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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엘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침묵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해리엘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1
최근연재일 :
2023.08.19 19:20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3,848
추천수 :
98
글자수 :
296,827

작성
23.05.1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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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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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8쪽

친서 교환

DUMMY

대한민국 대통령 각하



안녕하십니까?


먼저 각하의 국가에서 발생했던 핵무기 폭발 사건으로 2백여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게 된 점에 대해 저를 포함한 우리 미합중국 시민들 모두가 깊이 애도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아무쪼록 빠른 시간 내에 사고가 잘 마무리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던 것 처럼 다시 대한민국이 동북아의 중심 국가로 재건되기를 희망하며, 또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 서한을 드리는 이유는 그 사건의 전후 과정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사항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저희 행정부는 최근 귀국의 이세영 기자가 남편인 미스터 유시열과 공저로 출판한 소설, ‘신의 침묵’에 대해 주목하고, 면밀히 검토한 바 있습니다. 또한, 그 두 사람이 영문판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을 때, 저희 행정부의 인원들이 그들을 직접 만나서 그 책의 내용에 대해 문의한 바도 있습니다.


저희가 검토를 하기 시작한 이유는 각하께서도 짐작하시겠지만, 그 소설이 단순한 허구가 아닐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부분이 허구이고, 어느 부분이 사실인지 본인들에게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 직접 면담까지 진행했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그 두 분은 전폭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꽤 높은 수준의 협조를 해주셨고, 또한, 그 소설의 상당 부분 내용을 확인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행정부는 그 불행한 핵 폭발 사건이 일어났던 배경에 대해 상당히 많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두 나라 사이의 정보 공유가 심각할 정도로 미흡했었다는 점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유감스럽게도,라고 표현한 것은 그 정보 공유의 미흡함이 시스템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양국 행정부의 관련부서간의 인적 문제였었고, 구체적으로 각하의 행정부 쪽에 심각할 정도로 더 많은 귀책 사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를 빌어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저희는 그 두 분이 귀국의 정보 기관 소속일 것이라고 의심했었는데, 귀측에서는 이를 부인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비록 정식 요원은 아니었을지라도 상당한 수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곧 있을 미국, 한국, 일본간의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참고로, 이세영 기자의 소설 ‘신의 침묵’ 영문판을 동봉합니다. 물론, 귀측에서도 이미 입수하셨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자의 친필 싸인이 들어가있는 양장본이니 각하께서 개인적으로 소장하시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Jerard Bisen

President of United States of America



****



미합중국 대통령 각하


안녕하십니까?


우선 우리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불행한 사고에 대해 위로의 말씀을 주신 점에 대해 저와 우리 국민 모두가 깊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또한 저에게 보내주신 ‘신의 침묵’ 영문판 소장본에 대해 특히 개인적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빌어 저도 각하에 대해 몇가지 유감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일본의 우리 영토 침범 사건에 대한 건입니다. 그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각하의 행정부가 일본에 대해 좀더 단호한 입장을 취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 행정부는 미국이 그 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고 막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각하의 행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던 두 차례의 쿠데타 시도입니다. 이는 물론, 우리 대한민국의 국내 문제이고, 지난정부에서 발생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 또한 우리 행정부는 미국의 정보 기관이 이미 알고 있었을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하가 언급하셨듯이 양국간에 정보 교환이 원활했었다면 유시열 예비역 대위와 이세영 기자가 목숨을 위협받는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적절한 수준에서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밖에, 여러가지가 있지만, 아직 ‘신의 침묵’에 대한 분석이 완료되지 않은 관계로 오늘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부탁드리는 것은, 곧 있을 한국, 미국, 일본간의 정상회담에서 각하가 일본 총리에게 좀더 확고한 입장을 취해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한국말에 버르장머리를 고쳐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확실히 고쳐놓지 않으면 불행한 역사는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참고로, 각하께서 ‘신의 침묵’ 영문판을 보내주신 답례로 동 소설의 한글판을 동봉합니다. 역시 두 저자의 친필 싸인이 들어가있으니 개인적으로 소장하시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이시형


***



이 이야기는 위 두 정상간의 친서에서 언급된 소설 ‘신의 침묵’의 내용에 대한 것이다.


