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9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9
‘뭘 그렇게 보십니까?’
같이 가던 총관 양문이 전음으로 묻는다.
‘총관이 보기엔 어떻소? 저 분의 신법이.’
‘내공이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묻는 말이야.’
‘그럼 간단합니다.’
‘뭐가?’
‘최소한 우리보단 몇 단계 더 높은 경지에 있다는 겁니다.’
‘어째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공을 펼치니까요.’
‘으음! 그건 그렇군.’
왕명은 고개를 끄덕이다 무진과 눈을 마주친다.
“장주 신법은 눈에 익군.”
“이상하군요. 이 신법은 중원인들에겐 익숙지 않을 텐데요.”
“그 말은 중원의 무공이 아니라는 건데. 후후후, 그거였군. 그래서 눈에 익었어.”
무진은 왕명의 신법을 아는 눈치다.
“대협께서 알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알긴 뭘 알아? 그냥 본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 고려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고려의 무예입니다. 근데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내가 언제 안다고 했어? 본 것 같다고 했지.”
“혹시 고려란 곳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촌구석엘 왜 가? 아는 놈들이 갔다 와선 하도 자랑을 해대기에 기억한 거지.”
“뭐라고 하시던가요?”
“뭐라더라? 고려의 혼이라나, 뭐라나? 그게 그렇게 멋진 무공이라며 흉내를 내더라고. 그때 본 거 하고 비슷해서 한 말이야.”
“맞습니다. ... 제가 펼치는 신법이 바로 고려혼입니다.”
장주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을 잇는다.
“고려혼을 아신다니 더는 숨기진 않겠습니다. 전 고려의 후손입니다. 당연히 고려혼을 익히고 있습니다.”
“고려인이라고?”
“예. 제가 중원인이 아니라도 괜찮겠습니까?”
“그게 어때서? 중원인이면 다 좋은 사람인가? 개뿔도 없으면서 나라만 크다고 큰소리치는 인간들은 밥맛이야.”
“그리 말씀하시니 고맙습니다.”
“나를 봐. 항상 큰소리치면서 다니지만 개뿔! 자기 여자도 하나 못 지키잖아?”
“대협께서 그리 하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내가 일부러 일을 키웠다는 거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만....”
“계속 말해봐.”
“원하지 않아도 결과는 좋은 쪽으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게 그 말이지 뭐야? 내가 애인을 미끼로 일을 벌였다? 정확히 봤네. 난 원래 그런 놈이야. 킥! 킥! 킥!”
“그런 뜻이 아닌데...”
“괜찮아. 하지만 내 뜻이 그렇다 해도 내 여자 몸에 손톱 만 한 상처만 생겨도 관련된 놈은 다 죽는다.”
무진의 눈빛에 살기가 가득하다. 순간 왕명은 물론이고 양문과 추개도 등골이 오싹함을 느낀다. 특히 앞서 달리던 개방의 분타주 추개는 고개를 돌려 무진을 살핀다.
‘이상하네. 기운은 두 사람밖에 느껴지지 않는데 돌아보면 세 사람이니.... 흠! 여기서 지워졌다.’
그는 걸음을 멈춘다. 흔적을 놓친 것이다.
“죄송합니다. 더 이상 추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법이네. 나랑 같은 곳에서 놓쳤으니.”
처음 추개를 만났을 때 무진이 제시한 것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호란의 옷이고, 다른 하나는 천리향이다. 추개는 그걸 가지고 여기까지 추적해왔다.
“분타주, 어찌된 일인가?”
왕명이다. 그는 추개가 흔적을 놓쳤다고 하자 무진보다 더 당황한다.
“여긴 세 갈래로 갈라지는 길목입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인데?”
분타주가 여유를 부리는 걸 보고 한 말이다.
“예. 여기에 오기 전에 오후에 들어온 보고서를 모두 검토했습니다.”
“그래서?”
“세 시진 전부터 이 길을 지나간 사람이 모두 열두 무리가 됩니다.”
“별로 많진 않군.”
“해질녘이라 그렇습니다.”
“이 사람아. 지금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네.”
왕명이 무진의 눈치를 보며 재촉한다.
“예, 알고 있습니다. 열두 무리 중에서 여인이 포함된 것은 다섯 무리고, 그중에서도 미인은 둘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한 명은 이곳 사람이라 우리가 찾는 사람은 명확합니다.”
“후후후, 제법이야.”
무진은 웃으면서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곧바로 멈춘다.
“뭐 하나, 앞서지 않고?”
“그게...”
우뚝!
무진에 이어 추개도 걸음을 멈춘다.
“으음, 놈들이 세 군데로 흩어졌군.”
“예에? 그걸 어떻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여인이 간 곳만 확인하면 될 텐데.”
“그게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무슨 이윤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세 군데로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모두 마차를 이용했습니다.”
“으음!”
“놈들이 도착한 곳을 확인하면 되지 않나?”
무진의 표정이 굳어지자 이번에도 왕명이 나선다.
“예. 잠시만 기다리면.... 저기 옵니다.”
앞쪽의 왼쪽 길에서 개방도 한 명이 달려오는 게 보인다. 아마 추개가 미리 준비한 모양이다.
“확인을 했느냐?”
“예. 이겁니다.”
개방도가 쪽지를 하나 건넨다.
“으음!”
추개가 건네주는 쪽지를 확인한 왕명은 얼굴을 찌푸린다. 무진은 마음은 급하지만 그가 말할 때까지 기다린다.
“이걸 한 번 보시지요.”
< 제갈표국, 금성장, 관부 >
“모두 제법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양문의 설명이다.
“자네가 보기엔 이중에 어딘 것 같나?”
