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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의 문이 그대들의 앞에 도래하였노라.

하늘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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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악대제
작품등록일 :
2021.01.04 16:26
최근연재일 :
2021.01.28 22:0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44
추천수 :
7
글자수 :
28,721

작성
21.01.28 22:00
조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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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7쪽

9장

DUMMY

바르바토스는 클로에의 미소를 보지 못했다. 작은 소리 하나 내지 않은 그 해맑은 미소는 마치 먹이를 앞둔 뱀의 미소와 같았다.

순식간에 작은 뱀이 허물을 벗는 사이 큰 뱀을 만난 처지에 처한 바르바토스는 드디어 땅을 두 발로 밟은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숨을 내쉬었다.


"정보는 언제 찾아준데요?"


다른 생각을 하느라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듣지 못했다.


"신분증 위조는 이틀이면 된다더라. 정보는 단서가 적어서 더 큰 지부로 가야한데."


이틀이면 내 예상보다 조금 긴 시간이었다.

수박 겉핥기로만 알고있는 정보상에서 신분증을 위조하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

인간의 모습을 빌리는 것은 좀 번거롭고 거쳐야 하는 과정이 복잡하지만 가능하다. 하지만 모습 만을 바꿨다 해서 인간의 땅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제국에서 발행하는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

규모가 큰 도시에 방문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신분증 검사이며 신분증이 없으면 도시에 몰래 들어가도 불편한 점이 많다고 했다.

다른 지부로 가야한다면 신분증이 먼저였다.

주워들은 사실이지만 믿을 만 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들이다.


"기억나는 건 있으세요? 술집에서 엄청 능숙하시던데요."

"기억나지 않아."


클로에는 지루한지 숲을 연상시키는 초록색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바람 소리 하나 나지 않는 적막함을 머리카락을 비비는 소리가 채웠다.

그 모습은 마치 신화 속의 한 장면을 담아 놓은 한 폭의 걸작과도 같은 미색을 지녔으나 나는 그런 것에 눈을 두지 않고 다른 것에 눈을 두었다. 옷 너머로도 보이는 그 튼실하고 두꺼운 팔은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이끄는 장군의 팔처럼 보였다.

옷 너머로도 보이는 근육과 손으로 꾹 눌러도 들어가지 않는 단단한 근육과 손등에 양것 솟은 굵은 핏줄은 나에게 내가 이런 사람에게 보호 받고 있다는 생각과 안도감을 선사해 주었다.

가끔씩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나를 작은 소동물처럼 보는 눈빛이 신경 쓰이지만 그래도 든든한 것은 든든한 거였다.


"클로에는 팔이 참 튼실해 보이네요."


나는 무의식중에 말을 내뱉고 말았다.


".....뭐?"

"....아,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클로에가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을 멈추고 손가락의 힘을 빼자 머리카락은 그대로 힘을 잃고 깃털처럼 클로에의 몸에 내려앉았다. 나는 클로에를 올려다보면서 말했고 클로에는 무언가를 부정 당한 사람 처럼 망연자실했다.


"튼실....튼실해....그래....근육이 좀 많기는 한데 그런 말 들으니까 충격인데..."


내 생각과는 꽤 다른 생각과는 다른 반응에 당황했다. 기분 나빠할 수도 있는 말인지 고민하지는 않고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말을 하고 내가 생각한 반응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하는 반응이었지만 실제 반응은 내 예상 범주를 넘었다.

절망과 회한이 가득 느껴졌다.


"아니, 그게....장군감...."

"꽃다운 소녀한테 장군감....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연애 한 번 해 본 적 없는 꽃다운 나이에 장군감...."


내 말에 클로에는 다시 한 번 회한 가득 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쩐지 날이 갈수록 미안한 일이 늘어가는 것 같았다.

전에 클로에의 손에 토를 한 것도 그렇고, 그 때는 특히 토사물에서 들꽃이 피어나서 더욱 어색했었다.

인간들은 독기를 내뿜으면서도 스스로의 독에 내성이 없어 독을 들이마시고 더 독한 독기를 내뱉는다. 독기가 하도 강해서 멀미를 한 상태에서 처음 들이마시는 공기로는 적합하지가 않았다.

변명같이 들릴지는 몰라도 정말 그러했다.


"그런 말 하면 너무 슬퍼."


클로에는 내 손을 붙잡고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전과 같은 민망한 상황으로 변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내 힘으로는 도저히 클로에의 힘에 대항하지 못 한다. 내가 작은 묘목이라면 클로에는 하늘까지 닿을 큰 나무었다.

내가 대적할 수 있을 리 없었고 나는 그대로 클로에의 품 속에 폭 안겼다.


"내가 근육질에 배에 복근까지 있어도 그런 말은 조금 실례가 아닐까."

"죄송해요....나쁜 뜻은 없었어요."


팔이 너무 튼실해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클로에에게서는 짙은 피의 냄새와 땀 냄새가 났지만 나는 또 기분 상할까봐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나도 알아. 너는 남이 기분 나빠하는 걸 두려워하니까. 남을 배려하지만 한편으로는 순수해서 남이 기분 나빠할 말인지 구분하지 못 하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 성격을 잘 짚었고 정확히 가르키는 말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었지만 내 성격을 파악한 것이다.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클로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루종일 결계 유지하느라 힘들었지?"

"아니요...힘들지는...."


사실 힘들다. 부상당한 상태에서 마력을 계속 뽑아내려니 두통이 머릿속을 바늘로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클로에는 어째서인지 내 머리가 쑤시는 곳만 손으로 짚어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게 슬리는 느낌이 마왕성에 있을 때 알고 지내던 형의 손길과 같이 느껴졌다.


"힘들면 좀 쉬어. 해도 저물고 있으니까."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저물어 노랗게 물든 하늘은 마치 황금을 둘러 그 위용을 뽐내는 것 같았고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은 내일을 기약하며 숨을 죽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내가 하늘을 싫어하기 때문일 거다. 언제나 올려다보지만 나는 하늘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가치관에 영향을 준 형에게 영향을 받았을지 모른다. 보통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니까. 변하지 않는 푸른 하늘을 보며 안도하고 아름다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힌다.

하지만 나는 하늘을 싫어한다. 늘 모두를 내려다보고, 지켜본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슬퍼도 하늘은 여전히 정해진대로만 움직인다. 푸르든 검든 결국 반복할 뿐이다.

아무리 비극적이어도, 슬프고, 괴롭고, 아프고, 찢어지고, 갈리고, 뭉개져도 하늘은 고작 이정도 비극으로는 결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차가운 현실을 낙인찍듯이 여전히 변함없다.

그래서 나는 시체 태우는 연기가 하늘을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는 그곳에 유독 오래 머물었을지도 모른다.

구역질이 나면 이정도 구역질나는 일은 맑은 하늘에 비하면 구역질 축에도 끼지 못 하는 일이라 스스로를 다독이고, 그 끔찍한 지옥으로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을 증명하는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을 더럽히기 위해 담배를 피워 연기로 하늘을 가린다.

나는 하늘이 저주스럽고 하늘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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