그 소설은 비록 소설의 형식을 빌렸지만, 허구가 아니고 사실이었다. 전직 산하일보의 기자였던 이세영과 그의 남편 예비역 대위 유시열이 그들의 결혼 전에 본인들이 온 몸으로 직접 겪었던 일을 기록한 문서였다는 뜻이다.


그들이 처음 군사 쿠데타 사건에 휘말렸을 때만 해도 그들은 그 사건의 본질을 몰랐다. 하긴, 그들만이 아니고 모두가 그랬다. 그래서, 그들이 그 사건을 극적으로 해결했을 때만해도 모두가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을 뿐이다.


유시열 대위와 이세영 기자는 다시 사건의 핵심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얘기를 해보려 한다.


그렇다면, 우선 첫번째 쿠데타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니, 우선, 그 몇년전에 있었던 어떤 인물의 기도를 짧게라도 언급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


그 인물의 이름은 한수호.


아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그는 엄청난 부자였다. 아무도 그 규모를 알 수 없는 그 엄청난 재산을 그는 특정한 사명을 위해 신이 자신에게 맡긴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신을 경외하는 충실한 신의 사도였다. 신의 대리자, 빛의 사도라 불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신으로부터 받은 소명을 드디어 실행키로 결심했다.


하지만, 신의 허락이 필요했다. 신의 소명이라 생각했으나 너무 엄청난 일이기에 그의 마지막 허락이 필요했다. 그가 그날 자신의 바로크풍 대저택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개인 기도실에 엎드려 몇 시간 째 기도를 드리고 있는 이유이다.


****


꾸르릉···

꽝!

엄청난 천둥 번개가 어두운 밤 하늘을 찢어놓고 있다. 일기 예보에서 사흘 동안 폭우가 계속될 것이라 하더니 이제 그 시작이다.


번개가 번쩍일 때 마다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대저택의 실루엣이 잠깐 드러났다가 곧 어둠 속에 묻혀버렸다.



그 바로크 풍 저택의 맨 꼭대기 층, 빛의 사도 한수호의 기도실은 그곳에 있었다. 그는 황금 보좌 앞에 엎드려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며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다.


꾸르릉, 꽝!


천둥 소리가 울릴 때 마다 기도실 안의 공기가 들썩였다. 하지만, 흰색 양탄자 위에 엎드려있는 한수호의 기도는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커져갔다.


번쩍!


창문으로 들어온 그 섬광이 그의 몸에 비추자, 그는 고개를 들어 황금 보좌를 올려다 보았다.


꾸르릉!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두 팔을 치켜 들었다.


“하느님, 저의 뜻이 정녕 저의 뜻이기만 한 것입니까? 하느님의 뜻이 정녕 아닙니까?”


꾸르릉, 꽝!


그리고, 이윽고 쏟아지는 폭우 소리..


쏴아아!


“아흔 해가 넘도록 하느님은 저를 지켜주셨고 제게 황금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느님 곁으로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달 후가 될지, 두달 후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 전에··· 그 전에 하느님의 소명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오리까?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까? 이승에서의 삶이 얼마남지 않은 이 늙은 병든 종에게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이 제게 주신 소명인지 계시를 주시옵소서.”


하지만, 보좌에 앉아있는 신은 아직 침묵하고 있다. 절망을 느낀 한수호는 무너지 듯 땅에 이마를 댄 체 엎드렸다.

이제 새벽이다. 아침을 맞을 수 있을까? 이미 암세포가 온 몸에 퍼져있는 병든 몸, 이제 죽음의 시간이다.

비록 뼈와 가죽 밖에 남지 않은 늙은 몸을 정갈하게 씻고 이 기도실에 올라온 것이 밤 열한시였다. 그러니, 얼추 여섯 시간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기도하고 응답을 간구하였지만 신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내 앞날을 모두 아시고 계시는 신이시여, 그리 하오리까?”


