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69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69
“야, 누가 죽인대? 그냥 늙어 죽을 때까지 감방에서 지내게 해주겠다는 거지. 얼마나 좋아? 가끔 바퀴벌레가 나와서 그렇지 하루 두 끼는 먹여줄 테고, 재수가 없으면 깡패 놈들에게 강간을 당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부만 잘 하면 그럭저럭 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야. 물론 스무 살까지 살아남아야만 가능한 얘기지만. 너도 알지? 가끔 사내놈들이 윤간도 한단다.”
“아..안 됩니다. 제발.... 자..잠깐! 다른 정보는 안 됩니까?”
“글쎄? 난 별로 관심이 없는데....”
무진은 계속 겁을 주면서 관심이 없는 척 한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작전이다.
“저..정말입니다. 이건 돈과 관련된 일입니다.”
“돈이라면 나도 충분히 있다.”
“아..아닙니다. 이건 그냥 돈이 아니라 중원의 상권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정보입니다.”
“중원의 상권? 좋다. 일단 들어나 보자. 만약 별거 아니면 네놈의 마누라와 아들놈은 그냥 확 죽여 버린다. 알았지?”
“예? 예. 무..물론입니다. .... 휴우!”
백운장주 만규는 등줄기에 식은 땀을 흘리며 한숨을 쉰다. 근데 난데없이 무진이 손을 내민다.
“.....?”
만규는 영문을 몰라 눈만 깜빡거린다.
“난 입만 나불거리는 놈은 경멸한다.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증거를 내놓으라는 말이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무진이 인상을 쓰자 한숨을 쉬며 입을 벌린다.
“후후후, 아마 잔머리 하나는 네 놈이 천하제일일 거다.”
만규는 어떻게 숨겼는지 왼쪽 겨드랑이에서 작은 열쇠를 하나 꺼낸다. 황금열쇠이다. 그걸 무진에게 건넨다.
“금고 열쇠입니다.”
“난 증거만 있으면 된다.”
직접 열라는 말이다.
‘다른 놈 같으면 금고부터 안내하라고 난리를 칠 텐데. 지독한 놈이다. 이런 놈에겐 잘못 장난을 쳤다간 뼈도 못 추린다.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만규는 마지막 희망을 금고에 건다. 만약을 대비해서 여러 장치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한 눈치다. 그는 대전의 한쪽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작은 상자를 하나 들고 나온다. 탈칵! 하는 소리가 나자 그는 상자를 열고 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낸다.
“우연히 얻은 겁니다.”
“후후후! 이 두루마리 하나와 책자만 있으면 내가 천하제일 갑부가 된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두루마리는 하나의 문서이다. 내용은 간단하지만 그 의미는 엄청나다.
< 확(確) 인(認) 증(證) 서(書)
이 문서를 가진 자가 황금상단의 주인임을 확인한다.
황금상단 단주 신웅 >
“이건 또 뭐냐?”
만규는 상자에서 제법 두꺼운 책자를 꺼내 무진에게 건넨다.
“황금상단의 재산 내역입니다.”
“뭐야? 중원제일 갑부의 재산이 고작 황금 5억 냥이야?”
“예에? 황금 5억 냥이 얼만지는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이 자식이 어디서 소릴 치고 지랄이야? 누가 황금 5억 냥이 적다고 했냐? 적어도 중원제일이 되려면 몇십 배는 더 돼야지.”
“그래서 실망하셨어요?”
“실망할 거나 뭐 있냐? 근데 넌 왜 이걸 사용하지 않았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무서웠습니다. 자신도 없고. 제겐 그걸 차지하고 관리할 힘이 없습니다.”
“이걸 얻게 된 과정과 관련이 있느냐?”
“흐음! 그렇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오금이 저립니다.”
“태양장과 관련된 일이겠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중원에서 그런 일을 꾸밀 곳이 황실과 태양장 말고 또 있더냐? 황실이야 대놓고 그런 일을 못할 테고, 그럼 태양장 뿐이지.”
“전 오늘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 말은 할 필요가 없다.”
무진은 만규가 어떤 말을 할지 직감하곤 말린다.
“아..아닙니다.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단 사실을 말입니다.”
“그 새끼 그거, 하지 말라니까... 그래서 살려주는 건 아니니까 오해마라.”
“사..살려주신다고요?”
“이 새끼가 약을 처먹었냐? 누가 널 살려준대? 가족은 손대지 않는다는 거지.”
분위기 상으론 무진은 만규를 살려줄 것 같았다. 그런데 금방 입장을 바꾼다.
“하지만.... 그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너 원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마음먹었잖아? 근데 뭐가 그렇게 미련이 많아?”
“알았습니다. 까짓것 다 내놓죠 뭐. 자, 이겁니다.”
만규는 혹시나 해서 금고에서 또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이번엔 조금 특이한 것이다.
“이건 또 뭐니? 먹는 거야?”
“하하하! 나 참, 이게 먹는 거로 보입니까?”
만규의 입장에선 절대 웃을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너무 기가 차서 웃는다. 두 번째 물건은 주먹 만 한 크기의 도장이다. 너무 예쁘게 만들어져서 무진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이것도 금으로 만든 거니?”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금도 아니면서 니가 큰소리 칠만 한 물건이 뭔가 해서 물어보는 거다.”
“이건 주나라 시대 황제의 옥쇄입니다.”
“옥쇄? 그럼 뭐하냐? 주나라가 망한 게 언젠데.”
“정말 이러시깁니까?”
