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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텐스의 리루비안 연재지

기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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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텐스
작품등록일 :
2020.08.29 17:54
최근연재일 :
2024.02.29 20:38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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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수 :
697,994

작성
22.02.0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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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달콤한 유혹 - 3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DUMMY

경비원들에게 안내 아닌 안내를 받고 바깥으로 나온 린세는 란펑과 마리의 앞에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린세의 태도에서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한 마리는 망설임 없이 린세의 옷깃을 잡았다.


“지금 질 나쁜 장난하고 있는 거면 곱게는 못 걸어갈 줄 알아.”


“마리.”


“쯧. 어떻게 됐어?”


마리가 손을 놔주고 흐트러진 옷을 정리한 린세는 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전달했다.


“제 실수예요. 마족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는 모습에 경계가 풀어지고 말았어요. 아마 제 신분이 진짜여도 대사관 업무로 온 게 아니라는 건 알았을 거예요. 그리고 누구의 사주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도 짐작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세르방트와 아무 접점이 없을 린세가 생판 남인 리안의 일을 알고선 찾아왔다. 누구의 부탁으로 찾아왔을 지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바보는 아니라는 거지. 영악한 놈들.”


마리는 혼잣말로 온갖 세르방트를 욕하는 말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마리는 내버려두고 리세와 란펑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뭔가 있어. 어쩌면 우리가 널 위험한 일에 끌어들인 걸 수도 있겠는데?”


린세는 마른침을 삼켰다.


‘일단 대사님하고 상의를 해봐야겠지? 그리고 아버님께 편지를 쓰고. 그리고, 그리고······.’


“진정해. 아직까지는 발을 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아직 완벽하게 진상을 안 것도 아니고. 그래서 저쪽이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말해볼래?”


사람이 진정하라고 한다고 쉽게 진정하는 경우는 적지만, 란펑의 말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린세는 마법처럼 진정해서 차분히 말을 했다.


“자기는 연방 수사관이라고 했고, 한스라고 했어요. 딱히 많은 얘기를 하진 않았어요. 갑자기 차의 취향을 묻더니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했고, 설명이 끝나니 차가 남았으니 마저 마시고 가라고 했어요. 제가 거절하고 가려고 하니 밖에 일행이 있냐고 묻고는 그대로 가버렸고요.”


이야기를 들은 란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예상이 맞다면, 리안이 우리 생각보다 거물인 모양이네. 우리한테 말 안해준 출생의 비밀이나 숨겨진 신분 같은 거 말이야.”


란펑은 그렇게 말하고 마리를 보았다. 린세 역시 마리를 보았다. 마리는 눈썹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난 들은 거 없어. 나한테 따져도 아무것도 안나와.”


마리의 항변에도 란펑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니면 그 한스라는 사람이 연방 수사관이 아니던가.”


마리와 린세의 행동이 동시에 멈췄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먹을 쥐었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어요.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아무리 항구 직원이라고 해도 마족이랑 교제하는 게 항구 전체를 정지시킬 사유가 되는지 궁금했거든요.”


“난 좀 다른 의견이야. 그 연방 수사관이라는 직책. 관할구역이 세르방트 본토야. 일반적으로 콜로딘 같은 해외엔 다른 기관에서 파견이 올 텐데 말이지. 부자연스러워.”


어느 쪽도 가능성이 있었다. 이상의 점들을 합쳐보았을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뭐가 되었든 리안은 굉장히 똥 밟았다는 거지. 그걸 건져내야 하는 우리도 마찬가지고. 이대로 깔끔히 리안을 놔주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일 수 있어.”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란펑의 제안을 따르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그렇게 물러날 거였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었고, 플랜B를 준비하지도 않았다.


마리도 린세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란펑은 작게 웃었다. 세상은 결코 기분 만으로 흘러가지 않는데 참으로 대책이 없어 보이는 둘이었다.


“근데 별로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네. 좋아. 우린 이제부터 범죄자가 되는 거야. 물론 들켰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야.”


란펑은 그렇게 말하고 언제 꺼냈는지 모를 수정구슬을 손에 들었다. 늘 있는 일이라 무덤덤한 마리와는 다르게 린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했다.


