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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텐스의 리루비안 연재지

기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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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텐스
작품등록일 :
2020.08.29 17:54
최근연재일 :
2024.02.29 20:38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3,528
추천수 :
18
글자수 :
697,994

작성
23.06.1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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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달콤한 유혹 - 23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DUMMY

대사에게 깨지고 한 달. 린세는 이 이상 없을 정도로 숨죽이며 지냈다. 일이 끝난 뒤에 먹는 간식의 양만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린세 요즘 먹는 양이 늘어난 것 같아.”


훌쩍 사라졌다가 또 어느새 훌쩍 나타난 사히라가 맞은편에서 말했다.


“안 그래도 자각하고 있어. 요즘 아무리 먹어도 이상하게 식욕이 있단 말이지.”


“별일이네. 근데 린세가 나보다 많이 먹는거 보니까 뭔가 신기하네.”


사히라는 그렇게 말하고 자기가 먹은 접시와 린세가 먹은 접시를 번갈아 가리켰다. 평소라면 잡아먹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케이크를 집어삼키는 사히라보다 린세가 먹은 접시가 더 많았다. 린세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먹은 양을 자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진짜 왜 이러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먹는 걸 멈추진 않는구나.”


“단 음식을 앞에 두고 그냥 갈 순 없지.”


“단 거 정말 좋아하네.”


“나한테서 단 걸 빼면 아무것도 없어.”


“그 부분에선 단호하네. 린세답다.”


그러는 사이에 린세는 케이크를 한 접시를 더 해치웠다. 사히라는 린세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뭔가 도망치고 있는 것 같네.”


“도망? 무슨 도망?”


“나야 모르지.”


“이 식욕에서나 도망가고 싶다.”


그렇게 말하며 린세는 케이크를 한 접시 더 비웠다.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주인장이 재료가 떨어졌음을 알리기 위해 오는 것을 보며 사히라는 기지개를 폈다.


“슬슬 가봐야지. 인어들이랑 같이 춤춰보기로 했거든.”


“그래. 다음에 또 봐.”


사히라는 가게를 나서는 척하다가 근처에 멈춰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곧 기대하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여기 케이크 한 조각 더 부탁드릴게요.”


“죄송합니다. 금일 재료가 모두 소진되어 더는······.”


린세는 점장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계산 부탁드릴게요.”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린세는 허둥지둥 지갑을 꺼내서 계산했다. 사히라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습장소로 향했다.




“평소에도 대단하셨지만.”


“요즘은 유별나시네.”


양손 가득 봉투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린세의 모습은 흡사 겨울을 대비하여 영양을 보충하는 한 마리의 짐승이었다. 평소에도 각설탕을 한 무더기로 사왔던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면 대사관 전체가 소란스러워 질 수준이었다.


“영사, 요즘 많이 힘드나?”


저번의 일들은 부임하자마자 사고를 치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행동하는 린세를 꾸짖고자 대사가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이었다. 린세 개인의 교육적으로도, 대사관의 권위를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대사는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린세가 조금 이상해졌다. 원래부터 단 음식에 집착하는 면모가 있었지만, 그 일 이후 정도가 다소 심해졌다.


지금도 잔에 담긴 것이 차인지 설탕 시럽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설탕을 넣고 있었다. 대사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너무 괴롭힌 건 아닌지 괜히 고민해보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네? 아니요. 힘은 도리어 넘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린세의 손은 멈추지 않고 설탕을 차에 넣었다.


“그, 뭐냐······. 됐다. 오늘은 서류만 마치고 들어가라.”


대사는 자기의 행동은 올발랐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은 린세를 풀어주기로 했다. 만약 더 죄였다가 대사관 전체를 설탕으로 도배하는 광경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럼 내일 회의는 어떻게 합니까?”


“가끔은 혼자 생각해볼 필요도 있지. 큰 역할은 안 시킬 거니 부담 갖지 말고.”


“네.”


린세는 더 이상 차라고 부를 수 없는 녹색 시럽을 한입에 들이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사는 자기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린세를 배웅해 주었다.


“몸 안 좋으면 좀 쉬고 그래.”


