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14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14
“괘...괜찮네. 무 대협! 어찌된 일입니까? 딸아이의 단전에 있는 게 무엇입니까? 혹시 구음절맥이 다 낫지 않은 겁니까?”
“후후후!”
무진은 대답 대신 서희에게 시선을 옮긴다. 그녀에게 물으란 뜻이다.
“희야, 네가 말해 보거라.”
“예, 아버님. 무 대협께서 구음절맥의 기운을 순화시켜서 제 단전에 넣어주신 거예요.”
“구음절맥의 기운을 네 단전에 모아뒀다고? 왜? 위험하진 않느냐?”
왕명은 딸 문제라 냉정하게 판단을 못한다. 보다 못한 양문이 나선다.
“장주님! 대 청운장의 장주님! 오늘 따라 왜 이러십니까?”
“왜, 내가 어때서?”
“단전에 기운이 모이면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당연히 좋은 거지.”
“그런데 무슨 걱정입니까? 구음절맥의 강한 음기가 아니라 무 대협께서 순화시킨 기운이라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구음절맥의 기운 중에서 나쁜 놈은 모두 제거하고 좋은 놈만 골라서 우리 서희의 단전에 모두 두셨다는 거지? 무 대협이.”
“그렇습니다. 이제 서희가 그걸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서희가 나보다 훨씬 더 강한 내공을 가지게 될 테고. 그렇지?”
“그렇습니다.”
“.....”
왕명의 눈에서는 벌써 이슬방울이 흘러내리고 있다.
“자...잠깐! 더 이상 우는 건 안 된다.”
“서희야, 네가 아버님을 모시고 안으로 들어가거라. 오늘은 부녀만의 좋은 시간을 보내라. 어서!”
양문도 눈물을 흘리며 서희와 왕명의 손을 잡아준다.
“낼은 청운장의 대문을 활짝 열고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아서 잔치를 벌입시다. 잔치를! 분위기는 우리 개방이 잡을 테니 걱정들 마시고. 하하하하!”
추개는 개방도들의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단 생각에 벌써 신이 났다. 그렇게 청운장의 가장 큰 보물이자 골칫덩어리였던 서희의 문제는 해결이 된다.
왕명과 서희 부녀가 숙소로 들어가자 무진과 호란도 양문과 추개의 안내로 청운장의 별관으로 안내된다.
“정랑.”
방안에 들어가자 호란이 무진을 찾는다.
“왜 그러시오?”
“아무래도 여기서 며칠을 머물러야 할 것 같아요.”
“서희 때문이오?”
“그래요. 제가 며칠은 돌봐줘야 할 것 같아요. 수련법도 좀 가르치고.”
“후후후, 그런 거야 장주가 해도 될 텐데... 당신은 서희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오.”
“그건 정랑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렇소. 서희를 처음 봤을 때 치료해서 민이나 운이와 짝 지워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소.”
“호호호! 저랑 같군요. 전 꼭 그렇게 됐으면 해요.”
“알았소. 당신 뜻대로 하시오.”
“고마워요.”
“자, 이리 올라오시오.”
“예. 오늘은 정말 힘든 하루였어요. 편하게 쉬고 싶어요.”
“나도 그렇고 싶소. 헌데 쥐새끼들이 워낙 많이 다녀서 그게 잘 될지 모르겠소. 참, 밤낮으로 애쓴다. 후후후!”
무진은 창밖을 보며 웃는다.
“호호호! 당신도 참, 쥐새끼가 뭐예요? 짓궂게.”
이렇게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별원에 울러 퍼질 때 청운장의 담벼락 바깥에선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냐?”
“소장주, 사실입니다.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놈들에 의해서 천마식인공을 익힌 삼십 명이 한꺼번에 당했다는 거야?”
“당한 정도가 아닙니다. 아예 땅속에 매몰됐습니다.”
