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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므

SSS급 빌런이 연기를 잘함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레므
작품등록일 :
2023.10.26 13:42
최근연재일 :
2024.05.06 19:05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569
추천수 :
56
글자수 :
81,554

작성
24.05.05 17:40
조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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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욕탕에서 생긴 일 (1)

DUMMY

리오네 대륙 3대 범죄 조직 중 하나인 ‘MOON’.

제국조차 찾지 못한 그들의 근거지인 아르뮨에서의 이틀 차.

뜬금없이 보스가 되어버린 내 오전 일정은 매우 단순했다.

‘MOON’에서 자체적으로 석공 실력이 뛰어난 이들과 마법에 능한 이들을 불러 만든 욕탕을 점검하는 것이 전부.

게다가 말이 점검이지, 사실상 혼자서 욕탕을 써보는 거라고 한다.


“욕탕 내에 갈아입으실 옷과, 안에서 씻으실 수 있는 것들까지 모두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음ㅡ.”


마치 유명 욕탕 블로거가 되어서, 리뷰를 부탁 받은 기분이랄까?

한 번도 해본적은 없지만 그래도 잘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표현’은 배우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 중 하나이니까. 그럴듯하게 케일 식으로 포장해서 얘기해주면 좋아하겠지.


“이쪽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집사장 멀린’을 따라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큰 키, 나이에 비해 정정한 몸, 작은 움직임 하나 허투루 쓰는 것 없이 절도 있는 중년의 남자.

내 방에 닌자처럼 숨어있던 남자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 집사가 맞았고, 그것도 아르뮨에서 기거하며 일을 하는 집사들의 장이라고 한다.


“아, 멀린님!”

“집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나보다 약 2m정도의 거리를 앞서서 걷는 그에게, 각자 볼일을 보던 아르뮨의 직원들이 인사해온 덕택에 알게 된 정보였다.

물론 그 뒤를 따라 걷는 나를 보며 다들 화들짝 놀라 인사를 해오기는 했지만.


“안녕하십니까, 주인님!”


다들 보스가 아닌 주인님이라고 칭하는 게, 뭔가 기분이 묘하다.

마치 내가 메르하임 케일이 아닌 듯이 비쳐지는 느낌?


‘보안 같은 문제 때문에, 저런 일반 직원들에게는 내 정체가 공개되어 있지 않은 걸 수도.’


해서 나는 일단은 그렇게 결론을 지어 놓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이야기였고, 막말로 이 안에 세작 같은 게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사실 여기를 본거지로 의심을 했다면 진즉 털리고도 남았을 터라, 세작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자칫 여기서 MOON이라거나, 메르하임 케일이라거나 등의 이름이 나와버리면··· 그걸 제국의 황제에게 일러바치는 이들은 있을 수도 있지.’


입이 무거운 사람만을 애초에 걸러내어 고용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나도 입조심을 해야 하겠네.’


저들에게는 ‘그냥 어떤 귀족’ 정도로 취급을 받는 쪽이 낫다.

정체를 들키지도 않으면서 괜히 공포심을 새겨 넣을 이유도 없고.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지하 1층에 지어 놓았다는 욕탕에 도착을 했다.

나는 멀린의 뒤에 서서, 휘황찬란한 입구를 보며 표정관리를 해야만 했다.


‘···이게 욕탕이라고?’


아니 세상에 어떤 인간이, 욕탕에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하는 거지?

들어가는 입구부터 번쩍번쩍 거리는 것이 비싼 금속을 덕지덕지 바른 듯했고, 심지어는 고작 욕탕 입구 따위에 보안 마법까지 걸려 있었다.


“만물에 존재하는 기원을 따라서······.”


중얼중얼거리며 주문을 외는 멀린을 보며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걸어 두었길래, 멀린 주변의 마력이 저렇게 떨어대는 건지······.


‘아니, 잠깐만. 그 와중에 멀린도 마법사였어···?’


적어도 멀린만큼은 나처럼 평범한 인간이기를 바랐는데···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조직이길래 집사장까지 마법사야···?

