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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텐스의 리루비안 연재지

기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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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텐스
작품등록일 :
2020.08.29 17:54
최근연재일 :
2024.02.29 20:38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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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6
추천수 :
18
글자수 :
697,994

작성
22.01.30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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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달콤한 유혹 - 2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DUMMY

낯익은 길을 지나 세르방트 구역에 도착하니 둘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너 말대로 데려왔어.”


차분하게 돌담 위에 앉아있던 소녀는 둘을 발견하자 옷을 털며 일어났다. 사슴과도 같은 뿔을 가지고 있는 소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신랄하게 말했다.


“오래 걸린 걸 보면 또 사고 치고 데려왔나 보네. 내가 조용히, 안될 거 같으면 안 데려와도 된다고 했잖아?”


한없이 자애한 목소리로, 모든 것을 포옹할 것 같이 웃는 얼굴로,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가시가 있었다. 분위기는 날씨에 맞지 않게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마리는 변론을 포기했다.


“이미 일어난 일이잖아.”


소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 사건에 책임을 느끼고 있는 린세에겐 그 한숨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날아들었다.


“그래. 그래도 나 대신해준 거니까.”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의 표정이 다소 풀렸다.


“그리고 당신, 어떤 사정인지는 듣고 온 거지?”


소녀의 시선을 받게 된 린세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소녀를 본 순간부터 느껴지던 기묘하면서도 왠지 꺼림직한 기운이 한층 더 강해져서 린세를 압박해왔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저 때문인 거죠? 제가 해드릴 게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전통과는 살짝 거리가 있긴 해도 탄트라 양식인 복장, 존재부터 다르다는 걸 알리는 듯한 강렬한 기운, 그리고 신수가 있다는 마리의 언급, 린세는 소녀에게 압도되었다.


“아마 제대로 설명 안 했을 거니까 다시 할게. 어제 너와 있었던 소란 중에 리안, 그러니까 남자쪽이랑 안면이 있는 사람이 있었나봐. 덕분에 상부에 이야기가 들어갔고, 징계를 받게 되었지.”


있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마족과의 교제를 허락하지 않는 직장이야 지천에 널려있었고, 누가 찔러버린다면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뿐이면 좋을 텐데, 리안은 공무원이야. 그것도 항만 공무원. 국가 중요시설 종사자로서 마족과의 교제가 불법이었다는 게 문제지. 조만간 본국으로 후송될 거야.”


앞선 말만 듣고 다소 안심하고 있던 린세는 그 뒤의 이야기를 듣자 가슴이 내려앉았다. 자신의 한 마디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뭐 본인도 불법인 거 알고, 들키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바보 같이 자기 구역에서 데이트를 한 거니까 할말은 없을테지만, 그래도 손 놓고 있자니 아무래도 좀 그래서 말이야.”


소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리를 보았다. 마리는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여기 와서 처음 만든 친구기도 하고 말이지. 이건 이쪽 사정이지만. 그래서 아가씨 생각은 어때? 아가씨한텐 아무 이득도 없는 이 일을 도울 거야?”


그런 건 마리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린세는 소녀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요. 대사님은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지만,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고 싶어요.”


나서면 안 된다. 외교관은 한 나라의 얼굴이자 손이고 발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허가를 받은 상황에서만 움직여야 한다.


잘 알고 있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잠시 뒤로 미뤄두고 싶었다.


‘백호님이라면 이렇게 하셨을 테니까.’


백호를 생각하며 린세는 주먹을 쥐었다.


“대담한 건지 무책임한 건지.”


소녀는 작게 웃었다. 소녀에겐 이 신참 영사가 생각하는 것이 손에 잡히듯 훤히 보였다. 성장배경을 보여주는 듯한 안일한 태도이긴 하나,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소녀는 가산점을 주고 싶었다.


“걱정하지 마. 큰 역할은 시키지 않을 거니까. 그냥 사정 설명만 해줘. 리안에게 유리한 쪽으로.”


뭔가 굉장한 제안이 나올 거라고 각오하고 있던 린세는 예상보다 간단한 부탁에 다소 진이 빠졌다. 그거라면 누구의 부탁 없이도 린세 스스로 떠올릴 수 있는 해결 방법이었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요.”