“너 이 새끼, 정신이 회까닥한 거 아니냐? 천마식인공이 어떤 무공인 줄 알고 그 따위 말을 하는 거야? 강시조차도 천마식인공 앞에선 꼬리를 내린단 말이야. 알아? 그런데 한 명도 아니고 삼십 명이 넘는 천마식인공을 익힌 자들이 모두 죽었다고?”
“흐음!”
이들은 태양장의 소장주인 유현과 그의 부하인 천소이다. 그 뒤에 다섯 명의 부하들이 도열해 있다. 결국 호란이 납치는 이들이 꾸민 일이란 게 밝혀진 것이다. 천마식인공을 익힌 자들도 이들이 관리하고 있었다.
“소장주, 대주의 말씀은 모두 사실입니다. 지금 저희들이 직접 확인하고 왔습니다.”
“이것들이 떼거리로 미쳤나? 야, 이 새끼야. 그게 사실이면 내가 어떻게 되는 줄 아니? 바로 이거야 이거!”
소장주는 다른 부하가 천소의 말을 거들자 목이 잘리는 시늉을 하며 발작에 가까운 행동을 보인다.
“주..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현령과 국주가 자신을 해서 믿었는데 그만....”
“그놈들은 어떻게 됐니?”
“금성장주까지 모두 땅속에 묻힌 것 같습니다.”
“뭐..뭐라고? 천소, 너 이 새끼! 흐음! 야, 이게 아버님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 것 같니?”
소장주는 급 흥분 했다가 금방 마음을 다스리곤 차분하게 말한다.
“후계 구도에서 밀려나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긴 아네. 그럼 태양장에서 후계구도에서 밀려난다는 건 뭘 의미할까?”
“죽음이지요.”
“흐흐흐, 그걸 아는 새끼가 일을 이 따위로 처리해?”
“죄..죄송합니다.
다시 소장주의 감정이 격해지자 천소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 읍소한다. 그건 다른 부하들도 마찬가지다.
“죄송합니다. 죽여주십시오. 이딴 말은 이제 지겹다. 당장 놈의 목을 잘라 와. 당장! 그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 없다.”
그의 서슬에 부하들은 모두 몸이 얼어붙는다. 여기서 조금만 잘못 처신해도 곧바로 목이 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소장주님,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천소가 다시 나선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이번 일이 결코 작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후계 구도에서 밀려날 정도는 아닙니다.
“세외오천 문제 때문이냐?”
“그렇습니다. 그 문제로 둘째 공자께서 장주님께 문책을 받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둘째 공자와 적절히 타협만 잘하시면 무사히 넘어갈 수도 있을 겁니다.”
“으음! 그렇다 하더라도 무진이란 놈은 절대 그냥 둘 수 없다. 지금 수하들이 얼마나 집결해 있느냐?”
“우리 직속만 300명입니다. 그걸 포함해서 현재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은 500명 정도입니다.”
“전원 투입해라. 이제 놈과의 악연을 끊고 싶다.”
소장주는 자기 일이 번번이 무진에 의해서 무산되자 끝장을 보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천소가 나선다.
“소장주, 신중하셔야 합니다. 영악한 놈입니다. 섣부르게 덤비다간 또 당합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대안을 내 봐. 대안을!”
“그래서 말씀 드리는 건데, 차라리 세외오천 통합 문제를 소장주님이 해결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건 둘째가 맡은 일이잖아?”
“그래서 더 좋은 일이죠. 성공만 한다면 확실하게 점수를 딸 수 있으니까요.”
“후후후, 그렇게만 될 수 있으면 누가 후계자인지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겠군. 좋아. 그렇게 하고 여기선 물러난다.”
“소장주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흐흐흐, 네놈의 명줄을 며칠만 더 연장시켜주마. 하지만 다음번에 만나면 그땐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남기고 태양장의 소장주 유현은 부하들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진다.
방안은 서희의 몸에서 발산되는 맑고 투명한 빛에 의해 완전히 뒤덮인다.