이름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납득은 되지만, 정말이지 곤란한 곳이 아닐 수가 없다.


‘허.’


나는 멍하니 멀린의 양 손바닥에서 회전하는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곧 햇볕을 받아 반짝거리는 듯한 물빛의 마법진이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이내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의 잠금 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스께서 시키신 대로 ‘셀리아’ 지역의 고급 광물을 이용하여 4중 보안 장치를 걸어 둔 마법진입니다만··· 어떠신지요? 클루에 마틴 경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또 너냐, 케일.

케일의 어마어마한 소비 습관에 대한 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아내며, 나는 고개를 끄덕여 멀린의 말에 답했다.


“나쁘지는 않군.”

“5중으로 처리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아무래도 문을 여는 데에 시간이 15분가량 늘어나기도 하고, 비용 또한 천문학적으로 늘어납니다.”


멀린은 그렇게 소신발언을 하며 고개를 깊이 숙여왔다.


“허나 보스께서 명하신다면, 마틴 경에게 다시 말을 해 두겠습니다.”

“아니다, 됐다.”


자금난이라며. 사실 자금난 아닌 거 아니야?

이따가 오후 일정 때 꼭 확인을 해봐야겠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금액부터, 가용가능한 돈이 얼마나 되는지.


“들어가지.”


나는 근엄한 표정을 유지한 채, 활짝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욕탕?’


그리고 다시 한번 똑같은 감상을 속으로 내뱉었다.

예전에 이렇게 생긴 거··· 중동 부잣집 사진 같은 곳에서 본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정말로 입을 쩍 벌리며 감상을 할 뻔했다.


‘이 세계에서는, 이게 일반적인 욕탕인 건가···?’


투명하다시피 닦인 유리문 너머의 풍경은 가히 놀랍다는 말로도 표현이 되지 않았다.

거진 집 한 채가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넓은 사이즈에, 문에 있던 것과 같은 금속인 것인지 욕탕 바닥은 물빛으로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다.


‘벽은 금인가?’


사방을 둘러싼 벽은 황금, 바닥은 맑은 호수와 비슷한 하늘색, 허공에 떠다니는 하얀색의 빛들.

멀린 또한 홀린 듯 욕탕 내부를 바라보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말을 덧붙였다.


“내부 조명은 아리님이 성광 마법을 띄워 두시는 것으로 해결했으며, 이곳도 보스께서 내비친 의중 대로 셀리아 지역의 고급 광물을 활용하였습니다.”

“훌륭하군.”

“아아ㅡ. 감사합니다.”


멀린은 훌륭하다는 말에 감격을 받은 건지, 한 손을 가슴 부근에 얹으며 미소를 지었다. 호선을 그리는 그의 입가 위로 자잘하게 난 수염이 따라 휘었다.

그러고는 그런 기분을 드러내듯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청석(靑石)은 익히 알려져 있듯이 공기 중의 마력을 결집하는 데에 매우 뛰어난 효과를 지니고 있어서, 휴식을 취하는 것에 훌륭한 효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또한 아리님의 성광 마법에는 신 ‘플루토’님의 신성이 담겨 있는 바, 그 자체로 치유 능력을 발휘하여 보스께서 사용하실 욕탕의 본분을 충족시키는······.”

“그만ㅡ.”


나는 빠르게 손을 들어, 멀린의 입을 제지했다.

마치 사우나에 갔을 때 보이는 ‘녹차의 효능.’ 등의 글을 말로 읊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욕탕에 축 늘어진 채 보면 나름 재밌기는 하지만, 옷을 갈아입는 이곳에서 들을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 제가 이런 실수를. 크흠.”


멀린 또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이며, 깊이 허리를 숙여 마지막 말을 전했다.


“그럼, 편히 즐기고 나오십시오.”


뒷걸음질로 물러나는 멀린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고개를 옆으로 꺾어 벽에 걸려 있는 마법 시계를 확인했다.

순간 눈으로 볼 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언어와 모양이었으나, 이번에도 마치 자동 번역을 하듯 정확한 시간을 인지할 수 있었다.


‘오전 9시 30분이니까, 대충 3시간은 여유가 있나.’


