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66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66
무진은 산을 오르고 있다. 어제 비밀서고에서 본 그 빛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 확인하러 가는 중이다.
“그 자식 우는 거 보기 싫어서 나왔는데, 영 찝찝하네.”
그도 일초살수가 자기에게 시비 거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냥 같이 가자고 할 걸 그랬나? 아니야. 걔들은 지금 수련할 시간이 필요해. 지금 영단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릴 거야. 어라! 저건 또 뭐지?”
산에선 밤이 길고 어둠이 빨리 온다. 해가 질 무렵이라 안 그래도 주위가 컴컴한데 검은 무복에 검은 복면을 한 자들이, 정확하게 다섯 명이 몰래 무당산을 오르고 있다.
“완전히 무당이 동네북이네. 어라! 저긴 진운자의 숙소가 있는 곳인데?”
복면인들의 목적지가 확인되자 무진도 그들을 뒤따른다. 근데 진운자의 숙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싸움이 벌어진다.
“쯧쯧, 불쌍한 놈들. 하필이면 진운자가 수련하는 곳을 지나갈 게 뭐냐?”
무진의 말처럼 복면인들은 진운자의 숙소만 파악하고 수련장소를 모르고 온 모양이다.
“제법이네. 그 사이에 천년영지의 기운은 모두 소화시켰고, 제갈보주도 반 이 상 흡수했네. 그 정도면 무당을 맡겨도 되겠다. 어라? 격권도 익히고 있었네.”
무진이 도착하자 복면인들은 모두 진운자에 의해서 제압되어 있다.
“쯧쯧, 애들을 그렇게 망가뜨리면 어떻게 물어보니? 어라! 제자들이었냐?”
“죄송합니다.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아마 무당 제자들이 누군가의 심부름으로 바깥을 다녀온 모양이다.
“여기가 지름길이었어?”
“예, 장문인의 숙소로 가려면 이 길로 가야 됩니다.”
“쯧쯧, 큰일이다. 대체 무당이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할지....”
무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무당의 문제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게 언제냐?”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안 그래도 내일 사숙조님을 만나 뵐 생각입니다.”
“늙은이가 나서면 해결은 되겠지. 나머지는 니 몫이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명심해라. 우리의 적은 그들이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상상하기도 힘든 커다란 적이 우리 앞에 있다는 걸요.”
“그럼 됐다. 난 새벽에 잠시 어딜 다녀올 생각이다. 그 뒤에 란이와 난 떠날 계획이다. 민이와 운이는 여기가 정리되는 대로 보내고, 진이를 잘 키워야 한다.”
“사조니.... 아니 무 대협께서 그리 보셨다면 분명할 것입니다. 사숙조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늙은이는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그럼?”
“니가 해라. 무공은 지 스스로 할 테고, 무당의 정신을 가르쳐라.”
“아!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단 칼을 뽑았으면 뿌리까지 잘라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고. 간다.”
“예, 허! 빠르기도 하셔. 그 새 가셨네. 근데 아까 그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고 하던데 걱정할까 봐 일부러 들리셨나? 아님 어딜 가시는 중이셨나?”
진운자는 한참을 무진이 사라진 방향을 쳐다본다.
잠시 후.
무진은 비밀서고에 들어선다.
“누구지?”
그는 문을 닫기도 전에 인기척을 느끼곤 옆으로 한 발 물러선다.
“으음!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는 인상을 찌푸린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서고에 있었는데 사라졌다.
“혹시 공간 이동인가? 설마!”
그는 자신이 말해 놓고도 허탈하게 웃는다. 공간이동술은 전설 속에나 나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들었나? 자연무예 때문에 예민해졌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전에 못 느꼈던 걸 자연무예를 익히면서 알게 된 것일 수도 있고.”
무진은 잠시 그 생각은 접고, 항상 자기가 책 읽던 공간으로 걸어간다.