“마족이 쉬고 그러면 안 돼죠.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린세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자연스럽게 서랍에서 간식을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차주전자에서 차를 따라 책상에 놓고 과편을 하나 더 입에 넣고 서류들을 꺼내서 펼쳐놓았다. 마지막으로 차를 입에 머금고 과편이 녹아 사라지는 것을 즐기며 린세는 서류에 몰두했다.


‘이거는 굳이 지금 안 해도 되고. 이 자료는 좀 봐둘까? 이건 있다 처리하고.’


오늘도 일은 평소와 같았다. 외근도 없는 날이었고, 특별히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 제출해야 하는 서류만 다 하고 나면 나머지는 천천히 해도 되는 것들이었다.


‘시작해볼까?’


첫번째 서류를 채 시작하기도 전에 찻주전자가 비었다. 적잖게 당황한 린세는 각설탕 통이 반쯤 비어있는걸 보고 한숨을 쉬었다.


“진짜 왜 이럴까?”


린세는 힘없이 일어나서 물을 더 받으러 방을 나섰다. 차가 없으면 과자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없었다. 다과에는 그에 걸맞는 차가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자중해야지. 맛있는 건 좋지만 자기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서야. 외교관 일은 못해먹는다고 봐야지. 아, 근데 단 건 먹고 싶고. 어차피 여기서 차 끓이면 또 먹게 되는 거 아닌가? 그럼 처음부터 방을 나서지 않는 게 맞았던 거 같은데. 이미 나와버린 이상 물을 기르긴 해야겠지? 그럼 나온 의미가 없으니까 말이야. 그럼 차를 좀 진중한 거로 고르면 어떨까? 간식 생각이 좀 덜 나게 말이야. 인사과에서 찻잎 들어온 게 좀 있다고 했는데 그걸 마셔볼까? 오늘은 거기도 한가할 거고. 음······.”


한참 중얼거리는 와중에도 린세의 몸은 착실하게 물을 떠왔다. 정말 욕망에 솔직하게 움직이는 자신의 몸을 보고 린세가 한숨을 쉬려는 찰나 린세의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아, 만홍 씨.”


얼마만일까? 저번의 그 사건이 있고 이렇게 만홍을 마주보는 건 처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영사님.”


만홍은 오늘도 한창 잡일 중인지 양 손에 한아름 서류들을 들고 있었다.


“오늘도 고생하시네요.”


린세는 한참의 고민 끝에 한마디 짜내는데 성공했다.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할지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다. 서로 한번씩 안부인사를 주고받은 뒤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라? 나 만홍 씨를 어떻게 대했더라? 분명 나름 친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격식 없는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고. 또 그렇다고 너무 거리감이 있지도 않았는데.’



그것은 만홍도 피차 다르지 않아서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서로 시선도 못 마주친 채로 시간만 흘렀다.


‘안 그래도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버리게 하면 안 되는데. 근데 또 이대로 지나치기엔 아쉬운 기분이 들어. 아 진짜 어떻게 해야하는 거야!’


서로의 숨소리만 복도에 울려퍼졌다. 저 멀리 층에서 들려오는 부산한 소리는 둘에게 있어 부차적인 것이었다. 지금 여기가 대사관 한가운데라는 건 이미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차를 드시나 봅니다.”


두 겁쟁이들의 숨막히는 싸움에서 먼저 용기를 낸 건 만홍이었다. 상당히 애매하기 짝이 없는 한마디일 지라도 용기를 냈다는 게 중요했다. 하나의 용기는 다른 자에게도 용기를 주었다.


“안 바쁘시면 한잔 하고 가실래요? 안 단 과자도 있어요.”


“아, 이 자료만 마저 전달하고 바로 가겠습니다.”


“어차피 차 우리는 데 시간도 걸리니까요. 천천히 오세요.”


“바로 가겠습니다.”


만홍은 고개를 숙이곤 빠른걸음으로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린세는 작게 웃으며 방으로 돌아가 차를 마저 끓였다.


“영사님?”


“들어와요.”


