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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텐스의 리루비안 연재지

기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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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텐스
작품등록일 :
2020.08.29 17:54
최근연재일 :
2024.02.29 20:38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3,448
추천수 :
18
글자수 :
697,994

작성
23.02.2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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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달콤한 유혹 - 21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DUMMY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나요?”


최대한 빠르게 약속장소로 내달린 린세였으나 약속시간은 살짝 넘긴 뒤였다.


“아닙니다. 아직 여유 있습니다. 이쪽입니다.”


언제나의 근무복이 아닌 깔끔한 사복차림의 만홍은 오늘 휴일이었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생기 있는 모습으로 걸었다. 다 죽어서 걷는 것도 간신히 하던 평소와는 전혀 달랐다.


린세는 여전히 긴장이 되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한껏 차려입은 만큼 기운을 내며 마음을 다잡았다. 괜히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면 도리어 만홍이 불편해할 것 같았다.


“여기입니다.”


만홍이 안내한 가게는 대사관 직원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탄트라 음식점이었다. 린세도 다른 직원들이랑 몇 번 와본 경험이 있었다.


“여기 괜찮죠. 저도 몇 번 와봤어요.”


린세의 말에 만홍은 얼굴을 붉혔다.


“좀 더 좋은 가게가 아니라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전 여기도 좋아요. 음식도 맛있고, 서비스도 괜찮아요.”


린세는 만홍을 위로하며 빨리 식당에 들어가도록 유도했다. 만홍도 고집부리지 않고 순순히 가게로 들어갔다.


“예약한 고만홍입니다.”


“두 분 맞으시죠?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둘은 점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로 갔다. 평소에 올 때는 가운데 자리로 안내 받았던 것과는 다르게 따로 마련된 방으로 안내 받았다.


“식사는 바로 내드려도 괜찮을까요?”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음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벽해로 부탁드립니다.”


“데워서 맞습니까?”


“네.”


만홍은 의외로 능숙하게 주문을 했다. 혹여 막히면 바로 끼어들 준비를 하고 있던 린세는 의외라는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앉으실까요?”


린세는 자리에 앉으며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만홍은 행동이 다소 답답한 면이 있을지 몰라도 예의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도리어 지나칠 정도로 예의를 따져서 문제일 정도였다.


‘혹시 좋은 집안 분이신 건가? 고 씨 중에 그럴 만한 사람은 모르긴 하는데.’


말단이라고 해도 대사관에서 일할 정도이니 무언가 뒷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만홍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지금 떠올려도 의미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만홍의 출신 같은 건 뒤로 미뤄두고 린세는 만홍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여기는 자주 와보셨습니까?”


“가끔요.”


“기대하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아직도 그거 생각하고 계셨어요? 괜찮다니까요.”


만홍은 매사에 진지했다. 좋게 말하자면 꼼꼼하다는 것이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요령이 없는 것이었다. 그 요령 없고 꽉막힌 일처리가 대사관에서 만홍의 평가를 깎아먹는 요소가 되었다.


“자,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요. 기껏 맛있는거 먹으러 왔으니 재미있는 얘기나 해요.”


“죄송합니다. 제가 재미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 얘기는······.”


“그건 제가 정하는 거죠. 그냥 아무 얘기나 괜찮아요. 최근 있었던 일이라던가 제가 없을 때 대사관에서 일어났던 일 같은 거 말이에요.”


만홍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차가 먼저 나왔다.


“차입니다.”


“감사합니다.”


만홍은 자연스럽게 찻주전자를 잡고 자신의 것과 린세의 것을 따라서 나눠주었다. 그리고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차를 마셨다. 깔끔하게 입안을 정리해주는 좋은 식전 차였다.


“만홍 씨는 여기 오신지 얼마나 되셨죠?”


만홍이 말을 떠올리기 어려워하는 것 같자 린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만홍은 잠시 고민한 뒤에 말했다.


“2년 정도 되었습니다.”


2년이면 알 건 다 알만한 년차였다. 그런데도 말단이라는 점에서 외근직의 서러움을 알 수 있었다.


“대사님이 부임하신지도 그 정도 된 거로 알고 있는데요.”


“네. 같은 배로 왔습니다.”


“그건 몰랐네요. 그럼 본토에서도 같이 일하셨던 건가요?”


“아뇨. 저는 부임 하고 바로 여기로 발령 났습니다.”


“그럼 여기가 첫 직장이신 거죠? 일은 힘드시지 않으신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중요한 일일 리도 없으니 힘들어도 제가 모자란 탓이겠죠.”