‘혹시 공간이동을 통해서 저곳으로 드나든다면? 그럼 문도 필요 없겠지.’
그는 그 불빛이 새어나오던 곳을 지나며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벽에선 여전히 실선 같은 불빛이 흘러나온다.
‘그게 맞으면 의문점이 해소되지만, 저기엔 아무도 없다. 으음!’
반대편 공간에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문을 만들어 들어가 볼까?’
무진은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벽면을 다시 두들겨 본다.
똑! 똑! 똑!
‘벽이 두껍진 않다. 근데 문이 필요 없는데 이 틈은 왜 만들어놨을까?’
그는 바닥의 빛이 흘러나오는 곳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만약 내가 잘못 생각한 거라면? ... 에이! 이런 걸 왜 고민해? 그냥 뚫고 들어가면 되지.’
그는 생각을 바꿔 그대로 밀고 들어간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다.
콰앙!
“우욱!
주먹에 힘을 실어서 벽을 치지만 오히려 튕겨 나온다.
‘어라? 이건 또 뭐지?’
벽체는 무당의 초보 무사들도 가볍게 부술 수 있는 손가락 굵기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무진은 한 방에 끝낸다는 생각으로 주먹에 제법 힘을 줬다. 근데도 튕겨 나왔다. 벽은 그냥 암석으로 돼 있는데, 뭔가 강력한 기운의 보호를 받는 게 분명하다.
‘크크크, 이게 날 시험에 들게 하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해보는 수밖에.’
무진은 자연무예를 펼칠 생각으로 자세를 잡는다. 헌데 그는 금방 자세를 푼다.
‘이런 곳에서는 자연의 기운을 어떻게 받아들이지? 아니, 어떤 기운이 들어올까?’
주위에는 모두 인공적인 시설물들 밖에 없기 때문이다.
“멍청한 놈!”
분명히 사람의 목소리다.
“허억!”
무진은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세 걸음이나 물러난다.
‘사람인데, 공간 이동을 하고, 느낄 수가 없다. 이건 한 가지뿐이다. 우화등선(羽化登仙)을 한 신선이다. 하지만 신선이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질 않은가?’
무진이 고민을 하는 사이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 들어오고 뭐해?
참으로 무미건조한 목소리다. 하지만 거부할 수가 없다.
“문이 열려야 들어가지.”
“한심한 놈, 자연무예를 한다는 놈이 공간이동술도 몰라?”
“공간이동술이 똥개 이름이오? 개나 소나 다 하게.”
“그건 네놈이 개나 소라는 말이렷다?”
“허 참! 말이 그렇게 되나?”
“들어오너라!”
갑자기 벽면이 사라진다.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한 거요?”
“궁금하면 네놈이 알아봐라.”
상대방은 무진보다 한 수 위다. 얘기의 주도권은 이미 그에게 넘어갔다. 한편 방안은 별다른 게 없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 것도 없다. 그냥 사각형의 반듯한 방일 뿐이다. 있다면 중앙에 좌대가 하나 놓여 있는 것과 방안 전체가 은은하게 맑고 투명한 기운이 흐른다는 것이다.
“당신이 날 유인했소?”
“안 그랬으면 네놈이 여길 어떻게 알아?”
“빛을 내보낸 것도, 인기척을 남긴 것도 당신이었소?”
“그 놈 그거 더럽게 의심이 많네.”
“당신 같으면 의심을 안 하겠소? 온통 숨기는 것뿐이니 누가 쉽게 믿겠소?”
“마음에 안 들면 나가도 된다.”
“내 문제는 내가 결정하오. 그보다 난 상대 얼굴을 보고 말하는 걸 좋아하오.”
모습을 드러내라는 말이다. 그 때까지도 상대방은 모습을 감추고 있다.
“네 앞에 있는데도 안 보이는 모양이구나.”
“지금 농담하오?”
“내가 네놈이랑 농담이나 할 사람으로 보여?”
