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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꾸는 꿈

신화의 땅-한마루편.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완결

고명윤
작품등록일 :
2012.11.21 09:27
최근연재일 :
2013.10.11 13:39
연재수 :
189 회
조회수 :
1,211,303
추천수 :
16,711
글자수 :
989,237

작성
13.06.09 12:10
조회
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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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글자
11쪽

화해의 요령 제이장 다루치와 대면하다~1.

DUMMY

二 다루치와 대면하다.


한마루는 기가 팍 죽어서 시종 말이 없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마음이 쓰렸다.

고불간은 확실히 자존심만 강한 고집불통이다. 좋은 마음으로 먼저 현무문과 천운대에 화해를 청했지만, 부인과 아들이 죽었다는 소리에 앞뒤 가리지 못하고 평양으로 달려가 천운대를 먼저 멸살하고 현무문을 박살했던 것이다. 결국 부인이 간첩질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미 저지른 일이 너무 끔찍하여 변명할 염치도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욕하는 자들을 향해 원망을 퍼부으며 더욱 악독한 살인을 일삼았다. 그렇게 이십 년이 흐르고서야 겨우 후회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고불간의 살인은 용서 받기 어려운 악행임이 분명했다.

“그놈의 욱 하는 성질머리!”

한순간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성질머리 때문에 그토록 커다란 불행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한마루도 그 욱 하는 성질머리 때문에 손해 본 적이 한두 번은 아니다. 고불간 같은 자존심은 없었지만, 오기로 똘똘 뭉친 근성 때문에 일을 먼저 저질러 놓고 후회하기 일쑤였다. 종남산 골짜기, 해씨 마을로 갔던 것도 바로 그 성질머리로 인해 벌어진 일을 수습할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성질머리 더러운 것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로구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이 잠시라도 서로 의지하여 여행한 것도 어찌 보면 그런 공통점이나마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물론 고불간이 모든 잘못을 뒤집어 쓸 수는 없다.

동생들의 반발에 위기를 느낀 연남생의 독촉과, 이간질하는 자들의 술수에 말려들어 성급하게 천운대를 발동하여 평양에 남은 호위대를 제거하고, 고불간의 부인과 아들을 죽여 버린 남산, 남건 형제의 판단 역시 불행에 일조했다. 또한 현무문의 제자로써 형제와 같은 우애를 나누던 고불간, 검뫼, 진대극의 관계가 서로 얽히면서 불행은 더 깊어졌던 것이다. 급변하는 정세를 정확히 판단할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각자가 속한 곳의 이득을 대변해야 했으므로 뼈아픈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고불간은 불문곡직하고 화부터 터뜨려 천운대와 현무문을 박살했던 것이 가슴 아픈 것이며, 검뫼는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 상태에서 남산, 남건 형제의 명령에 따라 고불간의 아내와 아들을 해친 것이 미안했기에 얼굴 볼 낯이 없었던 것이다. 진대극 역시도 천운대와 호위대를 중재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립을 이유로 뒤로 빠져버린 판단을 후회하고 있다.

그들 세 사람의 불행과 원한과는 관계없이, 양씨, 윤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겪어야했던 불행은 대부분 고불간의 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궁기감 궁장 마중의 역시도 고불간의 잔인한 살수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다. 당시 상황을 돌아보기에 앞서 고불간을 향한 원한과 증오가 먼저 솟구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무슨 변명을 하던, 천운대와 호위대 사이에서 벌어졌던 그 참혹한 불행은 대부분 고불간의 그 잔폭한 성격으로 인해 생겨난 것들임이 분명하다.

산지니가 푹푹 한숨만 내쉬는 한마루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고불간의 악행이 밝혀졌다고 해서 오빠가 자존심 상할 건 없잖아?”

물론 그렇다.

고불간이 무슨 일을 저질렀던, 한마루가 마음 상할 이유는 없다. 다만 고불간의 그 높은 자존심이 무참히 꺾여 버리고, 그 덕분에 한마루 자신의 믿음도 무너진 것 같아 기분이 상할 뿐이다.

“내가 아마도 똥고집을 지닌 사람들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고불간이 그렇고, 연오랑도 그렇다. 아픈 과거를 지닌 사람들이지만 그 불행에 함몰되지 않고 꼿꼿이 서서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안에 감춰진 그 드높은 자존심을 은연중에라도 보고 느꼈기에 의지하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산지니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노인네 앞에서 고불간 대신 백번 잘못했다고 사과한 것은 잘한 것 같아. 노인네 표정이 조금이나마 풀어졌잖아?”

켜켜이 쌓아둔 울화를 터뜨렸기에 다소 개운해진 것이겠지만, 한마루가 보인 정성을 아주 몰라라하지는 않았다.

“이제 와서 천운대를 재건하겠다고? 어서라, 부질없는 짓이다.”

탄식을 토하면서도, 노인은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비장하고 있던 궁기감의 도감을 넘겨주었다. 각궁과 철궁, 정량궁의 제작기법과 사법이 기록된 비결이었다.

