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야공자 제29화--3
진충의 인사에 진조범 역시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화답했다.
“ 진조범이라고 합니다.”
진충은 이렇게 자신에게 예의를 갖추는 진조범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지금까지 진충은 시종일관 진조범을 비난해왔다.
이것은 진조범에게 의당 불쾌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조범은 진중을 향해 그야말로 정중하게 예를 갖추었다.
이런 진조범의 모습에 진충 역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나이답지 않은 차분함과 나이답지 않은 기백............’
진충은 자신의 문사로서의 기품을 진조범에게 인사를 통해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진조범은 이런 진충의 인사에 자신의 무인으로서의 기백을 담은 화답하고 있었다.
진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살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진조범을 향해 힘주어 말했다.
“ 이 어리석고 부패한 관리가 이곳을 찾은 것은 그동안 그대가 내게 보내온 뇌물이 너무 빈약하다는 사실을 그대에게 전하기 위해서라오.”
이를 듣고 있던 묵상이 천천히 도를 손에 움켜쥐었다.
자신의 음식을 비난하는 것은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진조범과 원중도를 통해서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는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렇듯 파렴치하게 뇌물을 운운하는 진충의 말은 듣기에 역겨울 정도였다. 결국 묵상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호통을 내질렀다.
“ 빌어먹을, 무슨 개소리를..........”
이런 묵상의 기세가 실로 범상치 않았다.
이런 묵상의 모습을 확인한 진충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진조범의 수하인 묵상이 보여주는 이 기도만으로도 어째서 진조범이 우링산맥의 지배자인 냉염을 제압하고 이곳의 주인이 될 수 있었는지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묵상의 살기등등한 모습에 대응해 진충의 호위무사로 보이는 청년 역시 검을 쥐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 호위무사의 기도 역시 결코 범상치는 않았다.
순간 진조범이 눈빛을 번뜩이며 묵상을 바라보았다.
묵상에게 자중하라는 뜻이었다.
묵상이 이런 진조범의 눈빛에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으면서 중얼거렸다.
“ 젠장, 내가 무슨...........”
묵상은 억울하다는 듯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진충이 또한 감탄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진조범은 단순히 주군으로서 묵상을 제지한 것이 아니었다.
순간적인 눈빛으로 묵상의 기도를 압도한 것이었다.
오랜 세월 관직에 종사해온 진충이 무림인들의 생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비록 수하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눈빛만으로 단번에 그 기세를 제압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진충 역시 가볍게 손을 들어 자신의 호위무사를 제지했다.
그러자 진조범이 이런 진충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 돈이 많이 필요하신 모양이로군요.”
진충이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렇소이다. 돈이라는 것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것이 아니겠소이까?”
진조범이 빙긋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 그렇게 돈이 필요하셨다면 진즉 찾아오셔야 했거늘 이제야 저를 찾아오신 연유를 여쭤 봐도 되겠소이까?”
진충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대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능히 그 이유를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오만.”
진조범이 이를 인정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3년간의 세월, 장가계 일대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까지 들어간 비용은 실로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 들어간 돈은 단순히 상인들과 사람들에게 거둬들인 통행료뿐만이 아니었다. 진조범은 원중도가 가져온 돈과 왕다련이 담야수를 통해 자신에게 건네준 돈까지 모두 여기에 쏟아 부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제는 장가계 일대가 안정이 되었고, 더 이상의 투자 없이도 어느 정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바로 진충이 이곳을 방문했다.
실제로 진충의 요구대로 좀 더 많은 세금을 바칠 여유가 된다는 뜻이었다.
진충은 지금 이 사실을 진조범에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조범이 이런 진충을 향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 얼마 정도 더 드리면 되겠소이까?”
뻔뻔스럽게도 진충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 뇌물이라는 것이 으레 그러하듯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겠소이까? 여유가 되시는 만큼 모두 주신다면 내 고맙게 받도록 하겠소이다.”
도를 쥔 묵상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진조범만 아니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저 뻔뻔한 관리 놈의 모가지를 따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진조범이 다시 한 번 경고하듯 묵상을 바라보았고, 묵상은 씁쓸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면서 울분을 참고 있었다.
진조범이 다시 진충을 향해 말했다.
“ 드릴 때 드리더라도 어디에 쓰실지 정도는 알았으면 합니다만.”
마치 진충이 원하는 대로 돈을 내줄 것 같은 진조범의 말에 묵상이 화들짝 놀라면서 진조범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진조범은 그런 묵상의 시선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진충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의당 아시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요. 허나 단순히 말로 이를 전하기보다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소이까?”
진조범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진충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소이까? 일단 제가 그 돈을 어디에 쓸 지부터 진공자께서 확인한 연후에 내 그 돈을 받도록 하지요.”
진조범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진충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 진공자, 다소 먼 여정이 될지도 모르니 차비를 갖추시지요. 우선 하시던 식사부터 마저 끝내시고요. 허면 저는 먼저 밖에 나가서 기다리도록 하지요.”
진충은 이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조범은 그런 진충의 등 뒤에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다소 먼 여정이라는 진충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식사를 끝낸 진조범은 묵상에게 짐을 꾸려두기를 당부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간 진조범은 기다리는 진충을 지나쳐 즉시 냉염의 산채로 향했다.
당분간 자리를 비운다는 것을 냉염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이런 진조범의 움직임에 진충이 역시 감탄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호위무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 무겸이 네가 보기에는 어떠냐?”
호위무사 조무겸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 소관이 어찌 감히 어르신께서 하시는 일에...........”
진충이 장가계의 수려한 경관을 감상하듯 둘러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 그 그릇에는 부족함이 없으나 과연 그가 이번 일을 수락할지 그것이 걱정이구나.”
진충의 중얼거림에도 조무겸은 아무런 대꾸 없이 그저 눈만 깜박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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