“그럼 그게 당신의 진면목이오?
“넌 네 자신이 제법 잘 나가는 무인이라고 생각하지?”
“부인하진 않겠소.”
“그럼 네 능력으로도 감지하지 못할 사람이 있느냐?”
“10할 장담은 못하지만, 아마 그렇진 않을 거요. 으음! 그럼 당신은 사람이 아니오?”
“한 때 사람인 적은 있었지.”
“신선이오?”
“글쎄? 내 눈으로 신선을 본 적이 없으니 말할 순 없다. 다만 난 이미 해탈했다.”
“몸은 죽었으나 정신은 살아있단 뜻이오?”
“비슷한 거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해서 있게 된 거요?”
“원래 내 집이다. 무당파가 남의 집을 침범한 거지.”
“그럼 당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없겠구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놈은 알 거다.”
“내가 요? 우리가 만난 적이 있소?”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다른 방법으로 여러 번 만났지.”
“설마 당신의 그 책을 지었소?”
“후후후, 그래도 눈치는 제법 있구나. 그렇다. 네놈이 읽은 책을 만든 사람이 바로 나다.”
“그 책은 원래 제목을 짓지 않았소?”
“꼭 지어야 하니?”
“그건 아니지만 책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겠소? 근데 나를 왜 불렀소?”
“심심해서 불렀다.”
“혼자서 얼마나 오랫동안 지냈소?”
“글쎄? 기억에도 없다.
“으음! 책이 양피지로 만들어졌으니까.... 내 생각이 진짭니까?”
“그게 뭐가 중요해? 우리가 이렇게 만났다는 게 신기하고 반갑고 그런 거지.”
“정말 나랑 놀고 싶어서 불렀소?”
“뭘 하고 노느냐가 중요하겠지. 다만 내 책을 읽고 이해했다는 놈이 바보처럼 행동하는 게 싫어서 불렀다.”
“가르쳐 주시게요?”
“누가 누구를 가르치겠니? 그냥 몇 가지 해줄 말이 있을 뿐이다.”
“다 좋은 데, 정말 계속 그렇게 있을 거요?”
무진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화가 났다는 뜻이다.
“후후후, 안 그러면 패기라도 할 거냐?”
“때리고 싶어도 눈에 보여야 할 거 아니요?”
“보여 달라면 못할 것도 없지. 이 정도면 될까?”
갑자기 무진의 바로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난다. 지극히 평범한 얼굴의 노인이다. 너무 흔한 얼굴이라 사람들 무리에 섞이면 구분하기도 힘들 정도의 평범한 외모다.
“허억!”
무진은 황급히 뒤로 물러난다.
“아니,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나타나면 나타난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요?”
“웃기는 놈이네. 나타나라고 할 땐 언제고.... 그런 간땡이로 어떻게 고금제일인이라는 소릴 들었냐?”
“그것도 알고 있소?”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떠냐?”
노인은 혼잣말을 한다.
“난 지금껏 내 입으로 고금제일인이라고 말해 본 적이 없소.”
“그냥 그런 소릴 들으면서 즐기기만 하셨다? 쯧쯧! 이놈아! 너 같은 놈을 뭐라고 하는 줄 아니? 양심불량에다 이중인격자에 비겁한 소인배라고 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소용없소. 내가 아니면 그만이지 뭐.”
“호오! 제법 대인배처럼 말하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너도 바쁜 것 같은데 빨리 끝내마.”
“잠깐!”
“왜?”
“난 시간이 많소. 그리고 질문은 내가 하겠소.”
“미안하다. 실은 내가 시간이 얼마 없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난 지금껏 네 놈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감이 날 왜 기다려? 심심해서 불렀다며. 아니야?”
“후후후, 조금만 더 일찍 만났다면 상황은 달라졌겠지. 하지만 이젠 늦었어.”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네. 마음도 읽을 수가 없고. 대체 뭔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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