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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꾸는 꿈

신화의 땅-한마루편.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완결

고명윤
작품등록일 :
2012.11.21 09:27
최근연재일 :
2013.10.11 13:39
연재수 :
189 회
조회수 :
1,211,283
추천수 :
16,711
글자수 :
989,237

작성
13.06.11 12:10
조회
5,348
추천
66
글자
11쪽

화해의 요령 제이장 다루치와 대면하다~2.

DUMMY

“이건 대체 뭐죠?”

모두들 어쩔 줄을 모르고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검오가 호통 쳤다.

“만장의 문양을 돌아보지 마라. 모두 정신 차려! 한마루, 방울을 흔들어보게.”

주사빛 문양에 홀려 있던 한마루가 깜짝 정신을 차리고 검오를 바라보았다. 검오가 손목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한마루가 서둘러 소매를 걷었다. 어하라의 작은 세 개의 은방울. 하지만 은방울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딸랑딸랑.

아무렇게나 흔들어보지만 방울이 신통을 드러낼 리 없다. 검오가 말했다.

“세상을 비추는 것이 거울이라면, 신령을 부르는 것이 방울일세. 들어보지 못했는가?”

“신령을 부르는 방울…….”

들어본 적은 있다. 세상이 열린 그때부터 존재했던 신비하고 영검한 세 가지 보물.

하늘의 아들을 상징하는 검. 세상을 비추는 거울. 신령을 부르는 방울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다. 그리고 흑산 당골이 구리거울을 보고 스스로를 직면하는 광경을 통해 그 신비로움과 영험함을 경험했다. 거울이 그렇다면, 방울 역시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으로.

한마루는 아는 것이 없다. 고구려 이전에 있었던 여러 나라와 그 나라가 전한 겨레의 얼과 문화를 보고 배운 바가 없다. 그들이 무엇을 통해 세상과 마주하고 사람들과 교통했는지, 무엇을 믿고 의지하는지 경험한 바가 없다. 무엇을 불러 자신을 보호하는지 느낀 바가 없다. 검오가 말하는 신령이 무엇인지, 어떻게 불러낼 수 있는지 알고 있지 못하다.

딸랑딸랑.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손목에 매달린 작은 방울이 제 소리를 내도록 흔드는 것이 전부였다.

어하라는 당골이 된 후에도 세상을 향한 열정이 너무 강해 부름마저 거부한 여인이다. 혈관에 흐르는 피가 뜨거운 만큼, 그녀가 제작한 방울에도 세상을 향한 열정과 분노가 녹아들었다. 그녀가 방울을 한마루에게 전한 것도 어쩌면, 방울이 자기 대신 한마루 손에 들려 더 강렬한 욕망을 표출해주길 바라서인지도 모른다. 어하라의 그러한 열망을 보았기에, 불열의 늙은 당골이 방울의 기운을 변화시켰다. 한마루의 손목에 달린 세 개의 방울은 그런 사연을 품고 있다. 그 사연을 세상 밖으로 불러낼 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한마루가 모를 뿐.

검오는 난감했다.

한마루와 자신을 제외한 일행은 이미 만장의 부적이 일으키는 신기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장문휴, 오상명, 양현중의 눈빛은 이미 신지를 잃었으며, 이를 악물고 버티는 산지니와 양사월도 곧 이지를 잃고 무너질 판이다. 당장 도와주지 않으면 정신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알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다. 움직이면 술법을 펼친 자들이 직접 몸을 드러내어 공격을 감행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뛰어나갈 수는 없다.

“어하라가 어떻게 방울의 신령을 불러냈는지, 잘 생각해보게. 저들을 끌어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 당하고 말아!”

“알고 있어요!”

알고 있지만 어쩐단 말인가. 어하라가 어떻게 신령을 불러냈는지 생각나지도 않을뿐더러,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만장의 부적이 일으키는 환각이 점점 강해져 세상이 뱅뱅 돌기 시작했다.

“에익, 망할. 네깟 잡귀들이 설마 고불간의 비도를 당해내겠느냐!”

호통을 내지른 한마루는 벌컥 달려 나가며 양손의 비도를 쏘아 날렸다.

휘앙.

날카로운 울음을 토하며 날아간 비도가 마당을 에워싼 만장의 깃대를 잘라버렸다.

“어?”

한마루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비도가 분명 깃대를 잘라버렸는데, 잘린 깃대가 그대로 서있다.

검오가 일행의 변화를 살피며 소리쳤다.

“환영일세. 일곱 개 중에 두세 개만 실체야.”

한마루가 멍청한 표정이 되어 검오와 만장들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그동안 겪은 일들 중 많은 부분이 상식에서 벗어난 기이한 것들이지만, 하나의 물건으로 똑같은 모습의 환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지 궁금할 겨를은 없었다. 깃대의 주사빛 문양이 시시각각 기이한 열기와 흥분을 불러일으키며 환상을 자아냈다.

“에이, 나도 모르겠다. 모조리 잘라버리고 말 테다!”