오후 일정에 넘어가기 전, 또 점심 식사가 있다고 하니까.


‘3시간이면 충분하지.’


오히려 그 전에 질려서 나오지 않을까?

나는 어깨를 으쓱 올리곤, 이내 하나씩 입고 있는 옷을 벗어 커다란 장 안에 하나씩 담았다.


‘그나저나 사우나는 오랜만이네.’


사실상 말이 욕탕이지, 결국 생긴 것은 사우나와 비슷하다.

물 온도에 따라 다르게 만든 개별 욕탕과, 증기를 이용한 사우나 등등. 흔히 동네에서도 볼 수 있는 형태의 사우나 말이다.


‘악역 전문 배우로 유명해진 뒤에는, 마음 편히 이런 곳은 오지 못했으니까.’


이렇게 고급스러운 시설을 매일 이용하는 거야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가끔씩 누구의 방해도 없이 마음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기분이 좋다.

케일을 연기해야 될 이유 목록에 추가해줄만 할 정도로 말이다.


스윽ㅡ.


탈의실과 욕탕을 구분 지어 둔 유리문을 열며, 나는 나체 상태로 욕탕 내부로 진입했다.

벌써부터 열탕 등에 들어갈 물을 채우기 시작했는지, 뿌연 연기가 일정 부분에 생겨나고 있었다.


“흠.”


바로 물에 뛰어 들어 몸을 담굴까 싶었으나, 아무리 혼자 사용하는 거라 해도 탕 안에 들어가기 전 몸을 씻는 것은 필수.

멀린이 말한 대로 미리 준비되어 있는 샤워 용품을 하나하나 다 써보며 나는 깨끗하게 몸을 닦았다.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 씻지 않고 잠들었던 찝찝함이, 싹 사라지는 것 같은 개운함이 들었다.


“······.”


괴물엘과 대련이라는 끔찍한 일정도 같이 사라졌으면 참 좋겠다만··· 그건 어쩔 수 없겠지. 늘 그래왔듯이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뭐, 그건 그거고. 일단은 3시간만이라도 편하게 있어 보자.’


나는 깔끔하게 샤워까지 마친 뒤, 가장 뜨거워 보이는 탕으로 향했다.

여기도 마법으로 물을 채워 넣는 것인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물은 어느덧 탕 내에 꽉 차 있었다.

안에 손을 넣어 휘휘 젓자, 딱 원하는 정도의 온도가 피부에 느껴졌다.


“으으음ㅡ.”


그래도 무식하게 뜨겁게 해 놓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나는 곧바로 탕 안에 몸을 담갔다.

발끝부터 목까지, 잠긴 모든 신체 부위가 흐물흐물 녹아 내리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좋군.”


탕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벽’에 양 팔을 올린 채,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곤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평화로운 분위기를 즐겼다.

이세계에 오고 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로움과 평안이었다.


‘전생한지 고작 3주 됐나···. 벌써 1년도 넘은 것처럼 느껴지네.’


고작 구걸 1주, 마차 여행 2주가 전부인데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이 어찌나 스펙타클 했었는지.

벌써부터 배우 조상현의 삶이 가물가물하다.


‘그냥 여기 짱박혀서, 죽을 때까지 있고 싶네···.’


그러면 밤에 있을 대련도, 범죄자 소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칠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아, 여기가 범죄자 소굴 욕탕이지.’


그러다 문득 깨달은 씁쓸한 현실에, 내가 한숨을 푹 쉬는 순간이었다.


“어···?”


탕의 벽과 바닥까지 청석으로 되어있기 때문이었을까?

어디서 생성되었는지 모를 마나들이 대기중에 뭉쳤다가 청석 내부로 흡수되기 시작했고.


[ 고유마법 ‘마나흡수[SS]’를 사용합니다. ]


제멋대로 발동한 이상한 마법이, 청석으로 흡수된 마나들을 몸 안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고유···마법은 또 뭐야.’


다만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할 틈은 없었다.


우두둑ㅡ.

“···흡···!!”


마법이고 자시고 당장 손가락이 제각각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리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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