머지 않아 만홍이 오고 근무 중 간단한 다과회가 열렸다.


“그나저나 의외네요. 만홍 씨라면 거절할 줄 알았거든요.”


평소의 만홍의 성격이라면 근무시간 중에 다과회에 참가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권한 린세도 특별히 기대는 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저도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만홍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마 자신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리라곤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좋네요. 덕분에 혼자 근무 중에 논다는 죄책감이 덜해졌어요.”


“······역시 자리로 돌아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린세에겐 농담이었겠으나, 만홍에겐 매우 자극적인 한마디였다. 만홍이 바로 일어나서 자리를 뜨려는 걸 린세는 허둥지둥 달려가 붙잡았다.


“농담이에요. 너무 일만 하면 능률도 안 나온다고요. 백호님도 각하도 다 중간중간 쉬면서 한 숨 돌리는 시간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 저희도 한 숨 돌리자고요.”


엉망진창인 주장. 그래도 만홍을 자리에 붙잡아두는데는 성공했다.


“알겟습니다. 한잔만 하고 복귀하겠습니다.”


“에이, 그러시지 말고요. 누가 뭐라 하면 제 핑계 대시면 되는데요. 만홍 씨도 잘 드실 안 단 간식도 준비해 놨답니다.”


린세는 그렇게 말하며 주섬주섬 서랍에서 간식들을 꺼내 올려두었다. 당연히 전부 단 것들이었다.


“전부 단 것 같습니다.”


“착각이에요. 자자, 사양 말고 드세요.”


만홍에게 차를 따라주며 린세는 문득 자신이 편하게 만홍을 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역시 달군요.”


만홍은 그렇게 말했으나 먹는 걸 멈추진 않았다. 린세는 만홍이 나름의 농담이라는 걸 했음을 알고 조용히 웃으며 차를 더 따라주었다.


“기왕 온 김에 천천히 있다 가요. 여기 대사관 공식 말썽꾸러기가 있잖아요.”


“영사님이 말썽꾸러기시면 저는 대사관의 꿔다 놓은 보릿자루겠군요.”


“또또 그러신다. 자꾸 그러시면 차 없이 과자만 먹게 할 거에요.”


“그건 사양하고 싶군요.”


린세의 권유대로 만홍은 자기 나름대로 천천히 있다가 돌아갔다. 짧지만 따스한 다과회가 지나고 린세는 거짓말처럼 식탐이 사라졌다. 린세는 간만에 기분 좋게 잠에 들 수 있었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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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달콤한 유혹 - 19 22.12.24 17 0 11쪽
113 달콤한 유혹 - 18 22.10.31 15 0 11쪽
112 달콤한 유혹 - 17 22.10.19 16 0 10쪽
111 달콤한 유혹 - 16 22.10.06 17 0 11쪽
110 달콤한 유혹 - 15 22.09.18 18 0 11쪽
109 달콤한 유혹 - 14 22.08.13 20 0 14쪽
108 달콤한 유혹 - 13 22.08.01 24 0 11쪽
107 달콤한 유혹 - 12 22.07.02 18 0 13쪽
106 달콤한 유혹 - 11 22.06.23 18 0 14쪽
105 달콤한 유혹 - 10 22.04.21 22 0 15쪽
104 달콤한 유혹 - 9 22.04.12 23 0 11쪽
103 달콤한 유혹 - 8 22.04.04 24 0 12쪽
102 달콤한 유혹 - 7 22.03.28 26 0 12쪽
101 달콤한 유혹 - 6 22.03.22 18 0 12쪽
100 달콤한 유혹 - 5 22.03.10 23 0 12쪽
99 달콤한 유혹 - 4 22.02.20 22 0 11쪽
98 달콤한 유혹 - 3 22.02.08 23 0 11쪽
97 달콤한 유혹 - 2 22.01.30 27 0 12쪽
96 달콤한 유혹 - 1 22.01.24 27 0 17쪽
95 작고 흰 괴물 22.01.16 23 0 12쪽
94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8 22.01.09 16 0 10쪽
93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7 22.01.03 16 0 18쪽
92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6 21.12.28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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