참으로 훌륭한 마음가짐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만홍은 정도가 지나쳤다.


“음. 어렵네요. 저도 일하면서 딱히 중요한 일을 한다고는 생각이 안 들거든요. 제가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서류 정리해서 올리거나 대사님 심부름 정도라서요. 대사관에서 하는 일이 딱 정해진 게 없으니 판단하기 힘드네요.”


린세는 만홍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중간하게 받았다간 만홍 특유의 자신의 탓으로 하고 넘어가려고 하는 안 좋은 버릇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 것 같습니다.”


단답형이긴 해도 만홍의 대답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린세의 시도는 성공이었다. 평범한 대화를 함에 있어 이렇게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지만, 린세는 그 또한 만홍의 개성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원론적인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저희가 도움이 되니까 저희한테 일을 시키고 있는 거겠지요. 긍정적으로 생각해봐요.”


“네.”


다시금 분위기가 가라앉으려는 찰나에 때마침 식사가 나왔다. 음식은 어디 한군데 치우친데 없이 골고루 나왔다.


‘동파육에 우육면. 생선찜이랑 공심채 무침, 채소튀김까지. 과하지 않고 잘 시키셨네.’


대접함에 있어 제대로 식사를 한다는 느낌이 나면서도 받는 입장에서 너무 과하지도 않은 좋은 차림이었다.


“단걸 좋아하시니까 비슷하게 골라보긴 했는데, 아무래도 식사류에서는 찾기 힘들어서. 죄송합니다.”


만홍은 이렇게밖에 챙기지 못했다는 것에 안타까워했지만, 린세의 입장에서는 그걸 고려해서 정해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아니에요. 제가 단 걸 좋아하긴 해도 식사에서까지 찾을 정도로 과하진 않아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사과하실 틈이 있으면 빨리 먹어요. 자, 만홍 씨가 상석이잖아요.”


주최자인 만홍이 수저를 들어야 린세 역시 먹을 수 있었다. 만홍은 빠르게 젓가락을 들어 자기 몫의 음식을 덜었다. 만홍의 차례가 끝나자 린세도 천천히 음식을 덜었다.


“전 이거 좋아한단 말이죠. 여러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뭔가 함께 먹는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평소엔 어떤 식사를 하십니까?”


만홍이 드디어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린세는 감격해서 먹으려고 들었던 젓가락도 내려놓고 대화에 집중했다.


“보통은 직접 만들어 먹어요. 요리가 취미기도 하고 제 입맛에 맞추려면 아무래도 직접 만드는 게 가장 쉽더라고요. 만홍 씨는 어떠세요?”


“저도 만들어 먹는 편입니다. 돈은 보통 친가에 전부 부쳐서 외식할 여유는 없습니다.”


그 말은 이번 외식은 만홍에게 있어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이었다. 린세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이번엔 얼마 전에 상여금을 받아서 여유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진심으로 고민하던 린세는 만홍의 그 말에 한숨 돌렸다. 품의 지갑을 의식하며 린세는 드디어 젓가락을 들었다.


“술 나왔습니다.”


배려인지 배를 어느 정도 채운 후에 술이 나왔다. 만홍은 차분하게 잔과 병을 받고 자신의 것을 채운 뒤에 린세의 것을 따라서 주었다.


“건배사 있나요?”


탄트라에서 첫잔은 건배와 함께 끝까지 비우는 게 예절이었다. 물론 그건 핑계고 린세는 단순히 만홍이 어떤 건배사를 할까 궁금했다. 만홍이니만큼 건실한 것일 거라는 건 확실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다.


만홍은 망설이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영사님의 성공을 위하여.”


린세의 생각보다 훨씬 더 얼빠진 건배사가 나왔다. 린세는 안타까움을 느끼는 한편 너무나도 만홍답다고 생각했다.


“그럼 저는 만홍 씨의 성공을 위하여.”


둘은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한입에 술을 털어넣었다. 벽해(碧海)라는 이름에 걸맞게 깔끔하게 입안을 적시고 내려가는 맛이었다.


“괜찮은 술이네요.”


술의 재료가 되는 단 것이라면 한시도 거르지 않고 퍼먹고 있는 린세지만, 술은 그리 즐겨 마시는 편은 아니었다. 술은 단 것이 재료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쓴데다가 먹는다고 배가 차는 것도 아니었고, 취하는 건 좋으나 그 뒤의 숙취가 상당히 괴로웠다. 하지만 술이 가져다주는 그 특유의 분위기는 린세도 긍정했다.