쇠를 긁는 듯한 그 한마디 조차 사력을 다해 쥐어짜내야 겨우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폐암 말기의 병든 몸은 더 이상의 무리를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신음같은 그 기도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대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입니다. 그 생의 마지막 자락에, 제가 그 일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리하면, 제가 천국에 갔을 때, 잘했노라, 네가 나의 뜻을 헤아려 잘 했노라, 그리 말해주시겠습니까?”


하지만, 촛대 너머 보좌에 앉아 있는 신은 그를 내려다 볼 뿐 아무런 응답을 주지 않았다.

흐흐흑!

그는 흐느꼈다.

신은 그를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신의 뜻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뒷덜미에서 시작된 통증이 찌릿하고 척추를 타고 내려갔다. 온 몸이 굳은 듯 했다. 사후경직이 이미 그의 몸에 찾아온 듯 했다.


혹시···. 벌써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제 그 스스로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창세기의 대홍수는 실패였다.


노아 뿐만이 아니고 모두 쓸어버려야 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세상을 다시 만들고 인간도 다시 만들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 이런 타락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불의 홍수가 필요하다. 그래서, 신은 세상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 일을 늙은 신의 사도가 하려 한다. 그 모든 것은 신이 준비했다. 그를 세상에 보냈고, 황금을 주었으며 사람들을 보내주셨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다만, 보내신 이의 한 마디가 필요했다.

하지만, 신은 끝내 침묵했다. 이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고 그의 곁으로 가는 일 뿐.


한수호는 일어서기 위해 펴지지 않는 한쪽 무릎을 겨우 세웠다. 그때, 잠잠했던 천둥이 다시 울렸다. 아니, 이전보다 더 크고 강력했다.


꾸르르, 꽝!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기적을 보았다.


보좌 앞의 촛대. 그 위에 놓여져있는 일곱개의 촛불들···.. 모두 심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이 기도실에 바람이 들어올 구멍은 없다 그런데도, 촛불들은 마치, 강풍을 만난 것 처럼 옆으로 누웠다. 하지만, 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휘황한 빛은 밝기를 더하고 있다.

드디어··· 응답하셨다.

한수호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할렐루야! 위대하신 신이시여, 할렐루야···.. 할렐루야.”


기도실 문 바깥에 서있는김수정 간호사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들어가봐야 하나?’


문 안쪽에서 회장의 비명같은 울음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들어가봐야 할 것 같아.’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걸어 나올 때까지 절대로 문을 열지말라는 한회장의 추상같은 명령.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


‘혹시 쓰러지신 건 아닐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건, 김 간호사의 책임이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몇개월 더 생명을 부지할 수도 있는 환자가 오늘 신의 부르심을 받고 간다고 해도 의학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오늘 당직은 김수정이다. 환자의 생명을 살려야 한다.


하지만, 그는 신의 대리자.


그분의 명령을 어찌 거역한다는 말인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간호사는 다시 문 앞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들어가봐야할 것 같아.’


만약, 그분이 신의 부르심을 받고 가셨다면, 보좌 앞에서 처절하게 기도한 그 분의 증인이라도 되어야 한다.


김간호사는 문 앞에서 심호흡을 했다.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문이 제 스스로 열렸다. 그 순간, 그녀는 머리를 관통하는 강한 충격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열려진 문 사이로 한수호 회장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럼, 문은···.? 저절로 열려졌다는···.”


게다가, 그의 얼굴은 더 이상 말기 암 환자의 초췌한 모습이 아니었다. 환희가 가득 찼고, 주위에서 광채가 빛났다.


“괜찮으세요, 회장님?”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피곤하군. 좀 앉아야겠어.”


그가 인자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김간호사는 얼른 전동 의자를 밀어 그의 앞에 놓아주었다.


****


띨롱.


3층 기도실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있다는 신호음은 오준구 집사의 사무실에서 울렸다. 오집사는 돋보기를 쓰고 읽고 있던 이코노미스트 잡지를 책상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색 넥타이를 매만졌다.


“회장님 내려오십니다.”


곧 바로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에서 윤혜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침실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회장님의 취침 시각은 아침 일곱시 쯤이다. 그런데, 오늘 밤 같이 장시간의 기도를 하는 날이면 그는 기도를 마치자마자 곧 바로 침실로 들어가곤 했다. 어느 경우든 그의 수면 시간은 네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평생 그래왔다.