“이 비결로 제작된 각궁이 다시 한 번 신궁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비결을 건네주는 노인의 젖은 눈길에는 분명 그러한 염원이 담겨있었다. 모두들 숙연한 기분으로 공손하게 비결을 받아 간직했다.

“부디 오래오래 사십시오. 그리고 지켜보십시오. 우리가 쏘아올린 각궁의 화살이 천하를 뒤덮을 날이 반듯이 올 것입니다!”

그렇게 다짐하며 일행은 노인과 헤어졌다.

산지니가 말했다.

“꽁꽁 숨겨 놓은 비결까지 내준 것을 보면 그래도 한 가닥 용서할 마음이 있었던 거 아니겠어? 결국 화해를 마련해준 셈인데, 너무 의기소침하지 마, 오빠.”

“에효, 그래도 우리 산지니 밖에 없다. 이제 다 컸다고 사람 위로할 줄도 아는구나. 고맙다.”

산지니는 헤, 웃어주며 부지런히 앞선 사람들을 쫓았다. 한마루도 다소 풀린 기분으로 뒤를 따랐다.

거처에 도착해보니 현무문 제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창백한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현무문 제자는 거의 울상이었다.

“이선비님이 실종되셨답니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떼놈들에게 당한 모양입니다.”

“이선비가! 언제, 어디서요?”

“어제 저녁 삭주 성 밖에서 매복을 만났던 모양입니다. 형제들 여섯이 죽고, 이선비님은 실종되었답니다.

“저런.”

모두 안타깝게 혀를 찼다. 한마루가 급히 물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실종이라면, 혹시 따로 연락한 자는 없었습니까? 누가 이선비를 찾고 있나요?”

“남은 동지들을 모두 동원하여 찾고는 있지만…….”

삭주를 통과하는 길목을 경계하는 인원은 약 삼십 명이며, 우두머리는 현무문의 제자 이청이다. 이청이 실종되었다면 조직 역시 구실을 하기 어렵다. 우왕좌왕 헤매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오상명이 물었다.

“혹시 우리가 잡은 자들에게 얻은 정보를 확인하러 출동했던 겁니까?”

“분명 그럴 겁니다. 보통 일이 아니라며 중요하게 여겼던 것을 기억합니다.”

오상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마루가 물었다,

“뭔가 아는 것이 있어요?”

오상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나와 아우가 말하는 사이 동지들이 그놈들을 잠시 다그쳤던 모양인데, 어떤 놈 입에서 고밀사 얘기가 나왔었다네. 워낙 악독하기로 유명한 놈들인지라 이름을 팔아 목숨 연명하려는 수작인 줄 알고 그냥 넘어갔단 말이지. 설마 정말로 고밀사 놈들이 이선비님을 해친 것은 아니겠지?”

“고밀사…….”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기어 나오는 이름이다. 그동안 한마루 일행에게 죽은 자만도 숱한데, 대체 얼마나 많은 인원이 동원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정말 지긋지긋한 이름이다. 그리고 그자들이라면 분명 이청을 궁지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확실히 위험한 자들이다.

한마루가 검오를 돌아보았다.

“삭주로 돌아가서 알아봐야 할까요?”

검오가 대답을 망설였다.

어하라마저 없는 상황에서 검오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일행의 안전이다. 물론 옳지 못한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고, 동포의 위험을 몰라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위험한 줄 알면서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도 경솔한 짓이다. 홍문의 보복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며, 그들에게 따라잡히는 순간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마루가 말했다.

“우리가 쫓기는 신세긴 하지만, 어차피 그놈들과 부딪치기 위해 가는 것 아니겠어요? 고밀사라면 차라리 우리 쪽에서 먼저 쳐서 기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검오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고밀사는 대처할 수 있다손 쳐도, 홍문의 제자가 나타나면 역시 대책이 없다.

한마루가 말을 이었다.

“초무열 때문에 걱정하는 거라면,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당골이 있습니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그 당골은 우리가 초무열에게 당하는 것을 보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검오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의지해보려는 생각은 좋지 않네. 자칫 홍문보다 무서운 적이 될 수도 있어.”

“알지만, 무작정 도망 다닐 입장도 아니잖아요?”

평양행 자체가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상대가 누가될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누군가와는 부딪칠 수밖에 없다. 초무열보다 더 강한 자라 할지라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검오가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는 찡그린 인상을 펴지 못한 채 일행을 돌아보았다. 한숨부터 절로 나왔다.

불열부의 어하라, 케일레, 이란달이 모두 빠졌다. 한마루, 산지니, 양사월의 무예를 제법이라고 인정해도 고수들과는 비교불가의 조무래기들일 뿐이다. 초무열 같은 고수는 고사하고, 고밀사의 살수들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전력이다. 투지를 불태우는 눈빛과는 상관없이, 일행을 위험으로 내몰 수는 없다.

검오가 고개를 젓자 일행은 실망이 가득하여 시무룩해졌다. 모두 젊고 혈기가 방장하여 당장 무슨 일이든 벌이고 싶은 것이다. 검오는 대신 현무문 제자와 오상명을 보내 상황을 정확히 알아볼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위험은, 피하려 해도 도둑 같이 찾아드는 법이다.

