 남았는데, 어디가서 커피나 한잔 하자.”


그들은 계단을 내려와 올 때보다 더 많아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걸어야했다. 스무명 남짓의 노인들이 무리를 지어 가는 바람에 할수없이 그들의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유치원생들의 병아리, 삐약! 오리, 꽥꽥! 처럼 손에든 태극기로 박자를 맞추며, 구호를 외치며 걷고 있었다.


그 무리의 맨 뒤에, 두 사람의 바로 앞에, 여러개의 태극기를 꽂은 백팩을 멘 노인이 태극기를 펄럭이며 뒤따라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맞은 편에서 경찰 1개 소대가 이쪽으로 이동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주위의 사람들을 유심히 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당황한 시열이 모자로 얼굴을 가리며 몸을 돌리려 하자 세영이 조용히 말했다.


“가만있어. 더 눈에 띌거야.”


그러나, 저들의 눈에 띄어 아주 번거로운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 보다는 지금 뒤로 돌아 인파 속으로 숨는 것이 나아보였다.


그때, 세영이 셔츠 앞섶에 걸쳐놓았던 선글래스를 여유있게 쓰더니, 노인의 백팩에서 두개의 태극기를 빼어 하나를 시열에게 주었다. 그리고, 태극기를 펄럭이며 앞 사람들의 구호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종북 좌파 몰아내자! 빨갱이를 처단하라!”


시열도 세영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얼굴 앞에서 태극기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나, 세영의 의도는 빗나갔다.


군중들의 악다구니에 지쳐있던 젊은 경찰들은 갑자기 나타난 선글래스를 낀 늘씬한 젊은 여자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세영 역시 의외의 상황에 당황하였으나, 시열을 툭 노인들 속으로 밀어넣고 오히려 경찰들을 향해 두 손까지 흔들었다. 애국 경찰 화이팅!


경찰들은 와아! 하며 환호했고,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인솔하고 있는 소대장은 제지하기는 커녕 소대원들이 갑자기 나타난 보너스를 마음껏 즐기도록 모른 척 했다. 덕분에, 그들의 시선은 세영에게 쏠렸고, 노인들 사이에서 걷는 시열을 주목하지 않았다.


경찰들이 지나가자, 시열은 태극기를 백팩에 다시 꽂아놓고 세영을 노려봤다. 그녀는 시열의 눈앞에 태극기를 장난스럽게 펄렁거렸다. 시열은 헛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세영은 사랑스런 존재였다.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의 카페에서 그들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잔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어젯밤 서울 인근 모부대에서 총격 사건이 있었읍니다. 군 당국에 따르면 윤모 중령과 운전병 윤모 일병이 차량을 타고 이동 중 동승하고 있던 유모 대위로부터 총격을 입고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소식인데요, 군 당국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용의자는 이미 도주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현재 군당국은 인근 지역의 검문 검색을 강화하고 있읍니다만, 이미 서울 지역으로 도주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두 사람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잠시 말이 없었다. 세영이 카페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특별히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시열이 모자를 눌러쓰며 일어서자 세영이 팔을 잡았다.


“어디가?”

“집에 전화 좀 하고 올께. 걱정들 하고 계실거야.”

“도청하고 있을지 모르잖아.”

“걱정마.”


시열은 카페 계산대로 갔다.


“제가 휴대폰에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데, 전화 좀 써도 될까요?”


알바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직원은 ‘그러세요,’하며 전화기를 시열 앞에 올려놓아주었다.

시열은 계산대 뒤에 걸려있는 디지털 시계를 보며 번호를 눌렀고, 곧 어머니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디지탈 시계의 초단위 숫자가 12초에서 13초로 바뀌었다.


“저, 시열이예요.”

“어이구, 시열아! 이게···. 이게, 무슨 일이냐? 몸은 성하고?”

“네, 괜찮아요.”


예상대로 이미 군 수사팀이 다녀간 모양이다. 아니, 듣고 있겠지.


“시열이야?”


수화기 너머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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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C-1의 죽음 23.05.23 54 2 11쪽
26 탈주 23.05.23 50 2 12쪽
25 살인 사건 예고 23.05.21 51 2 12쪽
24 거사 후 계획 23.05.21 50 2 11쪽
23 만취한 시열 23.05.20 53 2 12쪽
22 원상철표 더덕주 23.05.19 45 2 12쪽
21 범인은 영낙없이 유시열 대위 23.05.19 50 2 12쪽
20 미행 23.05.18 52 2 12쪽
19 C-1은 취해 있었다 23.05.18 60 2 12쪽
18 정목사 피살 23.05.17 59 2 10쪽
17 노을이 지는 낚시터 23.05.16 62 2 12쪽
16 스티브 잡스를 찾아라 23.05.16 66 2 11쪽
15 기특한 내 새끼 23.05.15 66 2 13쪽
» 인파 속으로 숨어라 +3 23.05.15 72 2 11쪽
13 칠패산 23.05.14 70 2 11쪽
12 모텔 가자 23.05.14 78 2 11쪽
11 허둥대는 사단 사령부 23.05.13 76 2 12쪽
10 윤중령의 휴대폰 23.05.13 79 2 11쪽
9 대대장 피살 사건 23.05.12 78 2 12쪽
8 비가 내린다 23.05.12 81 2 13쪽
7 랭글리 23.05.11 90 2 13쪽
6 풍운아 박병태 23.05.11 95 2 12쪽
5 다시 쓰이고 있는 쿠데타 23.05.10 96 2 11쪽
4 독을 품은 장미 23.05.10 97 2 13쪽
3 화창한 봄날 23.05.10 117 2 11쪽
2 드디어 바람이 불기 시작하다 23.05.10 178 2 15쪽
1 친서 교환 +4 23.05.10 374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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