대단한 체력이다. 그가 얼마인지도 모를 정도로 부를 쌓은 비결에 그 네시간의 수면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세간에서는 어느 재벌 그룹의 누가 대한민국 1등 부자라고 하지만, 틀렸다. 1등은 한수호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을 뿐.


그는 번듯한 기업 하나를 소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1등 부자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유럽의 대기업 수백개에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차명으로.


그 주식에 부동산, 미술품, 현금등등을 더하면 가히 수백조는 될 것이다. 아니, 수천조도 될 수 있을 듯. 하지만, 정확한 규모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재산을 관리하는 열개가 넘는 자산관리 회사들조차 자신들이 관리하는 부분만 알고 있을 뿐이다.


김간호사가 건네 준 약을 먹은 회장은 곧 바로 침대에 뉘어졌다.


“안녕히 주무십시요, 회장님.”


오집사는 눈을 감은 회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서 곁에 서있는 윤혜지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수고하라는 의미였다. 설흔 중반의 윤혜지는 회장이 잠을 자는 동안 침실과 통해있는 부속실에 앉아 그를 지켜보아야 한다.


그럴리는 없지만 혹시라도 그가 중간에 깨어나 화장실을 찾거나 할 때를 대비해서였다.


“오집사님···..”


문 쪽으로 걸어가는 오준구를 윤혜지가 조용히 불러세웠다. 오준구는 돌아보았다. 윤혜지가 아니고 침대에 누워있는 회장을 향해. 과연, 그는 깡마른 손으로 그를 부르고 있었다.


“네, 회장님.”


곁에 다가가 고개를 숙이자 회장은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살짝 벌렸다. 오준구는 몸을 숙여 그의 입술에 가까이 귀를 갖다대었다.


“사도···. 회의.”


그의 지시를 들은 오집사는 허리를 펴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오집사는 조용히 물러서서 윤혜지에게 눈인사를 하고 침실을 나갔다.


오늘 밤, 일곱명의 사도들은 원탁에 앉아 기도를 올린 다음, 세상 최고의 식재료들로 준비한 만찬을 즐길 것이다. 그리고 맏형제 한수호 사도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할 것이다.

그 순간 만큼은 그를 그림자처럼 보필하는 오준구일 집사일지라도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 그는 사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준구가 누구인가. 이 대저택 안팎의 계단이 모두 몇개인지, 정원에 무슨 나무가 몇그루 심어져있는지 모두 알고 있는 오준구가 아닌가 말이다. 그는 2교대로 일하고 있는 열네명의 직원들이 언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고, 그의 도청 대상에서 회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 필요할 조치였을 뿐이다.


침실을 나온 오준구는 머릿속으로 여섯 사도들의 스케줄을 점검했다. 다른 사람들은 문제가 없다. 모두 국내에 있다. 다만, 중국 출장 중인 최장군이 문제다. 그는 무슨 핑계를 대든 하루먼저 귀국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제일 먼저 연락을 취해야 한다.


오준구는 사무실로 돌아오자 마자 북경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최장군의 목소리는 금방 들렸다. 오준구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말했다.


“오늘 밤 저녁을 하자고 하시는데 참석 가능하십니까?”


최장군은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건 어차피 심부름이나 하는 집사가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이라···. 알겠소.”


오준구는 나머지 다섯 사도들에게도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그 중에는 대통령이 주최하는 에콰도르 대통령 국빈 만찬이 예정되어있던 사도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모두 참석에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한수호, 그는 신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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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범인은 영낙없이 유시열 대위 23.05.19 5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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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C-1은 취해 있었다 23.05.18 6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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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풍운아 박병태 23.05.11 95 2 12쪽
5 다시 쓰이고 있는 쿠데타 23.05.10 96 2 11쪽
4 독을 품은 장미 23.05.10 97 2 13쪽
3 화창한 봄날 23.05.10 117 2 11쪽
2 드디어 바람이 불기 시작하다 23.05.10 178 2 15쪽
» 친서 교환 +4 23.05.10 374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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