“리안은 지금 여기 있어. 처음 점쳤을 때랑 크게 바뀌지 않았네. 그럼 계획대로 해도 되겠어.”


수정 구슬엔 항구의 약도와 리안이 있을 위치로 보이는 작은 점이 나타났다. 린세는 신기함에 두 눈이 빠져라 크게 뜨고 수정구슬을 들여다보았다.


‘어떻게 하고 있는 거지? 마법으로 하고 있는 건 아닌데. 신수님의 능력인가? 신기하네. 나도 할 수 있을까?’


“저는 뭘 하면 될까요?”


어디까지나 자기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 린세는 여기까지 와서 발을 빼고 싶진 않았다. 무시하고 갈 일이었으면 마리가 찾아왔을 때 얼굴을 내밀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 아무한테도 말 안하고 왔지? 일단 보고부터 하고 오도록 해. 나중에 큰 일 나면 안 되니까.”


마침 린세도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일은 이제 린세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고 있는 듯하였다.


“누가 오는데?”


어느새 혼잣말을 멈춘 마리가 말했다. 다른 둘도 마리가 보는 방향을 보니 항구의 입구 근처에서 두리번거리다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젓는 사람이 있었다.


“만홍 씨?”


린세는 놀라움 반 반가움 반으로 만홍에게 다가갔다. 만홍은 다 포기하던 찰나에 나타난 린세의 모습에 기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하여 자신의 못미더운 상사를 맞이했다.


“한참 찾았습니다. 대사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것을 뛰쳐나왔으니 기겁해서 찾는 건 대사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부임한지 얼마되지도 않아 사고를 친 영사가 그걸 수습한다고 또 얼마나 큰 사고를 칠지는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떠올릴 수 있었다.


여기선 돌아가는 것이 맞다. 비록 자신의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긴 하나 본인이 수습할 수 없는 일을 괜히 나서서 해결 하려다가 망치기보다는 뒤로 물러나 다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맞았다.


“대사님은 접경지에 계십니다.”


그러나 어디서 기원한 건지 모를 반골의 기상이 만홍을 본 순간부터 린세를 감싸기 시작했다.


멀쩡히 대대손손 잘 살던 고향을 떠나 세상 반대편의 땅에 정착하여 혁명까지 일으키는 반골의 가문이었다. 만약 오른손으로만 밥을 먹는 나라가 있다면 왼손으로만 먹을 것이고, 깽깽이 발로 다녀야 하는 나라가 있다면 물구나무를 서서 다닐 것이다.


누군가 물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에 이유가 있느냐고. 그러나 이유가 있다면 반골이 아니다. 반골이란 마음을 먹고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게 아닌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심성에서 비롯되는 것. 남들과 같다는 걸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것이 반골이다.


그 어떤 흡혈귀가 자신의 영지를 버리고 다른 나라로 떠날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상식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객기에 가까운 미친 짓임이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걸 따라가는 반려 또한 정상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탄트라에 오게 되었고, 그들이 낳은 자손은 혁명 공신이 되어 탄트라를 뒤집는데 당당히 한몫을 했다. 실패는 곧 멸족으로 이어지는 것임에도 거리낌 없이 그렇게 하였다. 결코 평범한 발상으로는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이성과 합리성이 판단의 기준이 된 세상에서 이들의 선택은 절대 용납하기 힘들었다. 철저한 계산과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즉흥적인 기분으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했다. 플라워무스 가문은 이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로맨티스트들인 것이다.


그 가문의 일원 린세 역시 다르지 않았다. 흡혈귀면서 피 대신 설탕을, 고기보다 빵을, 정기 대신 사랑을 선택한 반골의 투사인 린세를 범인의 잣대로는 절대로 잴 수 없었다. 이번의 린세의 선택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아뇨. 저는 이분들의 계획에 동참하겠어요. 지금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린세는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막 도착하여 전후 사정을 모르는 만홍에게는 그저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돌아 가셔야 합니다. 대사님 화 많이 나셨습니다.”


여느 날처럼 평범하게 잡일을 하던 만홍은 갑자기 진상이 오더니 한바탕 소란이 나고, 잠잠해지나 싶더니 대사가 난동을 부린 뒤 영사가 헛소리를 하는 상황을 묵도하게 되었다.