“좋아. 사실 별로 좋진 않은데, 좋은 거라고 생각해야지. 그럼 우리 친구를 구하러 가볼까?”


그렇게 리안을 구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마치 일이 잘 풀릴 거라는 듯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반겨주었다.


“지미 쪽은 어때?”


“더러운 세르방트 놈들 하는 짓이 참 간사하대.”


“그거 말고.”


“준비는 다 됐고 신호만 달래.”


“든든하네. 리안의 저금이 충분해야 할텐데.”


“꽤 있을 거야. 아마도. 얼마 전에 주식 시작했다는 거 같은데?”


“주식이 뭔데?”


“설명하려면 길어.”


“음. 찾아봐야겠네.”


잘 모르는 린세가 보기에도 둘은 상당한 격의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는 소녀와 마리를 보며 린세는 둘의 정체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저기, 혹시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서로 호칭을 아는 편이 편할 것 같아요.”


마리와는 서로 통성명이 끝난 상황이었다. 린세의 발언은 다분히 소녀를 향한 말이었다.


“나한테 하는 말이려나?”


소녀는 작게 웃으며 린세를 보았다. 마치 부모가 아이를 보는 것 같은 자애로운 미소에 린세는 정신을 빼앗기는 것 같았다.


“네, 맞아요.”


린세는 어디선가 이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워낙 생소한 감각인지라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다.


“샤오란펑. 편하게 불러도 돼.”


그 이름을 듣자 린세는 뭔가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감각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뭔지 생각해 보려는 찰나에 셋은 항구에 도착했다.


“여기부터 너가 힘 내줘야 돼. 나나 마리는 나서면 안 되거든. 방법은 맡기겠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의 안전을 생각해.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면 안 되잖아?”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됐다. 린세는 짧게 심호흡을 한 뒤에 항구 경비원에게 다가갔다.


“현재 민간 운행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돌아가 주시죠.”


‘직원이 마족이랑 교제한 게 그렇게나 큰 사건이야? 항구를 닫을 정도로?’


린세는 새삼 자기가 저지른 일의 크기를 통감했다. 정말 부임하자마자 대형사고를 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잠깐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서 왔습니다. 제게 해명할 기회를 주시겠어요?”


경비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린세는 긴장 속에서 차분히 반응을 기다렸다.


“상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린세는 경비원의 요구대로 대강의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들은 경비원은 잠시 고민하더니 사람을 더 불러왔다.


“일단 안쪽에 오셔서 얘기하시겠습니까?”


마족인 린세는 본래 항구에 접근하는 것조차 힘들어야 했지만, 외교관이란 직책은 그것을 뛰어넘어 아예 들어가는 것까지 가능하게 했다.


정문의 경비초소 근처의 건물에 있는 한 방에서 대기하던 린세는 머리를 근사하게 넘긴 회색 머리의 중년 남성과 만났다.


“반갑습니다. 세르방트 연방 수사관 한스라고 합니다.”


중후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한스는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설마 인간에게 먼저 악수 요청을 받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린세는 당황하면서도 그 손을 잡았다.


“콜로딘 주재 탄트라 대사관 소속 린세 영사입니다.”


억새고 단단한 손이었다. 단지 손을 맞잡은 것만으로 상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것 같았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오해가 있으신 것 같다고요?”


린세는 정신을 가다듬고 한스에게 집중했다. 리안의 운명이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허투루 할 수 없었다.


“네. 허락만 해주신다면 해명을 조금 하고 싶은데요.”


린세가 말하는 동안 한스는 뒤의 부하에게 차를 타오라고 시켰다. 린세의 말이 끝나고 다시 린세를 본 한스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차는 취향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각설탕 2개만 넣고 마시는 걸 좋아합니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각설탕 6개 정도 넣는 걸 가장 선호해요.”


“단 걸 좋아하시는 군요. 마침 쿠키가 들어온 게 있으니 같이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기대되네요.”


한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얼굴에서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다. 린세는 그것이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지만, 지금 당장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었다.


“많이 놀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설마 그렇게 작은 사건이 이렇게나 크게 번지리라곤 상상하시기 힘드셨겠죠.”


“더군다나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니까요. 아무래도 저와 같은 종은 만나기 어렵다 보니 살짝 비슷한 기운이 난 거로 저도 모르게 흥분해버리고 말았거든요.”