마음이 급해진 한마루는 깃대를 모조리 잘라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우악스럽게 비도를 마구 휘둘렀다.

“어, 이런 망할.”

땅에 박힌 깃대가 비도를 피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도는 공연히 허공만 할퀴었다.

한마루는 어리둥절하고 황당하여 어떻게 대응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검오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이미 괴상한 환영에 놀라 몸부림치는 일행을 진정시키기도 바빴다.

견디지 못하고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은 아예 매를 쳐서 기절시켜 놓았다. 그 와중에 자신 역시 환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하고 주위를 경계해야했으므로 한마루를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한마루가 쏘아낸 비도를 피해 움직이던 깃대들이 일행을 중심으로 크게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깃대에 그려진 주사빛 문양은 불이라도 붙은 듯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그럴수록 환영이 강렬해져 억지로 버티던 산지니와 양사월마저 견디지 못하고 발작을 일으켰다. 검오가 겨우 급소를 쳐서 기절시켰다. 그리고 급기야는 검오와 한마루마저 현기증을 느꼈다.

슥.

환영을 일으키는 깃대 사이에서 하나의 인영이 튀어나왔다. 검오가 깜짝 놀라 다급히 일격을 내질렀다.

짝.

날카로운 단검이 먼저 검오의 소매 밑을 파고들어 옷자락을 찢어놓았다. 깜짝 놀란 검오가 급히 손을 거두며 물러섰다. 단검이 쫓아 들어오며 가슴의 급소를 노렸다.

휘이.

원을 그리며 도는 깃대에서 주사빛 문양이 툭 튀어나와 바람을 탄 듯 단검에 앞서 밀려들었다. 검오의 인상이 더욱 일그러졌다. 환영과 실체가 동시에 들이닥치는 상황은 그 역시 경험해보지 못했다. 무엇을 먼저 막아야할지 난감했다.

그때 한마루의 호통이 들려왔다.

“술법이라면 모르겠다만, 사람마저 비도를 피할 수 있겠느냐!”

호통과 함께 두 자루 비도가 날아들었다. 검오를 노리는 단검을 향한 공격이다.

“윽.”

다행히 비도는 빗나가지 않았다. 검오를 노린 단검은 땅에 떨어지고, 시커먼 그림자는 신음을 토하며 재빨리 깃대 뒤로 물러섰다. 쫓아 들어가 끝장을 내려던 한마루가 인상을 마구 찡그리며 멈추었다. 깃대 뒤로 숨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이건 대체……. 깃대의 환영이 설마 시야마저 차단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시커먼 그림자가 순식간에 사라질 순 없다. 술법이란 것이 실로 기이하고 신비롭기 이를 데 없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당골이나 중, 도사들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구나!”

소림사의 담종, 보국사 승려들, 백운동 패거리들이 기이하고 신비로운 행적을 보였지만, 그들이 보인 재주는 대개 두려움과 공포를 자극하는 심령적인 것들이었다. 지금처럼 눈앞에 나타나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술법은 처음이다. 의지를 굳세게 다지고, 마음을 안정시키면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지만, 당장 위해를 가하려 덮쳐드는 환영과 실체를 의지만으로 물리치기란 역시 쉽지 않았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거릴 뿐이다.

휘이이.

마당 주위에 박힌 깃대들이 더욱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깃대의 문양도 더욱 선명하게 보이며 눈을 현혹시켰다. 검오마저도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네, 괜찮은가?”

한마루 역시 괜찮지 않았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환영에 손발이 후들거리고, 정신이 멍멍하여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급한 김에 마구 비도를 휘두르고, 은방울을 흔들어보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슥.

깃대 뒤에 숨어 있던 자가 다시 튀어나왔다. 이번에도 검오를 노렸다. 검오가 바짝 정신을 차리며 대비했다. 한마루가 돕기 위해 다가섰다. 그때 또 하나의 깃대가 날아들어 검오와 한마루 사이에 박혔다.

스르륵.

만장에 그려진 문양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환영을 일으켰다. 그 순간 검오의 모습이 사라졌다. 환영이 시야를 차단한 것이다.

홀로 떨어진 한마루는 우뚝 멈춰선 채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자꾸만 후들거리는 다리를 곧게 펴고 눈을 가늘게 좁혀 문양이 일으키는 환영을 직시했다. 흘러가는 구름무늬와 나선처럼 꼬인 주사빛 문양이 살아있는 것처럼 흐물흐물 허공을 떠다니며 눈을 현혹하고 정신을 산란하게 만들었다.

전에 검오와 주고받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귀신과 주술에 홀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합니까?”

“더 강한 믿음이 필요하네.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지녔다면 잡귀가 스며들 틈이 없지. 신령스런 물건도 도움이 되네. 신령스러움 자체가 잡귀를 물리치는 영험을 지녔으니까! 무예를 배워 안과 밖을 수련한 자는 굳건한 정력으로 외부에서 가해지는 혼란을 극복할 수 있네.”