그저 별다른 일 없이 일을 끝내고 음료 하나 사서 독서와 함께 하루를 마치고 싶은 만홍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죄송해요. 만홍 씨만이라도 먼저 돌아가 주세요.”


말은 그렇게 해도 여기서 그냥 돌아간다는 건 만홍이 대사에게 박살이 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매일매일이 구박의 연속인 만홍에겐 오늘만이라도 조용히 넘어갈 수 있길 바라는 염원이 있었다.


“아뇨. 저도 갑니다. 무슨 일을 하시는지는 알고 가야 대사님께 뭐라고 말씀드리지 않겠습니까?”


이번엔 역으로 린세가 당황했다. 설마 따라온다고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뭐 소풍 가는 줄 아나? 간다고 다 갈 수 있는 줄 알아?”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마리가 말했다. 분위기가 급속도로 이상해지는 와중에 란펑이 적절히 나섰다.


“그 정도로 여유가 없진 않아. 그리고 린세? 데려는 가줄 거야. 근데 그 튀는 외모는 알아서 숨겨. 들키면 좋을 거 없잖아? 그리고 새로 온 사람. 당신도 외교관인 거지? 알아서 신분 잘 숨겨. 나나 마리는 연고지가 없어서 그냥 자리를 뜨면 되지만, 너희는 아니잖아. 무슨 말인지 알지?”


란펑의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진정됐다. 분위기가 진정되자 란펑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정말 하기 싫었는데. 이런 사소한 일에 능력이나 쓰고. 샤오, 칭란, 치레이······. 아, 메이화도 껴주자.”


“긍정적으로 생각해. 지금이 아니면 언제 능력 써보겠어?”


“분명 괜찮을 거예요!”


“이번일 끝나면 이사 갈래. 용궁에 자리 있을까? 다른 지방도 좋겠지.”


란펑이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구름 한 점 없이 맑던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윽고 빈자리 없이 하늘을 메운 먹구름은 이내 천둥 번개와 함께 폭우를 뿌리기 시작했다.


“자, 작업 시작. 모쪼록 들키지 않게 조심해.”


“뭘 하는데요?”


만홍의 질문에 란펑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이걸 자기 입으로 말해야 한다는 게 참으로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리안을 탈옥시킬 거야.”


린세와 만홍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업보 청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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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달콤한 유혹 - 21 23.02.21 15 0 11쪽
115 달콤한 유혹 - 20 23.02.09 15 0 13쪽
114 달콤한 유혹 - 19 22.12.24 17 0 11쪽
113 달콤한 유혹 - 18 22.10.31 15 0 11쪽
112 달콤한 유혹 - 17 22.10.19 16 0 10쪽
111 달콤한 유혹 - 16 22.10.06 17 0 11쪽
110 달콤한 유혹 - 15 22.09.18 18 0 11쪽
109 달콤한 유혹 - 14 22.08.13 20 0 14쪽
108 달콤한 유혹 - 13 22.08.01 24 0 11쪽
107 달콤한 유혹 - 12 22.07.02 18 0 13쪽
106 달콤한 유혹 - 11 22.06.23 18 0 14쪽
105 달콤한 유혹 - 10 22.04.21 22 0 15쪽
104 달콤한 유혹 - 9 22.04.12 23 0 11쪽
103 달콤한 유혹 - 8 22.04.04 24 0 12쪽
102 달콤한 유혹 - 7 22.03.28 26 0 12쪽
101 달콤한 유혹 - 6 22.03.22 18 0 12쪽
100 달콤한 유혹 - 5 22.03.10 23 0 12쪽
99 달콤한 유혹 - 4 22.02.20 22 0 11쪽
» 달콤한 유혹 - 3 22.02.08 24 0 11쪽
97 달콤한 유혹 - 2 22.01.30 27 0 12쪽
96 달콤한 유혹 - 1 22.01.24 27 0 17쪽
95 작고 흰 괴물 22.01.16 23 0 12쪽
94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8 22.01.09 16 0 10쪽
93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7 22.01.03 16 0 18쪽
92 초에 불을 불이는 건 누구인가? - 6 21.12.28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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