“이 새끼가 이젠 아예 날 동생 취급하네. 죽고 싶어? 똑바로 말 안 해?”
무진은 손을 들어 겁을 준다. 그러자 아직도 태양장과 황실에 대한 글을 쓰고 있던 세 사람이 힐끔 두 사람을 쳐다보며 움찔거린다. 혹시나 자기들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아..아닙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열쇠입니다.”
“열쇠?”
“예. 그렇습니다. 주나라 시대의 황실 보물들이 묻혀 있는 곳이 아직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옥쇄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넌 참 웃기는 놈이다. 뒷골목 깡패 주제에 이런 걸 다 어디서 구했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건 훔쳤습니다. 아얏!”
훔쳤다는 말에 무진의 주먹이 바로 나간다.
“이 새끼가 하는 짓이라곤.”
만규가 비명을 지르자 글을 쓰던 세 사람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죄..죄송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훔친 거야?”
“그건 좀....”
“맞고 할래?”
“아..아닙니다.”
“이십 년 전, 제가 잠시 황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네놈이 황실에서 근무했다고? 완전히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겼구먼. 그래서?”
무진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얘기를 계속 유도한다.
“정말 계속 얘기해야 되나요? 이미 다 알고 계시잖아요?”
만규도 무진이 자신의 마음을 읽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자식이 눈치는 빨라가지고. 그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 좋은 일을 하고 살지...”
“무 대협!”
만규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무진의 말을 자른다. 무진도 그의 마음을 아는지 그냥 둔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고, 마음대로 되질 않습니다. 전 배운 것도 없이 오로지 깡다구 하나로 무관시험에 도전해서 겨우 문지기로 일했습니다. 근데 상관 놈이 자신의 잘못을 내게 뒤집어씌우는 바람에 그나마도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홧김에 황후의 비밀창고에서 이걸 훔쳤다?”
“그렇습니다. 제 잘못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같은 천민 출신들이 좋은 일을 하고 살긴 세상이 너무 각박하고 살벌합니다.”
“알았다고! 난 네놈 신세한탄을 들어 줄만큼 한가하지 않다. 그보다 황후의 비밀창고엔 어떻게 들어갔냐?”
“황후의 시녀 중에 제 어릴 적 동무가 있었습니다. 허드렛일을 하던 시녀였는데....”
“그렇고 그런 사이였고, 그녀가 우연히 그곳을 찾았다?”
“그래서 가끔 그녀와 그곳에서 연애를 하곤 했죠. 제가 기억하는 건 그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걸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이유?”
“예.”
“그게 뭔데?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다.”
“설마요?”
“자식이, 그러면 그런 줄 알 것이지...”
“알았습니다. 저도 오년 전에야 그게 진나라의 옥쇄란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최근까지 비밀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찾는 과정에서 무서운 경험을 했습니다.”
“옥쇄를 노리는 놈들이 있단 거냐?”
“그게 아니라 옥쇄를 만질 때마다 몸이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년을 그 원인을 밝히는 데 다 허비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찾질 못했습니다.”
“그럼 나보고 만지다 죽으라는 거네?”
“아니란 걸 잘 아시잖습니까?”
“좋다. 이것도 접수하지 뭐. 야, 너 네들은 아직 안 끝났냐?”
무진은 만규와의 얘기가 끝나자 세 사람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들은 마음이 급해선지 다른 지필묵을 찾아서 동시에 쓰고 있다. 그 덕분에 거의 다 마무리를 한 모양이다.
“넌 바깥에 나가서 땡중을 끌고 와라.”
혜민대사는 정말 죽었는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예!”
만규는 달려 나가 혜민대사를 업어 온다.
그 사이에 무진은 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있다.
“보아하니 땡중은 틀린 것 같군. 여기도 우물은 있지?”
“예. 오래된 거라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습니다.”
만규는 무진의 의도를 알아차리곤 박자를 맞춘다.
“거기다 던지고 입구를 막아버려라. 괜히 소림 땡중들이 냄새를 맡으면 곤란하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만규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혜민은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뜬다.
“끄으응!”
“대..대사! 정신이 드오?”
제갈헌이 달려가서 혜민의 상태를 살핀다.
“쯧쯧, 목젖이 완전히 주저앉아서 회복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혜민은 무진에게 목젖을 정통으로 맞았다. 조금만 팔에 힘이 더 들어갔으면 정말로 다신 일어나지 못했을 거다.
“이 내용들은 너희들을 위해서라도 틀림이 없길 바란다. 만약 이후에라도 거짓이란 게 드러나면 그땐 정말 각오하는 게 좋을 게다. 지금이라도 수정할 기회를 주겠다.”
무진의 말이 끝나자 무림맹의 고수들은 전신을 떨며 고개를 강하게 가로젓는다.
“네놈들이 한 행동은 괘심하지만 목숨은 살려준다. 단전도 마찬가지다.”
“가..감사합니다.”
“무 대협! 은혜가 백골난망입니다.”
“됐고. 아직은 좋아하지 마라.”
무진의 말에 모두가 다시 긴장한다.
“이 시간부로 니들은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라. 만약 무림에 나왔다거나 문파에서 니들의 이름이 거론되기라도 하면 그땐 나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알았느냐?”
“며..명심하겠습니다.”
네 사람이 대답하는 순간 무림맹은 해체된 거나 마찬가지다. 총사와 핵심 장로들이 모두 여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
무진은 만규를 찾는다.
“예, 무 대협! 사..살려주십시오.”
그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 애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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