제갈표국은 익히 잘 알고 있지만 금성장은 그냥 낙향한 관료의 집안이고, 관부도 이들과 특별한 관련이 없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말이야. 오래전엔 꽤 밀접한 관련이 있었네. 금성장을 설립한 자가 아마 금륜인가 그랬지? 그의 외조부가 제갈세가의 가주였고, 전통적으로 이곳의 관부는 제갈세가의 영향권 안에 있었네.”
무진의 말하는 중에 추개와 그 부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건의 배후에는 제갈세가가 있단 말이다. 부가주가 무진에게 혼이 나고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안 그래도 무진이 호란을 납치한 자들 중의 한 명에게 이번 사건이 사대세가와 관련됐다는 얘길 들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분타주는 무진을 자세히 살핀다.
‘나이가 어린 친구가 200년도 더 된 얘기를 어떻게 알지? 저런 얘기는 책으로 전해지지도 않는데, 그렇다고 전해 듣지도 않았을 텐데. 가만... 20대의 남녀라면?’
추개는 깜짝 놀란다.
‘혹시 최근에 무당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그가 아닐까? 무공공자! 그래. 내가 왜 그 생각 못했지?’
그는 급히 출발하느라 무진에 대해서 살펴보지 않았다. 그래서 뒤늦게 자세히 살핀다.
“니들 밥그릇은 안 뺏을 테니 걱정 마라. 앞장서지.”
“예!”
추개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움직인다. 제갈표국으로 안내하기 위해서다. 약 이 각 정도 지나자 일행은 웅장한 장원 앞에 멈춰 선다.
“제갈표국이라. 위세가 대단하군.”
“그렇습니다. 아마 중원제일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갈세가의 지원을 받으니 그렇겠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나?”
“원래는 금성에 있었으나 약 20년 전에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후후후! 그래도 과거엔 중원제일은 아니라도 존경받던 표국이었건만....”
무진의 말대로 과거 제갈표국은 한 해에만 10만 명의 하층민들을 먹여 살린다고 할 정도로 약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당연히 존경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마 중원제일의 고리대금업자일 겁니다.”
“고리대금업자?”
“예, 과거엔 이들로 인해서 10만 명이 먹고 살았지만, 지금은 그만큼 굶고 있습니다.”
추개의 말 속엔 제갈표국에 대한 적개심이 담겨 있다.
“근데 놈들이 여기로 들어갔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감히 내 여자를 끌고 말이야. 크흐흐흐흐!”
“으음!”
우우우!
무진의 몸에서 살기를 발산되자 양문과 분타주는 물론이고, 왕명조차 두려움에 떤다.
제갈표국(諸葛驃國)
정문엔 커다란 현판이 걸려 있다.
“멈추시오. 무슨 일로 왔소이까?”
네 사람이 접근하자 정문을 지키던 네 명의 위사 중 한 명이 소리친다. 그도 일행의 차림새를 보곤 비교적 정중하게 행동한다.
“부가주를 만나러 왔다.”
처음부터 무진이 나선다.
“부가주라면 제갈세가의 부가주님을 말하는 거요?”
“그럼 제갈표국에도 부가주가 있느냐?”
“그래서 하는 말이오. 표국에서 세가의 부가주를 찾으면 어떡하오? 그 분은 표국이 이곳으로 옮긴 후로 한 번도 오시지 않았소이다.”
‘으음! 거짓이 아니다. 그렇다면 잘못 찾아온 건가?’
“하긴 그렇게 당하고도 부가주가 나서진 않았겠죠.”
추개다. 그는 무당과 관련된 일을 보고 받았기 때문에 제갈세가의 부가주가 무진에게 어떻게 당했는지 훤히 알고 있다.
“난 양문이라고 하네.”
“양문이라면... 무림십대고수인 그 분이신가요?”
양문이 신분을 밝히자 위사들이 깜짝 놀란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림십대고수라면 국주가 달려 나와 맞이해야 할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네. 개인적인 일로 한 가지 물어보려는데 도와주시겠나?”
“물론입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말씀만 하십시오.”
무림십대고수가 예로 대하자 위사는 허리를 숙이며 말한다.
“세 시진 전에 여기로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왔을 텐데, 누군지 알 수 있겠나?”
“세 시진 전이라면... 그땐 우리가 근무를 서지 않아서... 자네들은 아는 게 있나?”
위사는 뒤쪽에 있는 동료들에게 묻는다.
“세 시진 전이라면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고, 무리를 지어 들어온 사람들은 하난데...”
위사 중 한 명이 방명록을 살피다 갑자기 입을 다문다.
“들어간다!”
순간 무진이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자..잠깐!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야...양 대협!”
일행이 모두 뒤따르자 위사들이 막아선다. 하지만 그들은 양문에 의해서 모두 제압된다.
“으아악!”
“끄악! 내..내 다리!”
그는 칼집으로 위사들의 다리를 부러뜨린다.
“살고 싶으면 그대로 있는 게 좋을 거다.”
“으으으으!”
위사들은 그의 무위에 눌려서 움직이질 못한다.
“금성장주로군.”
왕명이 방명록을 보고 한 말이다.
“결국 금성장이 제갈세가와 관련됐다는 게 확인된 셈이군요.”
“그럼 이번 일에 관부도 관련됐겠죠?”
“그렇다고 봐야겠지.”
추개와 양문의 물음에 왕명이 대답한다.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네. 잘못하면 아가씨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아닐세. 따르게.”
양문이 나서려 하자 왕명이 먼저 몸을 날린다. 그는 지금 무진 못지않게 마음이 급하다. 혹시라도 호란이 다치거나 잘못 돼 자기 딸의 치료가 늦어질까 해서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