모두가 마음의 벽을 한겹 허물고 한결 풀어진 분위기로 있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었다. 식사만으로 충분히 친분을 다질 수 있지만, 술과 함께 했을 때랑 비교할 수 없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고향에서 자주 마시는 술입니다. 입에 맞으시니 다행입니다.”


린세는 문득 만홍의 고향이 어딘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보면 탄트라가 아닌 다른 곳 출신이라는 건 확실한데 어딘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만홍 씨의 고향은 어떤 곳인가요?”


만홍은 잠시 머뭇거렸다. 남들 앞에서 이 얘기를 하는 건 처음이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젠빈입니다.”


만홍은 담담히 말했으나 의외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식민지 출신.’


만홍이 대사관에서 공공연하게 받고 있는 취급, 그리고 그런 취급에도 전혀 의문이나 분노를 표하지 않는 만홍의 태도, 그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지며 설명이 되었다.


“힘드셨겠네요.”


“아뇨. 그렇진 않았습니다.”


만홍이 그렇게 말해버리면 린세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뜻이 아닌 부모님의 뜻으로 온 직장에서 출신으로 인한 차별까지 받고 있음에도 괜찮다고 한다면 완전 타인인 린세는 위로의 한마디조차 함부로 건낼 수 없었다.


“음. 이런 어두운 얘기는 그만 하고 한잔 더 하죠. 맛있는 음식이 있는데 안 먹으면 섭섭하죠.”


린세는 아예 이야기의 주제를 틀었다. 이 주제로는 어떻게 대화해도 이야기가 어두워지는 걸 피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네.”


만홍도 별다른 감흥은 없는지 순순히 따라왔다. 린세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술을 한잔 더 마셨다.


‘분명 데운 술인데 뭔가 시원함이 느껴져. 달았으면 오히려 이런 맛은 안났겠지. 몇 잔이라도 마실 수 있을 것 같아.’


“음! 역시 괜찮네요.”


“네. 좋은 술입니다.”


린세는 이렇게 만홍과 평범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억지를 부려서도 약속을 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긴장도 안 되는 것 같아.’


린세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잔 더 마셨다. 좋은 음식에 좋은 술, 그리고 친한 사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리였다.


“한잔 더 하시겠어요?”


“네.”


만홍도 분위기에 취해 평소엔 자주 마시지도 않던 술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고향에 있을 때만 해도 쓰기만 하고 숙취만 생기는 고약한 물건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왜 마시는지 알 것 같았다.


간간히 끊어질 듯 어떻게 이어지는 대화 속에 어느덧 술병이 늘어갔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아직 조금은 추운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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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달콤한 유혹 - 23 23.06.16 9 0 10쪽
117 달콤한 유혹 - 22 23.04.13 11 0 12쪽
» 달콤한 유혹 - 21 23.02.21 15 0 11쪽
115 달콤한 유혹 - 20 23.02.09 15 0 13쪽
114 달콤한 유혹 - 19 22.12.24 17 0 11쪽
113 달콤한 유혹 - 18 22.10.31 15 0 11쪽
112 달콤한 유혹 - 17 22.10.19 16 0 10쪽
111 달콤한 유혹 - 16 22.10.06 17 0 11쪽
110 달콤한 유혹 - 15 22.09.18 18 0 11쪽
109 달콤한 유혹 - 14 22.08.13 18 0 14쪽
108 달콤한 유혹 - 13 22.08.01 24 0 11쪽
107 달콤한 유혹 - 12 22.07.02 18 0 13쪽
106 달콤한 유혹 - 11 22.06.23 18 0 14쪽
105 달콤한 유혹 - 10 22.04.21 22 0 15쪽
104 달콤한 유혹 - 9 22.04.12 22 0 11쪽
103 달콤한 유혹 - 8 22.04.04 23 0 12쪽
102 달콤한 유혹 - 7 22.03.28 26 0 12쪽
101 달콤한 유혹 - 6 22.03.22 18 0 12쪽
100 달콤한 유혹 - 5 22.03.10 22 0 12쪽
99 달콤한 유혹 - 4 22.02.20 21 0 11쪽
98 달콤한 유혹 - 3 22.02.08 23 0 11쪽
97 달콤한 유혹 - 2 22.01.30 26 0 12쪽
96 달콤한 유혹 - 1 22.01.24 26 0 17쪽
95 작고 흰 괴물 22.01.16 21 0 12쪽
94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8 22.01.09 16 0 10쪽
93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7 22.01.03 16 0 18쪽
92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6 21.12.28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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