다음 날 아침, 왕명의 집무실. 무진은 서희에게 운기법을 가르치고 있다. 대전이 부셔지면서 일행은 그 다음으로 가장 큰 공간에 모였다. 양문과 추개의 모습도 보인다.
무진은 운기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빛을 사용했다. 서희의 손을 잡고 기운을 밀어 넣자 빛이 혈도의 흐름에 따라서 움직인다. 그렇게 열 번 정도를 하고 나서 운기를 중단한다.
“모두 앞으로 운기를 할 땐 이 방법으로 해봐.”
“다른 심법보다 장점이 있나 봅니다.”
“기존의 심법과도 충돌이 생기지 않으면서도 훨씬 편하고, 빨리 기를 축적할 수 있다.”
무진은 양문과 추개에게도 같은 방법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이 친구들아! 뭐해? 세상에 고금제일인께 무공을 전수받고도 그렇게 무덤덤한 사람은 자네들뿐일 걸세.”
“예에? 고금제일인이라뇨?”
“누가요?”
“누구긴 누구야? 무 대협이시지.”
“참! 장주님도 그걸 지금 농이라고 하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심했습니다. 고금제일인이 살아계시면 지금 나이가 얼만데....”
양문과 추개는 처음에는 웃으면서 말을 하다가 점차 표정이 굳어진다. 왕명과 무진은 물론이고, 호란과 서희조차도 표정의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아가씨. 서희야. 정말이냐?”
“정확하게 말해라. 이런 걸로 나중에 속았다고 놀리면 화낼 거야.”
재차 물어보지만 반응은 마찬가지다.
‘형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
‘나도 모르겠다.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으니. 그래. 인사부터 하자.’
결국 두 사람은 인사를 하려고 자세를 잡는다. 하지만 그 전에 무진이 나선다.
“됐네. 그런 허명을 내세울 만큼 세상을 잘 살아오지 못했다네. 그냥 앞으로도 한 가족처럼 편안하게 지냈으면 하네. 서희는 향후 3년만 내력을 잘 다스리면 구음절맥의 기운을 모두 네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다. 자넨 이 친구들에게 고려혼(高麗魂)을 전수하는 게 어떤가?”
“그리 하겠습니다.”
“고려혼이라면... 장주님의 절기가 아닙니까?”
“그걸 우리에게 전수하신다고요?”
“왜, 싫은가? 그럼 말고.”
“아..아닙니다. 절대 그리는 못합니다. 낙장불입(落張不入)이라고 한 번 하신 말씀은 절대 번복할 수 없습니다.”
“장주님, 만약 번복하시면 전 매일 청운장 앞에서 단식 투쟁을 할 겁니다.”
양문과 추개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사래를 친다.
“그럼 인사부터 드려야지.”
“알겠습니다. 양문이 고금제일인 어르신께 인사를 올립니다.”
“추개가 고금제일인 어른께 인사 올립니다.”
뒤이어 왕명과 서희도 일어서서 큰 절을 한다.
“왕명이 고금제일인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서희가 은인께 인사를 올려요.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쯧쯧, 자넨 그게 문제야. 이런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닐세.”
“죄송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인간된 도리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됐고, 모두 자리에 앉지. 당신도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예, 서희낭자와 장주님께 묻고 싶은 게 있답니다.”
“말씀하십시오. 그리고 편안하게 말씀하세요. 그게 우리도 편합니다.”
“아니에요. 전 이게 더 좋아요. 전 사람에겐 위, 아래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아, 예! 근데 궁금한 게 뭔가요?”
“예, 그 전에 며칠만 쉬었다 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여기는 두 분의 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언제까지 머무르셔도 됩니다.”
“감사해요. 며칠 머물면서 서희낭자와 얘기도 하고, 같이 수련도 했으면 해서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영광입니다.”
왕명이 다시 인사를 한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