“으흠. 그렇게 된거군요. 그럼 그 때 피의자가 만나고 있던 여인은 마족이 아니었단 거군요?”


“그렇죠. 같은 마족끼리도 가끔씩 헷갈리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한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차가 들어왔고, 부하 수사관들은 빠르게 테이블을 차리고 돌아갔다.


“영사님의 뜻은 잘 알았습니다. 서로 일은 크게 키우고 싶지 않겠죠?”


좋던 싫던 양쪽 모두 공무를 보는 입장이었다. 일은 가능하면 작은 편이 좋았다.


“그러는 게 좋겠죠.”


린세는 일이 이렇게 쉽게 해결되리라곤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살짝 김이 빠졌다. 각오까지 다질 정도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연방 수사관의 입장에서 아무리 영사님의 말이라고 해도 그것만 듣고 판단을 내리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기 때문에 당장의 조치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당한 말이었다. 도리어 이대로 끝난다면 너무 쉽게 끝났다고 의심스러울 상황이었다. 만약 린세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세르방트 쪽에서는 탄트라에 책임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이해합니다. 그럼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네요.”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린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남은 건 밖에 있을 둘에게 지금의 성과를 말해주는 것뿐이었다.


“아직 차가 많이 남았는데 그렇게 서두르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조금 더 머물다 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마침 쿠키도 왔군요.”


한스가 그렇게 말하는 찰나에 부하들이 쿠키를 가져왔다. 마음은 감사해도 아직 해결할 일이 남은 린세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아직 일이 남아서요. 다음에 또 같이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대사님한테 사과도 해야 하고 말이지.’


“밖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라도 있는 모양이군요.”


별거 아닌 한마디였다. 그러나 린세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온 몸에 전기가 달리는 것 같았다. 무언가 잘못됐다. 그게 무엇인지 확신할 순 없어도 확실하게 존재했다.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좋은 소식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스는 그렇게 말하고 쿠키 하나를 집어먹으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냥 가면 안 돼.’


린세는 지금 여기서 한스를 잡아 둬야 했다. 설령 바보짓을 한다 할지라도 그렇게 해야 했다. 최소한 지금과 같은 결말이어서는 안됐다.


“입구까지 안내해드려.”


“아······.”


그러나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이 한 말이 족쇄가 되어 린세를 묶어놓았다. 린세는 무력하게 밖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부임하자마자 대형사고를 친 린세.


앞날이 어둡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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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달콤한 유혹 - 22 23.04.13 11 0 12쪽
116 달콤한 유혹 - 21 23.02.21 14 0 11쪽
115 달콤한 유혹 - 20 23.02.09 15 0 13쪽
114 달콤한 유혹 - 19 22.12.24 17 0 11쪽
113 달콤한 유혹 - 18 22.10.31 15 0 11쪽
112 달콤한 유혹 - 17 22.10.19 16 0 10쪽
111 달콤한 유혹 - 16 22.10.06 17 0 11쪽
110 달콤한 유혹 - 15 22.09.18 18 0 11쪽
109 달콤한 유혹 - 14 22.08.13 18 0 14쪽
108 달콤한 유혹 - 13 22.08.01 23 0 11쪽
107 달콤한 유혹 - 12 22.07.02 18 0 13쪽
106 달콤한 유혹 - 11 22.06.23 18 0 14쪽
105 달콤한 유혹 - 10 22.04.21 22 0 15쪽
104 달콤한 유혹 - 9 22.04.12 22 0 11쪽
103 달콤한 유혹 - 8 22.04.04 23 0 12쪽
102 달콤한 유혹 - 7 22.03.28 26 0 12쪽
101 달콤한 유혹 - 6 22.03.22 18 0 12쪽
100 달콤한 유혹 - 5 22.03.10 22 0 12쪽
99 달콤한 유혹 - 4 22.02.20 21 0 11쪽
98 달콤한 유혹 - 3 22.02.08 23 0 11쪽
» 달콤한 유혹 - 2 22.01.30 26 0 12쪽
96 달콤한 유혹 - 1 22.01.24 26 0 17쪽
95 작고 흰 괴물 22.01.16 21 0 12쪽
94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8 22.01.09 16 0 10쪽
93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7 22.01.03 16 0 18쪽
92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6 21.12.28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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