한마루에게는 믿음이 없다. 그동안 여러 차례 기이하고 신비한 일들을 겪으며 신과 교통하는 자들의 이적을 경험하긴 했지만 그것이 믿음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무예를 수련하여 심신 양면에 걸친 정련된 정신력을 기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신령스런 물건이 있다. 고구려의 최고 신령스런 물건 중 하나인 세상을 보는 거울이 있고, 어하라와 불열 당골이 제작한 방울까지 있다. 이런 신령스런 물건이라면 당연히 귀신의 현신이나 주술을 물리칠 수 있는 영험함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여전히 술법에 걸려드는 것일까?”

구리거울이 얼마나 신통하고 영험한지는 충분히 경험했다. 흑산 당골이 구리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파멸했으며, 신통력을 봉인하려던 보국사 십팔법승과 소림사 담종이 고꾸라졌다. 그런 신통력을 지닌 구리거울이 겨우 눈을 현혹하는 술법조차 물리치지 못하는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어하라의 방울은 쓰는 방법을 모른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다는 뜻인데…….”

구리거울이 스스로 영험을 드러내어 사람을 해친 적은 없다. 차지하려는 자나 파괴하려는 자에게서 스스로를 지켰을 뿐이다.

“결국 공격용은 아니라는 말이군.”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 않는다면, 구리거울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방울의 사용법을 모른다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 방법이 없다.

생각을 거듭하는 중에도 주사빛 문양들은 더욱 선명하게 빛나며 정신을 분산시키고 갉아먹었다. 급한 대로 비도를 휘둘러보지만 비도의 날카로움으로는 환영을 잘라낼 수 없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현기증이 몰려왔다.

“대체 뭐냐? 어쩌라는 거야!”

급한 만큼이나 울화통이 터진 한마루는 마구 화를 터뜨렸다.

슥.

정신이 혼란하고 짜증이 최고로 치솟을 때를 노려 적의 습격이 들이닥쳤다. 예리하게 빛나는 단검이 단번에 심장을 노렸다. 품에 간직한 물건을 빼앗자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목숨을 노린 치명적인 공격이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날은 오늘입니다. 즐겁게 보내세요~


작가의말

오늘은 해가 구름속에 숨었네요. 덥지 않을 때 열심히~

항상 찾아와 읽어주시는 모든 분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오늘도 즐겁고 신나는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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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화해의 요령 제칠장 화해의 요령~3. +6 13.07.23 4,553 90 13쪽
153 화해의 요령 제칠장 화해의 요령~2. +8 13.07.21 5,406 9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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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화해의 요령 제육장 선후는 누가 정하는가~3. +7 13.07.15 3,897 79 11쪽
149 화해의 요령 제육장 선후는 누가 정하는가~2. +6 13.07.13 4,646 99 11쪽
148 화해의 요령 제육장 선후는 누가 정하는가~1. +8 13.07.11 4,908 101 11쪽
147 화해의 요령 제오장 고씨, 수치를 당하다~4. +3 13.07.09 4,371 68 13쪽
146 화해의 요령 제오장 고씨, 수치를 당하다~3. +6 13.07.07 3,825 67 11쪽
145 화해의 요령 제오장 고씨, 수치를 당하다~2. +6 13.07.05 4,110 63 10쪽
144 화해의 요령 제오장 고씨, 수치를 당하다~1. +9 13.07.03 4,397 68 12쪽
143 화해의 요령 제사장 강해져야 하는 이유~4. +6 13.07.01 4,908 64 12쪽
142 화해의 요령 제사장 강해져야 하는 이유~3. +6 13.06.29 4,481 72 12쪽
141 화해의 요령 제사장 강해져야 하는 이유~2. +5 13.06.27 3,692 63 11쪽
140 화해의 요령 제사장 강해져야 하는 이유~1. +7 13.06.25 3,735 78 10쪽
139 화해의 요령 제삼장 각자의 몫~4. +8 13.06.23 3,857 67 10쪽
138 화해의 요령 제삼장 각자의 몫~3. +7 13.06.21 3,801 65 11쪽
137 화해의 요령 제삼장 각자의 몫~2. +6 13.06.19 4,185 69 11쪽
136 화해의 요령 제삼장 각자의 몫~1. +7 13.06.17 5,015 64 11쪽
135 화해의 요령 제이장 다루치와 대면하다~4. +7 13.06.15 5,426 62 12쪽
134 화해의 요령 제이장 다루치와 대면하다~3. +5 13.06.13 5,214 66 11쪽
» 화해의 요령 제이장 다루치와 대면하다~2. +5 13.06.11 5,349 66 11쪽
132 화해의 요령 제이장 다루치와 대면하다~1. +8 13.06.09 4,220 65 11쪽
131 화해의 요령 - 제일장 진실은 때로 아프다~4 +6 13.06.07 4,835 65 13쪽
130 화해의 요령 - 제일장 진실은 때로 아프다~3. +6 13.06.05 4,268 6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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