휘이.

봄내음이 실린 한줄기 바람이 스쳐갈 때, 한마루는 아득한 현기증을 느꼈다. 검오 역시 등골이 서늘한 한기를 느끼며 저도 모르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검오가 놀란 눈으로 한마루를 향해 물었다.

“그 자인가?”

한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그 당골은 아닌 것 같습니다. 느낌이 아주 괴이합니다!”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핀 검오가 일행을 향해 말했다.

“흩어지지 말고 경계해라. 낯선 자가 다가오면 즉시 공격해도 좋다.”

일행은 즉시 한데 뭉쳐 각자의 병장기를 꺼내들었다.

휘이.

다시 한줄기의 바람이 스쳐갔다.

쓰으으.

팍.

귀를 자극하는 기이한 음향과 함께 날아든 것은 사람이 아닌, 하나의 커다란 깃발이었다. 깃발이 마당 한쪽 바닥에 박혀드는 것을 본 일행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펄럭.

깃발에 달린 휘장이 주르륵 펼쳐졌다. 만장(輓章)이다. 죽은 자를 애도하는 문구 대신 주사빛의 기이한 문양이 적혀 있었다. 부적에 사용하는 문양이다.

으스스.

일행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퍽퍽퍽퍽.

주문이 적힌 만장이 계속 날아들어 마당을 에워싸며 땅에 박혀들었다.

펄럭펄럭.

만장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주사빛 문양도 함께 흔들리며 기이하고 섬뜩한 한기를 내뿜었다.

구불구불 흘러가는 문양과 나선처럼 꼬이는 문양들이 눈을 어지럽히고 정신을 산란하게 만들었다. 공간이 기이하게 뒤틀리며 천지가 붉은 주사빛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그 흔들리는 주사빛 문양을 따라 바라보는 눈길이 흔들리고, 세상도 함께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날은 오늘입니다. 즐겁게 보내세요~


작가의말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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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화해의 요령 제팔장 진정한 용기~2. +8 13.07.29 4,708 8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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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화해의 요령 제칠장 화해의 요령~4. +6 13.07.25 3,676 83 12쪽
154 화해의 요령 제칠장 화해의 요령~3. +6 13.07.23 4,553 90 13쪽
153 화해의 요령 제칠장 화해의 요령~2. +8 13.07.21 5,407 93 12쪽
152 화해의 요령 제칠장 화해의 요령~1. +9 13.07.19 3,919 94 11쪽
151 화해의 요령 제육장 선후는 누가 정하는가~4. +8 13.07.17 3,504 89 12쪽
150 화해의 요령 제육장 선후는 누가 정하는가~3. +7 13.07.15 3,897 79 11쪽
149 화해의 요령 제육장 선후는 누가 정하는가~2. +6 13.07.13 4,646 99 11쪽
148 화해의 요령 제육장 선후는 누가 정하는가~1. +8 13.07.11 4,908 101 11쪽
147 화해의 요령 제오장 고씨, 수치를 당하다~4. +3 13.07.09 4,372 68 13쪽
146 화해의 요령 제오장 고씨, 수치를 당하다~3. +6 13.07.07 3,825 67 11쪽
145 화해의 요령 제오장 고씨, 수치를 당하다~2. +6 13.07.05 4,110 63 10쪽
144 화해의 요령 제오장 고씨, 수치를 당하다~1. +9 13.07.03 4,397 68 12쪽
143 화해의 요령 제사장 강해져야 하는 이유~4. +6 13.07.01 4,908 64 12쪽
142 화해의 요령 제사장 강해져야 하는 이유~3. +6 13.06.29 4,481 72 12쪽
141 화해의 요령 제사장 강해져야 하는 이유~2. +5 13.06.27 3,693 63 11쪽
140 화해의 요령 제사장 강해져야 하는 이유~1. +7 13.06.25 3,735 78 10쪽
139 화해의 요령 제삼장 각자의 몫~4. +8 13.06.23 3,858 67 10쪽
138 화해의 요령 제삼장 각자의 몫~3. +7 13.06.21 3,801 65 11쪽
137 화해의 요령 제삼장 각자의 몫~2. +6 13.06.19 4,185 69 11쪽
136 화해의 요령 제삼장 각자의 몫~1. +7 13.06.17 5,015 64 11쪽
135 화해의 요령 제이장 다루치와 대면하다~4. +7 13.06.15 5,426 62 12쪽
134 화해의 요령 제이장 다루치와 대면하다~3. +5 13.06.13 5,214 66 11쪽
133 화해의 요령 제이장 다루치와 대면하다~2. +5 13.06.11 5,349 66 11쪽
» 화해의 요령 제이장 다루치와 대면하다~1. +8 13.06.09 4,220 65 11쪽
131 화해의 요령 - 제일장 진실은 때로 아프다~4 +6 13.06.07 4,836 65 13쪽
130 화해의 요령 - 제일장 진실은 때로 아프다~3. +6 13.06.05 4,268 6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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